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시의 새 시즌 뮤즈는 스위스 작가 안네마리 슈바르첸바흐(Annemarie Schwarzenbach)다. 평생 남자처럼 입고 행동했으며 남성과 결혼했지만 여성을 사랑했고, 양성적인 동시에 젠더 관념에 얽매이지 않은 이 역사적인 인물의 모습은 클레어 웨이트 켈러의 손을 거쳐 톰보이 모델과 남성복에서 차용한 실루엣, 차분하면서도 강렬한 색조로 표현됐다. 밀리터리풍의 카고 팬츠부터 직선적인 디자인의 수트, 풍성한 드레스와 정교하게 마무리한 셔츠까지. 어두운 컬러와 다소 포멀한 무드로 일관한 지난 시즌에 비해 훨씬 실용적이고 감각적인 룩은 켈러를 포스트 피비 필로로 여기는 패션계의 지배적이고 암묵적인 시선에 힘을 보탰다. 다시 말해 아름다운 컬렉션 룩을 감상하는 동시에 켈러의 무한한 가능성을 다시금 검증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는 말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