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 그라치아 치우리를 처음 만났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단어는 ‘화산’이다. 작은 체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위엄이 가히 압도적이었기 때문이다. 마리아는 단정하게 빗어 넘긴 백금발과 미니멀한 검정 샌들, 흰색 티셔츠와 캐주얼한 청바지 차림이었고, 베네치아의 전설적인 주얼리 숍 아틸리오 코도냐토(Attilio Codognato)에서 산 해골 반지를 낀 채로 등장했다. 그는 길들일 수 없는 반항아 이미지와 럭셔리 산업의 권위자다운 보수적인 강인함을 동시에 지녔으며, 고급스러움 그 자체로 보였다. 디올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재임한 지 5년 차인 지금 그는 자신만의 색을 명확하게 드러내고 있다. 외면이 아니라, 온전히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는 모습에서 말이다. 재능과 자유로움, 문화와 열정을 모두 녹여내는 일에는 거짓이 없어야 한다. 순수하게 자신을 드러내야만 한다. 마리아는 옷이 육체의 첫 번째 집이라고 말한다. 그런 그를 지켜보는 동안 여성이 걸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옷은 지성미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또, 딸 라켈레를 바라보는 그의 눈빛을 볼 때는 유대감과 애정이 두 여성이 가진 가장 큰 무기가 아닐까 하는 부러움에 휩싸였다.

올해 스물네 살인 라켈레는 디올의 컬처 카운슬러로 재직 중이다. 큰 키와 화려한 외모를 가진 라켈레는 가죽 코르셋 벨트가 달린 청바지를 입고 나타났다. 타오르는 듯한 눈동자는 어머니를 쏙 빼닮아 또 하나의 작은 화산 같은 인상을 풍겼다. 두 사람의 이탈리아 바닐라 아이스크림 같은 피부는 각도에 따라 환하게 빛나기도, 부드럽게 음영이 지기도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강렬한 인상을 남긴 건 카리스마 넘치는 눈매다. 마리아 그라치아 치우리의 눈빛은 대상을 제대로 바라볼 줄 아는 사람의 그것이며, 무력감을 느끼는 사람들에게 생기 넘치는 에너지를 불어넣는다. 아프리카, 인도 등 세계 도처에 있는 장인들과 협업해 컬렉션을 준비할 때마다 그는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을 이런 눈으로 바라봤을 것이다. 이런 눈으로 옷을 만들기 때문에 그의 옷을 선호하는 여성들은 인위적인 인형이 아니라 앞으로 나아갈 줄 아는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진취적인 여성의 모습을 하고 있다.

그의 옷은 전형적인 명품으로 정의 내리기 어렵다. 시각적으로 아름다울 뿐 아니라, 길을 걷다 마주치는 보편적인 사람들의 옷차림으로도 손색없기 때문이다. 이탈리아 태생인 마리아의 현실 감각은 이런 면에서 탁월하다. 그는 세상 모든 여성에게 여행을 권한다. 세상을 탐험하고 타인의 삶을 경험할 수 있게 해주며, 자신에 대해 알게 되고 주변 상황을 더 넓게 이해할 기회를 제공하는 여행 말이다. 그는 2016년 컬렉션에서 우‘ 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한다(We should all be feminists!)’라는 문구를 넣은 티셔츠를 공개했다. 판매가가 5백50유로(72만여원)에 달하는 이 티셔츠는 단숨에 주목받았고, 도널드 트럼프 반대 시위 행렬에서도 심심찮게 발견될 정도로 의미 있는 아이템이 됐다.

치마만다 은고지 아디치에(Chimamanda Ngozi Adichie)의 유명한 책에서 인용한 이 문구는 그의 색깔을 확고히 하는 계기가 됐다. 그는 디올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된 이후, 우아한 아름다움을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전 세계가 주시하는 런웨이를 통해 패션이 가진 고정관념을 탈피하고 싶어 했다. 그리고 이 티셔츠 하나로 그 어려운 일을 해냈다. 옷이 가진 힘의 한계를 재정의한 것이다.

