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드러운 파도처럼 일렁이는 러플을 향한 로망은 여성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꿈꿨을 만하다. 러플의 이미지가 이토록 로맨틱한 판타지와 직결되어 있기 때문에 오트 쿠튀르 컬렉션에선 구름처럼 폭신하고 거품처럼 풍성한 러플 퍼레이드가 적잖이 펼쳐지곤 한다. 그렇다 하더라도 2019 F/W 시즌 레디투웨어 컬렉션에는 ‘러플’을 주요 요소로 선택한 디자이너가 유독 많이 눈에 띄었다. 토모 코이즈미, 마리 카트란주처럼 쿠튀르 컬렉션을 방불케 할 만큼 머리부터 발끝까지 풍성한 러플로 과감하게 도배한 드레스 라인을 선보인 디자이너들이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것.

특히, 2019 F/W 시즌 뉴욕 패션위크에서 데뷔한 토모 코이즈미는 일본 최상급 폴리에스테르 오간자 러플을 페이스트리처럼 겹겹이 쌓아 올려 건축적인 실루엣을 구현한 드레스로 일약 스타 디자이너 반열에 올랐다. “어릴 적 즐겨 본 애니메이션 <세일러문>에서 아이디어를 얻었어요. 관객에게 동화 같은 판타지를 선보이고 싶었죠.” 그가 소녀들을 위해 디자인했다는 이 드레스들은 러‘ 플 갑옷(Ruffle Armour)’이라고 명명되며 큰 인기를 끌었다. 마리 카트란주는 또 어떤가. 빅뱅 이론과 자연을 근사하게 오마주하기 위해 무지갯빛 러플을 선택한 그녀의 판단은 옳았다. 움직일 때마다 드라마틱하게 굽이치는 러플은 바다, 바람, 화산 등 자연을 떠올리게 하기에 충분했으니까. 1930~70년대를 주름잡은 할리우드 배우의 무대의상이 연상될 만큼 화려한 러플 컬렉션을 선보인 로다테 역시 눈여겨볼 만하다.

반면, 러플을 보는 고정관념을 쿨하게 탈피한 컬렉션 역시 속속 눈에 띄었다. 굽이치는 러플을 어깨선이나 칼라, 헴라인에 포인트로 활용한 디자이너들의 영민한 감각이 호평을 받은 것. 매 시즌 힙스터들에게 사랑받는 발렌시아가는 구조적인 하이넥 블라우스의 네크라인과 숄더에 러플을 달아 기묘한 분위기를 연출했고, 보테가 베네타도 팬츠 수트 안에 깊게 파인 브이 네크라인을 따라 주름을 잡은 블라우스를 매치해 감각적인 스타일을 완성했다. 이 밖에도 속이 훤히 비치는 시스루 톱과 러플을 층층이 포갠 스커트와 슬라우치 부츠로 스타일링한 생 로랑, 베스트 어깨를 러플로 강조한 이자벨 마랑, 빳빳하게 날 선 러플을 곳곳에 장식한 루이 비통 등 내로라하는 브랜드의 컬렉션에서 러플이 크나큰 존재감을 발휘했다.

“러플은 참 지능적인 디테일이에요.(A ruffle must be intelligent.)” 크리스토발 발렌시아가가 남긴 이 유명한 말처럼 러플의 활용도는 기대 이상으로 높다. 그러니 올가을 다양한 스타일의 러플에 집중해보길. 이 매력적인 요소를 향유하기에 더없이 좋은 계절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