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이 유튜브나 SNS를 통해 무분별하게 습득한 여성 비하 표현이 유행처럼 퍼지고 있고, 초등학생도 예외는 아닙니다. 쉽게 제지되지 않고 아이들 또한 그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이니만큼 성평등 교육이 절실합니다.

 

박경미 의원

‘초·중·고등학교 페미니즘 교육 의무화’를 요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한 달여 만에 20만명을 돌파했습니다. 여론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죠? 많은 국민이 지지를 표한 만큼 청와대 관계 부처에서 공식적으로 답을 하리라 봅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생소한 개념이었던 여성 혐오가 최근 몇 년 사이 사회 병리 현상으로 방대하게 자리를 잡는 것 같아 저 역시 우려가 큽니다. 학생들이 유튜브나 SNS를 통해 무분별하게 습득한 여성 비하 표현이 유행처럼 퍼지고 있고, 초등학생도 예외는 아닙니다. 쉽게 제지되지 않고 아이들 또한 그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이니만큼 성평등 교육이 절실합니다. 학생뿐 아니라 선생님들을 위한 교육도 필요하고요.

국민적 공감대는 형성되었지만 현실적인 실현 방안에 대한 논의는 아직 부족합니다. 어떤 방식으로 성평등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부지불식간에 성평등 인식이 스며드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가령 ‘이번 시간은 성평등을 배우는 시간이야’라고 시작한다면 그 순간 아이들 마음이 이탈해버리거든요. 윤리, 도덕 교과나 사회과에 자연스럽게 녹아들게 하거나 국어 교과에 성평등 인식이 담긴 문학작품을 싣는다거나 하는 식이어야 하지 않을까요. 반드시 교과가 아니더라도 창의적 체험활동이라는 자율적 수업을 통해 접근할 수도 있을 겁니다. 지난 2011년 이미 유엔여성차별철폐위원회가 학교 내 성평등 교육을 연간 10시간 시행하라는 권고를 했었고, 여성가족부는 교육 시간을 15시간까지 확대하는 방안을 수립해 교육부에 전달했지만 충실히 이행되고 있지는 못한 상황입니다. 유엔의 권고사항을 제도화하는 것도 생각해봐야 합니다.

국민청원이 공론화된 과정을 보면 ‘#우리에겐_페미니스트_선생님이_필요합니다’라는 해시태그 운동이 그 시작점이라 볼 수 있는데요. 서울의 한 초등학교에서 ‘페미니즘 교육’을 진행한 교사를 보수 단체가 고발한 사건이죠. 성평등 교육은 교사 자율성 문제와도 긴밀히 연결되는 것으로 보입니다. 국가가 정한 수준의 교육과정이 있고 거기에 따라 교과서가 만들어지죠. 교사에게는 그중에서 선별해 재구성할 수 있는 권리가 있고요. 그렇지 않다면 전국 학교의 수업이 모두 똑같을 테니까요. 교과 외에 범교과 주제라는 것이 있습니다. 가령 환경처럼 사회와 윤리, 과학이 복합적으로 연결된 주제를 말합니다. 통일도 그 한 예이고요. 분절화된 교과 말고도 학생들이 알아야 할 것들이 굉장히 많잖아요. 갖춰야 할 역량이 많기 때문에 시·도 교육청 그리고 학교, 교사 차원에서 융통성 있게 운영하는 것이 바람직한 듯합니다. 다만 초등학교 저학년 학생들은 워낙 스펀지처럼 모든 것을 흡수하기 때문에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하고요.