새 시즌의 디올 컬렉션이 열리기 며칠 전 마리아와 그의 딸을 만났다. 휴식 시간에 그는 사무실과 연결된 야외 테라스로 나가 담배를 피웠다. 이탈리아식 정원이 딸린 파리의 집에는 그의 손길이 잔뜩 묻어 있었다. 올리브 나무와 박하 화분, 레몬나무 뒤로 에펠탑이 보였다. 새로운 바람이 불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일주일 후면 셧다운 이후 첫 디올 패션위크가 열릴 예정이었다. 그는 쇼에 앞서 무대 위에 다양한 인종의 모델을 등장시켜 모호한 경계를 표현하고, 무게감이 느껴지지 않는 가벼운 천으로 패션의 언어를 묘사할 것이라고 했다. 또 런웨이가 끝나면 ‘우리는 모두 패션의 희생자다(We are all fashion victims)’라는 슬로건을 건 퍼포먼스를 펼칠 계획이라고 귀띔해줬다. 새 컬렉션은 ‘패션의 희생자’라는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고민할 거리를 제시하기 위한 쇼다. 이처럼 사회 비판적 메시지를 담은 ‘건전한 시위’가 패스트 패션의 메카인 패션쇼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마리아와 라켈레는 패션을 수단으로 삼아 세상의 편견이 낳은 오점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싶은 듯했다.

팬데믹으로 인한 위기 상황은 그의 삶을 혼란스럽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그는 ‘모멘토 모리(momento mori)’를 좌우명으로 삼는다고 고백했다. ‘언젠가 당신도 죽는다는 것을 기억하라’라는 의미의 이 라틴어 명구는 그가 평소에 지니고 다니는 반지의 이름이기도 하다. 이 말은 로마제국의 장군들이 승전을 자축하는 모습을 본 한 노예가 그들에게 다가가 언젠가는 당신들 역시 죽을 테니 인생을 겸손하게 살라고 충고했다는 일화에서 유래했다. 그와 매력 넘치는 인터뷰를 진행하는 동안, 문득 이 문구가 권력과 겸손 사이에서 중용을 지키려고 애쓰는 그의 태도와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두 시간 동안 이어진 대화를 마치고 자리를 떠날 때는 마리아에게 제대로 한 방 맞았다는 생각을 했다. 그가 대화를 통해 예상하지 못한 깨달음을 안겼기 때문이다.

 

라켈레 레지니가 입은 톱과 팬츠, 슬리브리스 포플린 셔츠, 마리아 그라치아 치우리가 입은 실크 셔츠와 데님 팬츠 모두 디올(Dior).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한다’라는
슬로건에는 단순한 컬렉션 컨셉트
이상의 가치를 부여하고 싶었다.

디올에서 일하는 동안 내 세계관을 세상에
널리 알리고 싶고, 더 많은 여성에게
제 목소리를 낼 기회를 제공하고 싶다.

 

라켈레 레지니가 입은 포플린 셔츠, 마리아 그라치아 치우리가 입은 실크 셔츠 모두 디올(Dior).

 

디올에 입사한 후 줄곧 여성주의에 관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이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이 있나? 마리아 우리 안에는 여러 모습이 공존하며, 그 안에는 서로 충돌하는 모순점 역시 존재한다. 여성의 정체성을 하나의 개념으로 정의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라켈레 어쩌면 사람들은 ‘이 옷은 남성복, 저 옷은 여성복’이라는 고정관념을 만들고, 그 안에서 안정감을 느끼고 싶어 하는 것 같다. 이런 고리타분한 틀에 순응하지 않는 건 흥미로운 일이다. 마리아 동의한다. 고정관념에서 벗어나는 일은 단순한 재미 이상의 감정을 느끼게 한다. 지금 같은 시대에는 더욱 그렇다. 팬데믹 때문에 자신에 대해 생각하는 방식도 변화했다. 집에 머물러야만 하는 고립된 상황에서 타인과 관계 맺을 수 있는 가능성을 박탈당한 탓에 타인의 시선을 통해 자신을 정의하던 일에도 혼란이 생겼다고 할까? 비교할 대상 없이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정직하게 바라보는 일이 장기화될수록 사회가 정의한 규율대로 스스로를 규정하는 건 쓸모없는 일이 될 것이다. 라켈레 이런 태도 자체를 자유를 위한 ‘첫째 규율’이라고 규정하고 싶다.

