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유의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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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 Only Live Once

많은 사람이 운동과 피부 관리에 들일 시간이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우선순위를 생각해 그중 가장 중요하지 않은 것을 포기하고 그 시간에 운동을 한다. 점심시간이나 자기 전에 한 시간이라도 꼭 한다. 언젠가 보디로션을 매일 바르면 피부 나이가 세 살 줄어든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 뒤부터 하루도 빼놓지 않고 보디로션을 바르고 있다. 솔직히 보디로션을 바르는 일이 끔찍하게 귀찮기는 하지만 말이다. 좀 불편하더라도 나를 위해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는 것이 You Only Live Once, ‘YOLO’적인 삶이 아닐까.

하루의 시작 블랙커피 한 잔 마시기.

늘 갖고 다니는 물건 립 제품. 립밤이건 립스틱이건 뭐든 가지고 다닌다. 요즘은 나스의 마른 장미색에 빠져 있다.

뷰티 루틴 계면활성제가 들어 있지 않은 용카의 클렌징 젤과 클렌징 로션으로 세안한 다음 토너로 또 한번 닦아낸다. 이어 비타민 세럼과 로션을 바른다. 피부가 흡수할 수 있는 양이 한정돼 있기 때문에 화장품의 단계를 최소화하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일주일에 세 번 이상 반신욕이나 족욕을 한다.

보디 케어 피부가 건조해 일단 수분감이 많은 제품이 좋다. 보디 오일과 로션을 섞어 바르는데, 향은 가리지 않고 다 좋아하기 때문에 그날의 옷차림이나 기분에 맞추어 고른다.

멋진 보디라인을 결정짓는 것 진부한 대답일 수 있지만 자신을 사랑하는 일이 아닐까.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에게서는 특유의 여유와 자신감이 보인다. 섹시함은 덤으로 따라오고. 내게는 운동이 나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이다. 20대에 들인 노력의 결과는 30대에, 30대에 들인 노력의 결과는 40대에 드러난다고 믿는다.

 

화이트 톱 엣코너, 레이스 쇼츠 H&M 스튜디오
화이트 톱 엣코너, 레이스 쇼츠 H&M 스튜디오

여유로운 날 오후 집에 있는 것을 좋아하지만 요즘 친언니가 오픈한 연남동 커피숍에 자주 간다. 집에 있는 날에는 평소와 다른 스타일로 메이크업을 직접 해보기도 한다. 요리하는 것도 좋아한다.

스트레칭 운동으로 관리하는 부분과 스트레칭으로 관리하는 부분이 따로 있다. 골반과 목이 아파서 매일 이 두 곳을 스트레칭한다. 고관절 스트레칭에 특히 신경 쓰고 있다.

스트레스를 풀 때 아주 매운 음식을 먹거나 스노보드, 수상스키를 즐긴다. 슬픈 영화를 보면서 엉엉 울 때도 있다.

올해의 운동 작년에는 근육량이 많지 않은 슬림한 몸을 갖고 싶어서 운동을 조금만 했다. 올해는 근력 운동을 열심히 해서 몸을 제대로 만들 생각이다. ‘터치 마이 보디’ 때만큼은 못하겠지만.

셀프 뷰티 케어 피부가 예민해서 구매 후기를 꼼꼼히 살펴본 다음 화장품을 사고, 미용 관련 자격증을 딸 정도로 뷰티 케어에 관심이 많다. 뷰티 영상도 즐겨 본다. 셀프 네일 케어를 즐기다 보니 네일숍에 가본 지도 오래됐다. 여행지에서는 머리를 양 갈래로 묶거나 강렬한 웨이브를 만드는 등 독특한 스타일을 시도하기도 한다.

여행 최근 멕시코 로스카보스 섬에 다녀왔다. 사람들이 친절하고 분위기는 평화로웠다. 해 질 무렵의 핑크빛 하늘은 비현실적으로 예뻤다. 사막에서 2시간 코스로 ATB를 타고 스노클링을 원 없이 했다. 가슴이 벅찰 정도로 행복해지는 이런 여행을 자주 떠나고 싶다.

