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버 재재

화이트 재킷과 팬츠, 티셔츠 모두 잉크(EENK), 스니커즈 나이키(Nike).

재재만의 유니버스

SBS 스브스뉴스 <문명특급>의 재재

에피소드마다 웬만한 연예인보다 더한 끼와 텐션을 폭발시키지만 정작 수입은 일반인인 ‘연반인(연예인+일반인)’ 재재. 2015년 SBS 보도본부 뉴미디어국 인턴 사원으로 입사해 뉴미디어의 다사다난한 부침 속에서도 남다른 텐션과 재능으로 살아남은 책임감 강한 육신의 소유자, 스브스뉴스의 한 코너였던 <문명특급>을 개별 채널로 독립시키는 데 일조하고, 유튜브 구독자 27만 명, 플랫폼 합산 누적 조회 7천만 뷰를 돌파시킨 치밀한 야망러. 20~30대 여성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으며 ‘유튜브의 콜럼버스’가 돼 ‘재재만의 유니버스’를 꾸리고 있는 그를 만났다.

요즘 ‘뉴미디어계의 유재석, 여자 유재석’으로 불린다. 부담스럽기도 하고… 근데 또 뭐 안 될 건 없지 않나.(웃음) 언제 이런 기회가 온다고. <마리끌레르>에서 사진도 찍고.

부담스러워하지 말고 지금의 인기와 명예를 누렸으면 좋겠다. 그럴 자격이 충분하다. 명심하겠다.

<문명특급>이 지금의 자리까지 온 데는 진행자 재재의 하이 텐션과 매력이 크게 작용했다. 한데 종종 ‘나는 지금 일하고 있다’, ‘언니는 일하는 중’스러운 텐션을 보이기도 한다. 평소에는 어떤 편인가? 초등학교 때까지는 그다지 외향적인 성격이 아니었던 것 같은데 커가면서 변한 것 같다. 평소에도 활동적이고 외향적이지만 이렇게 연출된 모습 정도는 아닌 것 같고. 촬영하고 나면 확실히 진이 빠진다. 그래서 촬영 전 이동하는 시간에는 말을 최대한 아끼는 편이다. 카메라가 꺼지면 사람이 달라진다는 얘기가 이래서 나오는구나. (웃음) 그 말을 이해하게 됐다.

이쯤 되면 연반인이 아니라 그냥 연예인 아닌가. 아니다. 콘텐츠를 잘 만들기 위한 직장인으로서의 어떤 소명이랄까?(웃음) 나는 여전히 연반인이고 연예인이 될 생각은 없다. 봉급이 일반인인데….

동시대 여성들의 압도적 지지를 받는 이유에 대해서 생각해본 적 있나? 그동안 등장한 여성 캐릭터와 다르기 때문인 것 같기도 하고 또 같은 또래, 밀레니얼 세대인 우리 ‘칭구칭긔’들이 본인의 모습을 대입하는 게 아닐까. ‘동년배인 우리 친구가 나와서 고군분투하고 있구나’ 하며 약간의 연민과 응원하는 감정이 복잡다단하게 섞여 있지 않을까 싶다.

<문명특급> 주요 제작진 역시 20대 여성이다. 또래 여성 동료들과 협업하며 주고받는 긍정적인 에너지도 인기를 끄는 요인인 것 같다. 우리는 각 잡고 회의를 하는 대신 거리낌 없이 수다 떨듯 이야기를 나눈다. 그때의 대화 주제들이 콘텐츠화 되는 거다. 무엇보다 이 집단에 들어와서 또래 혹은 나보다 더 어린 친구들의 현명한 지혜 같은 걸 많이 배웠다. 이 친구들이 사회문제에 밝고 예민해서 생각지도 못한 것을 얻고, 계몽당하는 부분도 많다.

