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 고민 롱디 동거 사내 연애

 

국경 너머의 연인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다. 우리 만남이 순탄하지만은 않을 거라는 사실을. 어학 연수를 위해 떠난 미국 보스턴에서 한국인 모임에 참여했을 때 처음 만난 그는 당시 미국 시민권을 가진 대학생이었다. 하지만 그가 마음에 들어 적극적으로 대시했고, 곧 우리는 교제하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한 덕분에 혼자 다른 나라에서 보내는 시간이 하나도 외롭지 않았다. 오히려 그 어떤 연애보다도 황홀했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한국으로 돌아와야 하는 날이 얼마 남지 않자 마음이 좋지 않았다. 힘들어하는 나를 위로하며 그가 해준 말은 이랬다. “매일 두 번 꼭 통화하자.” 처음에는 반신반의했다. 아무리 애틋한 관계라고 해도 시차가 크니 분명 며칠 못 갈 거라고 예상했으니까. 결국 인연이 끊어지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고맙게도 그는 밤낮으로 내게 꾸준히 영상통화를 걸었다. 서로 야한 농담을 주고받으며 ‘랜선 섹스’를 하는 것도 짜릿한 경험이었고. 가끔씩 연락이 닿지 않는 순간이 더러 있지만 크게 서운한 마음이 들진 않는다. 지구 반대편에 있더라도, 우리의 연애는 국경을 넘어 재회하게 될 날을 손꼽아 기다리며 순항 중이니까. P(25세, 취업 준비생)

 

동거 중입니다

원래 동거를 로망으로 품고 있진 않았다. 그렇다고 그와 결혼까지 생각했던 것도 아니었고. 대학원 진학을 위해 지방에서 올라와 서울살이를 할 때 그를 만나기 시작했다. 내가 머물던 원룸의 계약 기간이 끝날 무렵 그가 내게 이런 말을 했다. “그냥 내 집에서 같이 사는 건 어때?” 처음엔 걱정이 앞섰다. 동거 경험이 있는 주변 친구들이 입을 모아 경고했기 때문이다. “별거 아닌 일로 자주 싸우게 되더라. 매일 함께 붙어 있으니 솔직히 조금 지겹기도 하고.” 실제로 몇 달 같이 살아본 결과, 어느 정도 공감은 된다. 신경 써야 할 부분이 아주 많았고, 언제나 서로를 배려하는 일도 쉽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서로 다른 라이프스타일을 맞춰가는 재미를 느끼기도 했다. 아침밥을 꼭 챙겨 먹는지, 주말에는 느지막이 일어나는 편인지, 잠버릇이 심하지는 않은지 알아가다 보니 그와 점점 더 가까워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거든. 편안한 옷차림으로 집 안을 돌아다니는 그를 보며 혼자 지내던 당시에는 몰랐던 안정감을 느꼈고. 외출 준비를 하고 있는 모습을 바라볼 땐 연애 초반처럼 심장이 두근거렸다. 무엇보다 좋은 점은 그와 언제든지, 마음껏 섹스를 할 수 있다는 것. 현재 내 동거 생활의 만족도를 수치로 말하자면 75퍼센트 정도 되지 않을까 싶다. 물론 아직 1년도 지나지 않았으니 여기서 얼마나 더 줄어들진 미지수다. J(28세, 대학원생)

 

인 서울 데이트는 그만

연남동과 금호동. 약 10km의 거리를 둔 우리는 9개월째 열애 중이다. 둘 다 서울에 거주하고 집이 그다지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아 주말을 포함해 일주일에 두세 번은 꼭 만난다. 퇴근 후에도 차로 잠시만 이동하면 얼굴을 볼 수 있으니 적당히 떨어져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다만 아쉬운 점을 하나 꼽자면 서울 안에서만 데이트를 하게 된다는 것. 도시를 벗어나지 않아도 다양한 문화생활과 이벤트를 어렵지 않게 즐길 수 있다는 건 확실히 장점이고, 우리를 부러워하는 롱디 커플도 주변에 많다. 그런데 나는 여기저기 다니는 걸 좋아해 가끔은 서울이 아닌 다른 곳들을 찾아가고 싶단 말이다. 주말이 다가오면 그에게 다른 지역에 다녀오자고 제안하기도 하고. 하지만 ‘인 서울 데이트’를 지향하는 그의 대답은 매번 다르지 않다. “근처에도 즐길 거리가 많은데 굳이 멀리 가지 않아도 되지 않아?” 요즘 서울 바깥에도 가볼 만한 새로운 곳이 얼마나 많은데 말이지. 우리가 장거리 커플이라면 데이트가 더 흥미로웠을 거라는 생각도 자주 한다. 그에게는 항상 “둘 다 서울에 살아서 얼마나 편하고 좋은지 몰라!” 하며 진심 반 아쉬움 반으로 말하지만. ‘서울 외곽 데이트’를 실현하려면 적어도 다음 휴가 때까진 기다려야 할 것 같다는 좋지 않은 예감이 든다. L(30세, 연구원)

 

