KOREA

서해숙

역학조사관, 서울특별시 서북병원

바이러스의 최전선에서

집단감염과 소강상태가 반복되는 코로나19의 힘겨루기가 이어지는 때, 모두가 꺼리는 감염 현장에 가장 먼저 찾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역학조 사관 서해숙 역시 이 중 한 명이다.

코로나19 사태 이전에는 역학조사관이라는 직업이잘 알려져 있지 않았다. 감염병이 발병하면 역학조사관은 어떤 역할을 하는가? 평상시에는 서울특별시 서북 병원에서 감염관리실장으로 일하며 호흡기 환자, 그중에서도 난치성 결핵 환자를 주로 진료한다. 코로나바이 러스와 결핵은 법정 감염병이라는 점에서 연관성이 있다. 2015년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진료 병원의 핫라인으로 서울시와 공조해 역학조사관으로서 수십 명의 노출자를 격리 및 진료하는 총괄 실무를 맡았다. 내이런 경력을 알고 있던 서울시의 추천으로 1월 28일부터 역학조사관으로 합류했다. 역학조사관은 감염병의 원인과 특성을 찾아내고, 발생과 전염 경로를 파악해 유행을 막을 방법을 찾아낸다. 역학조사의 첫 단계는 유행 여부를 판단하고 그 규모를 측정하는 것이다. 유행하는 것으로 판단하면 확산을 막기 위해 방역을 한다. 코로나19처럼 증상 발생 이후 감염력이 생기는 경우에는 접촉자를 적극적으로 파악해 감시하거나 밀접 접촉자를 격리 조치해 효율적으로 방어할 수 있다. 확진자의 동선별 접촉자를 확인해 방역 관리 대상자로 선정하고, 확진자의 동선에 소독을 시행해 추가 감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한다.

현장에서 감염경로를 추적하는 구체적인 과정이 궁금하다. 확진자가 발생한 자치구 보건소에 상황실을 마련한다. 확진자는 이미 병원에 격리된 상황이므로 해당 병원에 직접 찾아가 증상 발생 하루 전부터 행적을 파악한다. 이를 위해 신용카드나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 평원)의 의약품안전사용서비스(DUR), 휴대폰 사용 내역 등의 GPS를 활용한다. 이후에는 CCTV를 보고 확진자가 거쳐간 지역사회 현장이나 병원에 방문해 접촉 자의 범위나 일정 기간 폐쇄 여부를 결정한다. 보건소 방역팀의 환경 소독 일자도 이어 결정된다. 어떤 점에서 수사관 업무와 닮았다. 감염 진단 검사가 필요한지 판별하는 일도 한다.

기준이 모호해 판단이 쉽지 않을 것 같다. 설 연휴가 지나고 한 업무는 보건소에서 전달한 역학조사서를 보고 사례를 분류하는 일이었다. 당시에는 우한 지역이 포함된 후베이성에서 입국한 내국인이나 중국인이 진단 검사를 받아야 하는지 역학보고서를 보고 판별하는 일이 가장 중요했다. 연령, 거쳐온 국가나 도시, 증상 유무, 잠복 추정 기간, 기저 질환 여부 등을 꼼꼼히 살펴야 했는데, 단 한 명이라도 놓칠 경우 확진자가 크게 늘어날 수 있기 때문에 부담감이 무척 컸다. 발생 초반에는 보건소의 선별진료소를 방문한 사람들의 검사 여부를 판단해달라고 새벽에 전화가 걸려오는 일이 흔했다. 잠을 자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언제 역학조사서가 도착할지 예측할 수 없어 식사할 때도 휴대폰을 손에 쥐고 있었다. 무증상일지라도 확진자일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되는 경우에는 보건소에서 하루 2회, 전화로 발열을 체크하는 능동감시 대상자로 지정하라고 일러두었다. 이것은 모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최선을 다하자는 나의 다짐이 기도 했다.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면서 가장 힘든 순간은 언제였나? 모든 사람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확진자가 걷잡을수 없이 늘어났다. 사실 초반에는 메르스처럼 확 퍼졌다가 서서히 사라질 것이라고 예상했기 때문에 전문가 포럼에 참여했을 때 정부 자문위원에게 곧 마무리되느냐는 질문을 던졌다. 이 질문에 자문위원이 정색하며 곧 지역사회 전염이 시작될 테니 확진자의 입원을 준비하라는 답변을 해서 무척 의아했다. 그런데 바로 다음 날 대구에서 집단감염이 발생했다. 그분의 예측이 놀랍도록 정확히 들어맞아 아직까지도 소름이 돋을 정도다.

누구보다 먼저 감염 현장에 찾아가고 확진자와 접촉 해야 한다는 점에서 두려움도 있을 것 같다. 처음에는 많이 긴장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방역에서 세계 최고의 시스템과 물자를 제공하고 있다고 자부한다. 환자를 돌볼 때는 방호복과 고글, N95 마스크, 글러브 2개를 착용하고, 수시로 손을 소독해 대비한다. 지금은 한 달이상 확진자를 회진하면서 두려움이 많이 사라졌다.

