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 디자이너 이정은 양승훈

이정은 니트 브이넥 스트라이프 톱 아르켓(Arket), 데님 팬츠 신존(Shinzone), 메리제인 슈즈 빅토리아(Victoria), 네크리스와 양말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양승훈 네이비 재킷 엔지니어드 가먼츠 바이 비이커(Engineered Garments by Beaker), 화이트 팬츠 스튜디오 니콜슨(Studio Nicholson), 데저트 트랙 부츠 버켄스탁(Birkenstock), 셔츠는 본인 소장품.

 

디자이너 부부 양승훈 알고 지내던 디자이너에게 정은씨를 소개받아 사귀다 결혼했다. 주변에 디자이너 커플이나 부부가 많다. 직업 특성상 추구하는 삶이 일반 회사에 다니는 사람들과 조금 다른 경향이 있는데, 동종 업계에 있는 사람끼리는 대화가 잘 통하고 이해해줄 수 있는 부분이 넓다 보니 그런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같은 사무실, 다른 회사 양승훈 사무실은 같이 쓰는데, 각자 다른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정은 씨는 <Samulham>이라는 매거진을 기획하고 만들면서 디자인 스튜디오 ‘체조’도 운영하고 있고, 나는 친구와 둘이 ‘SHDW’라는 디자인 스튜디오를 운영한다. 이정은 다들 왜 스튜디오를 함께 운영하지 않느냐고 묻는데, 가장 큰 이유는 둘 다 시각디자인을 전공했지만 그걸 대하는 태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작업 방식이나 결과물을 완성하는 과정이 다르다. 또 나는 일할 때와 쉴 때의 구분이 확실하길 바라는데, 같이 일하다 보면 주말에도 자연스럽게 일 얘기가 나올 테고 그 점이 힘들 것 같았다. 같은 업계에 있지만 따로 떨어져 있는 편이 조언을 주고받을 수 있어서 더 좋기도 하고. 양승훈 그럼에도 공간을 같이 쓴다는 건 서로 좋은 협력 관계를 맺고 있다는 뜻이다. 일하는 장소에서는 서로의 일에 대해 조언을 주고받고, 그 공간을 벗어나면 우리 둘만의 이야기를 하는 게 건강한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만의 방식 이정은 대화할 때 반말과 존댓말을 섞어서 쓰는데, 오피셜 모드일 때는 꼭 존대한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서로를 소개할 때 남편, 아내라고 말하지 않고 꼭 이름을 밝힌다. 양승훈 그리고 최근에 정한 건, 일로 요청하거나 부탁할 일이 있을 때는 옆에 있어도 말이나 문자로 하는 게 아니라 메일로 써서 보낼 것. 이렇게 해야 공사 구분이 확실하고, 우리 관계가 엉키지 않을 것 같아 서로 합의한 방식이다. 이정은 그리고 점심과 저녁 시간은 각자 자유롭게 보내되, 아침은 같이 먹으면서 대화하는 게 우리의 문화다. 매일 아침마다 커피나 요거트로 간단히 식사하면서 대화를 한다. 토론이 될 때도 있고. 예를 들면 최근에 내가 보디 워시를 샀는데 입구가 매우 불편했다. 그걸 보여주면서 “이거 잘못 설계되지 않았어? 넌 괜찮아?”라는 말로 시작해서, 이걸 왜 이렇게 만들었을까 하는 부분까지 파고들게 되었다. 양승 일할 때도 비슷한 방식으로 대화한다. 더 많이 안다고 해서 일방적으로 정보를 주는 게 아니라, 각자 생각하는 방식이 다르니까 그걸 공유하면서 다듬어간다. 대화를 통해서 사유하게 되는 이 방식이 좋다. 이정은 그래서 절대 하지 않는 게, 상대의 작업을 이유 없이 비난하지 않는 것이다. 양승훈 주관이 담긴 의견을 상대방에게 강요하듯 전달하는 방식이 아닌, 의견의 배경과 뒷받침할 근거를 함께 전달하면 상대방이 생각할 여지가 생긴다. 우리는 그동안 다르게 살아왔고 다른 방식으로 일하기 때문에 아무리 내 방식이 좋다 해도 상대가 생각할 정도로만 전달해야지, 강요해서는 안 된다.

