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보용으로 제격이네요!” 신제품을 볼 수 있는 프레젠테이션이나 컬렉션 장소에서 자주 오가는 말이다. 실생활에서 입는 옷과 화보 촬영장에서 유용한 옷은 따로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아닌 게 아니라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부푼 오버사이즈 실루엣과 자유롭게 레이어드한 스트리트 패션, 눈부신 네온 컬러 룩이 휩쓸고 있는 2018년의 하이 패션 시장에서 간결한 실루엣의 미니멀 룩이 꾸준히 묵직한 존재감을 느끼게 한다. 과시하거나 드러내는 패션과 정반대의 노선을 택한 이 차분한 아름다움의 매력은 이번 시즌에도 런웨이와 스트리트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최근 미니멀리즘 추종자들에게 높이 평가받는 브랜드는 르메르. 런웨이에 등장한 브라운, 베이지 등 채도 낮은 온화한 컬러와 단정한 실루엣, 손맛이 느껴지는 드레이핑 디테일의 옷들을 보고 있으면 복잡하고 시끄러운 곳을 벗어나 평화로운 휴양지에 온 듯 마음이 고요해지는 느낌이 든다. 질샌더와 빅토리아 베컴, 살바토레 페라가모 컬렉션 역시 시즌마다 차별화하기 위해 고급스러운 색조와 소재로 변화를 줄 뿐 미니멀리즘의 맥을 이어간다. 재미있는 점은 트렌드에 가장 민감할 것 같은 패션업계 사람들이 대부분 미니멀 룩의 추종자라는 것이다. 이를테면 리카르도 티시나 알렉산더 왕, 니콜라 제스키에르, 피비 필로는 항상 베이식한 옷을 고수하는 디자이너로 알려져 있다. 옷을 많이 다뤄본 만큼 군더더기 없는 아이템 하나로 패셔너블해 보이도록 미묘한 질감과 핏의 차이를 이해한 듯한 고수의 아우라를 풍긴다. 패션 에디터들 역시 상상을 초월하는 믹스 매치로 매달 새로운 화보를 만들어내지만 실생활에서는 아주 미니멀한 룩을 선호한다. 이들의 행보는 화제를 모으지 못하면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지는 패션계에서 오히려 ‘나는 신경쓰지 않는다’는 자신감을 표현하듯 언제나 담백하다. 마치 미니멀한 룩이 가장 트렌디하다고 온몸으로 말하는 것처럼 말이다. 역설적인 패션계의 이야기가 어렵게 느껴진다고? 트렌드는 돌고 돈다지만 정제된 미니멀한 룩은 올해에도 또 내년에도 변함없이 사랑받을 전망이다.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쇼핑 리스트는 한 시즌 입고 버릴 옷이 아니라 캐시미어로 잘 짠 터틀넥 니트 스웨터나 클래식한 코트 같은 것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