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연 <한겨레> 젠더데스크

언어가 이끄는 변화

지난해 신설된 한겨레신문사의 젠더데스크는 콘텐츠의 성 인지 감수성에 대한 의견을 수렴하고 젠더 이슈를 논의하는 역할을 한다. 성 인지 감수성에 맞지 않는 표현과 용어, 일러스트와 사진 등은 수정하거나 교체하기도 한다. 심의라기보다는 구성원 전체가 젠더 이슈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의견을 개진하며 변화가 필요하다고 느끼는 부분은 함께 바꿔나간다. 한겨레신문사의 이정연 기자는 지난 4월부터 젠더데스크를 맡았다.

먼저 젠더데스크의 역할을 소개해주십시오. 편집국은 지면 기사와 디지털 기사 등 다양한 콘텐츠를 생산합니다. 이런 콘텐츠가 젠더 감수성에 비춰 합당한지, 누군가에게 이차적으로 피해를 주지는 않는지 살펴보고 문제를 제기하는 역할을 합니다. 지난해 5월 만들어진 젠더데스크의 시작점은 사내 학습 동아리인 ‘페미라이터 인 한겨레’입니다. 강남역 살인 사건과 미투 관련 보도 등이 터져 나오던 시기에 페미라이터를 만들었고, 모임에서 젠더를 주제로 한 여러 이야기가 오갔어요. 자연스레 <한겨레>의 성폭력, 젠더 관련 기사의 표현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게 됐고 관련 영상과 사진이 적절한지에 대해서도 고민하게 됐습니다. 그러다 이러한 내용을 전반적으로 검토할 수 있는 곳이 있으면 좋겠다는 의견이 나왔고 젠더데스크의 필요성을 지속적으로 제기한 끝에 만들어졌습니다.

페미라이터 모임에서 자사 기사도 리뷰했을 텐데, 기사의 어떤 부분이 동시대 젠더 감수성에 미치지 못한다고 생각했나요? 사실 <한겨레>의 기사를 검토하는 일은 늘 조심스럽습니다. 개인에 대한 지적이 아닌데도 콘텐츠를 검토하다 보면 이를 만든 사람에 대한 지적으로 느껴질 수 있기 때문 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성폭력 스캔들 관련한 사진 기사에서 짧은 치마를 입은 피해 여성이 법정에 출두하며 구두를 벗고 보안검색대를 지나는 장면을 찍은 사진을 사용했습니다. 또 성폭력 관련 보도에 사용하는 일러스트에 가해자의 범죄 사실이 중요한 문제임에도 위축되어 있는 피해자를 담은 일러스트가 쓰일 때도 있었습니다. 젠더데스크가 생기기 전에는 페미라이터 단체 채팅방에서 이런 의견을 주고받았습니다.

페미라이터를 만든 이유가 궁금합니다. 미투 운동이 한창일 때 우리의 보도 방향에 불만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밀레니얼 세대가 입사하며 후배 기자들도 분명 의문을 가진 부분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죠. 젠더 이슈에 예민하고 민감한 기준으로 문제 제기를 하고 싶어 하는 동료들이 있을 거라는 생각에 처음에는 몇몇이 관련 책을 읽는 독서 모임으로 시작했습니다.

