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 사진작가 엘린 베리에 프로젝트 어웨이크닝(Awakening) 여성 공동체

아움(Aum)과 야크비(Jacqui), 여성 축제 ‘신성한 자궁’에서 여성들은 명상과 기도 등으로 이뤄진 워크숍을 통해 자신의 몸을 자랑스러워하도록 격려받는다. 엥스바카, 2017

 

스웨덴의 사진작가 엘린 베리에(Elin Berge)는 2017년부터 스웨덴과 덴마크, 핀란드 곳곳에 자리한 여성 공동체를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가부장제가 오랜 시간 여성의 성과 몸을 억압하며 위축된 삶을 살게 했고, 그 결과 여성들이 타고난 힘을 잃었다고 여기는 여성 공동체의 구성원들은 힘의 회복을 위한 명상과 수련, 주술 등 영적 치유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각자의 방식으로 여성성을 탐구하는 과정에서 참가자들은 서로 자매애를 쌓고, 연대를 공고히하며 새로운 삶의 방식을 찾아간다. 엘린 베리에가 사진 속에 담은 여성들은 종종 나체로 등장한다. 그의 사진은 다양한 연령대의, 다양한 신체를 가진 여성들의 활동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관능적이지도, 성적이지도 않은 그의 이미지는 (대개 날씬하고 피부색이 밝으며 젊은)여성의 신체를 대상화하는 이미지들과 대조를 이룬다. 남성과 맺는 관계가 아닌 여성 간의 관계, 자기 자신과의 관계를 재정비하며 대안적 삶의 방식을 찾고자 한다. 더불어 이들은 인간으로 살아가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우리 자신과 서로를 구하기 위해 필요한 가치는 무엇인지, 미래에 인간과 지구가 조화롭게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지 탐구하고자 한다.

 

스웨덴 사진작가 엘린 베리에 프로젝트 어웨이크닝(Awakening) 여성 공동체

엘린 II(Elin II), ‘신성한 자궁’ 축제 도중 중 엘린은 어두운 텐트 안에서 벌거벗은 채 노래하고 기도하며 몸의 자유를 만끽한다. 엥스바카, 2019

스웨덴 사진작가 엘린 베리에 프로젝트 어웨이크닝(Awakening) 여성 공동체

봄을 맞아 여성들은 ‘문 서클’이라는 소모임을 조직했다. 석양에 물드는 강가에 모여 노래를 부르고 북을 치고 명상을 하며 자신들의 이야기를 나눈다. 우메오, 2019

스웨덴 사진작가 엘린 베리에 프로젝트 어웨이크닝(Awakening) 여성 공동체

요아나(Joana)와 벨라(Bella), ‘신성한 자궁’ 축제는 여성 각성 운동을 위한 최초의 큰 축제다. 요아나와 벨라는 이 축제에 감명을 받아 이후 스톡홀름에서 자신들만의 축제를 기획했다. 엥스바카 2019

스웨덴 사진작가 엘린 베리에 프로젝트 어웨이크닝(Awakening) 여성 공동체

그는 등에 여성의 자궁을 형상화한 이미지를 타투로 새겼다. 여성 공동체에서 자궁은 과거와 미래, 삶과 죽음을 담은 신성한 장기로 여겨진다. 스톡홀름, 2 017

스웨덴 사진작가 엘린 베리에 프로젝트 어웨이크닝(Awakening) 여성 공동체

야크비와 루미나(Lumina), ‘신성한 자궁’ 축제에서 야크비는 다른 여성의 임신과 출산을 돕는다. 그는 이제 스톡홀름 지역의 다양한 여성 축제에 참여하고 있으며 딸 루미나와 함께 활동하고 있다. 엥스바카, 2019

스웨덴 사진작가 엘린 베리에 프로젝트 어웨이크닝(Awakening) 여성 공동체

아나(Ana)와 워크숍 참가자들, 뜨거운 오두막 안에서 여성들은 벌거벗은 채 노래하고 기도하고 명상을 이어간다. 각자의 기억과 경험을 나누며 연대를 다지기도 한다. 아나는 이 워크숍을 진행하는 지도자다. 엥스바카, 2019

 

 