 

입욕에 사용한 배스 제품은 러쉬의 밀키 배스 버블 바
입욕에 사용한 배스 제품은 러쉬의 밀키 배스 버블 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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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ss Scarlett

스칼렛 요한슨
톱과 스커트 모두 구찌(Gucci), 스파이크 스터드 이어링 메시카 파리(Messika Paris), 다른 이어링은 스칼렛 요한슨 소장품.

지난 몇 년간 ‘어벤져스 시리즈’에서 슈퍼히어로 역할을 맡은 배우인데 스칼렛 요한슨은 신기할 정도로 인간적이다. “며칠 집에 못 들어간 사람 같죠? 미안해요.” 커다란 안경을 끼고 청바지 차림에 아디다스 운동화를 신고 야구 모자를 눌러쓴 그녀는 약간 코맹맹이 소리를 냈다. 그 모습이 여신이라기보다 털털한 친구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이런 수더분한 모습에 속으면 안 된다. 어디까지나 그녀는 무비 스타니까.

지난해 세계적으로 12억 달러에 달하는 흥행 수익을 올리며 <포브스>가 선정한 2016년 최고의 흥행 배우로 등극한 스칼렛 요한슨. 그녀는 지금껏 이뤄온 커리어 면의 성취만큼이나 할리우드 밖의 삶도 중요하게 생각한다. 뉴욕에서 태어난 그녀는 2014년 아트 딜러이자 큐레이터인 로맹 도리아크와 결혼한 뒤 남편의 고향인 파리와 미국을 오가며 지내고 있다. “파리가 내 집처럼 편해요. 그곳에 남편 가족도 있고 딸의 사촌들도 있으니까요. 제 딸은 영어와 프랑스어 2개 국어를 하죠. 멋지죠.” (두 살배기가 처음 내뱉은 영어 단어는 ‘와우’였다.) “남편과 딸이 제가 모르는 프랑스어로 대화를 나누면 어쩔 줄 모르겠더라고요.”

 

스칼렛 요한슨
드레스 알렉산더 맥퀸(Alexander McQueen), 링 샤넬(Chanel), 이어링은 스칼렛 요한슨 소장품.

언어만 제외하면, 스칼렛 요한슨은 프랑스 문화에 적응하는 예상 밖의 방법을 찾아냈다. 그녀는 최근 파리 마레 지구에 ‘요미 팝(Yummy Pop)’이라는 이름의 스낵 숍을 오픈했다. 그녀는 파리에 이어 도쿄에도 가게를 열고 싶다고 했다. 아마도 스칼렛 요한슨은 곧 도쿄에 가게 될 것이다. 일본 애니메이션 <공각기동대>를 영화화한 <공각기동대: 고스트 인 더 쉘>이 이달에 개봉하기 때문이다. 스칼렛 요한슨은 사이보그인 쿠사나기 모토코 소령으로 분해 사이버 테러에 맞선다. “그녀 세대의 배우 중 스칼렛이 가장 독보적이니까요.” 루퍼트 샌더스 감독의 말이다. 스칼렛 요한슨은 격투 신을 맹연습하며 역할에 깊이 빠져들었다. “격투 신을 코칭한 무술팀이 혀를 내두를 정도였죠. 하지만 스칼렛은 역할을 위해 꼭 해야 하는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방금 전까지 딸과 놀다가 카메라 앞으로 와 곤봉으로 남자들을 가격하는 장면을 찍는 모습은 정말 놀랍죠.”

쿠사나기 모토코 역에 스칼렛 요한슨이 캐스팅되자 원작의 팬 사이에서 이 역은 아시아 여배우가 맡아야 한다는 주장이 일었다. ‘화이트워싱’ (Whitewashing, 원작에서는 백인이 아닌 캐릭터가 할리우드 영화에서는 백인으로 바뀌어 등장하는 형태) 논란에 대해 스칼렛 본인도 알고 있다. “이 작품은 인종을 떠나 인간의 경험에 대한 이야기예요. 인종이 다른 누군가가 할 역할을 제가 맡았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할리우드에서는 다양성이 중요하죠. 누군가에게 거부감을 주는 역할은 절대 하고 싶지 않아요.” 그녀는 잠시 말을 멈췄다가 “그리고 히어로물 중 여성이 주인공인 작품은 극히 드물어요. 당연히 부담감이 크죠. 어깨에 지워진 짐이 무겁게 느껴져요.”

