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션 예지 페미니즘

ⓒLYDO LE

예지 뮤지션 1993

페미니즘? 누구나 평등한것. ‘woman’이든, ‘womxn’(man에서 파생된 단어인 woman의 대안용어. 여성은 남성의 일부가 아님을 언어로 재정의함)이든, 퀴어든, 트랜스젠더든, 논-바이너리(non-binary)든, 그 누구라도.

여성스럽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남자’와 ‘여자’ 외에도 다양한 사람이 존재한다. 그 차이를 인정하고 재정의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여성 인권과 권리를 이야기할 때 ‘아름다운(beautiful)’ 또는 ‘여성적(feminine)’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은 또 다른 형태의 편견과 규정을 만들 뿐이다. 실제로 위 단어들이 여성 인권을 ‘지지하는’데 사용되었더라도 말이다. 서로 배우고, (잘못 배웠던 것들은)의식적으로 잊으며 우리를 규정짓는 틀에서 벗어나길 소망한다.

대한민국에서 20대, 젊은 여성으로 사는 일 어디에서 사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뉴욕은 한국보다는 조금 더 진보적이다. 가령 나이에 따라 판단받는 일이 적다. 그렇다고 차별이 없느냐 하면 그건 또 아니다. 미국에서 젊은 한국인 여성으로 사는 것 역시 그만의 어려움이 있다.

여성이라는 생물학적 정체성이 각인된 순간 지금으로서는 여성이라는 사실을 자각할 만한 경험은 없다. 대신 나를 불편하게 하는 타인에 대해 의식적으로 생각하려 한다. 어떤 차별적 순간을 경험했을 때 나의 잘못과 문제가 아님을 인지하려 한다. 구시대적인 관점을 지닌 건 바로 그들이니까.

사회가 요구하는 성 역할에서 해방됐던 계기 가장 먼저 보수적인 미국과 한국에서 자라면서 배웠던 모든 것을 의식적으로 잊으려 노력했다. 과거 사회가 우리 부모님을 가르쳤고, 부모님은 내게 여자는 이래야 한다, 남자는 이래야 한다, 퀴어는 잘못된 것이라 가르쳤다. 과거의 사고 방식을 뇌에 각인하고 규범으로 정착시키려 한 것이다. 하지만 이게 규칙이라고 그 누가 규정할 수 있나? 둘째, 다른 사람에게 내가 어떻게 보이는지에 대해 생각하기를 그만 두고, 나를 편안하게 해주는 사람들을 보기 시작했다. 한국인 여성이라는 이유로 스스로를 작은 존재로 만들었던 과거의 습관에서 벗어나려고도 애썼다. 대신 나를 작아지게 하는 사람들이 누구인가, 그들이 왜 그러는지를 더 많이 생각했다. 셋째, 다양한 피부색의 여성들, 퀴어, 트랜스, 논-바이너리, 논-스트레이트 메일(non-straight male) 등 다양한 친구를 만났다. 그들은 내게 솔직하고 주체적인 삶을 사는 방식에 대해 가르쳐줬으며, 어떤 성 정체성에 대해서든 자유롭게 표현해도 좋다는 사실을 알려줬다.

일상 속 실천 내가 속한 커뮤니티 안에서 끊임없이 대화를 나누려한다. 부모님과도 성평등에 대해 이야기한다. 다양한 인종의 여성이 주최하는 행사에 더 많이 참여하려 하고, 그들을 지지하고, 목소리를 내고 응원하려 한다. 우리는 있는 그대로의 우리 모습을 자랑스러워해야 한다.

성평등 의식이 진보하고 있다고 느낀 사건이나 순간 성평등과 인권 감수성이 통하는, 친밀한 커뮤니티가 있는 뉴욕에 산다는 건 행운이다. 내가 있는 이곳은 한국보다는 진보적이다. 비록 정치적인 면에서는 더 혼란스럽지만 적어도 열린 마음을 지닌 개개인이 모여 집단을 이루고 있다. 요즘 또래의 한국 여성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한국 역시 조금씩 희망적으로 변화하고 있음을 느낀다.

나의 위대한 여성 ‘모든 드래그 퀸은 위대하다!’고 외치고 싶다.

녹색당공동운영위원장 신지예 페미니즘

신지예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 1990

성평등 의식이 진보하고 있다고 느낀 사건이나 순간 최근 불법 촬영 및 유포 범죄로 자살을 택한 여성들을 위한 추모제를 진행했다. 규모가 큰 행사는 아니었지만 여성뿐 아니라 남성도 참석해 진심으로 추모했다. 안희정 비서 성폭력 사건의 2심 결과도 위력에 의한 성폭력을 협소하게 해석해온 기존 판례를 뒤집는 결과였다. 바뀌지 않는 것처럼 보여도 천천히 확실히 바뀌긴 바뀌는구나 싶었다.

