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이크아웃 문학 시리즈 배명훈 강화길 소설가

배명훈 브라운 니트 스웨터 코스(COS). 체크 팬츠 자라(Zara), 스니커즈 컨버스(Converse).
강화길 화이트 블라우스 에이치앤엠(H&M), 네이비 스커트 토리 버치(Tori Burch), 샌들 포멜카멜레(Formel Camele).

 

‘테이크아웃’ 기획을 함께하며 어떤 부분이 가장 흥미로웠나? 강화길(이하 강) 소설을 쓰면서 그림으로 어떻게 나올지 상상해본 적이 없어 궁금했다. 결과물을 보니 만족스럽다. 인물의 표정이 특히 인상적이다. 무표정한데 소설을 쓸 때 상황과 심리에 집중하다 보니 인물의 표정을 떠올리지 않았다. 머릿속에 이미지로는 존재하지만 문자로 써내는 작업이다 보니 표정을 생각해본 적 없는데 일러스트레이터가 표정을 읽어줘 좋았다. 또 단편집으로 묶이면 하나의 단편에서 감정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감정이 이어지는 느낌이 들어 단편을 읽는 독자 중에는 한 편을 읽고 쉬었다가 다음 단편을 읽는 독자들도 많다. 독자의 그런 호흡에 맞는 기획이기도 했다. 배명훈(이하 배) 일반적인 삽화가 아니라 그림이 비중 있게 들어가는 작업이어서 끌렸다. 단편소설은 길이가 짧아 소설 같지 않은 느낌을 주거나 혹은 단순히 짧은 소설로 인식되는데, 그보다 하나의 중요한 장르로 여겨졌으면 한다. 이번 기획처럼 단편이 한 권의 책으로 나오는 기획이 좀 더 대중적으로 활발해진다면 좋겠다.

이 단편소설을 단행본으로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처음에는 다른 소설을 하려고 했는데 <우리는 사랑했다>가 이번 기획과 좀 더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이미지적인 부분이 많기도 하고. 이야기가 한정된 공간에서 흘러가서 임팩트도 있는 내용이라 그림과 더 잘 어울릴 거라고 생각했다. <춤추는 사신>은 이 기획을 제안받기 얼마 전에 완성한 작품이기도 하고, 오래 붙들고 있던 작품이기도 하다. 마임에 대한 이야기다 보니 이미지적인 글이어서 이번 기획과 어울릴 것 같았다.

단편소설이란 뭘까? 강 한국문학에 국한해서 이야기하자면 단편소설은 특수한 상황에서 단편소설의 형식이 발전해온 것 같다. 한글로 작업하는 사람들이 최대치로 뽑아낼 수 있도록 다양한 시도가 있었다. 오늘 함께 모인 작가들 모두 각자의 영역에서 할 수 있는 최대치를 뽑아 원고지 80매에서 1백 매에 담기 위한 작업이 단편소설이라 생각한다. 소설로 등단하기 전에 혼자서 취미로 글을 써왔다. 주변 사람 10여 명에게 읽히는 글을 꽤 오랫동안 썼다. 그때만 하더라도 직업으로 글을 쓸 생각이 없었다. 어쩌다가 소설가가 되었다. 그때 썼던 단편소설 분량이 원고지 1백40매 정도였다. 데뷔작도 1백40매고. 지면을 생각하지 않고 그냥 쭉 쓰면 1백40매가 나온다. 그런데 지면이 정해진 경우 80매, 1백 매 때론 40매 분량으로 써야 한다. 그런 식으로 짧은 소설의 지면이 생겼다. 지면이 정해질 때마다 완전히 새로운 소설을 쓰는 도전에 임하는 기분이다. 분량에 따라 성격이 완전히 다른 소설이 태어난다. 지면 자체에 목소리가 들어가는 셈이다.

