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칼럼니스트이자 <프랑스 여자처럼> 등을 출간한 작가 심우찬이 신간 <벨 에포크, 인간이 아름다웠던 시대>를 선보였다. 19세기 말부터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1914년까지를 일컫는 ‘벨 에포크’를  다루는 책이다. 하나의 분야가 아닌 예술, 사회, 문화, 기술 등을 아우르는 새로운 시각으로 ‘아름다운 시대’를 바라보는 그와 짧은 대화를 나눴다.

 

벨에포크 심우찬

 

먼저 마리끌레르 독자에게 인사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심우찬입니다. 저는 한 때 마리끌레르에 파리와 관련한 패션 칼럼이나 뷰티 칼럼을 연재한 적 있습니다. 대학생 때는 마리끌레르 본지를 읽으며 프랑스어를 공부하기도 했고요. 그래서 마리끌레르는 제게 친밀한 느낌을 주는 잡지입니다.

최근 신간 <벨 에포크, 인간이 아름다웠던 시대>를 출간했습니다. ‘벨 에포크’라는 시대를 다루는 책을 내겠다고 생각한 계기가 있나요? 평소 알폰스 무하, 사라 베르나르, 마르셀 프루스트 등 벨 에포크의 예술가들에 대해 열띤 토론을 자주 합니다. 저와 같이 파리에서 지내던 한 선배가 이 이야기들을 본격적으로 정리해 책을 만들어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추천했습니다.

벨 에포크에 처음 매혹된 순간은 언제인가요? 클로드 드뷔시, 카미유 생상스, 가브리엘 포레를 비롯한 프랑스 음악가의 음악을 즐겨 듣는 편입니다. 음악은 벨 에포크를 가장 크게 의식할 수 있는 분야이자 시공을 초월해 벨 에포크에 입장할 수 있는 제일 간단한 방법이죠. 그런데 자료 조사를 해보니 제가 좋아하는 프랑스 음악은 물론 미술, 음악, 철학 등 모든 분야가 벨 에포크라는 시대를 거치며 비약적인 발전을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그때 충격을 받았고, ‘이 책을 쓸 수밖에 없구나’ 하는 운명적인 느낌도 들었습니다.

<벨 에포크, 인간이 아름다웠던 시대>의 표지에 실린 그림은 무엇인가요? 결정을 내려야 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표지에 대한 고민을 했습니다. 두 개의 후보가 있었는데, 그중 제가 선택한 건 그레퓔 백작 부인의 초상화입니다. 그는 소설가 프루스트의 뮤즈이자 음악가 포레의 친구로, 부유한 삶을 사는 동시에 사회 정의를 위해 고민했으며 마리 퀴리 등의 여성 과학자와 가난한 예술가들을 후원했습니다. 그레퓔 백작 부인이야말로 풍요와 혁신 그리고 아름다움에 올인하던 벨 에포크의 정신을 가장 잘 대변하는 인물이라는 확신이 있었죠. 또 다른 표지 후보는 프랑스 배우 사라 베르나르였습니다.

‘벨 에포크의 이야기는 꼭 그녀, 사라 베르나르의 이야기로 시작해야 한다’라는 문장으로 책이 시작됩니다. 사라 베르나르는 벨 에포크의 수많은 예술가들에게 엄청난 영향을 끼쳤습니다. 19세기 말 파리를 중심으로 유행하기 시작한 미술 사조인 ‘아르 누보’가 일어나게 된 직접적인 원인이었고, 그를 모델로 한 오페라 ‘토스카’가 만들어지기도 했죠. 할리우드가 생기기도 전에 이미 세계를 평정한 ‘월드 스타’였던 셈입니다. 제가 파리에 도착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사라 베르나르의 초상화를 처음 마주했는데, 이후 그 그림이 제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세상을 다 알아버린 듯한 그의 시선이 내내 마음에 걸렸죠. 어떤 면에선 ‘성공의 아이콘’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사실 그는 수많은 인습, 편견, 차별들과 싸우며 스스로 성공을 이뤄냈습니다. 한 마디로 ‘상처투성이’ 성공이었던 겁니다. 세상의 부귀영화는 다 가진 듯한 그의 말년이 그다지 행복해 보이지 않았던 이유이기도 하고요.

