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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DER GROUND

UNDER GROUND

우즈베키스탄의 수도 타슈켄트 시내 중심가에는 소비에트연방 최초의 독립 극단 ‘일홈’이 있다. 일홈은 1976년 창단 이후 독재 정부의 탄압과 검열에도 도발적인 공연을 무대에 올리며 투쟁해왔다. 지난 40여 년간 공산주의의 몰락, 소비에트연방 붕괴, 독재자의 죽음과 정권 교체의 지난한 과정을 견디며 이제 어둠의 시절이 끝났다고 믿는 이들 앞에 자본주의라는 새로운 숙제가 놓였다.

좁은 지하 무대는 어둠에 완전히 잠겨 있고 객석은 관객으로 가득 차 있다. 극장이 작아 맨 앞줄의 관객은 배우들과 나무 바닥 무대를 나눠 써야 했다. 무대조명이 쓰레기봉투 사이에 누워 있는 누더기 차림의 젊은 두 배우를 비췄다. 이 배우들은 빈곤한 마을의 희망 없는 약물중독자를 연기하고 있다. 옆문이 열리자 경찰관 2명이 위협적으로 그들을 향해 걸어간다.

오늘 밤 공연의 제목은 <벽 너머 비(Rain Behind the Wall)>다. 소비 에트연방 해체 이후 경찰의 폭력과 부패, 도시 빈민층의 갈등을 주제로 한 연극으로 불특정 국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무대 옆에서는 구소련 경찰 제복을 입은 록 밴드가 장면마다 믹스한 록 음악을 연주하고, 때로는 진지한 곡으로 분위기를 바꾸어놓는다.

이야기가 경찰의 폭행과 이웃 주민들의 보복성 공격으로 점점 고조될수록 관객은 극에 몰입했다. 숨 막히는 두 시간이 흐르고 관객이 박수갈채를 보내자 12명의 배우들이 관객을 향해 인사했다. “공연 후 관객의 박수는 극과 현실 세계의 경계를 선명하게 드러내죠. 하지만 배우들은 그 명확한 구분을 좋아하지 않아요.” 예술감독 보리스 가푸로프(Boris Gafurov)의 설명이다. “저희가 무대 위에 창조해낸 분위기에 관객이 흠뻑 취해 그 기분을 그대로 집으로 가져가길 원하죠.”

우즈베키스탄의 수도 타슈켄트에 위치한 일홈(Ilkhom, 우즈베크어로 ‘영감’이라는 의미) 극단은 재능과 비전을 지닌 알자스 지방 출신 유대인 마르크 바일(Mark Weil) 감독이 1976년에 창립했다. 우즈베키스탄이 소비에트 연방에 속해 있던 당시, 일홈은 소비에트연방 최초의 독립 극단이었다. 도발적이고 논란의 여지가 많은 작품을 공연했음에도 구소련 공산당 정치국원 이슬람 카리모프(Islam Karimov)의 혹독한 독재를 견디고 살아남았다. 그는 공산주의의 몰락과 소비에트연방 붕괴 이후 우즈베키스탄에서 정권을 잡아 2016년 사망할 때까지 독재를 이어왔다. 일홈의 생존은 극단 창립자와 지지자들에게도 놀라운 일이었다.

극단 일홈은 감자 창고였던 건물을 극장으로 사용하고 있다. 낙후된 시설이지만 이곳만의 독특한 분위기가 극장에 들어오는 사람들을 감싼다. “저는 이곳을 우즈베키스탄의 바티칸이라고 불러요. 공간의 기운과 운영 철학 때문이죠.” 48세인 일홈의 부단장 이리나 바라트(Irina Bharat)의 말이다. “우리가 옳다고 생각하는 일은 그 결과와 상관없이 용감하게 해내야 한다는 것을 창립자의 정신을 통해 배웠어요. 그것이 바로 우리가 수년간 살아남은 비결이죠.”

가장 혹독한 독재 정권 치하에서 이 자유의 요새가 이렇게 확장되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바일이 연극을 공부한 학생들과 함께 극장을 열었을 때, 소비에트연방 당국은 이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타슈켄트는 모스크바 에서 멀었고 바일은 아무도 예상치 못하게 극단을 창립할 정도로 영리하고 용감했다. 독재 정권 치하에서 순응하던 사람들은 자신을 자유롭게 표출할 공간에 목말라 있었다. 1982년 첫 모스크바 투어를 성공적으로 마친 후, 극단은 중앙정부로부터 원치 않은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계속되는 정부와의 마찰과 반복되는 해체 압박에도, 바일은 당시 모스크바와 타슈켄트의 복잡하고 긴박했던 관계를 이용했다. 필요에 따라서는 어느 한 편에 기대 일홈이 살아남을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일홈은 곧 소비에트연방 전체에서 문화적 기준점이 되었다. 그중에서도 극단은 가장 중요한 예술적 소통 수단 중 하나였다. “우리는 무모했어요. 검열 받지 않은 작품을 연출하기도 했죠. 반소비에트연방 활동으로 잡혀갈 수도 있는 일이었죠.” 극단의 창립 과정을 기록한 책,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 유명한 일홈(The Unknown Infamous Ilkhom)>에서 바일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정치 극단이 아니에요. 그저 편집되지 않은 삶과 실제 사람들의 이야기를 무대 위에서 재생산하고 싶었을 뿐입니다.”