페미니즘? 가부장제와 성폭력, 성차별과 싸우는 철학. 젠더 불평등은 오래전부터 공고하게 이어져온 구조적 억압이기 때문에 인식조차 하기 어렵다. 가부장제 속에서 남성이 아닌 존재들은 타자로서 존재할 뿐이다. 페미니즘은 주체와 비체를 가르는 이분법적 구분을 전복하기 위해 노력한다. 보이지 않거나 별것 아닌 것으로 여겨졌던 젠더 불평등에 저항하고, 끊임없이 권력 구조를 재해석하는 살아 있는 철학이기도 하다.

여성스럽다 ‘여성스럽다’라는 범주에는 성격이 부드럽다, 조용하다, 성숙하다, 조신하다 등 수많은 표현이 존재한다. 이런 말들은 생물학적인 특징, 염색체 XX를 설명하는말이기보다 사회가 규정한 젠더 규범을 설명하는 표현이다. 페미니즘이 꿈꾸는 사회가 도래해 젠더 규범에서 해방되는 순간을 상상해보자. 단순히 ‘여성스럽다’라는 범주 안에 통속적 의미로서 정반대 표현만을 채워 넣는 것은 아닐 것이다. 젠더 규범으로 이뤄진 정체성에 대한 해체, 더 이상 정형화된 여성이나 남성의 구분이 없는 세상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여성스럽다는 말의 의미는 텅 비어 있고, 없다고 말하고 싶다.

대한민국에서 20대, 젊은 여성으로 사는 일 시대의 흐름에 따라 강도가 다를지라도, 차별의 언어와 억압은 늘 여성에게 존재했다. 여성으로 태어나지 않았으면 어땠을까. 두려움에 떨며 밤거리를 걷지 않아도 될 것이다. 혼자 무전 여행을 자유롭게 다닐 수 있을 것이다. 옷매무새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될 것이다. 더 크게 걷고 더 크게 웃고 게걸스럽게 먹을 수 있다. 임신중절이 불법이고, 홀로 아이를 키우기 어려운 이 사회에서 임신은 더 이상 공포가 아닐 것이다. 페미니즘을 공부할수록 나보다는 엄마나 할머니의 삶이 떠오른다. 억압과 차별 속에서 살아온 여성들이 경이롭게 느껴진다. 그리고 뒤이어 살아갈 다른 여성들의 삶이 상상된다. 설사 내 삶 속에서 성차별과 억압의 구조가 모두 없어지지는 않더라도 앞으로 태어날 여성들이 조금 더 나은 삶을 살기를 바란다. 대한민국에서 여성으로 사는 일은 고통을 직시하며 희망을 잃지 않는 것이다.

듣고 싶지 않은 말 여자는 아기를 낳아야 몸이 완성된다.

가장 아름다운 나 푹 자고 일어나서 기운 넘칠 때.

#탈코르셋 벗어 던지는 것은 옷이나 머리칼이 아니라 여성이라면 으레 해야 한다던 사회 규범이다.

 

남소라 경제지 기자 1990

페미니즘? 페미니즘을 이야기할 필요가 없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모든 것.

여자다움, 여자답다 나고 자라면서 습득한 나의 모습을 그대로 숨김없이 드러낸 당당함. 대한민국에서 20대,

젊은 여성으로 사는 일 착한 여자는 천국에 가고, 나쁜 여자는 어디든 간다.

여성이라는 생물학적 정체성이 각인된 순간 생리를 시작한 것. 나는 아이를 낳고 싶지 않고 낳을 생각도 없는데, 앞으로 수십 년을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사실에 화가 나고 불만스러웠다.

듣고 싶지 않은  ‘여자니까’.

일상 속 실천 성차별적 단어 사용을 지양하고, 대화 중 타인이 사용할 경우 이를 지적하기.

주목하는 젠더 이슈 스포츠계 성범죄 사건들. 조재범부터 시작해 다른 피해자의 목소리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가해자로 지목된 자들에 대해 빠른 조사가 이뤄져 올바른 죗값을 치르길 바란다.

성평등 의식이 진보하고 있다고 느낀 사건이나 순간 성범죄 사건을 이야기하다 피해자를 탓하는 발언이 나오면 모두 한마음으로 지적하고, 피해자에게 책임을 지우는 행동이 2차 가해임을 지적하는 모습을 일상에서 목격했을 때. 페미니즘이나 정치·사회적 성격을 띠지 않는 모임에서 있었던 일이다.