젠더데스크의 보도 가이드라인이 궁금합니다. 사용하지 않는 단어에 대한 지침이 있나요? 최근 오거돈 전 부산시장의 권력형 성범죄가 문제가 됐습니다. 당시 <한겨레> 디지털 기사에서 피해자에게 불안감을 줄 수 있거나 2차 가해로 이어지는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이를 본 피해자가 문제를 제기했고 <한겨레>는 바로 공식적으로 사과했습니다. 물론 지면에는 문제가 되었던 표현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젠더데스크의 성범죄, 성 평등 관련 기사 보도 가이드라인이 있습니다. 여직원, 여배우, 여판사 등 직업 앞에 ‘여’자를 붙이지 않고, 꼭 필요할 때는 여성 OO라고 쓸 것, 성범죄 관련 사건을 거론할 때 피해자 이름이 아니라 가해자 이름을 사용할 것, 가해행위가 모호하게 표현되는 몹쓸 짓이나 검은 손, 나쁜 손, 파렴치한 짓 등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말 것, 성폭력이 범죄란 점이 희석되는 성관계나 성 추문이라는 단어 대신 성범죄나 성폭력 범죄라는 단어를 사용할 것, 만취해 참변이나 나 홀로 거주처럼 피해자가 방어에 취약한 상태이기 때문에 성폭력이 발생한 것처럼 보일 수 있는 표현은 쓰지 말 것, 가해자를 짐승이나 늑대, 악마로 표현하지 말 것, 은밀한 부위라는 표현을 쓰지 말고 신체라고 표현할 것, 몰래카메라가 아니라 불법 촬영물, 리벤지 포르노가 아닌 보복성 영상물, 음란물이 아닌 성 착취물이나 성 착취 동영상이라 표현할 것 등이 있습니다.

젠더데스크의 의견을 반영해 수정하는 부분도 있나요? 많습니다. 최근 최말자 씨의 56년 만의 미투 기사를 <한겨레>에서 단독으로 보도했는데, 첫 보도 이후 부제로 ‘56년 만의 미투 최말자 할머니 재심 청구’라고 썼습니 다. 일본군위안부 피해자에 한해서 할머니라는 표현은 계속 쓰고 있지만, 이 외에는 성별이 드러나는 용어를 지양하고 있어요. 한 주체에게 굳이 할머니라는 단어로 이미지를 덧씌우지 않으려는 태도입니다. n번방 성 착취 범죄와 관련해서도 20대 국회에서 3대 법안을 빨리 통과시켜야 한다는 내용의 기사에서 지면에 정부에서 합동으로 대책안을 발표하는 사진과 더불어민주당이 빨리 통과시켜야 한다는 의견을 발표하는 기자 간담회 사진을 실었습니다. 이를 보고 기사에 필요한 사진은 여성들의 시위 사진이라고 판단해 사진을 교체했습니다.

기자 한 명이 젠더데스크를 담당하고 있으니 자신의 젠더 감수성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도 필요할 텐데요. 서울 YWCA가 만드는 대중매체 보도 모니터링 보고서가 있습니다. 예전 보고서도 찾아 읽어보곤 합니다. SNS도 도움이 많이 돼요. 언론 보도에 대한 비평의 글이 자주 올라오는데 생각지 못했던 부분을 지적하면 좋은 자극이 되고요. 또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요구를 들을 수 있습니다.

젠더 감수성의 변화가 느껴지는지요. 물론입니다. 회사 안에서도 그런 변화가 느껴집니다. 성 인지 감수성에 부합하지 않는 단어나 표현을 지적하면 수용하는 태도가 완전히 달라졌어요. 젠더데스크가 하자는 대로 다 하겠다며 응원하는 동료 기자도 있고요. 기사가 지향하는 방향성이 기민하게 변화하고 있어요. 사실 기자 입장에서는 기사 수정을 요청하면 방어적인 태도를 보일 수 있는데도 모두 잘 수용해요. 편집국의 편집위원 가운데 여성 비율도 높아졌고요. 개인적으로는 어디까지 밀어붙일 것인지도 고민합니다. 언론이 앞서 나가고 방향성을 제시하는 면도 있지만, 현재 대중의 언어 역시 중요하기 때문에 회사 입장에서 상식 수준을 잘 지켜가고자 해요.

