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들을 위한 집
CPH VILLAGE

도시에 사는 청년들이 비싼 집값 때문에 집을 구할 엄두를 내지 못하는 건 한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거주 문제로 고민하던 프레데리크 부스크와 미샤엘 플레스네르는 경제력이 없는 학생들에게 가혹하기만 한 집값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컨테이너 마을을 만들기로 했다. 그들의 기발한 발상으로 낙후한 항만 지역에 방치된 차가운 컨테이너는 온기가 도는 집이 되었다. 바로 CPH 빌리지(CPH Village)다. 이곳의 입주자들은 컨테이너를 재활용해 만든 집에서 독립된 각자의 방과 부엌을 가지고 있고, 욕실은 다른 한 사람과 같이 쓴다. 빌리지 안에는 커뮤니티 하우스를 비롯해 다른 입주자와 교류할 수 있는 카페나 텃밭 같은 여러 공간이 있다. 이곳은 말하자면 레고 블록 같은 곳이다. 컨테이너로 지은 집은 변형과 재배치가 손쉽고 이동이 편리해 필요하면 언제든지 쓰임새를 바꿀 수 있다. 넓은 공간이 필요하면 컨테이너를 여러 개 이으면 되고, 그 공간이 필요 없어지면 해체하면 그만이다. “컨테이너로 만든 집은 그대로지만, 10~15년이 지난 후 이 집은 사람이 살지 않는 다른 지역으로 옮겨질 거예요.”(프레데리크) 도시로 몰려드는 사람들 때문에 올라간 집값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지은 CPH 빌리지는 입주에 나이 제한을 두지는 않지만 공부하는 학생만 받는다. “CPH 빌리지를 세 단어로 표현한다면 공간, 커뮤니티, 편의성이에요. 사적인 공간을 줄이는 대신 공유 공간을 늘렸죠. 이곳에는 다양한 커뮤니티가 존재하고 입주자들은 자신들의 취향에 맞는 커뮤니티에 언제든지 합류할 수 있어요. 콘서트를 비롯한 다양한 이벤트가 열리죠. 전 숫자의 힘을 믿어요. 한 명이 해내는 일보다 더 많은 사람이 함께할 때 얻는 것이 훨씬 더 많다고 생각합니다.”(프레데리크) CPH 빌리지는 2020년까지 2천 명의 학생들을 위한 8개의 마을을 짓는 것이 목표다. 덴마크에는 2만5천 명의 학생이 있지만 스웨덴에는 30만 명의 학생들이 주거 문제로 고민하고 있다. CPH 빌리지는 코펜하겐뿐아니라 다른 나라의 도시에도 진출할 계획이다.

CPH VILLAGE
주소 Refshalevej 161f, 1432 København, Denmark
웹사이트 www.cphvillage.com

CPH 빌리지에 거주한 지 얼마나 됐나? 안네-마리에 학교에 다니면서 본의 아니게 이사를 여러 번 했다. 그럴수록 나만의 공간이 절실했다. 나만의 부엌, 내 방, 내 취향으로 채운 공간. 하지만 학생이 이 도시에서 그런 집을 찾기는 쉽지 않다. 그리고 또 하나, 다른 학생들과 함께 할 큰 커뮤니티가 필요했다. CPH 빌리지에 관한 기사를 처음 읽었을 때 낡은 컨테이너를 학생들을 위한 집으로 바꿨다는 내용을 봤다. 일반적이지 않은 다른 무언가를 하고 싶던 나는 항만에 있는 컨테이너에 살아보고 싶었다. 도시의 학생이 살 수 있는 새로운 주거 형태가 아닌가! 나는 CPH 빌리지에 처음 입주한 학생 16명 중 하나다. 지금까지 이 마을이 커가는 것을 여행하는 기분으로 지켜보고 있다. 트롤레스 지난해 6월부터 이곳에서 살았다. 원래는 5월에 이사 오려고 했는데, 내 방에 있는 가구를 모두 직접 만드느라 시간이 좀 더 걸렸다. 컨테이너로 집을 만들었다는 점이 무척 신선해 이곳에서 살아보고 싶었다. 게다가 내가살던 낡은 집보다 집값도 저렴하고 시끄러운 길가에 있지도 않다. 처음에는 공간이 생각보다 작아 놀랐지만, 문득 내가 지나치게 많은 물건을 소유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곳에서 살기 위해 짐을 많이 줄였다.

