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thful moments

레드벨벳 슬기 웬디
웬디 니트 스웨터, 슬랙스, 앵클부츠 모두 위크엔드 막스마라(Weekend MaxMara). 슬기 니트 스웨터, 코트, 패턴 팬츠, 로퍼 모두 위크엔드 막스마라(Weekend MaxMa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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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디 니트 터틀넥 톱 잉크(EENK), 레더 플리츠스커트 자라(ZARA), 클래식한 디자인의 워커 닥터마틴(Dr. Martens). 슬기 재킷 스튜디오 톰보이(Studio Tomboy), 파이톤 가죽 팬츠 에잇 바이 육스(8 by YOOX), 브라운 로퍼 닥터마틴(Dr. Marte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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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 오버핏 셔츠 베트멍 바이 매치스패션닷컴(Vetements by MATCHESFASHION.COM), 레더 스커트 아워코모스(Our Comos), 14홀 블랙 롱 부츠 닥터마틴(Dr. Martens), 골드 프레임 안경 아이반7285(eyevan72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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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 셔츠 제인송(Jain Song), 슬랙스 레하(Leha), 과민감성 피부 진정 톨레덤 수딩 크림 유리아쥬(URI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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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트 터틀넥, 카디건, 팬츠, 앵클부츠, 백 모두 위크엔드 막스마라(Weekend MaxMa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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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디 블라우스 와이씨에이치(YCH), 팬츠 320쇼룸(320SHOWROOM), 부츠 레이첼 콕스(Rachel Cox), 부드러운 형태의 토트 겸 크로스 백 폴스부띠끄(Pauls Boutique). 슬기 크롭트 톱, 셔츠, 팬츠 모두 레하(Leha), 스니커즈 컨버스(Converse), 골드 네크리스 캘빈 클라인 주얼리(Calvin Klein Jewelry), 클래식한 디자인의 크로스 백 폴스부띠끄(Pauls Boutiq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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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피스 레하(Leha), 손상된 헤어 케어부터 피니시까지 가능한 모로칸오일 트리트먼트와 피부노화와 손상 예방 모로칸오일 나이트 바디 세럼 모두 모로칸오일(Moroccano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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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 블라우스 로맨시크(Romanchic), 민감성 피부용 미셀라 클렌징 워터 센서티브 유리아쥬(URIAGE).

슬기 레드벨벳

톱, 셔츠, 코듀로이 재킷, 팬츠, 앵클부츠 모두 위크엔드 막스마라(Weekend MaxMara).

앨범 활동을 막 끝내고 뉴욕으로 달려왔다. 소감이 어떤가? 슬기 올해 발표할 앨범 3개 가운데 <Day 1>과 <Day 2>를 마쳤고, <Day 3> 발표가 남았기 때문에 완벽하게 끝난 건 아니다. 한국으로 돌아가면 다시 연습하고 뮤직비디오도 찍어야 한다. <Day 1>과 <Day 2>로 활동하면서 여유로운 마음을 갖는 법을 배운 것 같다. 그 전에는 늘 바짝 긴장해 예민했는데 이번에는 달랐다. 그런 면에서 특별한 활동이었다. 웬디 <Day 1>의 타이틀곡 ‘짐살라빔’은 워낙 새로운 시도였기 때문에 준비 단계에서는 춤과 노래 모두 많이 걱정됐다. 그런데 막상 활동을 시작하니까 좋았다. 지금 생각하면 크게 아쉬운 점은 없는 것 같다.

육체적으로 많이 힘들었을 것 같다. 슬기 물론 바빴다. <Day 1>과 <Day 2> 사이에 시간적 여유가 많지 않았는데도 오히려 마음은 이전과 달리 편안했다. 활동을  계획적으로 할 수 있었고, 구체적인 내용까지 꼼꼼하게 체크하면서 진행할 수 있었다. 각기 다른 모습을 빠른 시간 내에 바꿔가며 보여드리는 건 색다른 경험이었다. 웬디 짧은 시간에 최대치를 완성해 보여드려야 한다는 생각에 조금 부담된 것이 사실이고. 많은 분이 이번 앨범을 들으며 레드벨벳이어서 소화할 수 있는 장르고, 레드벨벳이기에 이렇게 다양한 곡과 앨범을 연이어 선보일 수 있는 것이라는 인식을 조금이나마 갖게 되셨으면 좋겠다.

이제 모든 면에서 여유가 느껴진다. 슬기 이제 방송국에 가도 고참에 속한다. 리허설 때 후배 가수들이 공연하는 모습을 보면 ‘아, 참 귀엽다’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도 저런 시절이 있었는데’ 싶어서 가끔 놀란다.(웃음) 웬디 나는 이 여유를 우리만 느끼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여유로워진 만큼 우리 음악을 듣는 분들도 편안하게 즐겼으면 좋겠다.

