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브로브니크 구시가지 외곽에 자리한 작은 해변, 벨르뷰.

깊이를 가늠하기 어려울 만큼 투명한 아드리아 바다의 자갈 해안.

REPUBLIC OF CROATIA
아드리아 바다 여행의 시작, 두브로브니크

시간이 멈춘 듯한 구릉 위 귤빛 지붕 빌라들, 성곽을 둘러싼 해자와 요새의 지하 감옥은 낭만적인 커플의 무대로 탈바꿈하고, 아드리아해의 깊은 윤슬은 여행자의 마음에 오랫동안 반짝거린다. 크로아티아(Croatia)에 품는 환상은 과장된 것이 아니다. 들쭉날쭉한 해안선과 맞닿은 바다는 놀라울 정도로 투명하고 보석처럼 반짝이며, 여유로운 사람들은 친절하다. 코로나19 이후 첫 유럽 여행지를 고를 수 있다면 주저 없이 크로아티아의 작은 바닷가 마을로 향하리라. 발칸반도와 유럽 중부 사이에 자리한 크로아티아는 수천년간 여러 제국의 역사를 거쳤다. 혼란의 시대가 남긴 긍정적 부분이 있다면 그만큼 풍부한 문화유산이 남았다는 것일 터다. 나폴레옹 요새를 떠올리게 하는 베네치아성, 초기 슬라브족 교회의 유산인 로마 기둥, 사회주의 시대 조각과 연결되는 비엔나 맨션 등 유럽 역사의 영역을 아우르는 공간은 가장 동시대적 모습으로 사람들을 불러 모은다.

시간을 품은 중세 유적에 마음을 빼앗기다가도 시선을 조금만 돌리면 아드리아해의 깊은 아름다움에 빠져들게 된다. 한적한 골목을 어슬렁거리다가 사파이어처럼 빛나는 바다에 과감하게 뛰어드는 동네 아이들의 천진함과 마주한다. 행복해 보이는 사람들과 해변 위 보트에서 열리는 파티의 불빛을 보면 이곳에서는 삶의 고된 시
간이 허락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관광객들에게서 벗어난 외딴 해변을 찾는다면 성야코브(Plaza Sveti Jakov)와 벨르뷰(Plaza Bellevue)가 제격이다. 두브로브니크(Dubrovnik) 구시가지를 중심으로 양쪽에 자리한 작은 해변으로 비교적 한적해 여유롭게 물놀이를 즐기기에 그만이다. 카르스트지형의 험준한 절벽에서 겁 없
는 청년들이 바다로 과감하게 뛰어들고, 모험심 가득한 반려견도 뒤를 따른다. 울퉁불퉁한 절벽에는 작은 동굴과 폭포가 그림처럼 이어지고, 바닷속 둥근 자갈들이 깊이를 가늠할 수 없을 만큼 투명하게 일렁거린다. 특히 한때 숨은 여행지로 입소문을 타던 성야코브 해변은 이제 두브로브니크 여행자라면 꼭 찾아가는 명소가 되었다.
위쪽에 자리한 성야코브 교회에 서면 구시가지를 파노라마로 조망할 수 있다.

 

도심에서 여름 해변을 즐기는 크로아티아 사람들.

 

두브로브니크에서 청록색 바다 위에 우아하게 서 있는 성벽을 거닐지 않는다면 반쪽만 경험한 것일 터다. 총길이 1940m의 성벽을 한 방향으로 부지런히 걸으면 2시간 정도 걸린다. 9세기에 처음 지어진 성벽은 14세기 중반에 1.5m 두께의 방어벽으로 강화되었고, 이어 지속적인 증축으로 현재의 모습을 갖추었다. 성벽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을 꼽는다면 마을의 서쪽 정문으로 남아 있는 필레 게이트(Pile Gate)다. 1537년에 지어진 것으로 두브로브니크의 수호 성인인 성브라이세(St. Braise) 석상이 서 있다. 마을의 가장자리를 보호하는 포트 민체타(Tvrđava Minčeta)는 가장 아름다운 원형 요새로 알려져 있는데, 미국 드라마 <왕좌의 게임>에서 무역도시 콰스(Qarth)의 배경이 된 곳이기도 하다. 구불구불하게 이어진 성벽을 걷다가 도착한 꼭대기에서 바라보는 고전적 구시가지와 아드리아해의 전망은 경이로울 지경이다. 특히 독립 요새인 포트 로브리예나츠(Tvrđava Lovrijenac, 성로렌스 요새)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을 놓쳐서는 안 된다. 다만 성벽에 그늘이 거의 없으니 한여름의 산책은 피하는 것이 좋다.

 

 


 

 

드넓은 라군과 부드러운 백사장이 펼쳐진 몰디브 해안은 상상 속 바다 풍경을 완벽히 재현한다.