서로가 서로에게 조언자로서 이정은 나는 졸업하자마자 잡지를 만들고 싶어서 출판사를 차렸고, 이후에 체조 스튜디오를 열었다. 어쨌든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시작한 거라 실무 경험이 부족했다. 이런 부분에서 회사를 다니면서 실무 경험을 많이 쌓은 승훈 씨에게 조언을 많이 얻으면서 배워나갔다. 반대로 승훈 씨는 어떤 작업의 맥락을 파악하거나 큰 흐름을 읽어야 할 때 내 도움을 받는다. 양승훈 서로 걸어온 길이 다르니까 각자의 장점을 공유하는 거다. 내 주변 친구들은 대부분 디자이너다. 그 친구들과만 대화하다 보니 디자이너의 시각에만 머무르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런데 정은 씨가 운영하는 체조 스튜디오는 그 시각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독보적인 정체성을 갖고 있어서, 생각지 못했던 의견을 많이 얻는다. 이정은 나는 오히려 아무것도 모르니까 “왜 안 돼?” 하는 식의 말을 많이 한다. 이쪽은 틀이 있는 상태에서 정석적으로 하니까 이런 질문만으로도 자연스럽게 시각이 넓어지는 거다.

 

일의 방식은 다르지만, 삶의 방식은 같은 방향으로 이정은 승훈 씨는 정직하고 법 없이도 사는 유형의 사람이다. 연애할 때 내게 제일 많이 했던 말이 “정은 씨, 그러다 큰일 나”였다. 특히 길 건널 때. 양승훈 길 건널 때는 횡단보도 위로만 걸어야 한다. 이정은 처음에는 황당하고, 꼭 이래야 하나 싶었는데 어느새 나도 동기화되어 이제는 동네에 더럽거나 이상한 게 있으면 바로 사진 찍어서 민원을 넣어달라고 한다. 양승훈 정은 씨가 나한테 엄청 깐깐한 사람이라고 하는데, 사실 멀리서 보면 우리 둘은 삶의 방식이 꽤 비슷하다. 약속 시간 잘 지키기, 타인에게 피해 주지 않기, 자신이 맡은 일은 확실하게 해내기 등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과 그 기준치가 높다는 걸 최근에야 알았다. 이정은 윤리관과 가치관이 맞아서 결혼한 것 같기도 하다. 사람이 살면서 자연스럽게 갖게 되는 윤리관이 있지 않나. 어떤 문제에 대해 허용하는 기준이 있는데, 그게 맞아서 함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 부분이 맞는다면 취향이나 성격이 다른 건 크게 중요한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언젠가 우리 둘이 이정은 집을 짓고 싶다. 그거 말곤 안 하고 싶다.(웃음) 양승훈 어떤 사람들은 집을 투자의 대상으로 보는데, 나는 어릴 때부터 집을 삶의 공간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래서 크기나 값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 안에서 만족하면서 사는 걸 더 중요하게 여긴다. 이 주제를 두고 대화를 많이 했는데, 정은 씨 역시 공감해 집을 짓는 게 우리 공동의 목표가 되었다. 이정은 꿈꾸는 형태는 간결해서 손때가 묻을수록 더 좋아지는 집이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될 때까지 살 수 있을 만큼 우리를 닮은 집이길 바란다.

우리의 성장담 양승훈 정은 씨를 만나기 전과 후로 나누면, 만난 후 확실히 성장 속도가 빨라졌다. 게다가 성장의 반경도 넓어지고 있다. 한쪽으로만 크는 게 아니라 바라보는 시선이 넓어지면서 확장되고 있다는 점이 좋다. 이정은 우리는 부부이자 좋은 동료이며 서로의 서포터라고 생각한다. 삶에서도 일적으로도 같이 나아간다는 점에서 서로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고 생각한다. 양승훈 누구 하나가 희생해서 억지로 한 방향으로 가기보다 서로를 지지대 삼아 각자 잘되는 것이 가장 좋은 방식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