‘비상대책위원회’ 에피소드를 보면 인턴이 제작진을 앉혀놓고 프로그램에 대해 호되게 평가하는, 일반 조직에서는 있을 수 없는 광경이 펼쳐진다. 그게 참 통쾌하다. 왜 그런 말이 있지 않나. 웃고 있는 사람들은 인생이 시궁창이 아니라서 웃는 것이 아니라, 시궁창 인생을 재미있게 표현해서 웃는 거라고. 우리가 그런 격이다. 웃음으로 승화하려는 팀인데 그 웃음에 못 담는 것도 많다. 방송할 수 있는 선으로 한 거다.

회의 때 서로 직언하는 편인가? 눈치 보면서 말하다가도 누가 ‘최악!’ ‘마이너스 3백80점!’ 해버린다. 가령 ‘이런 거 하면 어떨까?’ 하면 연출이든 조연출이든 이 친구들이 인사이트가 있는 사람들이라 ‘그건 이런 면에서 좀 별로 아닐까?’ 하고 ‘아, 그런가?’ 하며 자연스럽게 주고받는다.

인턴으로 시작해 비정규직 프리랜스 에디터를 거쳐 정직원이 되기까지 재재 개인의 커리어를 돌아봤을 때 중요한 순간은 언제였나? 오리지널 시리즈를 하기 전까지 카드 뉴스와 다른 영상  등을 만들었다. 펀딩도 많이 했고. 그때의 결과물, 그때 배운 구성력이 중요한 밑거름이 된 것 같다. 인턴 때는 일주일에 카드 뉴스 6개를 만든 적도 있다. ‘무식혜’ ‘부킹왕’, ‘미싱’ 등 많은 시리즈를 기획했고, 당시에는 다 망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중요한 순간이었던 것 같다. ‘아, 이런 카드 뉴스 나부랭이만 만들다가 내 커리어는 어떻게 되는 거야’, ‘정식 기자도 아니고 뭐지 이건?’ 싶을 때도 있었다. 다른 한편으로는 당시 기자를 포함해 다양한 부문의 사람들과 함께 일하는 조직이었기 때문에 거기서 다방면으로 흡수한 것도 많다. 원래 SNS도 하지 않고, 사회문제에도 밝지 않았는데 그 틈에서 팔로업 한 덕에 일을 시작한 5년 전보다 내가 더 밝아지고 젊어졌다.

하지만 당시에는 ‘이걸 누가 봐’ 하는 생각이 절대적으로 들지 않나. 실제로 아무도 안 봤다. 약간 고흐 같은 느낌이었달까? ‘죽어야만 이걸 누가 알아주려나? 사후에나 빛날 나의 커리어’ 이랬는데, 그게 날 채워줬다.

커리어에 대한 고민 속에도 자리를 꾸준히 지켰다. 20대를 돌아보면 쉰 적이 없다. 사람이 불성실하게 생겨 가지고. 우리끼리는 그런 말을 많이 한다. ‘저주받은 책임감’이라고. 엄청나게 욕을 하다가도 점심시간 끝나면 사무실로 들어가서 헤드폰 끼고 열심히 일하고, 부지런히 섭외 전화 돌리고, 카메라 들어오면 누구보다 열심히 움직인다. 이 육신… 책임감 강한 육신이 문제이자 장점 같다.

‘숨듣명’이 대세라지만 비혼을 시작으로 중·고등학생 두발 자유화, 디지털 장례식 등 사회문제를 담은 초기 에피소드들이 지금의 <문명특급>의 기반을 만들었다. 언젠가 담아보고 싶은 이슈가 있다면? 철저히 개인적인 생각인데 1화에서 비혼 문화를 보여줬다면 이제는 비혼 이후의 삶을 다뤄보고 싶다. ‘그래, 비혼이 있다는 걸 알겠어. 그래서 비혼을 선택한 사람들은 어떻게 사는데?’ 하는 부분을 보여주고 싶다. 비혼을 고민하거나 비혼을 선택한 이들이 걱정하는 것 중 하나가 고독사다. 비혼자의 실제 생활을 조명하면 어떨까 혼자 생각하고 있다.

