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엔 진짜 인연을 찾을 수 있을까, 희망에 부풀다가도 괜히 기분이 싱숭생숭한 이맘때는 역시 조금은 간지러워도 훈훈한 기운을 받을 수 있는 발랄한 노래가 필요하다. 이렇게 마음 헛헛한 사람들에게 씨엔블루의 이종현과 주니엘, 두 사람이 ‘로맨틱J’란 이름으로 듀엣송 ‘사랑이 내려’를 슬쩍 내밀었다. 아직 교복 입은 모습이 어색하지 않은 둘의 풋풋한 뮤직비디오는, 고등학교 졸업장 모양새도 가물가물한 언니 오빠들에게는 그저 흐뭇할 뿐이다. “주니엘이랑 알고 지낸 게 6~7년은 되었거든요. 친한 동생이라 괜히 촬영할 때 더 조심스럽긴 하더라고요.”(이종현) “어, 나는 오히려 부담감 없이 더 편했는데.(웃음) 드라마 <응답하라 1994> 보면, 나정이랑 쓰레기도 처음에는 아주 편한 사이로 나오잖아요. 꼭 그런 느낌이었어요.”(주니엘) 뮤직비디오에 대한 감상에는 약간의 의견 차이가 있을지언정, 음악을 대하는 마음만큼은 제법 좋은 합(合)을 이루어내는 두 사람이다. 두 사람이 직접 곡을 쓰고 가사를 붙인 노래는 과장하지도, 꾸며내지도 않고 딱 그들 나이의 설렘을 표현하고 있다. 무엇보다, 열심인 게 느껴진다. 뮤지션으로서 자신만의 색을 드러내야 하는 녹록지 않은 길에서, 서로에게 든든한 백업맨이 되어줄 두 사람의 음악이 기대되는 이유다.

종현_ 포근한 컬러의 스웨터 클럽모나코(Club Monaco), 그레이 모직 팬츠 곽현주 컬렉션(Kwak Hyun Joo Collection).
주니엘_ 지퍼 디테일의 앙고라 스웨터 주크(Zooc), 아이보리 플리츠 원피스 플레이하운드(Playhound), 펄이 섞인 아이보리 앵클부츠 슈콤마보니(Suecomma Bonnie).

오버사이즈 스웨터 그레이하운드(Greyhound), 브라운 면 팬츠 유니클로(Uniqlo), 스웨이드 펀칭 슈즈 세라(Saera).

브라운 니트 원피스 아떼 바네사브루노(Athe VanessaBruno), 스커트 보브(VOV).
건강하다,
이종현
일찌감치 촬영 준비를 마친 이종현은 어김없이 기타를 손에 들었다. 씨엔블루(CNBLUE)에서 그는 기타리스트이자 서브 보컬이다. 2010년에 이들의 데뷔곡 ‘외톨이야’를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다면, 당신은 아마 한국을 떠나 있었거나 혹은 속세에서 잠시 멀어져 있었음이 분명하다. 강렬한 인상을 남긴 데뷔 이후로 씨엔블루는 한시도 쉬지 않았다. 멤버들의 자작곡으로 채운 정규 앨범 <First Step>과 미니 앨범 <Re:Blue>가 나왔고, 일본을 순회하는 아레나 투어와 런던에서 시작된 월드 투어 일정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새해 역시 뉴욕과 LA를 거쳐 남미까지 향하는 빡빡한 투어 스케줄이 예정된 와중에도 이 욕심 많은 청년은 부지런히 개인 작업을 준비해왔다. 주니엘과의 듀엣곡 ‘사랑이 내려’는 그가 씨엔블루가 아닌, ‘뮤지션 이종현’으로 사람들 앞에 내놓는 첫 노래다. “겨울에 부를 노래를 하나 만들고 싶었어요. 여자 가수와 듀엣을 하면 어떨까 싶었는데, 등잔 밑이 어두웠죠. 노래 잘하는 동생이 이렇게 옆에 있었는데 말이에요. 주니엘은 나이 차이가 크지는 않지만 마냥 어린 동생으로 생각했는데, 이렇게 작업을 같이 하니 되게 뿌듯하더라고요. ‘우리 잘 컸구나’, 이랬어요.”(웃음)