 

스칼렛 요한슨
드레스 구찌(Gucci),이어링은 스칼렛 요한슨 소장품.

영화 흥행과 관련한 통계 자료를 제공하는 박스오피스 모조(Box Office Mojo) 웹사이트에 따르면 스칼렛 요한슨은 할리우드 역사상 가장 많은 관객을 동원한 여배우다. 5편의 어벤져스 시리즈에서 ‘블랙 위도우’로 불리는 러시아 스파이 ‘나타샤 로마노프’ 역을 맡은 덕분이다. 스칼렛 요한슨은 자신이 출연한 작품들이 북미 지역에서만 30억 달러를 벌어들인 사실이 자랑스러우면서도 아이러니하다고 말한다. “할리우드 역사상 최고의 흥행을 기록한 여배우라고 해서 출연료가 제일 높은 건 아니에요.”

그녀는 현재 영화 제작사 운영을 준비하고 있다. “지금까지 내가 가진 것을 위해 계속 싸워왔어요. 영화계는 너무나 변덕스럽고 정치적이죠. 어떤 배우들은 지나치게 많이 받고, 어떤 배우들은 너무 적게 받고 과소평가되고, 온갖 다른 방식으로 분류되고 가공되는 게 영화계예요. 결국은 배우들이 가진 무형적인 무언가로 배우의 가치가 결정되죠. 정확히 어떤 시스템으로 돌아가는 걸까요? 누구의 개런티가 부풀려지고 누구의 개런티가 과소평가된 걸까요?”

 

스칼렛 요한슨
파카와 이어링 모두 생 로랑 바이 안토니 바카렐로(Saint Laurent by Anthony Vaccarello).

지금은 이혼한 프로듀서 멜라니 슬로언과 덴마크 출신 건축가 카르스텐 요한슨 사이에서 태어난 스칼렛 요한슨은 뉴욕의 웨스트 빌리지에서 4명의 형제자매 사이에서 자랐다. 그녀는 자신의 음악과 영화 취향에 영향을 준 사람으로 2009년까지 매니저 역할을 한 어머니를 꼽았다. 성장기에 레너드코언의 음악을 듣고, 로렌 바콜이 나오는 영화를 봤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녀는 일찍이 타고난 깊은 음성으로 어리지만 성숙한 느낌을 풍겼다. 이런 이유로 1998년 그녀가 출연한 <호스 위스퍼러>의 감독 로버트 레드포드는 스칼렛 요한슨을 두고 “서른 살 같은 열세 살”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그녀가 나이보다 현명해 보이는 것도 실제로 그렇기 때문일 터다. 가족과 어려운 시기를 견뎌낸 그녀는 “10대 때까지 정보 보조금을 받으며 살았어요. 재정적으로 부모님으로부터 독립할 때까지 어렵게 살았죠”라고 말한다.

“천성인지 성장 환경 때문인지 모르지만, 힘든 시절이 있었기에 우리는 다른 사람의 고통에 공감할 수 있었죠.”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대선 캠프 매니저로 활동했던 스칼렛 요한슨의 쌍둥이 오빠 헌터 요한슨이 말한다. “저는 배우가 아니지만 배우들 틈에서 자란 경험을 비춰 볼 때 배우는 공감 능력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 사람이 어떤 경험을 했는지 이해해야 하죠. 모든 건 거기서 나오니까요. 바로 그 점이 스칼렛을 훌륭한 배우로 만든다고 생각해요.” 오빠처럼 스칼렛도 정치사회 이슈에 관심이 지대하다. 가족계획 연맹(Planned Parenthood)의 열렬한 지지자인 스칼렛은 최근 마크 월버 그의 인터뷰를 언급하며 정치사회 이슈에 대해 연예인은 함구해야 한다는 그의 주장에 반대한다고 말한다.

 

 

디올 드레스
드레스 디올(Dior), 이어링 메시카 파리(Messika Paris).