스스로 그 규율을 잘 지키고 있다고 생각하나? 마리아 당연하다. 물론, 더 잘 지키는 사람도 있겠지만 말이다. 이렇게 되기까지 끊임없이 노력했다. 자기 자신과 잘 지내야 타인과도 잘 지낼 수 있다는 사실을 늘 되새긴다. 라켈레 아직은 어렵게 느껴진다. 감정 기복이 심한 편이라 종종 생각이 오락가락한다.

라켈레에게는 어머니가 롤모델일 것 같다. 라켈레 맞다. 보통 롤모델이라고 하면 완벽한 누군가를 떠올린다. 그러나 나에게 어머니는 완벽하지 않은 존재고, 불완전성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줄 아는 사람이다. 그 부분이 존경스럽다. 사실 아직도 최고의 모습만을 보여줘야 한다는 강박을 느낄 때가 많은데, 어머니는 불완전해도 얼마든지 원하는 목표를 이룰 수 있다는 걸 증명하는 인물이 아닌가.

자유로운 삶이란 마리아와 같은 태도 속에서 이뤄진다고 생각하나? 마리아 꼭 그렇게 단정 지을 수는 없다. 어차피 이상적인 쾌락의 추구를 방해하는 사회적 제약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건 불가능한 일이니까. 라켈레 그렇지만 자유와 관계된 것은 맞다. 남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본인이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 건 곧 다른 사람의 시선에서 자유롭다는 뜻이다. 이건 꼭 해야하고, 저건 절대로 하면 안 된다고 가르치는 사회적 기대치에서 해방된 상태라고 볼 수 있지 않나. 물론 현실적으로 그런 경지에 이르기는 무척 어려운 일이다. 마리아 이런 태도는 나이와도 관계가 없다.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 수 있다고 매일 확신할 수만 있으면 된다. 도착 지점을 결정하지 않고 그냥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는 거다. 어디로 가고 있는지는 나 자신도 모를 때가 많지만, 무슨 상관인가. 나아가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그런 가치관은 어떻게 가지게 됐나? 라켈레 심리 상담의 효과가 아닐까 생각한다. 마리아 솔직히 상담을 하며 많은 도움을 받았다. 그 전에도 인생을 바라보는 관점이 지금과 비슷하긴 했지만, 그 후에 확실히 더 자각하게 됐고 그런 마음가짐으로 하루하루 살고 있다.