엘린 베리에
ELIN BERGE

스웨덴 사진작가 엘린 베리에 프로젝트 어웨이크닝(Awakening) 여성 공동체

 

프로젝트 ‘어웨이크닝(Awakening)’을 진행하고 동명의 사진집을 발간했다. 프로젝트 안에서 어떤 여성들을 만나왔나? 내가 만난 여성들은 가부장제의 종말을 가져올 여성의 영적 각성에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다. 이들은 모여 살며 서로 보듬고 치유하고, 평화와 균형이 있는 미래를 도모한다. 우리에게 은연중에 남아 있는 낡은 관습과 사상을 떨치기 위한 의식을 거행하기도 한다. 축
제, 수련회, 워크숍 등 다양한 이름으로 진행하는 이들의 활동을 사진으로 남겼다. 2017년부터 2019년 사이 스웨덴의 엥스바카, 스톡홀름, 우메오, 말뫼와 핀란드의 헬싱키에서 촬영한 사진을 책으로 묶었다.

프로젝트를 위해 많은 곳을 방문하고 다양한 의식에 참여했다. 엥스바카에서 열리는 여성 축제 ‘신성한 자궁(Sacred Womb)’의 주최자인 하이날카(Hajnalka)와 알바(Alva)에게 연락해 축제를 촬영할 수 있는지 물었다. 그러자 그들은 이곳에서 일어나는 일은 아주 내밀한 것이니 축제 내내 함께 하면서 참가자들이 나를 편안하게 느낄 마지막 이틀 동안 사진을 찍으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다. 그렇게 축제 첫날부터 함께하는 조건으로 촬영 허가를 받았고, 의식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정화 의식, 명상, 축복, 서로와 자연에 대한 찬사, 요가, 해방의 춤을 비롯해 생리 주기와 자연 의학에 관한 실용적인 워크숍도 있었다. 기념이나 의식은 사제, 샤먼, 의술사라고 불리는 여성들이 주도했다. 이런 행사에는 항상 여성들이 자신의 경험에 대해 서로 이야기할 수 있는 ‘공유의 원(Sharing Circles)’ 이라는 공통적인 모임이 있었다.

지금까지 몰랐던 새로운 세상을 마주하는 경험은 어땠나? 기록하기 위해 참여했지만 그곳에서 벌어지는 일이 무엇인지 알고 난 뒤부터는 진심으로 몰입했다. 몰입과 동시에 정신적으로 큰 혼란을 겪기도 했다. 혼란을 받아들이고 나의 호흡에 맞춰 소화하며 내면이 강해지는 걸 느꼈다.

3년 전 촬영을 시작할 때 나는 당신의 프로젝트에 완전히 매혹되었고, 당신의 이야기를 들으며 내면에서 무엇인가 깨어나는 느낌을 받았다. 당신이 이 프로젝트만큼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힘든 적이 없었다고 이야기한 것도 기억난다. 다큐멘터리 사진작가로서 늘 타인의 세계에 관여하게 된다. 한쪽 발은 그들 안에, 다른 한쪽 발은 바깥 세계에 걸친 상태로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어려울 때가 있다. 이번 프로젝트에서는 유독 감정이 동요되거나 참가자들과 매우 가까워지는 경험이 있었기에 거리 두기가 더 어려웠다. 돌이키기 어려울 만큼 깊이 들어갔다는 느낌을 받았고, 내가 이 프로젝트를 책임지기에 부족한 사람이라는 기분이 들었으며, 그들에게 받는 신뢰가 두려운 적도 있었다. 신뢰에는 큰 책임이 뒤따르니까.

나체 여성 10여 명이 잔디 위를 기어가는 사진이 특히 인상적인데 이 사진에 대한 설명을 부탁한다. ‘감각적 본능 교육(Sensual Nature Nurture)’이라는 이름의 야외 명상 의식이다. 이 의식은 오르가슴 호흡으로 끝나는데 의식 후의 분위기를 사진에 담고 싶었다. 의식 후 촬영을 허락한 이들만 촬영하기 위해 이동했다. 이 사진은 이동 과정에서 찍은 거다. 감정에 몰두한 나머지 일어서는 대신 기어가는 상황이었다. 이 사진에는 열정적이고 즐거운 무언가가 함께 담겨 있다.