사실 음악이 그의 생애 첫 도전은 아니다. 운동을 좋아하는 그는 유도에 꽤 소질이 있어 중학교 때는 시 대회에서 금메달을 따기도 했다. 운동 실력이 빼어난 아들이 고등학교 때 음악으로 진로를 바꾸겠다고 하는 걸 마뜩잖아 하실 법도 한데, 부모님은 ‘쿨하게’ 그의 꿈을 인정해주셨다. “사실 부모님이 크게 구속하거나 잔소리하는 법이 없는 분들이에요. 그 나이 때 여러 가지 경험을 해보는 게 좋다고 말씀하셨죠. 근데 그렇다고 제가 하는 일을 적극적으로 지원해주시는 편도 아니거든요. 그래서 오히려 자립심이 강해진 것 같아요. 나 스스로 잘해야 한다, 나 자신을 조절해야 한다, 그런 생각이 항상 있었어요. 일하기 시작하면서 부모님 쓰시라고 제 신용카드를 드렸거든요. 근데 확인해보면 별로 쓰지도 않으세요. 부담 주기 싫으신 건지…, 아무튼 서로 얽매이지 않고 지내요. 좋아요.”
부모님은 그를 방관했다기보다는, 잘 해내리라 굳게 믿어주신 것 같다. 그와 조금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그 부분을 확신할 수 있다. 그는 건강한 기운을 가진 사람이다. 하고자 하는 일에 돌진하고, 최선을 다하되 결과에는 집착하지 않는 사람. 실패한 일은 그저 털고 일어나면 그뿐이고, 좋아하는 사람들과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다면 그게 제일이라고 생각하는 심지 곧은 청년이라는 게 느껴진다. “드라마 <신사의 품격>으로 처음 연기를 접하면서 음악과는 또 다른 재미를 알게 되었어요. 솔직히 씨엔블루 활동만 해도 하루 24시간이 모자라요. 연기에 집중한 시간만큼 음악 할 시간이 줄어드니까, 아깝잖아요. 그래서 열심히 하긴 하는데, 또 돈이나 성공에 대한 욕심이나 야망 같은 건 별로 없어요. 이렇게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 수 있다는 게 감사한 거죠 뭐.” 옆에서 듣고 있던 주니엘의 증언이 이어진다. “씨엔블루 결성할 때도 그랬어요. 사람들이 종현 오빠에게 리드 보컬할 욕심은 없느냐고 물으면, 오빠는 항상 ‘용화 형한테 하라 그래. 난 그냥 음악만 할 수 있으면 돼’ 했거든요. 그런 사람이 사무실에서 곡 작업을 아침까지 하고 그래요. 욕심이 있는 건지 없는 건지 모르겠어요.” 본인에게 들은 ‘아침 작업’의 진실은 이랬다. “사실 작업은 새벽 6시 정도면 대개 끝나거든요. 근데 사무실 직원들은 9시가 되어야 출근하잖아요. 억울해서 일부러 직원들 출근할 때까지 기다렸다 생색내고 퇴근하고 그랬어요. 그래도 누가 알아봐주는 게 기분이 뿌듯하잖아요.(웃음)”
씨엔블루는 멤버들의 사이가 돈독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에 관해서 또 한번 주니엘의 증언이 이어진다. “씨엔블루 오빠들은 스케줄이 없고 쉬는 날에도 멤버들끼리 모여서 놀아요. 합숙하면서 지내니까 맨날 24시간 보는 얼굴인데 안 지겨운가봐요.” 한국에 정식으로 데뷔하기 전 씨엔블루는 먼저 일본에서 라이브 공연을 하며 실력을 다졌다. 거리에서 연주를 하고, 한산한 객석을 마주하고 공연을 하기도 했다. 우정과 파트너십은 고된 시간을 견디며 몰라보게 단단해진다. 좋아하는 사람들과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게 이종현의 바람이라면, 사실 그는 이미 충분히 꿈을 이룬 건지도 모르겠다. “멤버들은 영원한 내 편일 거예요. 어떤 일이 있어도 무조건적으로 서로를 지지하거든요. 얘네들을 못 벗어나겠어요.”(웃음)