가장 아름다운 나 살아 있는 자는 모두 아름답고, 그렇기 때문에 나는 매 순간 어떤 모습이든 아름답다.

나의 위대한 여성 서지현 검사가 안태근 전 검사장을 성추행으로 고발한 지 1년. 그동안 우리는 수없이 많은 성범죄 가해자를 고발하는 피해자의 목소리를 들었다. 서지현 검사가 언론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면 우리는 여전히 눈을 가리고 귀를 막은 채 보고도 보지 않은 것처럼 행동하며 살았을 것이다. 주간지 <시사인> 589호에서는 ‘2018 올해의 인물’로 서지현 검사를 꼽았다. 서 검사는 <시사인>의 인터뷰에서 자신을 원더우먼처럼 찍어달라고 말했다. 피해자에게 피해자다움을 강요했던 한국 사회와 맞짱 떠 승리하고 있는 서지현 검사를 존경한다.

#노브라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사람은 있지만 한 번만 해본 사람은 없을걸.  #유리천장 유리 천장 위에 있는 사람들이 왜 자꾸 유리 천장이 없다고 하는지?

 

이길보라 영화감독·작가 1990

‘몸 간수 잘해라’ ‘잘 처신해라’ 최악이다. 모든 잘못은 내 몸에 있다는 말이 아닌가.

여성스럽다 의미를 재정의한다 해도 나는 이 말을 쓰고 싶지는 않다. ‘여성’과 ‘남성’으로 모든 것을 구분할 수 없다. 인터섹스 같은 간성이 분명히 존재하고, 지금 유학 중인 네덜란드에서는 지난해부터 젠더 중립 여권을 발급하기 시작했다. 홈페이지 등에 가입할 때도 성별을 표기하고 싶지 않다면 젠더 중립 혹은 미표기를 선택할 수 있다. 그래서 ‘여성스럽다’ ‘남성스럽다’라는 말보다 ‘이길보라스럽다’ ‘ㅇㅇㅇ스럽다’라는 개인의 고유성을 넣은 표현을 쓰고 싶다. 페미니즘은 개인의 고유성과 다양성을 인정하는 데서 출발한다.

대한민국에서 20대, 젊은 여성으로 사는 일 한국에서 20대 여성이자, 장애인의 자녀로 사는 건 나를 늘 성찰하게 하는 계기였다. 어딜 가나 차별과 차이를 직시할 수밖에 없는 소수집단에 속했으니까. 그 경험이 다른 사람의 아픔과 경험에 공감할 수있는 감수성을 주었다고 생각하지만 그만큼 예민해지고 날카로워질 수밖에 없었다.

여성이라는 생물학적 정체성이 각인된 순간 중학교에 들어가니까 치마를 입어야 하더라. 자전거를 타고 등교하고 싶어 학교 갈 때만 체육복 바지를 입으면 안 되느냐고 학교에 문의했더니 절대 안 된다고 했다. 그럼 교복 바지를 만들어달라고 했더니 그것 또한 절대 안 된다고 하고. 남동생은 매일 학교에 자전거를 타고 갔는데 말이다. ‘내 몸은 왜 그의 몸처럼 자유로울 수 없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듣고 싶지 않은 말 ‘몸 간수 잘해라’ ‘잘 처신해라’ 최악이다. 모든 잘못은 내 몸에 있다는 말이 아닌가.

사회가 요구하는 성 역할에서 해방됐던 계기 유럽 여행을 처음 했을 때. 아무도 쳐다보지 않고 아무도 질문하지 않았다. 당시 나는 삭발을 하거나 쇼트커트를 했는데 한국에서는 화장실에 갈 때마다 사람들이 깜짝깜짝 놀랐다. ‘여기 여자 화장실인데요’ 하는 말도 많이 들었다. 네덜란드에서는 아무도 쳐다보지 않더라. 내가 무엇을 입든 어떤 머리를 하든. 해방감이 들었다. 이런 세상이 존재할 수 있구나 싶었다.

일상 속 실천 네덜란드에서는 노브라가 흔하다. 노브라에 원피스를 입고 힐을 신은 채 자전거를 타는 사람을 종종 볼 수 있다. 나 역시 그렇게 지내다 한국에 오니 약간 눈치가 보이더라. 심지어 엄마는 지난여름에 네덜란드에서 노브라 상태인 나를 봤을 때는 아무 말 안 했는데 한국에 오니까 왜 브래지어를 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운동적인 측면에서 정치적인 의미를 담아 노브라에 민소매 티를 입고 다녔다. 일을 하러 갈 때나 지하철을 탈 때도. 누가 쳐다보거나 말을 걸면 미친년처럼 싸워야겠다는 생각으로. 그게 정말 큰 변화였다.