그 에너지 때문인지 유독 기억에 오래 남는다. 나도 그렇다. 여성의 욕망이 이런 식으로 나타나는 일은 흔치 않다. 사진 속 여성들은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해주는 대신 자기 자신에게 집중하고 있다.

여성의 나체를 성적으로 보는 데 익숙해 당신의 사진을 처음 볼 때는 조금 당혹스러웠다. 하지만 이 사진들은 성적인 시선으로 보면 결코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여성의 나체를 보는 시선에 대해 자문하게 만드는 것이 내가 이 프로젝트를 통해 달성하고자 하는 목표다. 나 역시 공동체의 모습을 사진으로 남겼을 때 사회적으로 어떤 일이 일어나게 될지 오래 고민했다. 하지만 공동체 안에서 벌어지는 일은 외부의 시선을 의식한 것이 아니다. 여기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남성의 시선이 없을 때에만 가능하다. 그렇지만 카메라의 존재가 자칫 남성의 시선을 대변하지 않도록 굉장히 조심했다. 카메라가 사회적 시선에서 벗어나 온전히 나의 두 눈으로 작용하길 바랐다.

나는 모든 여성이 당신의 사진을 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도 본능적으로 이들을 남성으로부터 지켜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사진을 출판하는 것이 잘못됐다고 생각하는 건가?

체크

결코 아니다. 하지만 평생 여성 인권 문제와 싸울 필요가 없었던 이들은 여성들이 갈망하는 것을 제대로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을 것 같다. 누구도 나의 몸을 쳐다보지 않고, 누구도 곁에 함부로 다가오지 않고, 누구도 내가 원하는 것을 잘못 해석하지 않는 삶만을 살고 있는 이들에게 말이다. 여기 여성들은 옷을 벗고 이상한 짓을 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누군가는 다르게 생각할 수 있다는 사실에 분노하게 된다. 실제로 남자들에게 사진을 보
여주면 “노출증 환자가 엄청 많네” 하는 식으로 반응한다. 여성 스스로 성
적 대상이 되길 원한다고 믿는 이들이다. 이들은 어떤 사진을 봐도 그 이미
지를 올바로 읽지 못할 것이다. 그들의 무지와 게으름을 헤아리고 싶지 않
다. 당신이 말했듯이 나 역시 내 사진이 공동체 밖 여성들의 갈망을 일깨우
고 독려할 거라고 생각한다. 각성은 외로운 과정이 아니다. 각성은 우리 자
매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다. 나는 그 안에 엄청난 힘이 내재되어 있다
고 생각한다. 나는 이제 자매애가 세상을 바꾼다는 말을 믿게 됐다. 이 여성
들을 보면서 말이다.

이들의 영적 운동에 대해 우려하는 부분은 없나? 영적인 부분에 몰두하는 사람들이 주류 사회가 아닌 바깥에서 집결하는 것이 마음에 걸린다. 내가 방문한 공동체에서는 소위 컬트적인 모습이나 우려스러운 징후는 전혀 없었다. 이들 사이에는 권위와 규칙이 없다. 누구나 자기 생각을 이야기할 수 있고, 자신이 옳다고 느끼는 대로 행동한다. 그렇지만 경계하는 태도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영적인 운동은 항상 시대를 반영한다. 우리는 지금 매우 디스토피아적 세계를 살아가고 있는데, 역사적으로 이런 시기에는 초자연적 힘으로 우리를 유토피아로 이끌겠다고 주장하는 인물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수년에 걸쳐 여성 공동체를 취재하고 프로젝트를 완성하며 이 여성들에게서 무엇을 배웠나? 나는 이번 프로젝트를 하면서 21세기의 신성함을 찾아다녔다. 성스러움에 대한 체험과 그때의 감정이 남아 있다. 자유롭고 신비로운 세계로 가는 문이 내 앞에 조금 열려 있는 것이다. 이런 경험을 한 사람은 대부분이 나처럼 느끼는 것 같다. 평소와 다르지 않게 자기의 삶을 계속 살면서도, 언젠가 신비한 세계로 나아가는 그 문이 내게 크게 열리는 때가 찾아올 거라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