라켈레는 어떤 성향인가? 라켈레 삶의 목표를 확실히 정해놓는 편이다. 예전에는 이루고 싶은 것들을 목록으로 적어둘 정도였다. 스물세 살까지 대학 과정을 마치고, 그 후에는 대학원에 들어가고… 그렇게 살던 어느 날, 어머니가 “이제 그만 멈춰라”라고 하더라. 마리아 이미 넘칠 만큼 노력하고 있었으니까. 라켈레 어머니와 나 사이가 좋을 수밖에 없는 이유를 보여주는 일화다. 어머니는 결단력 있는 사람이다. 어머니가 내 어깨를 토닥이며 지금까지 충분히 잘해왔다고 말하던 때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마리아 인생을 살며 무엇을 할지 고민하는 게 중요하다. 누구나 사는 동안 많은 일을 이루는데, 그 모든 걸 꼭 해내야 한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이와 더불어 타인의 눈이 아니라 자신의 눈으로 스스로를 평가해야 한다. 내가 하는 일도 그렇다. 나는 패션을 제안하는 사람이지만, 제안한 옷을 어떻게 연출할지는 각자의 선택에 달렸다. 라켈레 어머니가 언젠가 한 말이 문득 떠오른다. “매력적인 사람이 되기 위한 방법, 자신감을 갖기 위한 방법이 꼭 한 가
지만 있는 건 아니다. 누구나 살면서 여러 종류의 자아를 가질 수 있다.”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한다’라는 슬로건이 적힌 티셔츠를 두고, 치마만다 은고지 아디치에는 이런 걸로 세상을 바꿀 수는 없다고 말했다. 동의하나? 마리아 세상을 바꾸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각자의 자리에서 재능을 발휘하며 최선을 다하면 그뿐이라고 생각한다. 그 슬로건에는 단순한 컬렉션 컨셉트 이상의 가치를 부여하고 싶었다. 디올에서 일하는 동안 내 세계관을 세상에 널리 알리고 싶고, 더 많은 여성에게 제 목소리를 낼 기회를 제공하고 싶다. 라켈레 앞서 말했듯이, 어머니는 자신의 생각을 다른 사람들과 나눠야 직성이 풀리는 분이다.(웃음) 요즘 같은 위기 상황에 패션이 유효한 의미를 가지는지 모르겠다. 마리아 패션은 단순히 옷을 찍어내는 일이 아니다. 한 시대에 대해 이야기하고, 질문을 던지는 작업이기도 하다. 우리는 패션이라는 수단을 통해 지적인 사고를 할 수 있다. 젠더 담론이나 문화적 도용을 둘러싼 논쟁을 패션이 얼마나 잘 풀어가는지 보면 이해할 것이다. 내가 하는 작업은 고민과 시도의 결과물이다. 라켈레 패션은 인간의 정체성이나 환경문제도 담아낼 줄 알아야 한다. 마리아 직물은 인류가 초창기에 만든 발명품 중 하나다. 직물이나 자수의 스타일을 해석하거나 개발하는 것 역시 역사를 이루는 걸음이라고 생각한다.

마리아는 청바지와 티셔츠를, 라켈레는 미니스커트를 입고 있다. 각자 옷차림에 대해 설명해줄 수 있나? 마리아 옷은 육체가 머무는 집이라 할 수 있다. 내 몸이 그 속에서 안정감을 느끼고, 자신감을 채울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편안함을 최우선으로 한다. 라켈레 나 역시 마찬가지다. 특히 걷기 힘든 신발이나 활동 반경을 제한하는 신발은 최악이라고 생각한다. 신발이 삶을 방해하는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어떤 구속도 원하지 않는다는 말로 들린다. 라켈레 구속이든 희롱이든, 그 어떤 제약도 받고 싶지 않다. 그저 내가 생각하는 여성에 대해 마음껏 표현할 뿐이다. 전통 사회가 강요한 여성성에 맞춰 산다면 숨이 막힐 것 같다. 몸을 제대로 가눌 수조차 없는 옷만 입어야 할 테니까. 마리아 자유로움과 거리가 먼 여성을 그려낸다는 건 내게도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렇지만 당신은 코르셋을 만들지 않았나. 이 행보가 모순으로 보일 거라는 생각은 안 하나? 마리아 자유로운 여성은 코르셋이 마음에 든다면 굳이 거부할 이유가 없다. 그걸 입고 당당하게 거리에 나설 수 있는 자신감은 있어야 할 테지만. 내가 만든 코르셋은 가볍고 편한 스타일이다. 라켈레 코르셋은 논란의 대상이 되는 옷이다. 만약 누군가 코르셋을 입는다면, 그게 아무리 편한 스타일이더라도 사람들의 눈에 절대 페미니스트로 비치지는 않을 것이다.