스칼렛 요한슨은 오는 6월 개봉할 코미디 <록 댓 보디(Rock ThatBody)>에서는 새로운 매력을 한껏 펼쳐 보일 예정이다. 케이트 매키넌, 조크라비츠, 일라나 글레이저, 질리언 벨과 함께 연기한 이 영화는 5명의 여자 친구들이 뜨거운 주말을 보내기 위해 마이애미 비치로 놀러 갔다가 실수로 남자 스트리퍼를 죽이고 시체를 버려야 하는 상황에 치닫는 스토리다. “기상 천외한 장면이 정말 많아요. <베니의 주말> 같은 영화예요. 이야기 자체는 신선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여자 캐릭터들이 아주 웃겨요. 함께한 배우들이 하나같이 코미디 천재들이에요.”

스칼렛 요한슨은 딸에게 엄마가 출연한 영화를 아직 보여주지 않았다. 하지만 딸 로즈가 가끔 TV에 나오는 엄마를 알아보기도 한다. “딸이 TV 에 나오는 저를 알아본다고 생각하니 마냥 신기해요. <캡틴 아메리카> 같은 영화가 나올 때 ‘누구야?’라고 물으면 ‘어, 엄마잖아’라고 해요. 로즈는 아직 <씽> 말고는 제 영화를 볼 나이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씽>은 최근 스칼렛 요한슨이 10대 고슴도치 ‘라커’로 목소리 출연을 한 애니메이션 영화다. “로즈가 충분히 자란 후에 영화 <킥 애스>를 함께 보면 재미있을 것 같아요.” 그녀가 특유의 묘한 웃음을 지었다.

 

스칼렛 요한슨
후드톱 돌체앤가바나(Dolce & Gabba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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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효진의 선택

공효진 화보
복고적인 디자인의 니트 카디건과 스커트, 볼드한 리본을 장식한 펌프스 모두 가격 미정 구찌(Gucci), 레드 스타킹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왼쪽부터) 유니크한 일러스트를 새긴 블라인드 포 러브 링 9mm, 구찌 로고와 일러스트를 새긴 블라인드 포 러브 링 5mm 모두 가격 미정 구찌 타임피스 앤 주얼리(Gucci Timepiece & Jewelry), 빈티지 터키 카펫 샘버(Samver).

영화 <미씽: 사라진 여자>(이하 <미씽>)에서 공효진이 연기한 ‘한매’는 허무하게 아이를 잃고 자신이 돌보던 아이를 훔친다. 나는 그녀가 아이와 멀리 떠나려는 순간, 아이 엄마와 셋이 멀리 도망가 행복하게 살았다는 식의 말도 되지 않는 해피 엔딩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어눌한 한국어 대사와 짓눌린 중국어 대사를 오가며 서늘함과 서글픔을 드러내는 한매가 행복했으면 했다. “농담 삼아 속편으로 <미씽: 사라진 아이>를 찍어보자고 했어요. 한매가 멀쩡하게 돌아오는 거죠. 한매가 행복하길 바랐거든요. 제가 시나리오를 읽고 느낀 한매에 대한 감정을 제가 연기한 한매를 보고 관객이 함께 느껴줘서 좋았어요.”

 

남자들끼리 거친 욕설을 쏟아내며 싸우는 영화의 틈에서 <미씽>은 여자 배우들의 힘이 빛나는 영화다. 남자들의 이야기가 아닌 여자들의 이야기. 강자의 이야기가 아닌 약자의 이야기. 남자들의 영화가 득세하는 한국 영화계에서 공효진이라는 배우의 존재와 선택은 반갑다. 영화는 느린 속도로 작품을 선택해온 공효진이 이번에는 <싱글라이더>로 금세 돌아왔다. 얼굴이 시도 때도 없이 홍당무처럼 빨갛게 변하거나 두 번째 이혼을 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또 결혼하고 싶어 하거나 겨드랑이 털이 드러나도 당당한 유의 여자가 아니다. 그냥 누군가의 평범한 아내. 눈에 띄는 개성 대신 영화에 스며드는 색을 내야 하는 <싱글라이더>의 ‘수진’은 평범해서 또 기대된다.

