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기 스타화보

베이지 롱 코트, 화이트 셔츠, 네이비 팬츠, 타이 모두 드리스 반 노튼(Dries Van Noten). 블랙 로퍼 살바토레 페라가모(Salvatore Ferragam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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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원 버튼 재킷, 도트 프린트 셔츠, 블랙 트라우저, 커머번드 모두 지방시(Givenchy), 메탈 디테일 블랙 로퍼 벨루티(Berlu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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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지 싱글 브레스티드 재킷, 베이지 팬츠 모두 산드로(Sandro), 화이트 스니커즈 살바토레 페라가모(Salvatore Ferragamo), 티셔츠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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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 그린 더블 체크 재킷, 다크 그린 체크 트라우저, 하이넥 셔츠 모두 우영미(WooYoungMi), 블랙 워커 알렉산더 맥퀸(Alexander McQueen).

드라마 <모두의 거짓말>은 <뷰티 인사이드>가 끝나고 1년여 만의 작품이다. 연기하지 않는 시간 동안 뭘 하며 지냈나? 스스로도 의아할 만큼 뭘 하며 지냈는지 모른 채 시간이 빨리 지나갔다. <뷰티 인사이드> 촬영이 끝나고 감독판 DVD를 위한 작업도 했고 동남아의 작은 섬으로 짧은 일정의 여행도 다녀왔다. 섬에서 스쿠버다이빙을 하고 가만히 누워 있기도 하고 그랬다. 외로움도 여행의 일부라고 생각하며 혼자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모두의 거짓말>을 일찌감치 제안받은 터라 홀가분하게 다른 일을 할 수는 없었다. 그동안 스릴러라는 장르를 크게 관심을 가지고 보지 않았기 때문에 장르에 대해 공부했다. 그러다 보니 시간이 금세 지나가더라.

작품을 하지 않는 동안 주어지는 많은 시간을 규칙적으로 보내는 편인가? 어릴 때는 깨어 있거나 자거나 노는 시간이 모두 그냥 내 시간이었다. 그런데 어느 때부터 하루를 규칙적으로 보내야 정신적으로 안정감이 들더라. 지금은 매일 아침을 운동으로 시작하는데, 운동을 하면 하루를 밝은 기운으로 시작할 수 있다. 호르몬의 영향도 있겠지만 좋은 에너지를 얻는 것 같다. 그런 다음엔 정해진 일을 한다. 그 주에 읽기로 한 책이 있으면 읽고 만나기로 한 사람이 있으면 만나고. 작품을 하지 않을 때도 되도록 루틴에 따라 움직인다. 하루가 정리되어 있어야 맘이 편하다. 전에는 정해져 있으면 갑갑하고, 규칙이 스트레스로 다가왔었다. 그런데 지금은 나를 최소한으로 잡아주는 어떤 틀이 있는 편이 좋다.

<모두의 거짓말>은 처음 하는 장르물이고 형사를 연기한다. 전작과 인물의 결이 많이 다를 것 같다. 사실 캐릭터는 크게 특별할 건 없다. 그래서 끌렸다. 장르물은 보통 사건 중심인데 <모두의 거짓말>은 사건을 따라가다 보면 사람한테 빠지는 드라마가 될 것 같다. 드라마나 영화 속 형사들은 보통 뛰어난 능력을 하나씩 가지고 있다. 머리가 비상하거나 모든 것을 기억하거나 그런 능력. 그런데 내가 연기하는 ‘조태식’은 지극히 보통 사람이다. 그 보통 사람이 어떤 사건을 맞닥뜨렸을 때의 느낌이 좋았다. 평범한 30대 후반의 형사가 되고 싶어 살도 좀 찌웠다. 전작인 <뷰티 인사이드>와 <이번 생은 처음이라>에서 내가 연기한 인물은 사실 보통 사람이 아니지 않나. 굉장히 이상적인 인물들이다. 반면 이번에 연기하는 인물은 강인해야 할 때 강인하고, 여릴 때 여리다. 어떤 환경에 처했을 때 그 환경에 따라 대응하는 보통 사람이다.

스릴러라는 장르에 지금껏 큰 관심이 없었음에도 이번 작품을 선택한 결정적인 이유가 뭔가? 우선은 이윤정 감독과의 인연. 감독님이 연출하는 작품이라기에 선뜻 시나리오를 받아 들었고 첫 장을 읽으며 꽂혔다. ‘훗날 이 시대의 비극이 뭐냐고 묻는다면 악한 이들의 아우성이 아니라 선한 이들의 침묵일 것이다.’ 드라마가 이런 메시지를 전할 수 있다고? 그렇다면 하고 싶다, 할수 있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지난 <마리끌레르>와의 인터뷰에서 캐릭터를 준비할 때 뭔가 손으로 끄적인다고 했다. 이번 인물도 그런 식으로 준비를 했나? 보통의 사람이어서 이번에는 특별히 끄적일 만한 내용이 없었다. 대신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써봤다. 이 인물을 연기하는 동안 내가 하지 말아야 할 일이 무엇인지 적었다. 아무래도 전작을 통해 습득한 것들이 있을 텐데, 그게 무언지 곰곰이 생각했다. 사실 그 모든 걸 종합하면 ‘멋있지 말자’다.

