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ERS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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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비테이션엔 거울이 들어 있었다.
인스타그램의 노예인 에디터는 쇼장으로
향하며 본능적으로 ‘거셀’을 찍었다.
쇼장 입구엔 거울로 만든 홀이, 쇼장엔
게스트를 라이브로 스트리밍하는
LED 스크린이 설치됐다. 지난 시즌
정글 드레스를 입은 제니퍼 로페즈를
등장시키며 인스타그램을 폭파했던
베르사체는 이번 시즌 쇼장을 찾은
게스트들의 ‘거셀’로 인스타그램을
도배할 계획이었다(모두가 그 계획에
기꺼이 동참했다). 베르사체는
처음으로 남성/여성 컬렉션을 함께
선보였다. 타 디자이너에 비해 늦은
감이 있지만 베르사체는 본래 시대의
흐름을 따르는 브랜드가 아니다. 혼성
컬렉션을 선보인다고 해서 유니섹스
룩을 기대해서도 안 된다. 대신 남성과
여성 버전의 핫핑크 수트, 지브라 프린트
셋업, 섹시한 이브닝 룩은 그 누구보다
화끈하게 보여줬다. 웬만한 티셔츠보다
짧은 드레스를 입은 켄달 제너가 쇼의
마침표를 찍었다. 피날레 인사를
기다리고 있을 때 LED 스크린에 등장한
도나텔라 베르사체는 정중하게 인사하고
컴퓨터 화면이 꺼지듯 한순간에
사라졌다. 사이버 세상에만 실존하는
존재를 본 듯한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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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21

N°21

시퀸, 오스트리치 퍼, 무거운 체인, 잘
재단한 셔츠와 코트, 태피터 스커트.
누메로벤투노를 대표하는 수많은
키워드. 알레산드로 델라쿠아는
사랑하는 게 많은 디자이너다. 10
주년을 맞는 브랜드로서 기념하고 싶은
게 얼마나 많을까? 그가 사랑하는
코드만 모아 컬렉션을 완성해도
찬사를 받을 것이다. 하지만 지난날을
돌아보는 일은 사치였다. 지난 시즌
옷을 입는 방식으로 장난을 쳤던 그는
이번에 프로포션으로 재미를 더했다.
코발트블루 셔츠는 슈퍼 오버사이즈로
재해석됐고, 스쿱 넥은 명치까지
깊게 파였다. 지나치게 짧아 드레스나
톱으로 규정할 수 없는 룩이 등장했고
아무 장식 없는 담백한 피코트는 모델
발등에 닿을 듯 길었다. 앞코가 날렵한
슈즈엔 두꺼운 체인 스트랩이 더해졌고
오스트리치 퍼 코트엔 손목을 가죽으로
묶은 셔츠가 매치됐다. 알레산드로
델라쿠아는 단 한 벌의 아카이브
피스도 보여주지 않았다. 아쉽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은 같은 날 밤 열린
파티장에서 사라졌다. 누메로벤투노
최고의 룩을 입은 손님들이 한자리에
모여 있었다. 알레산드로 델라쿠아다운
회고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