“지금쯤 평범한 색깔을 지닌 캐릭터도 한번 해봐야겠다 싶었어요. <싱글라이더>의 배경은 호주예요. 대사가 영어인데 어느 감도로 해야 할지 고민이었어요. 아주 잘하는 것도 어색하고 아주 못해도 말이 안 되니까요. 작품을 거칠수록 조금씩 더 발전된 연기를 하고 싶어요. 작년보다 올해, 올해보다 내년에 더 잘해야죠. 그래서 계속 도전하고 싶은 작품을 고르는 것 같아요.”

 

공효진 화보
현란한 큐브 프린트의 셔츠,비비드한 그린 컬러의 실크 팬츠 모두 가격 미정 구찌(Gucci). 위부터) 사파이어를 정교하게 장식한 구찌 플로라 이어링, 비비드한 컬러 스톤을 장식한 골드 링, 블라인드 포 러브 링 9mm, 블라인드 포 러브 링 5mm, 펑키한 스터드 장식의 빈티지 웹 플렉시글라스 타임피스, 꽃과 나뭇잎을 새긴 브레이슬릿,하트와 곤충 모티프로 장식한 르 마르쉐 데 메르베 브레이슬릿, 다이아몬드를 정교하게 세팅한 르 마르쉐 데 메르베 브레이슬릿 모두 가격 미정 구찌 타임피스 앤 주얼리(Gucci Timepiece & Jewelry).

주인공의 아내를 연기하니 그간 보여준 캐릭터와 결이 많이 달라 보인다. 이야기를 끌고 가는 주된 인물은 아니다. 그간 다른 작품에서 한 역할에 비해 훨씬 평범한 인물이기도 하다. 사실 평범하기 때문에 <싱글라이더>를 선택했다. 이병헌 선배와 작업한다는 점도 끌렸다. 선배가 연기한 작품이 대부분 남성성이 강한 영화이기 때문에 함께 호흡할 기회가 많지 않았다. 하지만 무엇보다 끌린 건 시나리오다. 시나리오를 읽고 여운이 많이 남았는데, 마치 <미씽>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의 느낌 같았다. 영화를 본 관객에게 내가 시나리오를 보고 느낀 감정이 고스란히 전달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는데, 이번에도 영화가 개봉하면 내가 느낀 여운이 잘 전달될지 궁금하다.

영화에서 늘 이야기를 주도하는 인물을 연기했다. <싱글라이더>는 그런 면에서도 많이 다르다. 모든 배우가 자신이 연기하는 캐릭터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누군가를 서포트하기 위해 작품을 선택하지 않는다. 나라도 살아남아야지, 나만은 살아남아야지, 나도 살아남아야지, 이런 생각을 하기 마련이고 배우는 연기로 평가받으니 연기로 내 가치를 증명하는 것 역시 중요하다. 그래서 더 돋보이고 좋은 캐릭터에 욕심이 생기는 것 같다. 그런데 이번에는 이병헌 선배가 연기하는 주인공도 그의 이야기도 시나리오에 담긴 감정도 좋았다. 이 감정을 더 많은 사람이 함께 느낄 수 있으면 좋겠다 싶었다.

<미씽>에 이어 이번에도 여성 감독의 영화다. 여성 감독이 연출할 때와 남성 감독이 연출할 때 다른 면이 있지 않나. 많이 다르다. 여자 감독님과 작품을 꽤 많이 했는데 일부러 그랬다기보다는 운명 같다. 여자 감독님과 작업 할 때는 여성의 심리를 더 디테일하게 상의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이를테면 이런 거다. 남자 감독님과 작업할 때는 확신이 서지 않는 감정선에 대해 내가 여자라는 이유로 내 생각이 맞다고 주장할 수 있다. 확신이 든다는 면에서 장점일 수 있지만 어찌 보면 독단적인 선택일 수도 있다. 반면 여자 감독님과 작업할 때는 인물의 감정에 대해 더 여러 경우를 생각하게 되고 고민도 더 많다. 여자의 감정을 더 풍부하게 이해하려고 애쓰게 된다.