최근 ‘이런 외양을 지닌 여성이 사회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는 걸 많은 이들에게 보여주고 싶다’라고 말한 적 있다. 그 답을 하기까지 ‘여성다움’, ‘여성스러움’에 대한 고민도 있었을 것 같다. 나뿐 아니라 많은 여성이 정규교육과 사회화 과정, 미디어 등 다양한 채널에서 ‘여성스러움’을 공기처럼 주입받고 자랐지 않았나. 나만 해도 대학교 4학년 때까지 그 점에 대해 비판적인 견해를 갖지 못했다. 대학교 1학년 때는 원피스도 입고 다녔다. 그때마다 나답지 않다는 느낌, 다른 껍질을 쓴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 과정에서 여성스러움에 의문을 갖게 됐다. 원체 황소고집이기도 해서 원하는 대로 하고 다녔는데 다행히 그사이 시대가 변했다.

지금까지 가장 많이 들은 말이 있다면? ‘남자야? 여자야?’. 들을 때는 기분 나쁜데 다시 생각하면 사회가 나아지고 있다는 변화의 징조 같기도 하다. 나 같은 사람이 많아지면서 남성성, 여성성이 규정되지 않는 성 중립적인 이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다는 거니까. 하지만 오랜 시간이 지나도 ‘남자야? 여자야?’ 같은 댓글은 계속 달리겠지. 근데 이에 대해 ‘어느 시대인데 이런 말씀을 하고 있느냐’라는 대댓글이 더 많이 달릴 날도 오지 않을까?

재재처럼 활기차고 텐션 좋은 여성에 대해 시끄러운여자, 떠드는 여자…. 나대는 여자….

‘나대는 여자’라는 혐오 프레임을 씌운다. 그 가운데 우리는 더 시끄러워질 필요가 있다. 그런 의미로 시작했다기보다 내 캐릭터가 원체 그렇다. 다행히 공감하는 분들이 많은 것 같다. 감사하게도.

거부감을 드러내는 피드백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요새 그런 식의 피드백, 특히 유튜브 같은 채널에서 그런 피드백을 주는 분들은 그냥 안쓰럽다. ‘저 사람 뒤처지고 있구나….’ 그래서 별로 신경 안 쓴다.

재재만의 유니버스, 그곳은 어떤 세계인가? 어떤 모습이길 바라는가? 재재만의 유니버스… 대체 뭘까? 드라마 <검색어를 입력하세요 WWW>를 보면 기업 대표를 비롯해 요직에 있는 임원 등 다양한 여성이 등장한다. ‘내 야망에는 계기가 없다’고 당당하게 말하는 사람, 너무 좋다. 그렇게 다양한 욕망을 지닌 캐릭터들이 자연스럽게 융합해 살 수 있는 세계였으면 좋겠다. 마지막 회 엔딩 봤나? 양옆으로 바다가 펼쳐진, 쭉 뻗은 도로 위를 세 여자 주인공이 오픈카를 타고 질주하는 모습을 보면서 영화 <델마와 루이스>의 마지막 장면이 떠올랐다. 영화 속 그들은 벼랑 끝으로 향하지만 드라마 속 세 여성은 자신들의 야망을 자유롭게 펼치면서도 비극적 결말이 아닌 희망찬 결말로 향한다. 그런 결말이 존재할 수 있는 세상이 재재만의 유니버스가 아닐까. 여
성이 자유롭게 사람인 채로 살아도 되는 긍정적인 세상.

여성이 성취욕과 야망을 숨기지 않아도 되는 그런 세상? 이러다 망하면 또 큰 망신인데.(웃음) 일단 뭐 지르는 거다. 뻔뻔한 게 중요한 것 같다. 뻔뻔하게 살아남아야 한다.

유튜버 재재

선글라스 젠틀몬스터×펜디(Gentle Monster×Fend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