코르셋은 여성을 대상화하는 도구가 아닌가. 마리아 그것이 코르셋을 만들면 안 되는 이유가 되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런 편견이 싫다. 아다치에와 함께 작업한 이유도 이런 편견을 깨고 싶었기 때문이다. 페미니스트는 빨간 립스틱을 바르지 않는다든가, 하이힐을 신지 않는다는 정형화된 사고에서 탈피하자는 의도다. 옷은 하나의 놀이고, 변신의 도구이며 우리 안에 있는 여러 캐릭터를 보여주는 수단 중 하나일 뿐이다. 엘리자베스 여왕의 옷을 입는다고 해서 자유로운 여성이 아닌 건 아니지 않나. 라켈레 이 코르셋은 입어도 숨 쉬는 데 불편이 없다. 그래서 더 특별하다고 생각한다. 고전적인 코르셋처럼 입을 때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하지도 않다. 어머니의 손길이 닿은 작품에는 복합적인 문제를 정면 돌파하려는 의지가 담겨 있다. 페미니스트지만 코르셋을 입고, 하이힐을 디자인하며 마네킹 같은 모델과 함께 작업하는 일처럼 말이다. 타협으로 가득한 세상을 모험하는 여정에 비유할 수도 있다. 마리아 세상의 그 어떤 일도 흑백논리로 단정지을 수 없다. 이분법적 사고는 지양해야 한다. 현실은 그보다 더 복잡하니까. 물론 나를 포함해 많은 디자이너들의 작업을 껍데기에 불과한 피상적인 일이라고 비꼬는 사람들은 어딜 가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환경문제와 관련해 패션의 종말이 도래할 거라고 선언하는 사람도 많다. 마리아 패션은 인간의 욕망 그 자체를 의미한다. 패션 산업이 지구 환경에 피해를 끼치고 있는 건 자명한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아무것도 제작하지 않고 소비하지 않는 것이 해법일까? 우리는 그저 인간일 뿐이다. 욕망을 채울 때 비로소 살아 있다고 느끼는 존재다. 패션 디자이너로서 풀어야 할 숙제는 해결하기 힘든 환경문제와 인간의 욕망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점을 찾는 일이다.

어쨌든 패션 산업이 환경에 끼친 피해를 부인할 수는 없지 않나? 마리아 복잡한 문제다. 환경오염과 지속 가능성에 관한 문제는 생산에만 국한한 것은 아니다. 의류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일자리 문제와도 직결된다. 우리는 자본주의 사회에 살고 있고, 경제구조 자체가 지구 환경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단시간에 바꿀 수는 없다. 그래서 일자리는 유지하되, 지구에 남는 쓰레기를 최소화하는 절충점을 찾아가야 한다.

라켈레는 기후위기의 도래와 동시에 태어난 세대다. 패션과 환경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라켈레 패션은 현실의 다양한 문제를 반영한다. 생산 과정을 예로 들면, 유럽과 신흥공업국에서 무언가를 만들 때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젊은 세대는 패션을 둘러싼 이런 문제를 단순하게 여긴다. 빈티지 의류나 환경 친화적 의류를 구입하면서 자기만족에 그치는 경향도 더러 있고. 마리아 하나의 해결책만 존재한다고 단정해서는 안 된다. 또, 그 방법을 쉽게 찾을 수 있을 거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중요한 건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라켈레 수많은 사람이 패션 산업에 종사한다. 하루아침에 그들의 일터를 없애고 생산을 중단한다면 실업자들은 어떻게 되겠나! 시급 1유로라도 벌어야 살 수 있는 사람들의 재취업은 어떻게 보장하나.

영국의 한 매체에서 라켈레를 ‘마리아 그라치아 치우리의 히든카드’라고 표현했던데. 마리아 맞다.(웃음) 라켈레는 나의 에이스다.

라켈레는 컬처 카운슬러로서 어떤 일을 하나? 라켈레 젠더 담론과 문화적 도용, 그 외에도 사회 전반에 걸친 담론을 패션에 접목하는 일을 한다. 이 연계 작업을 완벽하게 해낸 사람은 아직까지 없는 것 같다. 컬렉션마다 프로젝트
를 추진할 예정이다.

프로젝트는 어떻게 진행하나? 라켈레 먼저 책이나 영화를 자주 접하며 좋은 소재를 물색한다. 그 이후에 어머니가 최종 테마를 고르는 방식이다. 최근에 선보인 디올 컬렉션 중 ‘크루아지에(Croisi re)’는 이탈리아 풀리아 지역을 배경으로 한다. 지역 장인들의 노하우와 더불어 어머니와 지역의 관계를 재조명했다. 이 주제에 대해 대화를 많이 나눴다. 특히 데 마르티노가 쓴 <사우스 앤 매직>이란 책은 이 지역이 지닌 힘에 대해 알려줬고, 많은 영감을 주었다. 셀린 시아마 감독의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역시 마찬가지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해변의 미장센은 무척 인상적이다. 두 배우가 아름다운 목도리를 두르고 있는데, 그 영향으로 컬렉션 룩에도 목도리를 매치했다. 마리아 처음 디올에서 함께 일하자고 했을 때, 라켈레가 거절했었다. 켈레 함께 일할 때마다 어머니는 나를 사무적으로만 대한다. 이런 성향 때문에 가끔은 내가 당신 딸이라는 사실을 환기해주어야 한다.