사랑은 KTX를 타고

매주 토요일 아침이면 빠뜨리지 않고 하는 일이 있다. 서울역으로 향해 가장 빨리 부산에 도착할 수 있는 KTX 티켓을 사는 것. 우리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같은 동네에 살며 하루라도 안 보면 서로 보고 싶다고 떼를 쓰는 6개월 차 커플이었다. 주말에만 만나는 사이가 되어버린 건 내가 회사를 서울로 옮겨야 했기 때문이다. 이 사실을 알게 된 그는 당연히 크게 아쉬워했다. “같이 하고 싶은 게 엄청 많은데, 일주일에 한 번만 만나면 언제 다 해?” 그를 남겨두고 서울에 올라온 지 두 달이 지났지만 아직 장거리 연애에 완벽히 적응하진 못했다. 하루도 빠짐없이 한두 시간씩 통화한다고 해도 실제로 얼굴을 마주하는 거랑은 느낌이 완전히 다르니까. 오랜만에 데이트를 하는 날이면 1박 2일 동안 알차게 사랑을 나눌 수 있도록 일정을 완벽하게 짜두었다. 카페부터 레스토랑, 술집 그리고 호텔까지. 물론 언제까지나 지금과 같을 수 없다는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게다가 매일 저녁 카페에 앉아 도란도란 얘기하는 것보다 KTX로 400km에 이르는 거리를 오가며 데
이트할 때 드는 비용이 몇 배는 되더라. 왠지 모르게 나와의 데이트를 기다리는 그의 열정도 점점 식어가는 것 같아 불안하기도 하고. 하루에 통화하는 시간은 줄어든 진 이미 오래다. 이러다가 우리 헤어지는 건 아니겠지? N(33세, 자영업자)

 

사내 연애의 결말

우리는 같은 회사에 다닌다. 부서가 달라 나는 3층, 그는 8층에서 근무 중이다. 내가 갓 입사했을 때 그는 그저 다른 동료들보다 약간 더 친절한 사람일 뿐이었다. 사회생활이 처음인 내게 여러 조언을 해줬고, 걱정거리가 생길 때마다 가까이에서 물심양면 도와줬기 때문이다. 우리가 동료 이상으로 발전한 건 그가 자신의 단골 술집으로 나를 데려가 함께 맥주를 마시며 사적인 이야기를 나눈 날부터다. 연인이 되고 나니 평소처럼 같이 커피를 사러 가는 것조차 눈치가 보였다. 애정 행각을 할 수 있는 공간은 단둘이 있는 엘리베이터뿐. 숨긴다고 나름대로 노력했는데, 어느 날 동료들과 함께한 회식 자리에서 내 휴대폰에 저장돼 있던 우리의 다정한 사진을 들켜버렸다. 공식 커플이 되자 마음껏 붙어 다닐 수 있어 오히려 한결 편한 기분이 들었다. 2년간 이어지던 연애가 종지부를 찍은 다음이 문제였지. 대판 싸우고 헤어진 건 아니지만, 내가 일하는 층을 벗어날 때마다 그를 마주칠까 봐 괜히 신경이 쓰였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요즘은 재택근무 하는 날이 많아 마주칠 일이 줄었다. 그래도 동료들과 같이 만든 SNS 단체 채팅방에서 그의 이름이 보일 때마다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기분이 드는걸. 내가 요즘 퇴사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이유 중 반 이상은 분명 너 때문일 거야. K(27세, 회사원)

 

1시간쯤이야

20년 넘게 경기도에 거주 중인 내가 서울 시민인 그와 교제한 지는 1년 반 정도 지났다. 각자의 집 사이 거리는 차로 약 1시간. 연애 초반에는 둘 다 열정이 넘쳐 서울과 경기도 사이를 바쁘게 움직이며 데이트를 즐겼다. 그런데 이동 시간이 길다 보니 피곤해지는 걸 숨기지는 못하겠더라. 그뿐 아니다. 마지막 버스가 떠나는 시간이 가까워지면 조급한 마음에 습관처럼 시간을 확인하곤 하는데, 그때마다 한껏 달아올랐던 로맨틱한 분위기도 산산조각 나버렸다. 요즘은 대중교통 체계가 잘 갖춰져 있지만 여러 가지 변수가 생기는 날도 있다. 얼마 전에는 폭설이 내려 집으로 돌아오는 도로 위에 꼼짝없이 갇혀버렸거든. 서울에 산다면 좀 더 편안한 연애를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이사를 고민하기도 했지만, 내 집 마련이 쉬운 일은 아니지 않나. 가깝진 않더라도 서로 조금만 노력하면 만날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더 이상 멀어지지만 말자’는 다짐도 했고. 그리고 동네 친구를 만나 우리의 거리에 대한 이야기를 털어놓았을 때, 그 마음을 굳힐 수 있었다. 조용히 내 이야기를 듣던 친구가 정색하며 한 말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나는 서울로 출퇴근하는데…?” 그래, 매일같이 서울과 경기도를 오가는 사람도 많은데 이 정도쯤이야. C(30세, 공무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