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자 쿄코와 쿄지 한정현 

‘경자’ <쿄코와 쿄지> 한정현  

경자, 영자, 혜자, 미자. 이름 뒤에 똑같이 ‘자’가 들어가는 이들은 친구사이다. 아들‘子’가 아닌 스스로‘自’를 넣은, 그녀들 자신이 선택한 이름이다. 한정현 소설가의 <쿄코와 쿄지>는 1958년에 태어난 여성들이 가부장제 아래 어떤 피해를 감내하며 살아왔는지, 5.18 민주 항쟁 당시 그녀들이 어떻게 존재했고 또 지워졌는지에 대한 이야기다. 주인공 ‘경자’는 여성들의 연대 이전의 ‘우정’을 진실하게 표현하고 실천한다. 주어진 성별과 달리 여자이고 싶었던 ‘영자’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고 ‘혜자’의 딸을 자신의 딸로 키워내며, 자신과 친구들의 삶을 딸에게 전한다.

 

 

나리 여기 우리 마주 최은미

‘나리’ <여기 우리 마주> 최은미

아파트 상가에 조그만 수제비누 공방을 연 ‘나리’는 초등학생 딸을 둔 엄마이기도 하다. ‘나리공방’은 아이들의 생일파티 장소이자 주부들의 모임 장소였다, 코로나가 번지기 전에는. 이 소설은 주부가 자신의 일을 하려면 이 사회의 어떤 편견과 부담을 딛고 이뤄내야 하는지, 그들이 위기 상황에서는 얼마나 더 궁지로 내몰리는지 날카롭게 그려낸다. ‘아이 엄마’로는 조금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는 칼날 같은 시선은 지하철에서 끈질기게 쳐다보는 남자처럼 어딘가에 살아있는 공포다. 40대 여성 나리는 이 사회의 수많은 ‘나리’들을 비추고, 위로한다.

 

 

고모 날마다 만우절 윤성희 

‘고모’ <날마다 만우절> 윤성희 

‘고모’는 툭하면 아빠랑 싸우고 연락을 끊었다 다시 하길 반복한다. 텃세 부리는 옆집 할머니에게 따지러 갔다가 자고 있는 할머니 코 밑에 큰 점을 그리는 상상을 하며 화를 풀어내고, 그 할머니 창고에 쌓인 술을 훔쳐다 먹기도 하고, 닭 장수를 기다리며 근처 호수에서 물수제비를 뜰 줄 아는 사람이다. 그런 고모가 거짓말을 한다. 거짓말은 또 다른 거짓말을 낳는다. 고모를 꼭 닮은 조카의 시선에서 풀어내는 엉뚱하고 매력적인 고모의 이야기는 극 전체에 생기를 불어넣으며 즐거운 한 낮의 소동극을 만든다.

 

 

유림 쓸 수 있는 대답 김채원 

‘유림’ <쓸 수 있는 대답> 김채원 

‘유림’은 아르바이트를 하고 돌아가는 길에 교통사고를 당한다. 발가락 뼈가 부러지는 사고였지만 이 모든 일이 그저 피곤하고 시끄럽다는 듯 빠르게 합의한다. 밥 먹자는 친구의 제안에 불응하고 유림은 누워있다. 온통 무채색인 유림의 눈에 들어오는 것은 노인들과 어린아이, 거리에서 쓰러진 듯 자고 있는 노숙자다. 코로나 시대에 가장 높은 자살율과 실직율을 보이고 있는 계층은 20대 여성이다. 나를 앞질러 가는 사람들, 너무 많은 시간, 월세. 이 모든 것을 짊어지고 우울증으로 하루를 버텨내는 유림의 마음을 조심스레 살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