 

주름 디테일의 핑크 셔츠, 플래드 체크 재킷, 1970년대의 복고적인 멋이 느껴지는 팬츠 모두 가격 미정 구찌(Gucci).위부터) 하트 펜던트 블라인드 포 러브 네크리스, 심플한 디자인의 르 마르쉐 데 메르베 타임피스, 일러스트를 정교하게 새긴 블라인드 포 러브 링 9mm, 캐주얼한 블라인드 포 러브 링 5mm 모두 가격 미정 구찌 타임피스 앤 주얼리(Gucci Timepiece & Jewelry).
주름 디테일의 핑크 셔츠, 플래드 체크 재킷, 1970년대의 복고적인 멋이 느껴지는 팬츠 모두 가격 미정 구찌(Gucci).
위부터) 하트 펜던트 블라인드 포 러브 네크리스, 심플한 디자인의 르 마르쉐 데 메르베 타임피스, 일러스트를 정교하게 새긴 블라인드 포 러브 링 9mm, 캐주얼한 블라인드 포 러브 링 5mm 모두 가격 미정 구찌 타임피스 앤 주얼리(Gucci Timepiece & Jewelry).

공효진 정도 연차의 배우라면 연기에 자신만의 고집이 생길 수 있다. 어떤가? 연기할 때 가장 도움이 많이 되는 건 내가 직접 경험한 감정일 것이다.하지만 모든 상황과 감정을 직접 경험할 수는 없다. 감독도 마찬가지다. 감정을 표현하는 데 꼭 A가 정답일 수 없다. 다만 감독과 소통하며 A 혹은 B가 아닌 C가 될 수 있다며 여러 경우의 수를 생각한다. 딱 이거다 싶은 게 나오지 않으면 애매하게 해보겠다고 한다. 나는 ‘애매하다’고 말하는 걸 좋아한다. 인물의 감정을 관객과 공유하는 데 정답이란 없다. 그리고 관객에게 특정한 감정을 강요할 수도 없다. 내가 직접 겪은 일이 아니고서는 아무도 알 수 없다. 다만 보다 많은 사람이 영화나 드라마 속 인물에 공감하려면 풍부하고다양하게 감정을 표현해야 한다.

그간 작품을 변화무쌍하게 선택해왔다. 작품의 장르와 색깔에 일관성이 없는데, 또 공효진이라면 선택했을 법한 작품들이다. 필모그래피를 만들어가는 순간순간 걱정스러웠다. 이 역할은 너무 특이한가? 이상한 여자인가? 지나치게 독특하기만 한가? 영화를 선택할 때마다 겁이 났다. 작품을 대하는 자세가 늘 똑같을 수는 없다. 그때마다 개인적인 상황도 다르고 심경도 다르고 또 내 나이도 다르니까. 그래도 늘 이것저것 재지 않고 화끈하게 결정했다. 한 가지를 놓고 오래 고민하지 않고 ‘렛 잇 비’의 태도로 살려고 하는데, 그때그때의 선택이 모여 지금의 필모그래피가 쌓였다. 큰 그림을 그리고 계획을 짠 적은 없다. 어떻게 얘기하면 좋을까? 시대를 잘 만난 것 같다. 내 경쟁력에 대한 고민이 많았는데 어떻게 보면 나 자신에게 기대가 없었기 때문에 과감하게 선택한 것 같다. 1등, 2등, 3등 순위를 매기려 하지 않았다. 나는완벽주의자가 아니어서 열 개 중 한두 개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선택을 망설이지 않는다. 이런저런 핸디캡이 있는 인물도 다행히 좋은 감독과 작가를 만나고 좋은 스태프, 배우들과 함께 시너지를 낼 수 있었다.

연기를 시작한 지 20년 가까이 되었다. 그동안 슬럼프도 있었겠지? 2003년부터 2년간이 배우 인생의 과도기였다. 2003년 이전에는 여성스럽고 귀엽기보다는 매섭고 와일드한 캐릭터를 주로 연기했다. 운 좋게 그런 역할이 사랑받는 시절이기도 했다. 시대를 잘 만난 거지. 그런데 늘 비슷한 캐릭터를 제안받으니 어느 순간 내 배우 인생이 유효기간이 다했다는생각이 들었다. 다른 그림을 그리고 싶은데 사람들이 나에게 기대하는 역할은 한정적이었다. 한 2년 동안 작품을 많이 하지 않고 버텼다. 계획적으로 한참 연기를 쉬었다가 복귀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건 아니었다. 내키지 않는 캐릭터를 하지 않았고 그냥 기다렸다. 그러다 2005년에 영화 <가족의 탄생>을 만나고 다시 힘을 냈다.