처음 젠더데스크를 맡고 가장 크게 고민한 부분은 무엇인가요? 페미라이터를 만들었고, 꾸준히 활동해왔기 때문에 어떤 일을 해야 할지는 잘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구성원들이 상처받지 않고 변화를 잘 받아들일 수 있을지 걱정했어요. 또 미처 모니터링하지 못한 빈틈에서 큰 사고가 터질지 모른다는 걱정도 했습니다. 얼마 전 오거돈 전 부산시장의 성범죄 관련 보도도 속보로 나가면서 부적절한 표현이 있어 한겨레사는 적극적으로 사과 했어요. 온라인 기사에 사과 문구를 넣는 데 그치지 않고 지면에 한 번 더 사과문을 올렸습니다. 국장과 편집위원 모두 적극적으로 사과문을 올려야 한다는 입장이었습니다. 피해자의 입장을 대변하며 함께 싸우고 있는 부산 성폭력 상담소에도 전화를 걸어 피해자에게 사과의 말을 전했고요. 실수는 있을 수 있는 일이지만 이에 대한 대응을 보며 성 인지 감수성이 크게 나아 지고 있다는 것을 체감했습니다. 제가 젠더데스크를 맡은 지 한 달쯤 되었고, 그 전에는 임지선 젠더데스크가 있는 동안 좋은 방향으로 변화했습니다. 페미라이터 채팅방에서 오가던 내용이 이제는 공식적인 입장과 방향 성이 되어가는 변화가 흥미롭습니다.

n번방 보도와 관련해 언론사마다 조금씩 다른 단어를 사용합니다. 하지만 <한겨레>에서는 n번방 성 착취라고 표현하는데, 단어를 신중하게 골랐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언론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는 사건을 보도 하는 과정에서 분명하게 이름을 짓고 호명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성 착취라는 범죄 유형을 명확히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n번방 성 착취 범죄를 취재한 기자에 따르면 취재 당시 n번방에서 유포되는 영상은 성을 착취한 불법 영상물이고, 이를 시작점 삼아 취재가 시작되었지요. 엄연한 범죄에 대해 명확히 이름 짓지 않으면 언론을 신뢰하고 의지하며 제보할 수 없을 겁니다.

지금도 n번방 성 착취 관련 보도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다른 언론사도 마찬가지고요. 기사 가운데 성 인지 감수성이 떨어지는 기사도 그치지 않고 만들어지는 것 같습니다. 언론사들이 경쟁적으로 잠입 취재를 하고 있습니다. 이런 취재가 문제를 해결하는 데 과연 얼마나 도움이 될지 의문이에요. 한겨레사 취재팀은 잠입하지 않았습니다. 실제로 돈을 내고 들어가지 않은 거죠. 그렇게 하지 않아도 충분히 취재할 수 있었습니다.

<한겨레>에서는 앞으로도 n번방 성 착취 범죄 관련 취재를 꾸준히 지속할 예정인가요? 아직 밝힐 수는 없지만 후속 취재를 준비 중입니다.(인터뷰가 있고 일주일 뒤 <한겨레>는 성착취와 불법도박 산업의 공생 관계 실태를 다룬 ‘n번방과 불법도박, 범죄의 공생’ 4회 기사 중 1회 기사를 공개했다.)

현재 SNS에서도 n번방 가해자 처벌을 위한 해시태그 공세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과거 여론을 들끓게 한 성범죄도 가벼운 처벌로 끝난 적이 많습 니다. 이런 움직임이 과연 세상을 변화시키는 데 영향을 미칠지 회의감마저 드는데요. 그렇다 해도 여론이 지속적으로 사건에 관심을 보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뜨거운 여론이 있기에 언론에서도 좀 더 취재하려고 하고 경찰도 제대로 수사하겠다고 움직이고 있거든요. 여론이 있어야 세상이 조금씩 달라진다고 생각합니다. n번방이 많이 알려지지 않았을 때만 해도 이 사건을 경찰에 신고했을 때 증거물을 가져와 보여줄 때까지 제대로 수사를 진행하지 않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그럴 수 없습니다. 이것만으로도 변화한 게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