화이트 재킷과 슬랙스 팬츠는 모두 로로 피아나(Loro Piana), 스틸레토 힐 알로니(Alonny), 블랙 터틀넥 니트톱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지난해 ‘2015 개정교육과정’이 적용된 초등학교 1, 2학년 1학기 교과서 16권을 모아 성인지적 관점에서 분석했습니다. 그 결과 교과서가 아직도 성 역할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지적했죠. 가장 최근 개정된 교과서가 1, 2학년 과정이라 이를 분석했는데 처음에는 회의적이기도 했어요. 1, 2학년은 말 그대로 노는 과정이잖아요. 콘텐츠가 많지 않아 분석거리가 얼마나 있을까 싶기도 했고요. 한데 저학년 교과에는 삽화가 많아요. 때로는 글보다 이미지가 더 강력하잖아요. 특히 생각을 쌓아가는 중요한 시기에 본 삽화 하나가 아이들 인생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생각하니 가벼운 문제가 아니더라고요.

발표 내용을 보고 적잖이 놀랐습니다. 제가 학교를 다니던 때에 비해 상황이 많이 좋아졌을 거라 낙관했거든요. 구체적으로 문제 된 내용이 무엇이었죠? 문학작품이나 역사적 이야기에 남성이 주로 등장하는데 특히 위인은 모두 남성이었습니다. 여성은 콩쥐, 신데렐라, 인어공주, 주인공의 어머니나 누나, 딸로 주로 등장하고요. 직업 고정관념도 여전해요. 기관사, 해양구조원, 과학자, 기자는 남성으로 간호사, 은행원, 승무원, 기상캐스터, 돌봄노동자, 사서, 급식 배식원은 모두 여성으로 그렸어요. 역할로는 가족 부양자는 남성, 병간호는 여성이 하는 등의 스테레오타입의 성 역할을 그대로 반영했고요. 외모에 대한 성별 고정관념도 문제였습니다. 여성은 머리가 길거나 장신구를 하고 분홍색 등 밝은색 치마 차림이 많았다면 남성은 짧은 머리에 어두운색 옷을 입었고요.

교과서 내 ‘정상 가족’ 이데올로기에 대한 문제도 제기했죠?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이나 여성가족부가 성평등 구현에 대한 문제의식이 있어서 교과서 내 남녀 등장 빈도만큼은 점진적으로 개선돼왔습니다. 앞으로 더 나아질 것이라고 봐요. 다만 아직 정상 가족, 한 민족 이데올로기에 대한 개선 의지는 충실히 반영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다문화 가정, 한부모 가정, 조손부모 가정, 비혼 가정 등 다양한 형태의 가정이 우리 사회에 존재하고 있는데도 교과서에는 부모와 아이로 이뤄진 그룹만이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하니까요. 저만 해도 아이가 한 명인데 할 일을 다 안 한 것 같은 기분이 들 때가 있어요. 아이를 더 낳아야 할 것 같다는 느낌이죠. 현재 교육과정이 한국 부모와 아이로 이뤄진 핵가족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모두 비정상으로 생각하게끔 사고를 고착화시키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해봐야 합니다.

연장선으로 지난해 ‘한부모가족지원법’을 발의했고, 이 법안으로 제5회 대한민국 입법 대상을 수상했습니다.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요? 분명한 계기가 있었어요. 작년 tvN <코미디 빅리그>라는 오락 프로그램에서 단지 재미를 위해 한부모 가족을 조롱하고 그에 속한 아동을 놀리는 상황을 연출해 문제가 됐습니다. 예를 들어 한부모 가족의 자녀인 친구가 로봇 장난감을 자랑하자 ‘쟤네 아버지가 양육비 보냈나 보다’, ‘선물을 양쪽에서 받잖아. 재테크야, 재테크’ 등의 대사였죠. 이에 ‘차별 없는 가정을 위한 시민연합’에서 해당 프로그램 제작진과 출연진을 고소했고 결국 해당 코너는 폐지됐습니다. 2015년 기준으로 이혼과 별거, 사별 등 다양한 원인으로 만들어진 한부모 가족이 전체 가구의 9.5%에 이르고,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어요. 이에 다양한 가족 형태에 대한 사회적 이해를 높이고 차별을 예방하기 위한 교육과 홍보를 강행 규정(‘노력해야 한다’에서 ‘수립 시행해야 한다’)으로 바꿔 이를 국가의 책무로 명확히 하는 것 등이 법안 내용이었습니다. 나아가 한부모 가족 차별이 분명한 문제임을 인식시키고자 했고요.