 

공효진 화보
자연스러운 실루엣을 이루는 셔츠와 밑단에 주름을 잡은 벨보텀 팬츠, 여우 모티프 숄더백, 레드 스틸레토 힐 모두 가격 미정 구찌(Gucci). 사파이어를 섬세하게 세팅한 플라워 모티프 장식 구찌 플로라 이어링 가격 미정 구찌 타임피스 앤 주얼리(Gucci timepiece & Jewelry), 유니크한 병정 모티프의 카펫 샘버(Samver).
공효진 화보
유니크한 타이거 프린트의 티셔츠, 강렬한 색상과 슬림한 실루엣이 돋보이는 레깅스 팬츠,골드 버클이 포인트인 화이트 백, 동양적인 디자인의 웨지 힐 슈즈 모두 가격 미정 구찌(Gucci).
위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블라인드 포 러브 링 9mm, 블라인드 포 러브 링 5mm, 아기자기한 로고와 레터링으로장식한 블라인드 포 러브 브레이슬릿, 르 마르쉐 데 메르베 브레이슬릿, 곤충 모티프로 장식한 르 마르쉐 데 메르베 브레이슬릿, 꽃과 나뭇잎으로 장식한 골드 브레이슬릿, 하트 셰이프 블라인드 포 러브 이어링, 고양이 얼굴 모티프를 장식한 브레이슬릿 모두 가격 미정 구찌 타임피스 앤 주얼리(Gucci Timepiece & Jewelry), 유니크한 병정 모티프의 카펫 샘버(Samver).

자신이 잘하는 것, 대중이 기대하고 좋아하는 것에 부합하는 캐릭터를 선호하는 배우가 있는가 하면 늘 다른 걸 해보고싶어 하는 배우가 있는 것 같다. 모두 운인 것 같다.

어떤 일이든 운이 따르지 않으면 이룰 수 없는 것 아닌가. 맞다. 슬럼프에 빠졌을 때는 연기를 관두고 뭘 할지 생각했다. 그때 한 인터뷰를 찾아 보면스물여덟 살이 되면 디자인 공부를 하겠다고 답했다. 선배들이 읽었으면 참 어이없었을 거다. 배우라는 게 쉽게 그만둘 수 있는 일이 아니더라. 쉽게 질리지도 않고 포기할 수도 없는 일이다. 쉽게 떠날 수도 없고 또 섣불리 떠났다가 쉽게 돌아올 수도 없는 일이다. 사람이 하는 일 중에는 마스터의 경지에 이르는 일도 있지만 배우는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연기를 아무리 오래 해도 후회와 만족을 반복한다. 지난 작품을 돌이켜보며 ‘나 그때 정말 잘했어’라고 평가하는 배우는 없을 것이다. 슬럼프를 겪는 동안에는 내 한계가 느껴졌다.

지금은 자신의 한계에 대한 고민에서 자유로운가? 완벽하게 자유롭다. 계획적으로 작품을 선택하지 않고 내 나이와 그때그때의 기분에 맞게 선택한 작품들이 지금은 꽤 탄탄한 필모그래피가 되었기 때문에 자신감이 생겼다. 내가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대중이 거부감을 느끼지 않을 것 같은 생각이든다.

공효진은 자유로운 게 잘 어울린다. 그러기에는 보수적인 면이 있다. 혈액형이 A형이다. 다만 줄타기를 잘해온 거다. 난 변주가 빠른 것 같다. 계획적으로 작품을 선택한 게 아니어서 더 자유로워 보이는 것 같기도 하다.

영화나 드라마가 아니면 공효진을 보기가 쉽지 않다. 이를테면 예능 프로그램이라거나. 나이가 들수록 모든 사람에게 좋은 사람, 멋진 사람으로 보이고 싶은데 아이러니하게도 나이가 들수록 내 취약점과 단점이 무엇인지 스스로 잘 알게 된다. 사람들이 그런 면을 발견하면 나를 싫어하고 불편해할 것 같다.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사람들이 나를 꿰뚫어 보는 건 위험한 일 같다.(웃음). 지금의 나는 많이 조각돼 있다. 두루두루 둥글지 않고 어떤 면은 날카롭고 또 어떤 면은 동그랗다. 그렇게 내 형태를 갖춰가고 있는데 완성되어가는 조각을 보면 분명 호불호가 갈릴 것이다. 예능 프로그램은 그렇게 깎인 내 모습을 360도로 돌려가며 보여준다는 게 겁난다.