나는 몸 을 꽉 죄는 그 어떤 것도 입지  않습니다. 

성평등 의식이 진보하고 있다고 느낀 사건이나 순간 미투 운동, 그리고 미투 운동을 둘러싸고 미디어가 피해자 이름을 거론하지 않고 가해자 이름을 따 ‘안희정 성폭행 사건’ ‘조재범 성폭행 사건’이라고 부르는 걸 봤을 때. 무언가를 어떻게 부르느갸가 그것을 어떻게 인식할 것인가의 출발이라고 생각한다. 여성의 얼굴과 이름을 계속 언급해 그를 피해자화하지 말자고,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가 사건을 인식하는 방법을 고쳐먹자고 움직인 순간이니까.

나의 위대한 여성 지금 공부하고 있는 네덜란드 필름 아카데미의 여성 학장 미커(Mieke) 그리고 여성학을 전공한 여성 조교인 크리스(Kris)와 사빈(Sabien). 슈퍼 페미니스트 그룹으로 조교실 한쪽 벽에 영화 <델마와 루이스> 포스터가 붙어 있다. 여성주의를 바탕으로 만들어가는 석사과정 자체가 성적으로 평등하고 수평적인 곳이다. 매일 마주치는 이들을 보며 많은 것을 배운다.

페미니즘 나연 예술행동가

나연 예술행동가(ARTIVIST) 1994

여성스럽다 재정의 과정을 거쳐 결국에는 사라졌으면 하는 말. 인간을 이루는 한 부분인 성별이 존재 전체를 뒤덮는 일이 더 이상 생기질 않길 바란다. 궁극적으로 성별이라는 것이 동물처럼 생식 기능 외에는 아무 의미를 지니지 않는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

사회가 요구하는 성 역할에서 해방됐던 계기 누드 사진을 찍으면서부터. 그 전까지 나는 내 몸을 싫어했고, 혼자 있을 때도 내 나체를 보는게 불편했다. 내 몸이 단순히 여성의 몸으로 대상화돼 존재한다는 걸 알았기에 은연중에 그랬던 것 같다. 그동안 접한 여성의 누드가 언제나 남성의 ‘자위용’으로만 소비되는 것을 목격해왔으니까. 이제는 그들의 폭력적인 시선이 문제임을 안다. 우리는 모두 아무것도 입지 않은 채로 태어났고, 몸에는 죄가 없다. 내 몸은 그저 살과 뼈일 뿐, 이를 저열한 욕망의 논리에 끼워 맞춰 바라보는 관점이 바뀌어야 한다는 것을 나는 내 몸을 제대로 보면서 깨닫기 시작했다.

일상 속 실천 누구를 만나건 페미니스트라고 말한다. 이 사실을 밝힐 때 상대방이 조심하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또 페미니스트가 이 세상에, 그것도 당신 주위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페미니스트를 ‘일베’처럼 악마화된 소수집단으로 여기는데 이는 그들의 착각일 뿐이다. 세계 모든 곳에 페미니스트가 있고 우리는 결코 소수가 아니다.

나는 남성 권력에 고개를 숙이지 않습니다.

주목하는 젠더 이슈 한국의 임신중절 합법화. 현재 헌법재판소에서 임신중절 처벌에 대한 위헌 여부를 논의하고 있다. 당연히 위헌이라고 결론 내리길 기다리고 있다. 100% 피임법이 존재하지 않는 현 상황에서 여성은 원치 않는 임신과 출생이란 덫에서 빠져나올 수 없다. 여성 역시 자신의 인생을 위해 주체적인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인간인데 정부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성평등 의식이 진보하고 있다고 느낀 사건이나 순간 사회가 페미니스트들에게 응답할 때. 제도적인 측면이 변화할 때. 최근 아일랜드에서 임신중절이 합법화되었는데 이처럼 사회 인식이 바뀌는 걸 목격하는 순간, 지치지 말고 나아가야 함을 다시금 느낀다.

나의 위대한 여성 윤리학자 캐럴 길리건. 기존 도덕 발달 이론이 지극히 남성 중심적이라는 점을 비판하며 여성을 기준으로 한 새로운 이론을 제시한 학자다. 여성성과 결부되는 가치를 긍정적으로 재평가했다. ‘여성스럽다’는 단어와 가치에 함축된 것을 재정의하며 여성의 존재를 긍정하는 데 공을 세운 학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