벌써 데뷔 6년 차다. 돌이켜보면 어떤 감정이 드나? 웬디 아쉬운 적도 종종 있었다. 돌아가고 싶은 순간이나 시절도 있다. 하지만 돌아갈 수 없지 않은가. 그런 시간이 다 경험이 된 것 같다. 데뷔한 지 5년이 넘은 지금, 레드벨벳이 이제야 우리만의 컬러를 찾았다고 생각한다. 이번 앨범만 해도 ‘짐살라빔’은 새롭고 취향에 따라 반응이 다를 수 있는 곡이지만, 두 번째 앨범 <Day 2>의 ‘음파음파’는 누구나 마음 편히 들을 수 있는 노래가 아닌가. 앞으로도 지금처럼 다양한 시도를 즐길 계획이다. 슬기 가끔 팬들이 만든 영상을 보는데 ‘참 다양하게 시도하고 열일했구나’ 싶다. 컨셉트별로 정리한 자료를 보면서 자랑스럽기도 했다. 과거 모습을 보면 풋풋하다는 느낌도 들고, 지난 5년여 동안 각자 개성을 찾는 과정이 시기별로 느껴져서 색다르다. 신인 시절에 비해 지금은 각자의 개성과 컨셉트를 좀 더 뚜렷하게 보여주고 있는데 지난 5년이 자신에 대해 점차 알아가는 시간이었던 것 같다.

연차에 비해 아직 신인 같은 풋풋함도 느껴진다. 슬기 새로운 시도를 한 덕분이 아닐까? 매번 다른 모습을 보이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색다른 컨셉트 안에서 다섯 멤버가 전과 다른 모습을 그려내려고 노력했다. 물론 힘든 적도 있었다. 그래서 스스로 우‘ 리 참 열심히 했구나’ 하는 생각을 가끔 한다. 그만큼 보람도 크다. 웬디 데뷔한 지 5년이 넘은 사실을 깨달았을 때 믿기지 않았다. 그 정도로 시간이 빨리 지나갔다. 사실 10주년이 되어도 실감이 날 것 같지 않다. 그때서야 ‘5년 정도 된 거 아닌가?’ 싶을 것 같다.

10주년에는 어떤 모습일지 상상해본 적 있나? 슬기 가끔 우리끼리 10년 뒤를 그려볼 때가 있다. 핑클 선배님들이 옛날을 추억하며 이야기 나누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도 저렇게 시시콜콜한 추억에 대해 이야기하겠지?’ 하는 생각을 했다.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 그리고 5주년인 지금 여유가 이정도 생겼으니 그땐 방송국이 더 편안하지 않을까? 완전히 내 집 같겠지?

자신을 칭찬하는 데 후한 편인가? 웬디 나는 그동안 나를 계속 다독이면 발전이 없고 긴장이 풀어질 것 같았다. ‘아니야, 아직 괜찮지 않아’ 했었다. 그런데 그런 태도가 나를 자꾸 가두더라. 그래서 지금은 칭찬하지도, 비판하지도 않는다. 그저 주어진 시간에 충실하려고 한다. 책임감을 갖되 자만하지 않는다. 슬기 나를 칭찬할 수 있을 정도로 완벽한 무대를 만들면 된다고 생각한다. 좌절하지 않는 대신 준비를 철저히 하려고 노력한다. 최선을 다한 무대는 스스로 칭찬한다.

마음이 지치고 힘들 때는 어떻게 하나? 웬디 흐트러지는 느낌이 들 때는 팬미팅 같은 곳에서 마음을 다잡거나 팬레터를 읽는다. 그러면 잠시 잊고 지낸 소중한 것이 생각나면서 정신이 퍼뜩 든다. 슬기 멤버들과 가장 많은 대화를 한다. 내가 느끼는 감정을 멤버들도 비슷하게 느끼기 때문이다. 서로 위로하면 이겨낼 수 있는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전에는 서로 예민하거나 기분이 처질 때는 그냥 말없이 지켜보고 기다려주는 편이었다. 그런데 요즘은 툭툭 건드리면서 장난을 치고 웃으며 푼다. 이것도 마음의 여유가 생긴 증거일까?

그룹 내 위트 담당은 누군가? 슬기 나는 예리가 가장 재미있다. 예리는 괜히 장난치고 싶어지는 타입이다.

평소 삶의 균형은 어떻게 맞추며 사나? 슬기 스케줄을 마치면 나름의 휴식 시간을 갖는다. 친구를 만나 맛있는 걸 먹는다든지. 스케줄 중간중간 대기 시간이나 이동하는 시간에 나만의 여유를 즐기기도 한다. 주로 영화를 보거나 노래를 듣는다.

이번 화보에 슬기와 웬디를 섭외한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 웬디 94년생의 케미? 그리고 지금까지 우리 둘만의 이야기를 담은 적이 없으니 이번 기회에 새로운 느낌으로 담을 수 있지 않을까. 슬기 처음 만났을 땐 우리 사이에 공통점이 하나도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내보니 자라온 환경은 다르지만, 부모님의 성향이 비슷하더라. 그래서 우리 가치관도 비슷하다. 어떨 때는 맞춘 듯 똑같아서 놀라기도 한다. 그런 비슷한 부분이 영향을 준 것 같다.

94년생이면 스물다섯이다. 둘이 가진 남다른 감성이나 가치관이 궁금하다. 슬기 가장 재미있는 나이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부모님 세대를 보며 간접경험을 한 것이긴 하지만 아날로그와 디지털 감성 둘 다 있어서 양쪽 다 공감한다. 개인적으로 스물다섯이라는 나이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인 것 같다. 뭔가 책임져야 하는 나이기도 하고. 웬디 가장 좋은 나이지만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서 30대가 통째로 변할 수 있는 시기라고 생각한다. 뭐든 잘하고 싶지만 너무 잘하려고 기를 쓰다 보면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다. 그래서 요즘은 하루하루를 충실히, 재미있게 보내자고 다짐한다. 그런 것들이 모이면 그럴듯한 내가 만들어지지 않을까.