성범죄와 관련해서는 13세 미만의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아동·청소년 대상 성폭력 범죄를 범한 경우 집행유예를 금지하는 법안도 발의했죠. 여성가족부가 발표한 ‘2015년도 아동·청소년 대상 성범죄 신상 정보 등록 대상자 주요 동향’에 따르면, 2015년 한 해 동안 유죄 판결이 확정된 아동·청소년 대상 성범죄자 총 3천3백66명 중 45.5%가 집행유예로 풀려났습니다. 유형별로 보면 강간범은 약 3분의 1에 해당하는 32.3%가 집행유예를 받았고, 강제추행범은 절반이 넘는 50.6%가 집행유예를 받았습니다. 여기에 13세 미만 아동을 강간한 경우에도 13.4%가, 강제추행은 55.3%가 집행유예를 선고받았고요. 실례로 두 차례에 걸쳐 열 살과 열한 살 여자 어린이를 성추행한 혐의로 기소된 60대 남성이 있습니다. 그가 강간 치상 혐의로 징역형까지 선고받은 전력이 있는데도, 법원은 가해자가 범행을 대체로 인정하며 반성하고 있고 피해자 측과 합의한 점을 참작해 당장의 실형보다는 그 형의 집행을 유예하는 것이 옳다며 징역 2년 6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 했습니다. 피해자는 어린 나이에 경찰과 검찰 수사 과정에서 끔찍한 피해 사실을 상기하며 진술하고 법정에서 증언해야 합니다. 가해자가 마땅한 처벌을 받게 하기 위해서죠. 수사·재판 과정에서 벌어질 수 있는 2차 피해의 가능성을 무릅쓰며 고통스러운 과정을 거치고 얻은 결과가 가해자의 집행유예라면, 피해 아동에게 이 결과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특히 미취학 아동이거나 초등학생인 13세 미만 피해자에 대해서는 ‘무관용 원칙’이 적용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교육 분야에서 가장 시급한 젠더 이슈는 무엇이라고 봅니까? 성폭력 예방입니다. 미투 운동이 법조계와 영화계, 문학계로 확대되며 성폭력의 심각성이 대두되고 있죠. 그런데 이런 성폭력이 어른들의 세계뿐만 아니라 아이들의 세계에서도, 더군다나 학교에서도 일어나고 있으며 해마다 증가하고 있습니다.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 저연령화되고 있어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작년 국감 때 교육부로부터 제출받은 ‘2014~2016년도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 운영 현황 및 심의 결과’를 보면 학교폭력의 가해 유형 중 폭행 다음으로 성폭행·성추행 등을 포함한 기타 유형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특히 초등학교는 성폭행·성추행 등과 관련한 학교폭력 심의 건수가 2014년 3백94건에서 2016년 7백46건으로 두 배 가까이 증가했습니다. 시급하고 중대한 사안이라고 봅니다.

오랫동안 교직에 몸담아오다 20대 국회를 시작으로 정치에 입문했습니다. 여성 정치인으로 살아온 지난 1년 8개월여간의 변화를 체감합니까? 그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비례대표 1번이 지닌 상징성에 대해 먼저 이야기해야 할 것 같습니다. 지금은 여당이지만 20대 국회에 참여할 당시에는 제1 야당의 비례대표 1번으로 선출돼 국회의원이 됐습니다. 지역구 국회의원과 달리 비례대표의원은 각 정당이 작성한 비례대표 명부를 정당 지지율에 따라 선출하는 방식인데 홀수 번호에 여성을 배치합니다. 그러니 1번의 무게가 상당했습니다. 성평등과 여성 인권 문제에 나서야 하는 책임과 사명이 주어진 것이니까요. 지금도 그 자리와 의무가 저를 키우고 있다고 생각하며 정치에 임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