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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트와 카디건 모두 아크네 스튜디오(Acne Studios)
티셔츠 프라다(Prada)
팬츠 노앙(Nohant)
스니커즈 골든구스 디럭스(Golden Goose Deluxe)

어느 날 갑자기 우리의 마음에 훅 들어온 이 남자가 말했다. “좋은 배우가 뭔지는 아직 잘 모르겠어요. 다만 사람들의 마음을 기쁘고 따뜻하게 할 수 있는 위로가 되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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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간 시간을 모두 아름답게 만들어버리는 힘을 지닌 <응답하라> 시리즈는 이번에도 어김없이 통했다. 그리고 드라마를 보며 들뜨고 설렌 건 장면 장면을 가득 채운 1980년대의 노래와 음악, 꼼꼼히 고증된 물건 때문만은 아니다. 사랑의 감정을 용기 내어 말하기보다는 친구에게 들킬세라 꾹꾹 감추는 정환이가 한 번이라도 이기적인 고백을 하기를 바라며 혹은 바둑 말고는 혼자서 할 줄 아는 게 없는 택이를 응원하며, ‘어남류’니 ‘어남택’이니 하는 그 시작을 알 수 없는 이상한 단어까지 만들어내며 풋풋한 소년들의 첫사랑을 지켜봤다. 화보 촬영을 위해 류준열을 만난 건 드라마가 중반을 넘어 절반을 채 남겨두지 않은 지난해 12월의 어느 날이었다. 재수를 하던 어느 날 졸지 않으려고 서서 공부를 하다가, 그럼에도 두 시간을 서서 졸았다는 사실에 자신이 진짜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 고민하다 문득 연기를 시작한 이 엉뚱한 남자는 말수가 적고 무뚝뚝한 정환이와는 많이 다른 모습이었다. 한 컷 한 컷이 끝날 때마다 고개 숙여 감사하다고 말하는 걸 잊지 않고, 인터뷰하는 동안 줄곧 속도를 내어 말하다가도 어떤 질문 앞에서는 한참을 생각한 후에 대답을 내놓기도 하는 류준열은 스튜디오에 머무는 내내 밝은 기운을 머금었다. 그렇게 질문과 대답이 오고 가며 쑥스러운 표정으로 내놓는 그의 대답에 크게 웃기도 하고 뜬금없는 순간에는 함께 하이파이브를 하며 인터뷰가 끝났다. <마리끌레르> 2월호가 나올 즈음에는 그 문제의 ‘남편 찾기’가 끝나겠지만 이제야 등장한 류준열의 시간은 비로소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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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이 특별한 한 해로 기억되겠다. 앞으로 시작될 길에 첫 발걸음을 뗀 기분이다. 그 발걸음이 사랑으로 출발했고 그래서 그 길을 행복하게 시작할 수 있을 것 같다.

그 시작이 좀 늦은 편 아닌가? 그동안 불안한 적도 있었겠지?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만 거의 없었다고는 말할 수 있다. <응답하라 1988>을 만나기 전에도 즐겁게 연기해왔다. 워낙 긍정적이고 낙천적이어서 그냥 잘 흘러갈 거라고 생각했다. 나라는 사람은 원래 힘든 시간을 견디기보다는 그 시간을 빨리 잊고 다음을 생각한다. 아마 낙천적인 아버지를 닮아 그런 것 같다.

<응답하라 1988>을 시작하기 전에 꿈꾸던 류준열이라는 배우는 어떤 모습이었나? 지금과 좀 닮았나? 전혀 그렇지 않다. 이렇게 빨리 주목받고 작품에서 비중이 큰 역할을 맡을 줄 몰랐다. 큰 사랑을 받으리라고는 생각도 안 해봤다. 그보다는 오래오래 연기를 하고 오래 기억되는 배우이고 싶었다. 음, 오늘처럼 화보를 찍는 내 모습을 상상해본 적이 없다.