요즘 개인적인 화두가 있다면? 웬디 갈수록 노래가 더 좋아지고, 인정받고 싶다. 그런 면에서 아직도 멀었다고 생각한다. 노래를 할 때마다 더 그렇게 느낀다. 노래를 부를 때 무척 행복하지만 잘하려면 더 노력해야 한다는 생각.

둘에게 뉴욕의 공기는 어떻게 다가왔나? 웬디 어쩐지 더 자유로워지는 느낌이 든다. 패션위크 기간에 와서 더 강렬한 인상을 받은 것 같다. 근사한 옷을 멋있게 입은 사람이 어찌나 많은지. 이런 공간에 우리가 합류했다는 느낌에 들뜨지 않을 수 없었다. 슬기 뉴욕의 매력을 제대로 알게 된 것 같다. 이렇게 재미있는 도시인 줄 지금껏 몰랐다. 길을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스타일만 들여다봐도 흥미로웠다. 워낙 개성이 뚜렷해서 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다.

서로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슬기 웬디와 예능 프로그램에 함께 출연한 적은 있지만 화보 촬영은 처음이라 어떻게 나올지 기대된다. 웬디와 여행을 온 기분이었다. 예쁜 사진은 덤이고. 기억에 오래오래 남을 것 같다. 바쁜 시기를 보낸 후 여행다운 여행을 즐긴 기분이다. 편안하고 자유로웠다. 모든 것이 다 마음에 쏙 들고 좋았다. 그만큼 결과물도 기대된다. 슬기와 함께 있어서 더 편하고 즐거웠다. 잊지 못할 추억이 될 것 같다.

레드벨벳 슬기 웬디
슬기 니트 크롭트 톱 손정완(Son Jung Wan), 팬츠 코스(COS), 부츠 레이첼 콕스(Rachel Cox), 튤립 모양 크로스 백 폴스부띠끄(Pauls Boutique). 웬디 블라우스 와이씨에이치(YCH), 슬랙스 제인송(Jain Song), 부츠 레이첼 콕스(Rachel Cox), 에나멜 크로스 백 폴스부띠끄(Pauls Boutiq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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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연의 각인

전도연 BIFF

전도연 BIFF

전도연 BIFF
네이비 시폰 드레스 끌로에(Chloe).
전도연 BIFF
싱글 브레스티드 울 재킷, 울 팬츠, 레이스업 펌프스 힐 모두 알렉산더 맥퀸(Alexander McQu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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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적인 블랙 드레스, 베이지 레더 셔츠 모두 펜디(Fendi).

한국 영화 100년을 기념해 <마리끌레르 부산국제영화제 특별판> 인터뷰를 함께한 배우들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한국 영화와 한국 영화 속 한 장면에 대해 물었다. 많은 작품이 떠오른다던 전도연은 불쑥 <접속>이라고 답했다. 좋아하는 장면은 한석규와 본인이 스치며 엇갈리는 장면. 22년 차 배우 전도연은 자신의 첫 영화를 골랐다. <접속>의 이 장면은 한국 영화 100년 기념 사업에서 꼽은 ‘최고의 명장면’이기도 하다. 20년이 넘는 시간이 지나도 우리는 영화 속 전도연을 기억한다. 그 후로 오늘에 이르기까지 전도연은 수많은 인물이 되어 우리 곁에 왔다. 올해 영화 <생일>에서 연기한 ‘순남’은 메마르고 건조한 모습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던 어느 날 참고 참았던 아들에 대한 그리움을 울분으로 토해낸다. 보는 사람의 마음이 파일 만큼 아픈 엄청난 고통. <무뢰한> 속 ‘혜경’은 살고 싶지 않은 얼굴로 보통 사람처럼 살고 싶어 한다. 장을 보고 밥을 하고, 소박한 한 끼를 누군가와 나누는 보통의 삶. 하지만 이마저 절망으로 끝난다. <남과 여>의 상‘ 민’은 많은 것을 버리고 선택한 남자가 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차가운 눈밭을 바라보며 오열한다. <인어공주>의 ‘연순’은 풋풋하고 사랑스럽다. 우리 모두의 추억 속 한편에 그런 모습이 있기를 바랄 만큼. 전도연이 연기하는 모든 감정은 단순히 희로애락이라는 네 가지로 규정할 수 없다. 자신으로부터 여전히 새로움을 찾아내고, 에너지를 쏟아내는 것으로 새로운 에너지를 얻으며 수많은 감정을 우리에게 각인해왔다. 그리고 앞으로도 오랫동안 우리가 아직 미처 보지 못한 감정과 이야기를 전해줄 것이다. 전도연이라는 이름에는 그렇게 수없이 많은 의미가 더해질 것이다.

올해 상반기에 개봉한 <생일>은 인터뷰와 홍보를 위한 자리가 다른 작품보다 조심스러웠을 것 같다. 모든 것이 지난 지금은 어떤 생각이 드나? 지금에와서 드는 생각은 지나치게 조심스러운 건 아니었나 싶고 그래서 약간 아쉽기도 하다. 영화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오해를 불러일으키거나 상처를 들추는 일이 아니라 앞으로 살아가야 할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인데 너무 어렵게 접근한 건 아니었나 싶다. 하지만 지나고 나서 하는 말이지, 그 시간을 다시 보내더라도 조심스러울 것 같다.