자녀에게 지나치게 엄격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나? 마리아 원래 같이 일하는 사람들에게 엄격하게 대한다. 아니, 어떤 면에서는 모두에게 그런 것 같다. 나는 나 자신에게조차 매우 까다로운 사람이다.

딸과 함께 일해서 좋은 점은 무엇인가? 마리아 라켈레는 내 마음에 들기 위해 애쓰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솔직하게 말해서 좋다. 현실 감각이 떨어지지 않게 옆에서 계속 자극하기도 하고. 나만의 세상에 갇혀 있지 않게 도움을 준다.

두 사람의 관계를 한 단어로 정의한다면? 라켈레 강렬함이다. 마리아 가족 모두 서로 애착이 심한 편이다. 시간이 날 때마다 우리의 관계에 대해 심각하게 토론할 정도니까. 한마디로 뜨거운 관계다. 식을 틈이 없다.

권력자를 어머니로 두었는데 위압적이라고 느낀 적은 없나? 라켈레 위압적으로 느낄 정도는 아니다. 나 역시 누군가의 딸로서 대하기 쉬운 캐릭터는 아니다. 어머니는 인간적으로 멋진 사람이다. 알면 알수록 훌륭한 분이라는 걸 깨닫게 된다. 내 어머니이기 전에 하나의 인격체로서 말이다.

라켈레는 어떤 딸인가? 마리아 라켈레는 자신에게 지나치게 가혹한 경향이 있다. 이따금 타인을 대할 때도 그런 모습이 불쑥 튀어나온다. 자중하면 좋겠다고 느낄 때도 있다.

일을 하며 아이들을 키웠는데, 감당하기 힘들 만큼 바쁘진 않았나? 마리 그러진 않았다. 라켈레 나와 남동생은 엄마보다 아빠와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렇다고 엄마의 부재가 크게 느껴진 건 아니다. 엄마가 하루 종일 곁에 있지 않았던 게 지금 생각해보면 다행이다. 엄마와 늘 붙어 있을 걸 상상하면 악몽이 따로 없다.(웃음) 마리아 일을 그만둘까 고민한 시기도 있었다. 그때 남편이 말렸다. 아들이 태어났을 때도, 일을 1년가량 쉬고 난 후 남편이 복직을 권했다.

디올의 지난 컬렉션을 공개하는 쇼가 마리아의 고향인 풀리아 지역에서 열렸는데, 이유가 무언지 궁금하다. 마리아 디올은 늘 여러 나라의 장인들이 지닌 노하우를 널리 알리고 싶다는 갈증을 가지고 있었다. 문화적 도용을 둘러싼 문제가 자주 거론되는 때 아닌가. 이런 관점에서 볼 때, 그와 관련한 테마를 다루는 것이 시의적절하다고 판단했다. 곳곳의 장인들, 특히 자신이 하는 일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제대로 평가받은 적 없는 모든 여성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전파하고 싶다.

촬영하는 동안 모녀가 함께 춤을 추던데. 마리아 원래 춤추는 걸 좋아한다. 라켈레 가끔은 내가 어머니를 말리기도 한다. 마리아 춤을 추면 긍정적인 에너지가 몸속에 채워진다. 요즘처럼 희망 없는 날들이 지속될 땐 특히 춤이 필요하다. 격리 기간 동안 집에 머무르며 함께 자주 춤을 췄다.

첫 소절을 듣자마자 바로 춤추게 만드는 노래가 있다면. 마리아 도나 서머와 다이애나 로스의 음악을 좋아한다. 디스코 세대여서 그런가?(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