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게스트들이 도착하기 전, 직접 만든 테이블 매트며 냅킨으로 테이블 세팅을 하고 있는 한복 디자이너 한은희.
- 만찬에 앞서 진행된 리셉션에서 이영애가 게스트 중 한 명인 디자이너 이상봉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 이날 만찬에는 한국 주재 외교 사절들과 첼리스트 정명화, 디자이너 김영세와 이상봉 등 언제든 한식을 세계에 알리는 데 일익을 담당할 귀빈들이 초대됐다.
- 오늘 선보일 만찬을 요리한 롯데호텔 총주방장 이병우 조리장.
- 만찬에 사용된 모든 그릇을 직접 빚은 도예가 이능호.
- 맛과 멋도 중요하지만, 만찬을 준비하면서 그만큼 중요했던 건 한식에 담긴 정신이었다.
해가 기울고 날씨가 쌀쌀해지기 시작했다. 삼청각의 스태프들도 분주해졌다. 설날 특집 다큐멘터리 <이영애의 만찬>의 정점을 이룰 만찬을 몇 시간 앞두고, 모든 스태프는 날 위를 걷는 사람들처럼 예민해져 있었다. 테이블클로스 간격이 몇 센티가 되어야 할지를 두고 설왕설래하는가 하면, 수저의 위치가 문제가 되기도 했다. 테이블을 장식할 초의 높이며, 그릇이 놓일 자리, 전체 진행 시간을 감안한 음식 서빙 간격 등 만찬과 관련한 모든 것이 세심하게 고려되고 있었다. 현장에 도착하자마자 패딩 점퍼 차림으로 일일이 상황을 체크하는 사람은 오늘 만찬의 호스트인 이영애다.
한식 밥상에 담긴 의미를 찾아온 여정의 꼭짓점을 이룰 오늘 만찬의 중심에는 그녀가 있다. 한식 전문가가 아닐뿐더러, 기획의 중심에서 전체 스태프를 아우르는 역할도 그녀에게는 낯선 일이다. 나서기보다 물러서기를 택하곤 하던 그녀를 사람들 앞에 서게 만든 건, <대장금>으로 매일 먹는 끼니일 뿐이던 한식을 오랜 세월 수고와 정성, 깊은 철학으로 완성된 한국 문화의 정수로 인정받게 한 주인공으로서 책임감과 세상의 모든 엄마와 다를 것 하나 없이 아이들의 밥상을 차리는 엄마의 마음이다. 그러나 그녀의 곁을 지키며 자기 일을 팽개치다시피 하며 함께 오늘을 준비해준 사람들이 없었다면 감히 엄두를 낼 수는 없는 일이었다.
롯데호텔 총주방장인 이병우 조리장의 한식은 한식의 본령을 지키면서도 서구식 코스로 구성했을 때, 한 치의 부족함도 없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현란한 겉치레보다는 깊고 우아한 맛과 향을 가진 그의 요리가 오늘의 만찬을 위해 준비됐다. 요리는 물론이고 먹는 사람과 먹는 공간, 상차림을 비롯해 눈에 드러나지 않는 것의 어울림까지도 배려하는 것이 한식이다. 한국적인 색감과 질감, 형태감을 살리면서도 모던한 감각을 덧입힌 그릇을 빚는 도예가인 이능호는 이영애의 만찬에 사용될 모든 그릇을 직접 구웠다. 짧은 시일 안에 30인조가 넘는 코스 디너용 그릇을 일일이 빚은 그의 최근 일상은 온통 오늘 저녁을 목표로 흘러왔다.
- 초대된 사람의 이름을 써넣은 나뭇잎으로 장식한 메뉴와 손으로 수를 놓은 냅킨.
- 늘 누군가의 귀빈이던 이영애는 이날 손님들을 초대한 호스트 역할을 하느라 분주했다.
- 만찬장에 도착하자마자 패딩 점퍼 차림으로 준비 상황을 확인하는 이영애.