출연을 제안받았을 때 처음엔 고사했다. 그런데 왜 마음을 바꿨나? 쉽지 않은 이야기고 무척 고통스러웠다. <밀양>을 하지 않았더라면 시나리오를 보자마자 한다고 했을지도 모른다. 이미 <밀양>에서 아이를 잃은 엄마, 그토록 고통스러운 감정을 품고 사는 인물을 연기했고 그만해도 될 것 같았다. 이후에 그런 작품을 의도적으로 피하기도 했고. 그래서 <생일>의 시나리오가 무척 좋았음에도 거절했다. 그런데 마음속으로는 놓지 못했다. 이종언 감독이 <밀양>의 연출부일 때 인연이 있던 터라 내가 영화에 참여하지 않더라도 힘이 되어주고 싶어서 출연을 거절한 후에도 계속 작품에 관한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이야기를 나눌수록 점점 더 작품에 빠진 것이 아닌가 싶다. 자연스럽게. 그렇게 시간을 돌아 돌아 내게 다시 왔을 때 이건 피해갈 수 없는, 운명 같은 작품이라고 여겼다.

<생일>이 개봉했고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이 곧 개봉한다. <생일> 촬영이 끝나자마자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 촬영에 들어갔는데, 편집이 많이 필요한 작품이어서 개봉이 좀 늦춰졌다. 일을 너무 오래 쉬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체감상. 일하지 않을 때는 내가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되기도 한다. 일하지 않을 때도 물론 아이를 돌보거나 신경 써야 할 일이 많은데, 이럴 때는 나 자신을 위한 시간이라기보다는 누군가를 위한 시간을 보내는 것 같다. 그렇다고 그 시간이 억울한 건 아니다. 그런 시간도 마땅히 내 일부지만 작품을 하지 않는 시간이 조금이라도 길어지면 마음이 마냥 홀가분하지는 않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은 전작들과 결이 많이 다르다. 다르다는 점이 이 작품을 선택한 이유이기도 한가? 결이 많이 다르다. 이야기를 따라
가는 것이 아니라 상황을 따라가는 작품이다. 많은 인물이 돈 가방 하나를 두고 쫓고 쫓기는, 이야기만으로는 아주 심플하다. 상황과 인물을 따라가는 영화여서 전작들과 이야기에 접근하는 방식이 다르다. 시나리오도 아주 매력적이고. 또 하나 큰 차이는 많은 인물이 얽히고설켜 있는 점이다. 에피소드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고 많은 인물이 순차적으로 등장한다. 시나리오상에서는 내가 극의 중반 이후에 등장한다.

어떻게 보면 여러모로 익숙하지 않은 상황이었을 것 같다. 여전히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 편인가? 작품에 대해서는 그렇다. 사실 자연인 전도연은 익숙한 것을 좋아한다. 익숙한 것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지 않고 아주 작은 변화에도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 그런데 작품을 선택하거나 영화에서 새로운 시도를 하거나 화보를 찍는 등 일할 때는 새로운 모습을 발굴 하고 싶은 욕구가 있다.

새로운 것에 대한 욕구는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기 위한 것일까? 글쎄. 그건 모르겠다. 내가 무언가를 보여주고 싶어서라기보다는 작품 속에 전도연이란 배우가 들어갔을 때 감독과 작품의 영향을 받아 내가 이전과 다른 모습이 되길 원한다. ‘내가 바꿀 수 있어’ 하기보다는 촬영장의 모든 요소와 섞였을 때, 어떤 감독을 만났을 때, 감독이 나에게서 어떤 새로운 모습을 발견할지 기대한다. 같은 전도연이라도 사람마다 보는 시선이 다를 수 있지 않나. 이번 작품에서도 김용훈 감독이 바라본 전도연은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다.

전도연 BIFF
듀얼 패브릭 블랙 드레스 메종 마르지엘라(Maison Margiela), 블랙 앵클 힐 로에베(Loewe).

올해 개봉하는 두 작품 모두 신인 감독의 데뷔작이다. 감독의 이전 스타일을 알 수 없으니 접근 방식이 다를 것 같다. 데뷔 때부터 신인 감독들과 작업을 많이 해왔다. 연기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는 나도 잘 몰랐기 때문에 함께 만들어갔다면 지금은 그때보다는 좀 더 많은 것이 보인다. 신인 감독과 작업할 때는 어떤 단편을 찍었는지, 작품에 대한 정서적인 부분이 얼마큼 비슷한지 알아두려고 한다. 현장에서 처음부터 맞춰가려면 힘드니까. 어쩌면 신인 감독에게 나라는 배우는 조금 어려운 선배일 수도 있다. 나는 서로 이해하기 위한 소통이라고 생각하지만, 감독은 전도연의 입장 혹은 생각이라고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에 의견을 낼 때 조금 조심스러운 면도 있다. 그래서 현장에서 말하기보다는 작품을 시작하기 전에 아주 많은 부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촬영에 들어가면 장면에 대한 디테일한 부분을 상의한다. 내가 영화에 데뷔한 작품이 1997년작인 <접속>인데, 그때 내게 감독은 하늘 같은 존재였다. 감독의 말은 모든 것이 정답이었다. 그렇게 일을 시작해서 그런지 여전히 나이나 경력과 상관없이 어떤 감독과 작업하더라도 그런 자세로 대하게 된다. 내가 존중해야 할 존재. 나는 좋은 자세를 가진 배우다.(웃음)

