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험적인 서사와 탐미적인 언어로 고유한 스타일을 구축한 작가 박솔뫼가 소설 <고요함 동물>로 돌아왔다. 소설 속 ‘나’는 작가가 선사하는 공간과 기억 그리고 사람들 속에서 진정한 자아를 찾아간다. 고양이 탐정 ‘차미’와 함께 수상한 기미와 징조들을 성실히 따라가보길. 평범한 일상이 특별하게 반짝이는 순간들을 만나게 될 것이다.

언젠가 탐정소설을 쓰고 싶다고 밝혔고, 드디어 탐정소설 <고요함 동물>을 출간했다. 사실 언젠가 탐정소설을 쓰고 싶다는 마음은 지금도 여전히 갖고 있다. <고요함 동물>은 탐정소설이라기보다 탐정소설의 여러 장면을 가져와 본래 내가 쓰는 스타일에 활용했다고 하는 편이 더 알맞다. 탐정이 등장하는 소설을 쓰고 싶은데 본격적으로 쓰기에는 아직 그에 맞는 상태가 되지 않은듯해서 내가 좋아하는 탐정소설의 순간들을 가져왔다. 소설 제목은 깊이 고민하기보다는 길을 걷다 우연히 떠오른 단어에서 착안했다.

소설 속 구성이 반복된다. 작품은 주인공의 ‘일상’과 고양이 발자국이 찍힌 ‘사건’, ‘대화’와 ‘대화의 끊김’같은 구성으로 이어지는데, 나의 다른 소설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기본적으로 이런 구성을 자연스럽게 여기기는 듯하다.

고양이 차미가 사건을 해결하는 탐정으로 등장한다. 고양이를 등장시킨 이유가 있나? 주변에 고양이와 함께 사는 친구들이 많다. 차미 역시 친구의 고양이 이름이다. 함께 있을 때면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 모를 만큼 고양이만 보고 있어서 언젠가는 고양이가 등장하는 소설을 쓰고 싶었다.

소설을 읽는 내내 거대한 시를 읽는 느낌이 들었다. 친근한 소재를 선택했지만 반복 어구나 리드미컬한 문장의 흐름으로 서사적 긴장감을 놓치지 않는다. 내 소설에 일관된 공통점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때그때 다른 것 같다. 처음 작품을 쓰고자 한 순간이나 장면에 집중하려고 한다. <고요함 동물>은 전작들과 달리 좀 더 편안하게 읽을 수 있는 귀여운 이야기다.

‘좋아하는 소설들과 긴장감을 유지하며 글을 쓰고, 그 태도를 좋아한다’고 말한 인터뷰를 본 적이 있다. 글을 쓰며 가장 영향을 많이 받은 작가가 있다면 누구인가? 최근 수년간은 로베르토 볼라뇨의 소설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그런데 결과물인 내 소설이 볼라뇨의 소설과 비슷한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부정적이다. 아무리 좋아해도 비슷한 결과로 출력되기는 어렵다는 생각도 종종 한다. 지난해에는 루시아 벌린의 <청소부 매뉴얼>이 인상적이었다.

소설에 등장하는 책 <실내연구>와 연결된 ‘방의 복원’, 즉 ‘공간’에 대한 이야기가 소설 전체를 관통한다. 공간에 대해 이야기를 풀어가는 태도는 전작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각 공간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이야기하기는 어렵지만, 늘 공간과 장소에 흥미를 느낀다. 항상 어딘가를 궁금해하고 그곳이 어떤지, 어떤 과거를 가졌는지 생각하는 편이다. 평소 생각에서 소설이 시작되기 때문에 공간이 중심이 되는 소설을 많이 쓰게 되는 것 같다. 밖에 나갔다가 방으로 돌아오면 방이 평소와 다르게 보이고 그러다가도 시간이 지나면 편해지지 않나. 이런 식으로 미세하게 변화하는 상태를 ‘방의 복원’이라고 표현했다.