채우기보다 덜어내는 과정이 필요했을 것 같다. 그렇다. 각 잡지 않고 지내려고 했다. 걸음걸이를 비롯한 여러 행동을 좀 헐렁헐렁하게 하려 했다. 또 스릴러라는 장르를 잘 알지 못해 관련 작품을 많이 찾아서 봤다.

대본 리딩을 할 때 이윤정 감독이 이‘ 계절이 좋은 계절로 기억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지향하는 현장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었다. 일하다 보면 개인의 기분이나 컨디션도 굉장히 중요하지 않나. 그런데 내 개인적인 감정이 내 태도가 되어서는 안 된다. 이 작품을 위해서 모였으니 다 같이 좋은 마음으로 하자, 그런 마음으로 모였으니 우리에겐 좋은 계절이 될 것이라는 의미가 아니었을까? 그런데 정말 현장이 아름답다. 배우와 제작 스태프들이 그런 현장을 만들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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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 하이넥 셔츠 코스(COS). 블랙 울 팬츠 준지(Juun.J).

<모두의 거짓말>은 배우 이유영을 비롯해 많은 배우가 함께한다. 한두 명의 주연배우가 극을 이끌어가는 작품과 달리 여러 인물이 하나의 작품을 완성해가는데 이 역시 전작들과 다른 점일 것 같다. 다양한 인물이 등장한다. 그나마 내가 상대하는 인물이 많은 편이다. 형사라서 수사하러 가면 국회의원들도 만나니까. 여러 캐릭터와 호흡을 맞추니 또 다른 재미가 있다. 그런데 이 드라마는 촬영하는 나조차 내용을 절반밖에 모른다. 나머지는 방송을 봐야 알 수 있다. 드라마는 보통 대략적인 분위기를 가늠하게 되는데 이번에는 그렇지 않다. 대본이 어떻게 완성될지 궁금하다.

데뷔작인 <베스트극장: 태릉선수촌>(이하 <태릉선수촌>)을 함께 한 이윤정 감독과 하는 작업이니 문득 그 시절이 떠오르기도 할 것 같다. 그때는 감독과 배우 모두 지금보다 어리고 모든 것이 서툴던 때가 아닌가? 가끔 감독님과 그때 더 잘했던 것 같다고 얘기한다.(웃음) 10여 년이 지나 만났는데 그때 보다 훨씬 잘해야 할 텐데 부담이라고 했더니 감독님도 같은 마음이라고 하더라. 사실 이번에도 감독님과 내게 많은 것이 처음이다. 장르물도 처음이고. 그런데 우리 둘 다 그때와 크게 달라진 것 같지 않다. 나는 사실 시간이 많이 지났으니까 감독님이 그때보다 조금은 권위적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여전히 현장에서 다른 스태프들과 다를 바 없는 모습이다. ‘이 드라마는 모두가 함께 하는 일이야. 여기에 누구 하나 특출한 사람은 없어.’ 감독님은 이런 생각으로 현장에 있는다. 사람 변하지 않는 것 같다. 서로 그때랑 똑같다고 한다.(웃음) 그리고 감독님이 예민하게 지켜보고 반응하는 면도 여전하다. 아니, 그런 면은 오히려 더 좋은 쪽으로 변한 것 같다.

과거에 같이 일하며 좋은 기억을 남긴 사람과 다시 일하는 건 좋은 일일 것 같다. 아주 좋다. 일단 인간적인 신뢰가 있고. 같은 말을 해도 섞이는 감정에 따라 다르게 들리는데, 작품을 함께 하고 나면 서로 마음에 닿는 부분이 많아진다. 그래서 소통도 훨씬 편하고.

배우로서 <태릉선수촌> 때와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은 무언가? 그때는 연기하는 게 꿈 같았다. 그런데 지금은 일 같다. 그래서 지금이 더 어렵고 힘들다. 꿈은 꾸면 되는 건데 일은 잘해내야 하니까. 마음의 무게가 달라진 것 같다.