영화 <접속>이 개봉한 지 20년이 넘었다. 그리고 전도연이라는 배우가 쌓아온 그 시간은 고스란히 관객의 기대가 담긴 무게감이 되었을 법하다. 때론 좀 더 가벼워지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나? 그건 지금까지 해온 일들에 대한 평가다. 나에 대한 기대가 부담이 되느냐고 묻는다면 그렇진 않다. 나는 오히려 앞으로 해야 할 것들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한다. 앞으로 어떤 모습을 보여주느냐가 중요한 거지. 나는 과거에도 전도연이었고 지금도 전도연이며 앞으로도 전도연이고 싶다. 그래서 앞으로 내가 해야 할 것들에 대한 생각이 많다.

무엇을 해야겠다고 생각하는가? 누군가는 내가 그동안 다양한 작품에서 다양한 모습을 보여줬다고 생각하지만 정작 나는 그렇지 않다. 좀 더 다양한 작품을 선택할 수 있었을 것 같다. 지금은 생각을 좀 비우고 보다 가벼운 작품,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하기 위해 고민하고 노력한다. 나 스스로 감독과 작품에 더 의존적이길 바란다. 그렇게 나를 맡기고 작품 속에서 달라지는 나를 보여주고 싶다.

배우의 길에서 전환점이 된 작품은 뭔가? 배우가 되게 해준 건 <접속>이고, 스스로 ‘아, 나는 배우구나’라고 생각하게 해준 건 <해피엔드>이며 배우로서 영화 인생의 두 번째 스테이지에 오르게 해준 건 <밀양>이다. 지금은 그 두 번째 스테이지에서 세 번째 스테이지로 가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다. 세 번째 스테이지는 앞으로 나아가는 방향일 수도 있고 한발 뒤로 물러서는 것일지도 모른다. 무엇이든지 내게는 의미 있다.

한발 물러선다는 건 무얼 의미하나? 나는 물러선다고 생각하고 싶지 않지만 왜 그런 거 있지 않나. ‘전도연이 왜?’ 하는 의문을 가질 수 있는 선택. 항상  안정적이기보다는 뭔가 소음이 따라다니는 배우이고 싶다. ‘잘했겠지’ 하기보다 ‘저기에서 좀 이상하지 않아?’ 하는 소음도 있으면 좋겠다. 그런 이야깃거리가 끊임없이 나올 수 있는 배우이고 싶다.

지난 20여 년의 시간 동안 전도연은 늘 배우였다. 그 시간 속 전도연의 배우라는 길에 대한 생각은 늘 한결같았나? 글쎄, 배우로서 내가 어떻게 변하고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확실한 건 시간이 지날수록 이 일에 더 애정이 생긴다는 것이다. 내 일과 배우 전도연을 사랑하고 나 자신을 응원하며 좋은 작품을 끊임없이 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그건 관객도 마찬가지다. 계속 이렇게 연기했으면 좋겠다. 도대체 연기란 어떤 재미가 있기에 이토록 에너지가 계속 생겨나는 걸까? 내가 하는 연기가 재미있어서 그렇다기보다는 현장을 너무 사랑한다. 그렇게 많은 사람이 모여서 한 작품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사랑한다. 항상 신기하다. 이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한마음으로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 열정을 가지고 헌신할 수 있는지. 경외감이 들 만큼.

오랜 시간 연기를 해왔는데도 여전히 두려움을 느낄 때가 있나? 항상.

무엇에 대한 두려움인가? 그 인물을 모르고 놓칠까 봐 두렵고, 그래서 내가 잘 가고 있는지 끊임없이 의심한다. 정답은 없지만 그 인물을 잘 담아내고 있는지 의심하고 고민하며 계속 생각한다.