REPUBLIC OF MALDIVES
우리를 해방하는 바다, 몰디브

바다를 상상할 때 떠올리는 모든 풍경이 이곳에 있을지 모른다. 스리랑카의 남서쪽 인도양 한복판에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라군이라 불리는 섬 1천2백여 개가 모여 있다. 이 중 2백 개에만 사람이 거주하고, 독립적인 전용 섬을 지닌 리조트만 1백 개가 넘는다. 그러니 몰디브(Maldives) 자체가 거대한 리조트라 해도 과언이 아닐 듯하다. 몰디브의 말레 국제공항에 도착한 방문객들은 각각 리조트 부스로 흩어져 고속 페리와 경비행기를 타고 리조트가 있는 섬으로 사라진다. 그들은 SNS에서 숱하게 보던 투명한 바다와 부드러운 백사장, 흔들리는 야자수의 완벽한 풍경을 상상 그대로 만나게 된다.

원주민 대부분은 무슬림이지만, 12세기까지 이곳이 불교 왕국이던 사실을 아는 이는 많지 않아 보인다. ‘몰디브’라는 이름 역시 인도의 고대 산스크리트어로 ‘섬들의 화환’이라는 의미다. 남북 80km, 동서 130km에 이르는 바다 망은 지리적으로 아라비아와 페르시아, 아프리카 등에서 인도양을 가로지르는 거점이었다. 또 동북아
시아에서 인도양을 넘어가려면 반드시 몰디브를 거쳐야 했다. 신혼부부의 휴양 명소가 일찍이 문명 교류가 활발한 해상 교통의 요충지였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몰디브 북동쪽의 섬 다디마구(Dhadimagu)에 고대 스투파 사진 한 장이 남았을 뿐 지금은 그 흔적을 거의 찾아볼 수 없지만 말이다. 수도 말레의 국립박물관에서 몰디브
에서 발견된 고대 불상들을 볼 수 있다.

 

몰디브 말레 국제공항에 도착하면 대기하고 있는 리조트의 수상비행기에 올라 전용 섬으로 향한다.

리조트 앞바다에서 낚시를 하거나 주변 섬을 돌아보며 남국의 아일랜드 라이프를 제대로 만끽하자.

 

1백여 개의 몰디브 리조트에서 원하는 곳을 완벽하게 찾기란 쉽지 않다. 환상을 지니고 떠난 몰디브 신혼여행에서 리조트의 부대시설을 제대로 알지 못해 ‘물멍’만 때리다 왔다는 지인의 안타까운 사연도 들린다. 객실 타입과 수중 환경, 취향을 고려해 내게 가장 잘 맞는 숙소를 찾는 것이 중요한 이유다. 특별한 다이빙 스팟을 찾는다면 알리프 달루 아톨(Alifu Dhaalu Atoll)의 고래상어 관찰을 추천한다. 말레 국제공항에서 수상비행기로 25분 거리에 있는 지역으로, 세계에서 유일하게 1년 내내 고래상어를 볼 수 있는 장소다. 이곳의 리조트와 게스트하우스 대부분이 고래 관찰 스노클링과 다이빙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상어라고 하지만 플랑크톤을 먹고 사는 온화한 생명체이니 겁낼 필요는 없다. 바드후섬(Vaadhoo Island)은 비현실적 바닷속 풍경으로 유명하다. 발광하는 한밤의 플랑크톤 무리가 마치 북극의 오로라가 춤추는 것처럼 환상적이라고 한다. 특히 6월부터 10월까지 네온 블루 빛으로 반짝거리는 밤바다를 확실히 볼 수 있다. 가장 높은 지대가 5m에 불과한 몰디브는 기후 위기에 가장 취약한 나라 중 하나다. 지속 가능한 여행을 고민한다면 친환경 리조트를 선택하자. 소네바 푸시(Soneva Fushi)는 몰디브에서 가장 큰 태양열 발전소가 있는 탄소 중립 섬 리조트다. 호텔의 에너지 90%를 제로 웨이스트로 순환하며 투숙객은 버려진 유리병을 재활용하는 워크숍 등에 참여할 수 있다.

세계적인 최상급 호텔 브랜드가 경쟁하듯 리조트를 운영하고 있지만 꼭 호사로운 휴양만 가능한 것은 아니다. 10여 년 전부터 원주민이 관광을 목적으로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할 수 있게 되면서 배낭여행자들의 여행도 서서히 늘고 있다. 리조트 안에서만 머물며 비밀스러운 휴양을 누릴 목적이 아니라면 후라(Huraa), 아두(Addu), 마푸시(Maafushi) 같은 지역 섬을 찾아가보자. 가족 소유 게스트하우스에 머물며 어부에게서 신선한 생선을 구입하고 지역 음식을 먹는 진정한 몰디브를 경험할 수 있으니까. 운이 좋으면 지역 다이버와 함께 몰디브 최고의 다이빙 스팟과 프라이빗 환초를 발견할지도 모른다. 우리가 꿈꾸는 바다 여행을 현실로 만들 시간이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이색적인 해변으로 늘 꼽히는 라디그섬의 앙스 수르스 다르장.