시작하는 배우들은 ‘초심’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한다. <응답하라 1988> 들어가기 전에 여행도 많이 다니고 책도 많이 읽으며 느낀 것 중 하나가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살아야겠다는 거다. 내 마음대로 큰 소리를 내기보다는 남들에게 상처를 주지 않는 삶을 살고 싶다. 그렇게만 살아도 오랜 세월이 지나고 뒤돌아봤을 때 ‘내가 인생 잘 살았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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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트 스웨터 마르니 바이 쿤(Marni by KOON)
화이트 셔츠 랙앤본 바이 비이커(Rag&Bone by Beaker)
팬츠 우영미(WooYoungMi)

당신과 드라마 속 ‘정환’이 닮은 점이 있나? 있다. 내 안에는 여러 개의 류준열이 있는 것 같다. ‘츤데레’ 정환이 모습도 있고. 생각보다 복잡한 사람인가보다.(웃음) 물론 다른 점도 있다. 나는 말도 많은 편이고 장난도 많이 치고 가벼울 때는 또 한없이 가벼운 사람이다.

집에서는 어떤 아들인가? 철없는 아들이 되고 싶다. 집에서는 어리광도 부린다. 그런데 부모님이 잘 안 받아주시지. 집이 서울이 아니라서 혼자 나와 사는 것도 생각해봤는데, 가족이 주는 안정감과 따뜻함 때문에 쉽사리 집을 떠나지 못하겠다.

언젠가 우연히 매일 아침 5시에 일어나 쌀을 씻는 동영상을 본 적이 있다. <응답하라 1988>에 들어가기 전까진 그렇게 지냈다. 좀 오래된 습관인데 어느 날부턴가 부지런히 살고 싶었다. 흘러가는 시간이 아까웠다. 실은 ‘배우라면 이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촬영을 하지 않는 시간은 결국 노는 시간 아닌가. 그 시간을 그냥 보내고 싶지 않아 아침 일찍 일어나 규칙적으로 생활하려고 했다. 영화와 드라마도 많이 보고 책도 많이 읽고 여행도 다니고 운동도 하고 학원도 다니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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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셔츠 허프(HUF)
팬츠 우영미(WooYoungMi)

영화 <소셜포비아> 때까지만 해도 팬들의 환호에 적극적으로 호응하는 배우였다. 지금은 아무래도 그럴 수 없겠지. 이전보다 훨씬 많은 팬이 몰릴 테니까. 요즘 많이 고민하는 부분 중 하나다. 이해되지 않는 부분도 많다. 이를테면 촬영장을 찾아와 한참을 기다린 팬들에게 짤막하게 ‘안녕하세요’ 인사하고 가버리는 게 너무 이상하다. 그런데 또 거기서 섣불리 행동하면 오히려 위험해질 수 있더라. 그런 것들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하면 할수록 복잡해진다. 너무 복잡하다. 길거리에서 사진 찍어달라고 하면 거절하는 배우들 있지 않나. 예전에는 절대 이해할 수 없었는데 이제는 조금씩 이해가 되기도 하고, 그렇게 이해되는 나 자신이 싫을 때도 있다. 미쳐버릴 것 같다. 진짜. 예전에는 나를 찾아와주는 팬이 열 명, 스무 명 정도였으니 한 명 한 명 다 인사하고 얘기도 나눌 수 있었는데 지금은 그럴 수 없다. 작품에 대한 고민만큼이나 요즘 많이 하는 생각이다.

<응답하라 1988> 전후가 많이 다르겠다. 당신에 대한 기대가 커진 만큼 부담감도 커졌을 것 같다. 그래서 불안하진 않나? 딱히 불안하지는 않다. 다만 나라는 사람은 변한 게 아무것도 없는데 다른 사람들이 나를 다르게 받아들인다는 게 걱정되긴 한다. 예전에는 촬영장에서 ‘아, 추워’라고 말하면 그냥 스태프들이 추운가보다 했는데 이제는 난로를 가져다준다. 난로가 필요해서 그런 말 한 게 아닌데도 말이다. 그래서 더 책임감 있게 행동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하던 대로 하면 안 되고, 더 잘하고 더 조심해야겠다는 생각.

배우가 되기 위해 보낸 당신의 20대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20대와 30대는 많이 배우고 공부하고, 40대와 50대에는 젊은 시절 배운 것을 가지고 점잖게 돈으로 바꾸고, 60대와 70대에는 그렇게 번 돈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베풀어야 한다는 글귀를 본 적이 있다. 물론 딱 그 문장처럼 살 수는 없겠지. 어쨌든 내 20대도 그렇게 배우가 되기 위해 공부했고, 언젠가는 지금 공부한 연기로 많은 사람에게 좋은 영향을 미치는 배우가 되고 싶다.