그 의심과 고민이 확신으로 결론을 맺나? 확신은 없다. 배우란 결국 다른 인물이 되는 일인데, 한 인간에 대해 어떻게 확신할 수 있겠나. 나 자신에 대한확신도 없는 걸. 단지 내 생각을 믿고 싶을 뿐이지.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달라지지 않는 것이 있다면? 작품을 고를 때 시나리오를 보고 선택한다는 것. 보는 시각은 달라졌겠지만 좋은 작품에 대한 집착과 애착이 있다. 좋은 이야기가 담긴 시나리오. 내가 지금까지 선택한 작품에 대해 사람들은 대중적이지 않다고 한다. 하지만 그런 영화도 누군가 만들고 해야 하는 이야기라면, 그리고 좋은 이야기라면 나는 참여하고 싶다. 해야하고. 좋은 배우가 어떤 배우인지는 여전히 잘 모르겠다. 그리고 좋은 배우가 되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좋다’라는 건 정의하기 모호하다. 하지만 배우로서 선택해온 길에 대한 자부심은 있다. 내가 해온 작품들에 대해서 사람들이 지금까지도 이야기한다. 시간이 한참 지난 후에도 <‘ 인어공주>는 참 좋아하는 작품이에요’ 이런 얘기. 좋은 작품에 대한 내 기준에 대해서는 타협하고 싶지 않다. 나와 다른 시선으로 좋은 작품이라고 누군가 권한다면 동의하고 싶지 않다. 작품을 고를 때 가장 중요한 건 내가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여야 한다.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 때 숙‘ 부인 정씨’가 얼음물로 뛰어드는 장면에서 대역을 쓰길 바랐는데 배우가 끝까지 고집을 부리며 직접 연기했다는 한 제작자의 인터뷰를 읽은 적이 있다. 연기하는 전도연은 늘 주저하는 법이 없다. 되도록 내가 다 해내고 싶다. 그래야 인물의 감정과 정서가 더 잘 전달되지 않겠나? 내가 표현한 인물의 감정 그대로 관객이 느꼈으면 한다. 이 일은 하면 할 수록 간절하고 절실해진다. 돌이켜보면 처음 연기를 시작했을 때는 철딱서니가 없었다. 우쭐한 기분도 좀 있었고. ‘일을 하다 힘들면 그냥 결혼하면 되지’하고 생각했다. 그때 내 꿈은 배우가 아니라 결혼해서 행복하게 사는 거였으니까. 그런데 지금은 배우가 꿈이다. 어떤 배우가 되고 싶은 것이 아니라 계속 연기하고 싶다. 그리고 내가 좌절하지 않고 잘 갔으면 좋겠다. 지치지 않고. 나는 아무래도 쉬지 않고 일하고 싶은 것 같다. 에너지를 소모해야 새로운 에너지가 계속 생긴다. 쉬어야 에너지가 생기는 것이 아니고.

요즘 눈길이 가는 작품이 있나? 가벼운 걸 해보려고 한다. 요즘 많은 감독님을 만나고 있다. 사람들은 전도연에 대해서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잘 모르기도 한다. 배우 전도연에 대해서는 작품을 봐서 알겠지만, 아직 보여주지 않은 전도연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감독들이 찾고 있는, 그동안 내가 보여주지 않았던 지점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다. 그래서 많은 여러 감독님을 만나보는 중이다.

전도연이 앞으로 10년이 더 지난 뒤에도 이렇게 <마리끌레르 부산국제영화제 특별판>의 표지 인물이 되었으면 좋겠다. 물론이지.(웃음)

나를 움직이는 순간들

이병헌 BIFF

이병헌 BIFF
셔츠 요지 야마모토 바이 분더샵(Yohji Yamamoto by BoonTheShop, 팬츠 생 로랑(Saint Laurent).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이 끝난 후 연이어 <남산의 부장들>과 <백두산> 촬영에 들어갔다. 이르면 올해 안에 두 작품을 볼 수 있겠다. <백두산>이 생각보다 빨리 개봉할 것 같다. CG가 엄청난 영화인데, 후반 작업할 게 꽤 많은데도 작업 속도가 굉장히 빠르다. CG가 많이 들어간 작품은 <지.아이.조>를 제외하면 처음이다. 한국 영화 중에서 처음인 셈이다. 눈으로 모든 상황을 보면서 촬영할 수 없기 때문에 내가 연기하는 장면이 어떤 식으로 채워지고 꾸며질지 확실히 인지한 상태에서 하는 게 중요하다. 상상력이 더 필요하다. 세트 촬영이 대부분이어서 자연적인 현상에 구애받지 않다 보니 수월한 점도 있다. 보통은 의외의 곳에서 예상치 못한 NG가 나오는데, 대부분 상황이 통제가 가능하다 보니 배우만 잘하면 오케이 컷이 나온다.

백두산 화산 폭발을 소재로 한 영화이니 일종의 영웅을 연기하게 되는 건가? 단편적인 영웅은 아니다. 한반도에 대재앙이 닥치고 극한의 위험을 무릅쓰고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는 점만 보면 영웅이라 할 수도 있다. <백두산>의 ‘리준평’이란 인물은 북한 사람이고 중국을 오가며 스파이 활동을 한다. 그런데 돈을 위해 남한 측에도 정보를 제공한다. 이념이 확실하거나 신념에 따라 행동하지 않고 돈을 위해 움직인다. 자기 잇속을 늘 첫 번째로 생각하는  간첩이다. 영화 촬영이 시작되고 공교롭게도 실제로 백두산이 폭발 위험이 있다는 뉴스가 나왔다.

반면 <남산의 부장들>은 박정희 전 대통령을 암살한 ‘김재규’에게 모티프를 얻은 인물을 연기한다. 실존 인물이나 실존 인물에게 영향을 받은 인물을 연기할 때는 허구의 인물에 접근할 때와는 또 다를 것 같다. 아무래도 창조된 인물보다 지나간 역사 속 인물을 연기할 때 좀 더 예민하고 신중해진다. 이미 지나간 역사이기 때문에 실제 상황을 완벽히 확인할 수 없기도 하고. 그럼에도 사실에 근거해서 내가 맡은 인물에 최대한 가깝게 연기해야 한다. <남산의 부장들>은 정치적인 영화라고 생각하지만 감독이나 제작자, 그리고 나 역시 정치적 상황에만 초점을 두진 않았다. 그보다는 인간의 관계에 집중했다. 우리는 역사를 통해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그 사건만을 알고 있지만 영화는 그때 그 사람들의 감정은 어땠을까, 그들의 관계가 몇십 년 동안 어떻게 이어져왔을까, 그 관계는 어떻게 변화했으며 심리 상태는 어땠을까, 이런 질문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영화의 톤은 누아르에 가깝다.