REPUBLIC OF SEYCHELLES
고대 낙원, 앙스 수르스 다르장

세상에서 가장 바쁜 사업가인양 전 세계를 돌아다니던 사업가 척 놀랜드가 불의의 비행기 사고로 섬에 표류해 4년간 고립된 삶을 보낸다’. 주인공이 인도양의 무인도에서 무려 1천5백 일을 홀로 견디는 영화 <캐스트 어웨이> 줄거리다. 척(톰 행크스)은 생존을 향한 외롭고 고된 투쟁을 이어가지만, 눈썰미가 좋은 사람이라면 그가 활보하던 화강암 해변의 원시적 풍광에 더 마음을 빼앗겼을 것이다. 영화 속 그곳이 바로 세이셸(Seychelles)의 41개 섬 중 하나인 라디그(La Digue)의 해변 앙스 수르스 다르장(Anse source D’argent)이다. 키 큰 코코넛 야자수로 뒤덮인 고대 암석 터널을 가로질러 앙스 수르스 다르장의 백사장을 밟았을 때 탄식이 흘러나왔다. ‘맙소사! 이런 곳에 표류한다면, 아마 그건 천국이겠지!’

 

척이 영혼의 친구인 배구공 윌슨과 애틋한 대화를 나누던 거대한 바위 아래에 젊은 커플이 낮잠을 자고, 썰물 때를 만난 바다는 바닥이 훤하게 보일 만큼 투명하다. 어디에서 왔는지 알 수 없는 개 두 마리가 수초를 장난감 삼아 물을 차는 동안 까르륵거리는 사람들의 메아리가 환영처럼 떠다닌다. 육중한 암석 너머로 먼 수평선이 풍경화처럼 아득하게 평온하다. 누구라도 세이셸에 흘러들었다면, 이곳의 환상적 풍광 때문일지 모르겠다.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곳’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니는 여행지는 많지만, 앙스 수르스 다르장은 어디에서도 경험한 적 없는 생경한 풍경으로 마음을 용해시킨다. 그건 아마도 세이셸이 거대한 고대 대륙의 한 조각이기 때문일 것이다. 하와이, 모리셔스는 화산으로 생긴 섬이고, 몰디브와 프랑스령 폴리네시아의 섬들은 석호로 이루어진 산호섬이다. 독특하게도 세이셸 군도의 섬 대부분은 곤드와나대륙이 분리되어 생긴 화강암 그 자체다. 집채만 한 광물이 박혀있고, 하늘을 가리는 열대 밀림이 빼곡하다. 여전히 미지의 땅이 공존하고, 신비로운 동굴이 즐비하며 다다를 수 없는 절벽에는 고대의 전설이 원주민의 입으로 전해진다. 1억5천만 년 전에 생긴 너럭바위를 맨발로 뛰어다니고, 수평선 끝까지 달려가보자. 원주민이 내오는 생선구이를 안주 삼아 로컬 맥주를 들이켜면 이보다 더 근사한 낙원은 없을 것이다.

앙스 수르스 다르장으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세이셸에 서식하는 희귀 동물, 육지거북이 어슬렁거린다. 자연 암벽으로 둘러싸인 보호구역 안에 최소 서른 살에서 많으면 백 살 이상 나이 먹은 육지거북이 산다. 자이언트급 덩치를 자랑하는데, 콧대 없는 콧구멍 두 개와 굳게 다문 야무진 입술이 제법 귀엽다. 아몬드 나무 잎사귀를 조심스레 건네니 전력질주로 다가와 입을 크게 벌린다. 한쪽에는 손이 물리지 않도록 주의하라는 푯말이 큼지막하게 자리하고 있다. 귀여운 용모와 달리 턱 힘이 발달해 한 번 물리면 손가락이 잘릴지도 모른다는 현지인의 경고(?)도 이어진다. 라디그섬 선착장에서 자전거를 빌려 야자수 그늘 아래를 달리다가 ‘제로프’ 레스토랑에 들러 로컬 음식인 크레올(Creole) 뷔페를 주문하자. 해산물 튀김과 찜, 빵나무(Breadfruit) 열매 샐러드가 푸짐하게 나온다. 세이셸 럼주 타카마카에 코코넛과 열대 과일을 넣어 담근 로컬 슈납스는 우리 입맛에도 잘 맞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