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안’하지 못해서 미안해

미리 말해두는데 나는 맞춤법에 그리 민감한 사람이 아니다. 30여 년 인생을 국문학도인 언니 밑에서 자라 맞춤법 지적질에 신물이 났기 때문이다. 급하면 오타가 날 수도 있지, 자매 사이에 꼭 그런 걸 일일이 지적해야 하느냐고 늘 짜증만 냈는데, 이런 일을 직접 당해보니 그 마음이 어느 정도는 이해가 되더라고. 일이 바빠 소개팅 날짜는 정하지 못하고 일주일간 소개팅 예정남과 메시지만 주고받았다. 카톡 프로필 사진도, SNS에서 대충 훔쳐본 그의 취향도, 연하남인 점도 모두 마음에 들었는데 도저히 타협이 되지 않는 문제가 하나 있었다. 문제의 그날, 그가 어머니 선물을 골라 달라며 세 장의 사진을 보내왔다. 그러면서 ‘3번이 제일 문안하죠?’라는 게 아닌가. 순간 깨닫고 말았다. 나는 맞춤법에 굉장히 민감한 사람임을. 그동안 쌓은 공든 탑을 내 손으로 무너뜨리고 연락을 끊었다. ‘문안하다’는 시작일 수 있거든. 곧 ‘감기를 낳으라’ 할지도 모르니까. 다행히 그는 내 친구들 사이에서 아련한 ‘문안남’ 정도로 기억되고 있다. 무난하지 못하고 예민한 누나라 미안해. K(31세, 마케터)

‘오키남’의 속내

이직을 위해 학구열에 불타던 때, 강남역 부근 어느 영어 학원에서 만난 그. 아직도 그때만 생각하면 황당하고 수치스러워서 얼굴이 빨개진다. 학원에서는 수업을 마친 뒤에도 자유롭게 프리 토킹을 할 수 있도록 조를 짜 주었는데, 조원은 총 6명, 남녀의 비율은 3:3이었다. 여기서 그렇게 눈이 잘 맞는다더니, 첫눈에 반한 그와 메시지를 매일 주고받는 것은 물론 수업이 끝난 후 삼성물산 건물 앞 정류장에 앉아 집으로 갈 버스를 몇 대씩 그냥 보내곤 했다. 해도 해도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아서. 솔직히 이게 썸이 아니라고 말한다면 나는 다시 사랑할 자신이 없다. 하지만 아무리 시간을 함께 보내도 그는 내게 고백을 하지 않았다. 답답한 걸 절대 못 참는 내가 결국은 먼저 질러버렸지. 좋아한다고. 메시지 옆 ‘1’이 사라질 때까지 숨을 참았다. 대답은 다음 날 아침에야 도착했다. ‘오키’. 그와는 그게 끝이었다. 내가 학원을 관뒀거든. 나는 지금까지도 그 영어 학원 앞을 지나지 않는다. 반드시 삥 돌아 걷는다. 다만 그때 ‘오키남’의 속마음이 아직도 궁금하긴 하다. J(33세, IT 회사원)

선물이 뭐길래

인터넷에서 많이 봤다. 얼마짜리 선물을 했는데 얼마짜리 선물을 받아 빈정이 상했다는 흔한 선물 에피소드. 그러면 그 글의 댓글에 찬반 여론이 들끓는다. 하지만 이건 그것보다 약간 더 슬픈 사연이다. 사귄 지 8개월 된 남자친구의 생일에 명품 머니 클립을 선물했다. 한 달 뒤 내 생일날, 제법 비싼 브랜드의 화장품 세트를 선물 받았는데, 알고 보니 그 화장품 브랜드에 다니는 그의 친구가 그에게 준 제품이었던것. 그 사실을 안 뒤 조금 서운하다고 말했더니 그의 반응이 더 황당했다. 돈을 주고 산 것과 뭐가 다르냐는 거다. 비싼 브랜드의 정품이고, 엄마나 친구를 줄 수 있었는데 네가 가장 먼저 생각나 선물했다고. 하지만 나는 가슴에 손을 대고 맹세할 수 있다. 3천원짜리 장미라도 나를 생각하며 직접 고른 생일 선물이 더 좋다고! 지금 누구와 사귀든 그런 기본 센스 정도는 생겼기를 바라. P(29세, 출판인)

‘관종’의 삶

인정한다. 지금 떠올려도 잘생겼다. 그의 외모는 완벽한 나의 이상형이었다. 그래서 ‘살색’인 그의 SNS를 보았을 때도 그저 그의 취향이라 생각하고 품을 수 있었다. 상의를 벗은 채 헬스장에서 찍은 사진이 매일 셀 수 없이 올라왔을지라도. 문제는 팔로어가 적지 않은 그의 SNS에 나의 이야기가 오르내렸다는 사실이다. 연인이라도 불편할 것 같은데 아직 썸 타는 사이였음에도 우리의 이야기가 장문으로 떠돌아다녔다. 모두 삭제하게 했지만, 불행하게도 그는 피드가 안 되면 ‘스토리’에라도 올려야 직성이 풀리는 ‘리얼 관종’이었다. 가끔 계정에 들어가보는데, 지금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부디 자신보다 더한 ‘관종 여친’ 만나 행복하기를. H(30세, 프리랜스 작가)