이병헌 BIFF
코트 라르디니(Lardini), 화이트 터틀넥 오에이엠씨 바이 무이(OAMC by MUE), 화이트 팬츠 피티
01(PT01), 로퍼 카르미나 바이 유니페어(Carmina by Unipair).

이병헌 BIFF

이병헌 BIFF
셔츠 요지 야마모토 바이 분더샵(Yohji Yamamoto by BoonTheShop), 팬츠 생 로랑(Saint Laurent), 첼시 부츠 카르미나 바이 유니페어(Carmina by Unipair).
이병헌 BIFF
가죽 트러커 재킷 보테가 베네타(Bottega Veneta), 터틀넥 랑방(Lanvin), 팬츠 생 로랑(Saint Laurent).

얼마 전 검은 선글라스를 쓰고 삐딱하게 서 있는 스틸 컷이 공개됐다. 우리에게 익숙한 ‘김재규’의 이미지와 전혀 다른 느낌이어서 인상적이었다. 영화속 이름이 ‘김규평’이다.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이 실존 인물과 이름이 다르다. 정보부장 자리를 거쳐간 인물들이 나오는데, 역사책에는 나오지 않는 진짜 인간이 보이는 영화가 될 거다.

지금까지 숱하게 받은 질문일 것 같다. 작품을 선택할 때마다 어떤 작품에 마음이 가는가? 결정적인 것은 주관적으로 생각하는 재미다. 그런데 재미의 기준이 굉장히 여러 형태다. 아주 상업적인 것도 재미가 될 수 있고, 어떤 한 부분에 완전히 꽂혀 그게 재미로 다가올 때도 있다. 장르, 소재와 상관없이 내 마음에 와닿는 재미가 있어야 비로소 선택한다.

요즘 부쩍 작품을 하는 속도가 빠른 것 같다. 늘 그랬던 것 같기도 하고. 어릴 때는 한 2년을 쉰 적도 있다. 당시에는 그게 내 소신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정말 마음에 드는 작품이 오지 않으면 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그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영화 산업이 발전했고 시나리오 자체도 다양하고재미있는 내용이 많다. 그리고 이런 것도 있다. 내가 나를 좀 더 표현하고 더 디테일해진 감정을 잘 보여주고 표현할 수 있을 때, 내가 왜 작품을 하지 않고 쉬어야 하는지 모르겠다. 세월을 의미 없이 보내는 것 같고. 할 수 있으면 더 해야지 싶다. 그런 생각 때문에 최근 몇 년 동안 더 쉬지 않고 일했다.

지금의 속도가 괜찮나? 살짝 과한가 싶기도 하다.(웃음) 그래서 <백두산>이 끝나고는 좀 쉬고 있다.

많은 작품을 하면 이병헌이라는 배우가 관객에게 너무 익숙해져 버릴까 고민될 수 있을 것 같다. 그건 배우라면 늘 가질 수밖에 없는 고민이다. 작품마다 새로운 인물을 보여줘야 하는데, 관객 입장에서 이 인물에 감정 이입하기까지 몇 분 몇 초가 걸릴지 당연히 고민된다. 그 시간이 짧을수록 배우는 행복하다. 저 사람만 보면 웃기거나 혹은 무섭기만 한다면 배우에게는 마이너스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작품을 고를 때 새로움만 추구하지는 않는다. 다만 내가 느끼는 재미만을 따져 작품을 고르다 보니 장르도 캐릭터도 다양해졌다.

최근작만 따지면 <그것만이 내 세상>과 <싱글라이더>는 영화의 내용은 물론 외형적인 모습도 전작들과 많이 달랐다. 완전히 다른 색깔이었다. <싱글라이더> 시나리오를 봤을 땐 감동이 큰 재미였고 <그것만이 내 세상>은 조금 신파이긴 했지만 거기에서 보이는 웃음과 눈물이 재미였다.

이병헌은 늘 원 없이 연기하는 것 같다. 그럼에도 여전히 풀리지 않는 갈증이 있나? 언어에 대한 갈증이 있다. 정말 미국인처럼, 그들의 문화를 완벽히 이해한 상태로 마음 놓고 연기하고 싶다. 몇 년간 한두 달 터울로 계속 촬영 스케줄이 있어 외국 작품 중에 좋은 작품이 있어도 할 수가 없었다. 할리우드는 직접 가서 대면하고 이야기하는 게 중요해 그런 시간을 자주 가지려 한다.

관객은 어떤 영화를 떠올리면 배우나 연기, 이야기가 떠오르기도 하지만 영화를 봤을 때의 상황이 먼저 생각나기도 한다. 작품을 무엇으로 기억하곤 하나? 여러 상황인 것 같다. 어떤 영화는 시사회가 기억에 남는다. 또 어떤 영화는 촬영할 때가 생각나고, 관객들 사이에 숨어서 볼 때가 떠오르기도 한다. 일반 관객 사이에서 영화를 보다 보면 내가 생각지 못한 부분에서 웃음이 크게 터지기도 하고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그럴 때면 작품을 위해 보낸 시간이 보상을 받는 것 같다. 선물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촬영은 정말 힘들고 고생스러웠지만 바로 옆에서 관객이 웃고 울면 배우로서 행복하다. 저 사람들이 저 이야기 안에 빠져 있구나, 캐릭터에 이입되었구나, 이런 생각이 나를 행복하게 만든다.