- 오랜 세월 이영애의 한복을 담당했던 디자이너 한은희는 이날, 이영애를 위해 고운 연둣빛 두루마기를 준비했다.
- 이미 한식을 접한 경험이 있는 이들도 이날 소개된 음식들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 자연스럽고 여유 있는 스피치로 편안한 분위기를 만들었던 이영애.
- 소외 계층을 위한 활동과 한국과 모국인 스페인의 교류에 힘쓰는 호세 마리아 블랑코 아리바 신부와 귓속말을 나누는 이영애.
- 이날의 메뉴는 단순한 음식 소개가 아닌 음식에 담긴 정신을 전했다.
- 따뜻하게 불이 들어오는 온돌이 있는 누각에서 이어진 만찬. 곱게 댕기를 두른 의자들이 눈에 띈다.
“내 작품이 누군가의 그릇이 되어 음식이 담기는 걸 직접 보는 일은 흔하지 않아요. 사실 다른 일은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만큼 이 일에 매달리면서 힘도 들었지만, 한식의 정신을 담은 최고의 요리가 내 작품에 담기는 걸 보게 돼서 기쁩니다.” 이영애의 오랜 파트너인 한복 디자이너 한은희의 테이블 세팅은 손으로 박음질해 준비한 테이블 매트만으로도 준비한 사람의 정성이 가득 느껴진다. 댕기를 모티프로 한 의자 장식과 자수를 놓은 냅킨은 그녀가 만드는 한복이 얼마나 고운지 다시금 떠오르게 했다. 이 땅에서 나지 않은 식재료는 상에 올리지 않았고, 전국의 진상품으로 마련한 밥상에서 홍수와 가뭄 같은 재해로 흉작에 시달렸을 서민들의 살림살이를 짐작하고, 소박한 가짓수의 밥상으로 그들의 불운을 함께 느끼던 왕의 밥상, 잔치가 있을 때는 세상 어느 곳의 음식보다 화려한 궁중 음식을 넉넉히 만들어 반가와 나눠 풍습과 전통을 이어갔다는 왕의 밥상이 오늘 만찬에 오른다. 노인과 환자의 영양식이자 배를 주리는 백성을 먹이기 위해 왕이 내리는 구황 음식이기도 했던 죽에서부터 당파 싸움을 멈추고 화합을 도모하자는 영조 임금의 탕평책과 함께 세상에 나온 음식 탕평채, 농사를 짓는 데 귀한 짐승인 소를 먹을 때는 어느 부위 하나 헛되이 버리지 않고 부위별 맛을 살려 감사히 먹었던 소고기 요리와 소통과 화합을 기원하는 비빔밥 등 한국의 음식이 담은 정신과 맛이 담긴 음식들이다. 해가 지고, 청사초롱에 불이 들어오자 리셉션에서 인사를 나눈 게스트들이 속속 만찬장으로 들어섰다. 고운 연둣빛 두루마기 차림으로 손님을 맞던 이영애가 만찬의 시작을 알렸다.
- 디자이너 이상봉과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은 프렌치 레스토랑 ‘피에르 가니에르 서울’의 헤드 셰프인 프레드릭 에리에르.
- 만찬이 끝나고 게스트들은 디자이너 한은희, 이병우 조리장, 이능호 도예가 등 이영애와 함께 이날 만찬을 준비한 아티스트들에게 큰 박수로 감사와 존경을 표했다.
- 동서양을 막론하고, 이날 한식의 진심을 맛본 게스트들은 한결같이 찬사를 보냈다.
- 만찬이 끝나고 돌아가는 손님들을 배웅하는 이영애.
- 동서양을 막론하고, 이날 한식의 진심을 맛본 게스트들은 한결같이 찬사를 보냈다.
- 후식으로 나온 속을 파낸 먹골배에 잣과 대추편을 넣어 찐 먹골배숙을 끝으로 이날 만찬은 긴 여운을 남긴 채 마무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