이 책을 통해 벨 에포크의 어떤 면을 특히 보여주고 싶었나요? 책을 쓰기 위해 수많은 자료들을 찾아보며 우리나라뿐 아니라 여러 나라에서 ‘벨 에포크’의 특징을 음악, 무용, 미술, 문학 등으로 나누어 규정지으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는 점을 발견했습니다. 하지만 어떠한 시대를 살아간다는 것은 당시의 예술 운동, 환경, 사회 문제, 기술적 혁신 등이 어우러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제 책에서는 하나의 분야에 치우치지 않고, 보다 다양한 시각을 바탕으로 벨 에포크에 대해 알리고 싶었습니다.

방대한 양의 자료를 조사하며 이 시대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되신 사실이 있나요?  평소 프랑스의 여성운동이 상대적으로 소극적이라고 생각해왔습니다. 벨 에포크 시대가 되자 프랑스에서도 본격적으로 여성운동이 시작되었죠. 하지만 그 운동은 교양 있고 부유한 상류 사회의 여성들에 의해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개화기 때 일본을 거쳐 우리 나라에 들어온 ‘신여성’이라는 개념이 벨 에포크 시대에서 차용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때 묘한 기분이 들더군요. 시대를 앞서가던 당당한 여성들의 이상은 훌륭했지만, 안타깝게도 이들에게는 여러 계층을 아우르는 연대 정신(Solidarity)이 없었던 겁니다.

책을 집필하며 경험한 에피소드 중 지금 문득 떠오르는 것이 있나요? 파리에 머무르며 자료 조사를 할 때 집 근처에 있던 마자랭 도서관을 자주 다녔습니다. 당시 프루스트에 대해 조사하던 중 그가 약 2년간 도서관 사서로 일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그의 근무처가 바로 마자랭 도서관이더라고요. 그래서 깜짝 놀랐던 기억이 있습니다.

책 곳곳에 수록되어 있는 시들도 눈에 띕니다. 11개의 프랑스 시가 원어와 함께 수록되어 있습니다. 대부분 빅토르 위고, 폴 베를렌, 로맹 뷔신 등이 쓴 시입니다. 그리고 레날도 안과 드뷔시 등 프랑스를 대표하는 작곡가들에 의해 시에 곡이 붙여지며 프랑스 예술가곡(Mélodie)이 되기도 했습니다. 이 작품들을 직접 한국어로 번역했는데, 불문학을 전공한 저로서는 무척 영광스러우면서도 벅찬 감동을 느꼈습니다.

벨 에포크가 자신에게 끼친 가장 큰 영향을 한 마디로 표현한다면 무엇인가요? ‘아름다움을 향한 끝없는 도전’입니다.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벨 에포크’라는 시대를 느낄 수 있는 방법을 몇 가지 추천 부탁드립니다. 제 책을 통해 벨 에포크에 대한 흥미가 생겼다면 우선 당시 작가들의 책을 읽으며 놀랄 만큼 진취적이고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믿음이 있었던 이 시대의 정신을 느껴 보길 바랍니다. 에밀 졸라, 기 드 모파상, 귀스타브 플로베르의 소설은 오늘날의 드라마보다 더 큰 재미를 선사할 겁니다. 그리고 드뷔시, 포레, 레날도 안의 가곡도 들어 보세요. 당시 음악은 우리나라의 현대 음악에도 분명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처음 듣는 사람들도 이 시대의 프랑스 가곡들이 아주 낯설다는 느낌을 받지 않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벨 에포크가 아닌 오늘날에도 아름다움은 어딘가에 존재할 것 같습니다. 최근에 직접 느낀 아름다움이 있나요? 요즘 프랑스의 카운터테너 필립 자루스키가 부르는 ‘감미로운 시간(L’heure exquise)’에 빠져 있습니다. 꼭 감상해보길 바랍니다.

이 세상에 아름다움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우리보다 먼저,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시기를 살았던 소설가 알베르 카뮈가 남긴 말로 답변을 대신하고 싶습니다. ‘절망을 이기는 길은 행복을 향한 의지일 뿐’이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