‘TMK’는 그만

소개팅으로 만나 연인이 된 지 한 달 정도 지난 그가 얼마 전 이직을 했다. 썸 탈 시기에는 이전에 다니던 회사에 속해 있던 탓인지 그때는 이런 시그널을 눈치채지 못했다. 나는 내 친구들과도 카톡을 잘 하지 않는 무던한 타입인데, 그는 ‘투 머치 카톡러’였던 것이다. 특히 이직 후에는 처음 출근한 날 아침부터 퇴근하는 밤까지 회사와 상사, 동료에 대한 불만을 대화창에 가득 뱉곤 했다. 정말 ‘뱉는다’는 표현이 정확한 게 (재치 있어 보이려 했지만 실패한) 욕들도 섞여 있었다. 나도 하루 종일 일하고 나면 피곤한데, 그의 말을 실시간으로 계속 읽다 보니 어느 순간 멘털이 ‘탈탈’ 털리더라. 연애 초반의 설렘을 느끼기는 커녕, 나는 어느새 그의 감정 쓰레기통이 되어있었다. 그에게는 결국 이별을 통보했고, 마지막에 하고 싶었지만 하지 못한 말을 지금이라도 해보려 한다. ‘얘, 나는 네 엄마 가 아니란다.’ K(33세, 회사원)

식탐은 처음이라서

‘생애 첫 식탐’이었다. 물론 내 얘기는 아니다. 나도 먹는 걸 좋아하지만 그런 식탐을 목격한건 난생처음이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어느 정도는 암시가 깔려 있었는지도 모른다. 아직 연인이 되기 전, 우리는 데이트를 할 때 꼭 11그릇을 담당했다. 이게 무슨 뜻이냐 하면, 맛집이나 카페에 가서 절대 ‘셰어’를 할 수 없다는 뜻이다. 한 숟가락만 먹는다고 해도 아예 그 메뉴를 시키라는 식이었다. 그때는 그게 새로 사줄 테니 많이 먹으라는 뜻인 줄 알았는데…. 호빵을 산 어느 겨울날이었다. 하필이면 그 개수가 홀수여서 우리는 이별을 맞이했다. 호빵의 개수를 세고 있었다는 사실이 충격적이어서 헤어질 수밖에 없었다. 가끔 이 이야기를 하면 아무도 믿지 않는데, 이건 정말 실화다. 물론 20대 초반의 이야기지만. 식탐이란 게 참 무섭더라고. J(28세, 공무원)

참을 수 없는 사내 썸의 가벼움

평소 관심이 있던 사수와 데이트를 하는 사이가 됐다. 그는 나의 대학 동기이기도 했고, 사회 초년생이라 이것저것 헤매던 내게 멘토 같은 존재였다. 서로 호감을 차곡차곡 쌓아가다 그의 심한 주사를 보고 말았다. 심지어 옆자리에 앉은 사람들과 큰 싸움이 날 뻔했다. 이전 남자 친구와 술 때문에 헤어진 경력이 있기에 더 볼것도 없이 ‘정뚝떨’을 경험했는데, 더 기가 막힌 일이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점점 그에게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자 먼저 선수를 치고 싶었는지, 내가 너무 원해서 한두 번 만나준 거라며 온갖 루머를 퍼뜨린 것이다. 다행히 그가 이직을 하게 되어 다시는 보지 않을 사이가 됐고 오해도 풀렸지만 그 후 ‘사내 연애’는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사내 썸으로 인생을 배웠다. S(29세, 회사원)

신의 한수

소개팅 후 취기가 약간 오른 상태에서 집 방향이 비슷한 그와 함께 택시를 탔다. 택시 안에서 손이 닿을 때마다 얼마나 심장이 두근거리던지.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내가 먼저 택시에서 내렸다. 택시 안에 지갑을 놓고 내린 것을 알아채자 마자 그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받지않길래 곧바로 택시 기사에게 전화를 했다. (도착지를 우리집으로 설정하려고 내 휴대폰에 깔린 택시 앱을 이용한 것이 ‘신의 한수’였다.) 그랬더니 택시 기사가 ‘지갑은 찾아줄 테니, 아까 같이 탄 남자는 만나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하는 것이 아닌가. 처음에는 무서운 마음이 들어 전화를 끊으려고 했는데, 알고 보니 내가 내린 뒤 그의 본성이 튀어나와 버린 것. 골목 초입이 그의 집이라 여기서 내려줄 수 있겠느냐고 묻자마자 택시 기사에게 다짜고짜 심한 욕을 했다는 것이다. 동방예의지국에서 태어난 우리 아닌가. 예의 없는 예비 ‘데폭남’은 절대 허용 불가다. 그 후 그와의 관계를 바로 정리했다. 택시 기사님, 아직도 정말 감사합니다. Y(29세, 대학원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