배우는 현장에서 자신이 맡은 캐릭터를 연기하는 사람이자 한 작품을 다른 사람들과 같이 만들어가야 하는 위치에 있다. 작품을 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가? 다짐하지는 않았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확신할 것, 불안해하지 말 것, 그렇게 현장에 있을 것인 것 같다. 내가 그래야 함께 작업하는 스태프들이나 배우들도 굳건하니까. 드라마는 촬영 기간도 길고 힘들지 않나. 모두가 예민할 수 있는 곳이다. 그런 현장에서 평온하게 있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 같다. 내가 예민해지거나 지쳐 있으면 작품과 현장 분위기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겠지.

흔들리지 않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 또 없다. 언제라도 예상치 못한 순간을 맞닥뜨릴 수 있으니 말이다. 가장 좋은 건 흔들릴 법한 작품을 선택하지 않는 거지.(웃음) 확신이 잘 서지 않을 때는 조심스럽게 다가가게 된다.

드라마는 영화와 달리 매회 끝날 때마다 반응을 알 수 있다. 그런 피드백이 배우의 연기를 흔들 수도 있고. <뷰티 인사이드>도 초반에는 배우 이민기가 설정한 연기를 놓고 호불호가 갈렸다. 그럴 때는 확신이 의문으로 바뀔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러지 않았다. 확신이 있었거든. 초반에 주변 반응을 보고, 그렇다면 내가 캐릭터 해석을 다르게 해야 하나? 이런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캐릭터에 대한 내 해석이 맞다고 생각했고 이 인물을 다른 식으로 풀어야 했다면 이 역할을 맡지 않았을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다행히 그런 마음이 잘 전달되었다. 내가 연기할 때 확신이 없는 채 긴가민가했으면 흔들렸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기 때문에 괜찮았다.

<태릉선수촌>의 마지막 회 소제목이 ‘봉우리’였던 걸 기억하나? 아마도 봉우리가 누군가의 목표, 선수들의 목표, 인간으로서의 목표를 의미했던 것 같다. 여전히 오르고 싶은 목표가 있다면 뭔가? 운동선수들의 목표는 보통 세계 대회 금메달이지만 <태릉선수촌>에서 내가 오른 봉우리는 동메달이었다. 높은 봉우리를 오르는 것이 전부는 아니다. 내가 어떤 봉우리를 넘었다고 해서 다음에 넘게 될 봉우리가 꼭 더 높지는 않을 수 있다. 중요한 건 봉우리 자체보다는 어떤 봉우리든지 올랐을 때보다 올려다볼 때 설렌다는 거다. 그리고 그 설렘을 품고 봉우리를 오를 열정이 계속 솟으면 되지 않을까? 그러길 바란다.

열정이 여전히 충만한가? 열정의 방식이 다른 것 같다. 마냥 뜨겁지만은 않다. 20대에는 마냥 뜨거웠다. 열정과 열기를 방출했는데 점점 일로 다가오면서 신중해졌다. 이제는 무작정 열기를 표출하기보다는 좀 다듬어졌다고 해야 하나? 나이가 들면 자연스레 무던해지는 것 같다. 그게 좋은 점이기도 하고 때론 무던해져서 힘들다. 배우로서 좀 더 예민하고 날카로운 감성을 가져야 할 것 같은데 게으르고 나태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러다 다시 그런 내가 편하게 느껴지고. 상반된 마음이 교차한다. 나이 드는 것에 관한 책을 보면 ‘인생은 살수록 행복하다’고 말하는데, 그런 말에 수긍하다가도 오‘ 늘이 내가 가장 젊은 날이니 뭐라도 해야 하는데’ 하며 조급해진다.

<모두의 거짓말>로 함께하는 지금의 계절이 어떤 계절로 기억되길 바라나? 궁금한 계절이 되려나? 보통 드라마를 할 때 시놉시스를 보면 어떤 식으로 진행되고 끝맺을지 알 수 있는데 이번 작품은 이후 상황을 알려주지 않는다. 배우만이 아니라 스태프들도 모른다. 작가와 감독님만 안다. 우리 모두 모른 채 있기로 약속했다. 가끔 주인공이니 내용을 알지 않느냐며 나를 추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나도 정말 모른다.(웃음) 그래서 기다리는 재미가 있다. 다음 내용이 궁금해지고.

아직 드라마가 방영되지 않았지만 이 드라마가 끝나고 <모두의 거짓말>이 본인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까? 7개월 넘게 이 작품에 몸담고 이 작품을 위해 고민하며 시간을 보냈으니 그 시간만큼 넓어지든 깊어지든 혹은 무언가를 덜어내 가벼워지든 아니면 뭔가 쌓이든 풀어지든 했으면 좋겠다.

이민기 스타화보

라운드 칼라 반코트 누메로벤투노 바이 한스타일(N˚21 by Han Style), 블랙 울 팬츠 준지(Juun.J), 블랙 앵클부츠 코스(COS), 화이트 니트 스웨터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