<실내연구>를 쓴 작가 피에르 소골의 집은 김포발 하네다행 비행기 내부다. 공간이 어떤 방식으로든 만들어질 수 있다는 생각이 흥미로웠다. 비행기 내부에 관해 쓸 때 가장 몰입했고, 글을 쓰며 기분도 좋았다. 비행기 안에서는 평소에 하던 행동을 쉽게 하지 못하고 제한된 상황에 놓인다. 비행하는 동안은 행동에 제약이 있으니, 다른 일에 신경 쓰기보다는 책을 읽기에 좋은 공간이라고 생각해왔다. 현실에서도 여러 방식으로 다른 곳에 존재할 수 있다는 감각에 대해 자주 생각한다.

5장의 ‘고양이는 소리 냄새 촉감 움직임 등으로 고유의 실내를 구성하는 데 큰 영향을 미친다’라는 문장이 인상적이다. 방에 떨어진 회색 캐시미어 니트가 회색 고양이로 변하는 장면에서는 공간뿐 아니라 고양이까지 만들어진 셈이다. 작품에는 친구들의 고양이와 길에서 스친 고양이들의 특징이 섞여 있다. 특히 ‘작가의 말’에 쓴 고양이들이 많은 영향을 주었다. 우아한 표정의 흰 고양이 ‘두모’, 분홍색 입이 매력적인 큰 고양이 ‘꼼이’, 초록색 눈을 가진 ‘오이’, 고등어 고양이 ‘짱이’ 등이다. 특히 5장의 ‘나’가 도쿄 여행을 마치고 호텔 방에 들어섰을 때 만난 회색 과학자 고양이 ‘미오’는 ‘나’가 벗어놓은 회색 캐시미어 니트로 묘사되지만 실제로 니트로 구성된 것은 아니다. 작품 속 ‘나’는 평상시에 좋아하는 방의 장면들을 마음속으로 꼽아보며 잠이 드는데, 이런 생각들은 실제 형태로 존재하며 또 다른 방의 풍경을 만들어낸다.

‘공간을 만드는 것이 재미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작품 속 세계를 구축할 때 중시하는 점이 있나? 이것을 구체적으로 설명하기는 늘 어렵다. 다만 ‘이상한 자연스러움’의 상태를 설득력 있게 묘사하는 데 집중한다.

12장의 마지막 구절 ‘모든 방은 스스로를 복원하며 방 바로 그 자신이 될 것이다’는 결국 작품에서 강조하고자 하는 말, 즉 공간을 통해 진짜 자아를 찾는 과정을 뜻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비슷한 구절을 <Viewers>라는 전시 관련 출판물에 수록된 글에 쓴 적이 있다. 이 글을 쓰며 방이 복원되는 상태에 대해 쓰고 싶다는 생각을 막연하게 하다가 이번 소설에서 확장하게 됐다.

<고요함 동물>의 마지막에는 해설 대신, 동화 <차미 새미 보미>가 담겨 있다. 원래 해당 시리즈에는 작품 해설이 들어가는데, 해설이 붙는 것이 어울리는 소설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즈음 전시 도록에 쓴 <차미 새미 보미>를 수록해도 괜찮을 것 같아 마지막 장에 담았다. 난해하거나 복잡한 소설은 아니기 때문에 자유롭게 해석하며 읽기 바란다. 한 번에 처음부터 끝까지 읽는 것도 좋지만 읽다가 잠시 쉬면서 커피도 마시고 산책도 하며 읽는 것을 추천한다.

박솔뫼의 작품에는 항상 다양한 평론과 독자들의 반응이 따른다. 다양한 시각을 담은 다채로운 해석을 볼 때 작가로서 어떤 기분이 드나? 늘 흥미롭게 읽는다. 그 중 가장 좋아하는 반응은 부산을 배경으로 한 소설을 읽다 보면 부산에 가고 싶어진다는 평이다. 이런 말을 들으면 늘 기분이 좋다.

박솔뫼에게 ‘글을 쓴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전에는 이런 질문을 피하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은 내 삶에서 무척 중요한 일이라고 말할 수 있게 됐다.

다음 작품은 어떤 이야기가 될까? 곧 단편집을 시작한다. 평소처럼 자리에 앉아 간단히 목과 어깨를 스트레칭하고 커피를 마시면서 글을 쓰다가 또 스트레칭을 하고 다시 일어나 산책한 뒤 원고 쓰기를 반복할 것이다. 하반기에는 장편소설 연재도 시작한다. 그 전까지 무사히 원고를 잘 고쳐볼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