그동안 절망적인 순간도 있었나? 분명히 있었겠지. 그런데 돌이켜보면 기억나진 않는다. 음, 오늘 이 촬영장에 늦게 도착했을 때 절망적이었다.

늦지 않았다. 5분쯤 늦었다. 오는 내내 조마조마했다. 진짜. 예정된 시간보다 30분 일찍 도착하고 싶었는데 오늘은 차가 많이 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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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트 풀오버 아스페시 바이 비이커(Aspesi by Beaker)
팬츠 커버낫(Covernat)

20대에 하지 못해 후회되는 일 있나? 여행을 더 많이 다니면 좋았을 것 같다. 여행은 나에게 많은 것을 준다. 익숙하지 않은 공간에 있어서인지 1분 1초의 순간마다 많은 것을 받아들이게 된다. 다음에는 인도로 떠나고 싶다.

도전을 좋아하나보다. 쓸데없는 것에 막 도전한다. 1분 안에 샤워 끝내기 같은 거.(웃음) 언젠가 인도라는 나라에도 도전해보고 싶다.

일기도 쓰지 않나? 매일 쓰려고 노력한다. 뭔가 쓰는 걸 좋아한다. 요즘에는 시간이 많지 않아 그때그때 생각날 때마다 휴대폰에 적고 다시 일기장에 옮겨 적는다. 일기 대부분이 오늘에 대한 반성으로 시작한다. 아마도 후회를 일기를 통해 하는 것 같다. 그렇게 적어 내려가다 보면 오늘보다 더 나아질 내일에 대해 쓴다. 신발 상자 두 개 정도를 채울 만큼 일기를 썼다.

얼마 전 당신의 SNS에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과 찍은 사진을 봤다. 감독님 팬이다. 드라마 촬영을 마치고 바로 갔던 터라 메이크업을 지우지 못했는데, 감독님과 찍은 사진을 보니 너무 부끄러워서 얼굴이 새빨개져 있더라. 그날 감독님이 내게 전화번호가 적힌 명함을 주었다. 처음엔 잘못 본 줄 알았다. 난 정말 성공한 팬이다. 배우 하길 잘했다는 생각도 들었다. 정말 행복한 순간이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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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트와 카디건 모두 아크네 스튜디오(Acne Studios)
티셔츠 프라다(Prada)
팬츠 노앙(Nohant)
스니커즈 골든구스 디럭스(Golden Goose Delux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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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트 톰 포드 바이 분더샵(Tom Ford by BoonTheShop)
트랙 톱 프라다(Prada)
슈즈 폴 스미스(Paul Smith)
삭스 나이키(Nike)

다시 태어나도 배우가 될 것 같나? 대답하고 나면 후회할지도 모른다. 생각이란 게 매일 바뀔 수 있으니까. 예전에 했던 인터뷰를 읽다 보면 지금의 내 생각과 다른 부분을 발견할 때가 있다. 여러 가지가 오늘의 생각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겠지. 확실한 건, 2016년도 2015년처럼 행복했으면 좋겠다. 그건 지금 나에게 쏟아지는 관심을 두고 하는 말은 아니다. 사람들에게 위로를 줄 수 있는 배우가 되고 싶다. 사실 산다는 건 힘든 일이지 않나. 좋고 나쁘고 행복하고 후회되는 순간이 끝없이 이어지는 게 삶이지만 그 와중에 류준열이라는 배우가 위로가 되었으면 한다. 다음 작품이 무엇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설령 악역을 연기한다 해도 관객들이 내 연기를 보는 시간이 즐거웠다면 위로가 될 수 있다.

지금 이 순간은 어떨 것 같나? 오늘은, 다시 태어나도 배우가 되고 싶다. 아, 그런데 내가 인터뷰를 잘하고 있는 건가? 오래 얘기는 하는데 막상 상대방 입장에서 쓸 말이 별로 없을 것 같다. 모르겠다. 잘하고 싶은데.

왜 그런 생각을. 촬영도 아주 잘하던데. 아니다. 사진가가 천재인 것 같다.

이제 마지막 질문이다. 다음 작품에서 보여주고 싶은 건 뭔가? 또 다른 매력. 많은 사람들이 요즘 내 얼굴을 두고 잘생겼다, 못생겼다 얘기하지 않나. 내가 잘생겼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하지만 나만의 매력은 보여주고 싶다. <응답하라 1988> 속 김정환의 매력과는 다른 매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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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건디 니트 스웨터 질샌더(Jil Sand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