문득 처음 연기를 시작했을 때가 떠오른 경우가 있나? 그럼. 그때는 내가 뭘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더라. 한국어가 이렇게 어려운 거였나 싶기도 했고. 현장에서 혼이 너무 많이 나서 트라우마가 생길 것만 같았다. 내가 대사를 이렇게 쳐야 하나, 지금은 어떤 감정일까, 이런 생각할 여유도 없었다. 대사를 한번 하고 나면 또 혼나지 않을까 걱정했다. 첫 작품 때 하도 강하게 트레이닝을 받아서 기억에서 지우고 싶은데 좀처럼 지워지지 않는다. (웃음)

이제는 더 이상 현장에서 혼이 날 일은 없겠다.(웃음) 하지만 스스로의 연기가 마뜩잖거나 답이 보이지 않을 때는 있을 것 같다. 있다. 남들은 잘 못 느끼고 나만 느끼는 걸지도 모르는 미세한 부분일 수도 있고. 해를 더할수록 연기에 대한 답을 잘 모를 때가 많아지는 것 같다. 기술은 연습하고 시간이 쌓이면 능수능란한 선수가 될 수도 있고, 기술 한번 체득하고 나면 10년이 지나도 몸이 기술을 기억하지만 연기는 기술로 하는 게 아니다. 연기는 결국 타인의 인생을 잠깐 사는 거다. 그렇게 타인으로 살다 보면 어느 순간 머리가 하얘질 때가 있다. 갑자기 캐릭터가 안 보이는 거다.

그럴 때면 어떻게 답을 찾아가나? 다시 한번 객관적이 되려 한다. 시나리오를 처음 읽을 때 내가 어떤 인물인지 알겠다가도 두세 번 읽으면 인물을 객관적이지 않고 주관적으로 보게 된다. 그러다 보면 작가의 의도를 놓칠 수도 있다. 그럴 때는 되도록 멀찍이 떨어져서 이야기책을 읽는 느낌으로 읽어간다. 그래야 다시 인물의 이야기가 보인다. 아, 그래. 이렇게 생겼지 하며.

얼마 전 이름을 건 상영관이 오픈했다. 지금껏 배우로 살아오며 많은 상을받았고, 작품이 크게 흥행도 해봤고, 할리우드에 핸드 프린팅도 남겼다. 그런일을 이루다 보면 다음 행보를 위한 부담으로 이어질 수도 있겠다. 이런 표현이 맞는지 모르겠지만 관이 씌어진 느낌이 든다. 그런데 배우라는 직업은 부담을 느끼고 그로 인해 굳어버리면 안 된다. 늘 자유로워야 한다. 가령 내 작품이 늘 좋은 결과만 있었는데, 다음에도 좋은 결과를 보여줄 수 있는 작품을 선택해야 할 텐데, 전작보다 사랑받아야 하는데, 이런 생각을 하면 자유로울 수가없다. 내 이름을 건 상영관이 생기거나 상을 받는 일은 그냥 그 지점에서 끝내고 털어야 한다. 그 순간들에 갇혀 있으면 내가 너무 뻣뻣해지니까. 난 자유롭고 또 자유롭기 위해 노력한다.

그런 면에서 선택으로부터 자유로운 신인 배우들에게 에너지를 얻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재기 발랄한 독립영화도 그런 힘을 줄 수 있고. 여전히 다양한영화를 보는 게 좋다. 저예산 영화인데 정말 괜찮다는 작품이 있으면 찾아 본다. 그러다 보니 독립영화도 많이 보게 되는데, 참 신선하다.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방향으로 뭔가를 표현하면 다른 사람의 연기인데도 막 신난다. 아, 즐거움과 슬픔을 저렇게 표현할 수도 있구나, 이러면서. 신선하고 새롭다. 그러다 내가 너무 구세대의 생각으로 굳어져가는 건 아닌지 싶을 때도 있다. 그렇게 새로운 얼굴들의 연기와 작품을 보면 풍요로워진다.

연기는 기쁨의 순간이 많은가, 고통의 순간이 많은가? 기쁨의 순간. 그래서 계속할 수 있는 게 아닐까. 너무 거창하게 내가 이렇게 연기해서 기쁘다기 보다는 굉장히 작은 순간들이 기쁨으로 다가온다. 촬영할 때 어느 신의 내 감정이 스스로 너무 좋으면 그날은 기분이 참 좋다. 집에 돌아와 축배를 들고 싶을 만큼. 몇 달 동안의 힘겨움이 한꺼번에 사라지는 것 같다. 그런데 반대로 스스로 만족스럽지 않아 계속 테이크를 가고 나 자신과 타협하고 집으로 돌아오면 정말 괴롭다. 기쁨의 순간과 고통의 순간이 모여 나를 움직이게 한다. 그렇게 순간이 모여 작품을 끝내고 나면 그 인물과 인물의 삶을 깊숙이 통과한 것 같다. 사람이 이럴 수 있구나, 배워나가기도 하고.

이병헌 BIFF
가죽 트러커 재킷 보테가 베네타(Bottega Veneta), 터틀넥 랑방(Lanvin), 팬츠 생 로랑(Saint Laur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