 

공효진
원숭이 모티프와 타이포그래피를 섬세하게 수놓은 롱 니트 카디건 구찌(Gucci).
위부터) 영롱한 블루 컬러의 구찌 플로라 이어링, 꽃과 나뭇잎을 장식한 골드 링, 사파이어를 정교하게 세팅한 구찌 플로라 링, 로고가 새겨진 심플한 골드 링 모두 가격미정 구찌 타임피스 앤 주얼리(Gucci Timepiece & Jewelry).
공효진 화보
홀터넥 스타일의 톱, 스터드 장식과 러프한 염색 기법이 눈길을 끄는 박시한 데님 재킷, 반복적인 패턴으로 재미를 준 플레어스커트, 진주로 장식한 웨지 힐 슈즈 모두 가격 미정 구찌(Gucci), 레드 스타킹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하트 셰이프로 캐주얼한 무드를 더한 블라인드 포 러브 이어링 가격 미정 구찌 타임피스 앤 주얼리(Gucci Timepiece & Jewelry), 빈티지 아프가니스탄 카펫 샘버(Samver).

마흔의 자신을 상상해본 적이 있나? 몇 년 남지 않았다. 또래들이 나이 얘기 하면 되게 예민하다. 나는 세월이 가는 게 두렵다기보다는 그냥 ‘에라이, 모르겠다’ 하는 심정이다. 걱정과 넋두리를 늘어놓는 친구들을 보면 화가 날 지경이다.(웃음) 숫자에 연연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원래 내 나이에는 결혼도 하고 아이도 있을 법한데 나는 여전히 인생의 첫 번째 챕터에 있다. 어쩌면 내 인생은 챕터가 하나인 책으로 끝날지도 모른다. 어릴 때는 ‘아무런’ 나이였고, 이제 점점 ‘아무렇지 않은 척하는’ 시기로 접어드는 것 같다. 마흔이 되면 어떨까? 난 사실 1년 1년이 많이 다르다. 예전 인터뷰를 보며 지나간 시간을 정리하곤 하는데, 그래서 배우란 좋은 직업인 것 같다. 그런 식으로 내 머릿속을 정리할 수 있으니. 어느 해에는 아주 낙천적이고 또 어느 해에는 무척 예민하다.

어쨌거나 오늘의 기운은 좋은 것 같다. 아니다. 기운이 썩 좋지 않다. 머릿속이 대단히 혼란스럽고 복잡하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요즘은 무엇이 정답인지 잘 모르겠다. 내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모르겠다. 여긴 어디고, 나는 누구인지. 그런 시간을 보내는 중이다. 고민과 혼돈의 시간이다. 살면서 필요한 시간이기도 하고.

<마리끌레르> 3월호는 24주년 기념호다. 공효진은 스물네 살 때 어떤 모습이었나? 슬럼프를 겪던 때였다. 마리끌레르가 스물네 살이 되는 때에 내 슬럼프가 돌아온 걸까?(웃음) 지금보다 순수하던 때였고 더 용감했다. 세상이 내 맘대로 될 것 같기도 했다. 어쨌든 잘 견뎌냈다.

 

공효진
프렌치 감성의 블루, 레드, 화이트 배색 니트 상의, 팬츠, 카디건, 로고 장식 플랫폼 슈즈 모두가격 미정 구찌(Gucci).
위부터) 사파이어를 장식한 구찌 플로라 이어링, 여성스러운 플라워 패턴이 새겨진 골드 링, 플라워 장식이 우아한 구찌 플로라 링 위드 사파이어, 심플한 디자인에 로고로 포인트를 준 골드 링, 플렉시글라스 소재의 유니크한 타임피스 모두 가격 미정 구찌 타임피스 앤 주얼리(Gucci Timepiece & Jewelry), 빈티지 아프가니스탄 카펫 샘버(Sam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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