1991년 소비에트연방이 해체되고, 더 나은 미래를 찾아 떠난 배우들 때문에 일홈은 잠시 어려움을 겪었지만 그 정도는 이겨낼 만큼 강해져 있었다. 새 대통령 이슬람 카리모프는 무자비하고 편집증적인 독재 정권을 세우고 정적들을 투옥하기도 했다. 또 국민들의 여행을 금지했고 수천 명의 학생과 근로자를 가을마다 목화 수확에 강제로 투입했다. 우즈베키스탄은 독립 방송국 하나 없는 단일 정당 국가가 되었지만, 카리모프 대통령은 일홈이라는 이 작은 자유 지대에는 손을 대려고 하지 않았다. 오히려 정치적 목적을 위해 극단을 은밀히 이용했다. 인권침해가 만연했어도 우즈베키스탄은 공식적으로는 민주국가였는데, 정부는 이를 일홈을 통해 선전하고자 했다. 당시 카리모프의 딸도 공연을 보러 오곤 했다.

일홈은 창립 당시의 운영 철학을 고수하고 있다. 정부를 공개적으로 비판하진 않지만 예술적 자유를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폭력, 종교적 광신, 야욕, 내일에 대한 두려움 등 극단이 다룬 주제는 포괄적이다. 하지만 항상 이 지역에서 일어난 사건과 관련이 있었다. 이에 대해 바라트는 이렇게 설명했다. “이런 곳에서는 다양한 이야기와 연관성을 만들기가 쉬워요. 사람들은 그런 연관성을 보고 싶어 하죠. 하지만 우리는 이런 연관성을 일부러 만들어내려고 하지는 않아요. 적어도 의도적이지는 않죠.”

일홈의 연극은 극단적으로 도발적이거나 냉소적일 수 있다. 2016년 카리모프 대통령 사망 일주일 후 공연한 <공항(Airport)>에서는 죽은 대통령의 발언들을 거꾸로 읽어 아무런 의미가 없는 독백을 만들기도 했다. “주립 극장에서는 사전 검열과 허가 없이는 공연할 수 없어요. 하지만 여기서는 그렇지 않아요”라고 바라트는 말했다. 2011년 비공식적으로 록 음악이 금지되었을 때도 이 지역에서 유일하게 록 밴드 연주가 흘러나온 곳이 일홈이었다. 일홈은 현재 우즈베키스탄의 주요 독립 문화 단지에 자리 잡고 연극 학교, 음악 페스티벌, 예술 전시, 연극과 음악과 시를 결합한 혁신적인 연구소등을 운영하고 있다. 일홈의 공연을 보기 위해 중앙아시아, 러시아, 유럽, 미국 등지에서 관객이 찾아오며 극단은 수많은 해외 페스티벌과 공연에 참여하고 있다.

극단은 여전히 바일의 지침과 독특한 접근 방식을 따르고 있다. 연극은 경직된 각본보다는 배우들의 창의력과 상상력으로 탄생한 작은 장면을 중심으로 만들어진다. 그리고 이 장면들은 정제되고 합쳐져 하나의 극으로 완성된다. “이런 방식은 공연 준비 시간이 오래 걸리지만 결과를 생각하면 그럴 가치가 있어요. 공연에 참여한 모든 사람은 자신의 일부분을 극에 녹여내게 되고 그로 인한 자부심은 값을 매길 수 없죠.” 2006년 일홈의 일원이 되기 위해 시애틀에서 타슈켄트로 온 미국인 배우 듀린 카자크(Durin Cazac)의 설명이다. “공연이 정해져 있지 않지만 한 작품을 마친 후 다음 작품 구상에 들어가요. 그게 바로 유기적 극장의 모습이죠.” 일홈 사람들이 한목소리로 말하는 특‘ 별한 힘’은 쉽게 느낄 수 있다. 극장에 들어서는 순간 마치 다른 시공간에 들어선 듯한 기분이 든다. 무대와 관객간의 물리적 경계가 없어 관객이 극의 일부가 된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