외유내강,
주니엘
많은 가수들이 무대에 홀로 오른다. 그들에게는 당연한 일이고 특별히 치켜세울 일도 아니다. 하지만 과제 발표든 신입사원 장기자랑이든, 한 번이라도 혼자 무대에 올라본 일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 압도되는 기분과 외로움을 늘 끌어안고 지내는 이들의 배짱이 새삼 놀랍게 느껴질지 모른다. 주니엘은 솔로 뮤지션이다. 중학교 때부터 작곡과 작사를 해왔다. 열다섯 살에 지금의 회사와 계약을 맺고 열입곱 살 땐 가수로 무대 경험을 쌓기 위해 혈혈단신 일본으로 건너갔다. 당시의 그녀는 무대에서만 혼자였던 게 아니라, 일상의 모든 순간에 홀로서기를 해야 했다. “생각해보면 가수가 되기 위해 거쳐온 모든 과정에서 대부분 혼자였어요. 중학교 2학년 때 소속사에 들어왔을 때도 회사에 여자 연습생은 저뿐이었고, 고등학교 1학년 때 건너간 일본에서도 온전히 혼자서 생활했어요. 그리고 결정적으로, 휴대폰이 없었어요. 어쩌다 친구 할 만한 사람을 만나도 연락할 방법이 없으니까 한 번 만나고는 끝인 거예요. 무대에서도 덜렁 혼자니까 외로운 마음도 컸죠. 그래도 그때 라이브 공연을 많이 다녀서 나중에 한국에서 데뷔할 때는 전혀 긴장하지 않았어요. 평소에 궁금하던 일본의 문화도 많이 접했고, 공연하다가 팬도 생기고. 재미있었어요.”
학교 친구들과 매일같이 부딪치고 별거 아닌 일에도 깔깔대며 평범하지만 따뜻한 사춘기를 보내는 대신 꿈을 좇아 홀로 타지 생활을 했다는 사실이 그녀에게 끼친 영향은 그리 부정적이지도, 유별나지도 않은 것 같다. 친구가 없는 일상은 적적했지만, 기타를 치고 노래를 할 때는 오히려 혼자라는 기분이 들지 않았다. “전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노래로 할 때가 더 편한 것 같아요. 가까운 사람들과 말할 때는 조금 두려울 때가 있거든요. ‘나만 이런 생각을 하는 게 아닐까?’ 하는 마음에서요. 주변 사람들이 제가 하는 얘기에 공감하지 못할 수도 있잖아요. 그게 외로움을 만드는 건데…. 하지만 노래를 할 때는 달라요. 설령 내 바로 옆 사람이 공감하지 못해도, 누군가 한 명쯤은 내 노래를 듣고 마음이 움직일 수 있잖아요. 그래서 말로 하는 것보다 노래할 때가 좋기도 해요.” 그래서일까, 그녀의 노래는 그리 격렬하지 않지만, 나긋한 목소리에서 충분히 감정이 전해진다.
또래와 별다르지 않은 앳된 외모와 작은 체구에서 주는 인상만으로 주니엘이란 사람을 넘겨짚었다면 아마 지금쯤 다른 생각을 가지게 되었을 수 있다. 그래도 그녀는 때때로 음악에 대한 어른스러운 자세를 내려놓고, 스무 살의 청춘으로 돌아간다. 요즘의 관심사를 묻자, 대뜸 말한다. “버블티요! 요새 완전 빠져서 종류별로 섭렵하고 있어요.(웃음) 그리고 조금 더 어리게 굴기. 저는 이제 겨우 스물한 살일 뿐이지만, 예전에 열일곱 무렵을 떠올리면 그때 조금은 그 나이답게 투정도 부리고 떼도 쓰고 고집을 부렸어도 괜찮았을 텐데, 하는 생각이 문득 들더라고요. 일을 일찍부터 시작해서인지, 항상 의젓해야 한다고 스스로를 타일렀거든요. 좀 더 하고 싶은 걸 맘대로 하면서 스물한 살답게 지내는 게 요새 제 목표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