여전히 글의 힘을 믿는가? 텍스트가 힘을 잃었다기보다는 다른 매체가 힘이 생겼다고 하는 것이 맞다. 사람들은 여전히 텍스트로 기록되는 것을 두려워한다. 소설가들이 주변 사람들에게 종종 의심받는 것 중 하나가 ‘이거 내 이야기 아냐?’ 하는 것이다. 자신의 이야기가 글로 인쇄되는 것이 두렵기 때문이다. 글에는 지금도 힘이 있다. 회의할 때도 누군가 기록하면 완전히 다르게 다가오지 않나. 글의 힘은 약해지지 않았다. 지금도 글을 써서 잘되긴 힘든데 글을 써서 망할 수는 있다.(웃음) 글의 힘이 우리에게 불리하게 발현되는 느낌이 있어서 그렇지 그 세기는 여전히 유효하다. 글은 영상과 경쟁이 되지 않는다. 흡인력, 속도 모두 처음부터 상대가 안 된다. 대신 소설만이 할 수 있는 영역이 분명 존재한다. 언젠가 AI(인공지능)가 소설을 쓸 것이라는 글을 본 적이 있다. 하지만 그게 위협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AI가 쓰면 쓰는 거지, 문학의 본질은 사라지지 않으니 말이다. 어차피 개인의 작업 아닌가. AI가 글을 쓰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무엇이 더 재미있고, 더 흥미로우며 더 유의미한 질문을 던지는지가 중요하다. 소설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고, 작가 역시 마찬가지다. 지금 돌이켜보면 처음 소설을 쓰면서 글쓰기만이 가능한 것을 무의식적으로 알아서 찾아내려 했던 것 같다. 그래서 더 긴장하기도 하고.

누구 혹은 무엇을 위해 글을 쓰는가? 강 자기만족. 글쓰기의 가장 큰 매력 중 하나는 그냥 앉아서 쓰면 된다는 거다. 쓰고 완성하고 원하는 어떤 상(像)에 가장 근접한 결과물이 나올 때까지 고치고 생각하고 완성할 때의 희열. 소설가로 살며 힘든 점이나 물질적인 궁핍함, 이런 것도 많지만 그런 고통보다 희열이 크다.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설가가 직업이기 때문에 쓰는 것 아니겠나. 매번 다양한 동기가 생긴다. 그런데 작가는 결국 계기가 있어야 한다. 그 계기의 종류가 매우 다양한데 글을 쓰는 계기가 충분히 모여 있는 사람이 작가인 것 같다. 돈도 분명 중요한 계기고, 좋은 편집자 혹은 내면의 계기, 하고 싶은 얘기가 있다는 계기. 이런 양질의 계기가 많은 사람이 결국 작가인 것 같다. 계기가 너무 많아 쓰지 않을 수 없는 상황.

한 편의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강 매번 다른데 소설마다 그때그때 필요한 것, 가장 중요하다고 판단한 것에 집중하는 것이 중요하다. 요즘 소설에 공기가 있다는 표현을 쓰는데 그 공기가 중요하다. 소설 안에서 느껴지는 공기 같은 그 무언가.

한 편의 소설이 완성되기까지 가장 힘든 순간은 언제인가? 배 첫 문장이 나온다는 건 그 작품에 대한 입장이 정해진다는 거니까, 첫 문장이 나오기 전까지가 가장 힘들다. 그 과정이 무척 괴로운데 그 힘든 과정을 1년에 몇 번씩 겪고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나는 도대체 뭐 하는 인간일까, 하는 기간이 있다. 그 순간을 이겨내야 완성까지 갈 수 있다. 나도 비슷한 맥락인데 첫 30매를 쓰는 게 가장 힘들다. 그 30매가 완성되기 전까지는 계속 아무것도 없는 상태이니.

소설을 완성한 후 가장 먼저 누구에게 보여주는가? 배 나는 SF 소설가여서 편집자 외에는 잘 보여주지 않는다. 잘 모르면서 이상한 방향으로 충고하는 사람들이 많다. 초고가 나온 직후에는 나조차 흔들리는 상태이기 때문에, 특히 장편은 다른 사람의 충고를 함부로 받아들이기에 더 위험하다. 가끔 아직 데뷔하지 않은 SF 작가의 부탁으로 읽을 때도 있긴 한데 가장 중요한 건 작가 본인의 확신이라고 생각한다.

최근에 경험한 것 중 소설로 남기고 싶은 순간이 있었나? 강 최근에 일어난 일은 내 소설의 소재에 해당되지 않는다. 내가 경험한 일이 소설로 되기까지는 시간이 꽤 걸린다. 그때는 ‘정말 좋은 장면이니 꼭 소설로 써야겠다’ 생각하다가도 소설로 쓰면 별게 아닌 일이 되어버린다. 오히려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과거에 경험한 장면이 내 소설 안에서 의미 있는 장면으로 남을 때가 있다. 그럴 때 내 기억에서 꺼내오는 거다. 최근 있었던 일이 소설로 될 수 있다고 지레 성급하게 판단하지 않는다. 지금 떠오르는 건 없지만 여행을 다녀와서 아주 좋았던 경험을 쓴 적도 있고, 반대로 엄청 좋지 않은 경험 때문에 빨리 글로 써야겠다는 생각으로 쓴 적도 있다. <은닉>이란 작품이 그런데 겨울에 체코에 갔는데 하도 추워 정신이 하나도 없더라. <은닉>은 그 기억 속의 체코를 배경으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