메르스 이후 감염병 예방 관련 법이 개정되면서 현재의 역학조사 교육과정이 마련됐지만 여전히 인력이 턱없이 부족하다. 정부의 어떤 대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가? 여러 번 법률을 개정한 이후에도 정부에서 제시한 역학조사관의 수가 시도별로 충원되지는 않았다. 능력 있고 열정적인 역학조사관을 양성하는 것이 가장 시급한 과제다. 감염병 예방과 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시·도는 역학조사관의 수를 ‘2명 이상’이라고 지정하고 있지만 막연하다는 생각이 든다. 예를 들면, 시·도는 인 구 1백만 명당 1명, 시는 인구 50만 명당 1명, 군은 인구 30만 명당 1명, 구는 인구 20만 명당 1명 등으로 구체화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역학조사관의 수가 너무 많다면 주된 역할과 보조 역할로 구별해 양성하면 여러 면에서 효율적일 것 같다.

지금 이 순간에도 코로나19를 퇴치하기 위해 혼신을 다해 일하는 의료진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전한다면? 때때로 의료인이 현장으로 달려가게끔 만드는 일종의 사명감은 태생적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하루 종일 방호복을 벗지 못하는 오염 존에서 심신이 쉽게 지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대구·경북 지역에 의료진이 부족하 다는 말에 전국에서 의료 자원봉사를 가겠다고 자원하는 의료진이 무척 많았으니까. 심지어 사경을 헤매는 환자를 모아둔 중환자실에 자원하는 의사도 여럿 있었다. 그들은 마치 전쟁터에 자원입대하는 사람들 같다. 사회적 거리 두기를 실천하며 감염병에 성숙하게 대처하는 국민과 최전선에서 적진을 향해 나아가는 숭고한 의료진을 보며 내가 하는 일에 다시금 확신을 갖게 됐다.

코로나19를 겪는 모든 사람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는가? 현대인의 삶은 때때로 지극히 이기적이다. 하지만 메르스 때와 마찬가지로 여지없이 우리는 더불어 살아가야 한다는 당연한 사실이 증명됐다. 타인과 별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내 영역을 스쳐 지나간 사람이 내게 영향을 주기도 하고, 반대로 내가 누군가에게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 셈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라는 나노미터의 미생물을 통해 비로소 내 옆의 사람들을 의식하기 시작했다. 다만 코로나 19는 확진자 주변 1.5~2m 이내의 사정거리에 들어온 접촉자라도 마스크를 잘 쓰고 바이러스로 오염된 손을잘 씻는다면 감염을 예방할 수 있다. 금주와 금연, 환기, 구강위생 관리가 필요하고, 매일 따뜻한 물을 2L 이상 마시는 것도 도움이 된다.

혹자는 코로나19가 시작일 뿐이라고 말한다. 바이러스에 맞서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있을까? 5천만 명이 사망한 스페인독감이나 7천5백만 명이 사망한 흑사병과 같이 인류는 감염병과 수많은 전쟁을 치러왔다. 수습할 방책을 겨우 마련해놓으면 또 다른 감염병이 엄습했는데 이제는 그 주기가 더욱 짧아졌다. 특히 변이가 쉬운 바이러스는 매번 다른 모습으로 인류를 찾아오고 인류는 처음 겪는 감염병이다 보니 그 실체를 파악해는 데 시간이 걸려 초반에는 고전할 수밖에 없다. 기후변화와 환경오염을 이런 감염병의 원인으로 꼽곤 한다. 바이러 스의 확산에는 비행기처럼 신속히 이동할 수 있는 교통 수단도 한몫하고 있어 한 나라의 문제에 그치지 않고 전세계의 문제가 된다. 인류의 무자비한 환경 파괴에 보다 많은 사람이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의사로서 여전히 꾸는 꿈이 있나? 20여 년 전 캄보디아 의료봉사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매년 두세 차례 의료봉사를 간다. 지진이 일어났던 아이티나 엄청난 위력의 태풍이 지나간 필리핀에 긴급 구호도 다녀왔고, 인도를 비롯해 케냐, 방글라데시, 스리랑카 등에서 빈곤층의 질병을 해결하기 위해 작은 도움을 주기도 했다. 하지만 정작 가장 가까이 있는 북한 주민의 결핵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다. 북한을 제대로 알고 향후 남북 교류 전문가로서 인도주의적 활동을 하기 위해 관련 대학원에 다니고 있다. 현재 북한이 코로 나19 위기를 어떻게 해결하고 있는지 걱정도 된다. 북한뿐 아니라 전 세계의 코로나19가 하루속히 종식되어 모두가 안전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