CPH 빌리지에 사는 좋은 점과 나쁜 점은 각각 무엇인가? 안네-마리에 이곳에 살아서 가장 좋은 점은 커뮤니티다. CPH 빌리지에 사는 우리는 모두 학생이지만 나이와 전공, 태어난 곳이 제각각 다르다. 서로 다른 배경을 가진 학생들끼리 서로 고민을 나누고 힘이 되어준다. 또 다른 좋은 점은 주변 환경이다. 도시지만 항만 가까이에 있어 물과 자연이 지척에 있다. 크고 오래된 배도 있다. 분명 도시에 살고 있지만 이곳은 매우 조용하고 평화롭다. 나쁜 점을 굳이 꼽자면 창의적인 소셜 활동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이곳에 사는 즐거움이기도 하다. 우리 모두 이 마을의 일부가 될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CPH 빌리지에 사는 또 다른 즐거움은 내 가구와 물건을 11㎡ 크기의 방에 마음껏 배치하며 인테리어를 꾸밀 수 있다는 점이다. 물론 이 작은 공간을 안락하게 꾸미려면 미니멀리스트가 돼야 한다. 트롤레스 특히 좋은 점은 마을에 함께 사는 사람들과 위치다. 이렇게 멋진 사람들과 함께 살 수 있다는 건 아주 멋진 일이다. 집에 돌아와 그들과 CPH 빌리지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는 것도 좋아한다. 집을 나서 10m만 걸으면 코펜하겐 운하가 나오는데, 여름이면 주저하지 않고 물속에 뛰어들어 수영을 즐긴다. 이곳의 단점이라면 이웃집의 생활 소음. 컨테이너는 아파트나 주택에 비해 이웃집의 소리가 잘 들린다.

평일과 주말의 일과가 궁금하다. 안네-마리에 평일에는 긴 하루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거리를 걷다 보면 많은 이웃을 만나게 된다. 친구들을 만나면 그날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고 때론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신다. 볕이 좋은 주말에는 종종 낮에는 항구에 가서 수영을 하고 밤에는 여럿이 모여 캠프파이어를 한다. 나는 CPH 빌리지에서 크고 작은 파티를 주관한다. 매달 파티를 기획하는데 바를 만들기도 하고 신나는 음악을 틀기도 한다. 트롤레스 평일은 아주 단순하게 보낸다. 새벽 5시에 일어나 오트밀 위에 과일을 얹어 식물성 우유를 부어 먹는다. 나는 비건이다. 그다음 머리 빗고 양치한 다음 도시락을 챙겨 자전거를 타고 16km 떨어진 통나무집 디자인 작업실로 간다. 7시간 정도 일한 다음 다시 자전거를 타고 집에 돌아와 이웃 사람들과 돌아다니거나 책을 보고 저녁 식사를 준비한다. 주말에는 대부분 잠을 자며 보낸다. 실컷 자고 일어나 향이 좋은 커피 한 잔과 팬케이크를 아침으로 먹고, 친구를 만나거나 세탁 같은 밀린 집안일을 한다.

CPH 빌리지에서 가장 좋아하는 공간은? 안네-마리에 부두의 끝.그곳에 서 있으면 오페라하우스를 비롯한 큰 건물들이 보인다. 그곳에 앉아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거나 일몰을 보기도 하고 맥주를 마시며 밤 을 보내기도 한다. 밤에도 도시의 불빛 때문에 깜깜하지 않다. 내 방에서 가장 좋아하는 공간은 침대. 침대에 앉으면 집 근처 나무들이 보이고 내가 코펜하겐 한가운데 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을 만큼 아름다운 하늘이 보인다. 트롤레스 CPH 빌리지는 항만에 있어 물과 가깝다. 항만 근처에 한적한 벙커가 있는데 그곳에 가는 걸 좋아한다. 자그마한 내 방에서 가장 좋아하는 곳은 내 커다란 침대다.

이 마을 사람들이 새로운 가족처럼 느껴질 것 같다. 가족의 의미는 뭘까? 안네-마리에 나는 이곳에서 가족을 찾았다. 우리는 서로 돌보고 돕는다. 드라이버 같은 작은 장비가 없어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 이웃에 사는 친구가 금세 빌려준다. 사소한 물건뿐 아니라 따듯한 위안이 곳곳에 있다. 한 번 크게 안아주면 필요한 모든 것을 내어준다. 마치 의좋은형제처럼. 트롤레스 CPH 빌리지에서 가장 좋아하는 일과는 이웃과 발코니에 앉아 차를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다. 가족을 내가 선택할 수 없듯, 이곳에서 만나는 이웃도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빌리지의 규모가 꽤 커서 내가 모르는 이웃도 많다. 가족은 무어라 정의하기 힘든 존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