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젊은작가상 소설가 한정현 우리의 소원은 과학소년

한정현
<우리의 소원은 과학소년>

201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소녀 연예인 이보나》,

장편소설 《줄리아나 도쿄》를 썼다.

 

“사랑 때문에 망하는 게 뭐 어때요?”

– 소설 <우리의 소원은 과학소년> 중에서

 

2021 제12회 젊은작가상 수상 작품집에 실린 소설 <우리의 소원은 과학소년>에서 한 구절을 오늘 낭독하기로 했죠. 어떤 구절을 선택했나요? “사랑 때문에 망하는게 뭐 어때요.” 이 문장은 제가 어떤 소설을 쓰건 꼭 넣으려고 한 문장이에요. 그 뒤에 나오는 대사는 “돈과 권력 때문에 망하는 사내보다 낫지 않나요”이고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제가 지금까지 본 소설에서 꼭 여자는 사랑 때문에 망해 인생을 그르치고 주변을 망쳤다고 비난받아요. 근데 저는 아무리 생각해도 사랑 때문에 망하는 여자가 돈과 권력 때문에 망하고 주변을 모두 파괴해버리는 남자보다는 낫지 않나 싶거든요. 그 생각이 이 소설의 한 축이 돼 시작했고, 또 제 소설의 세계관인 것 같아 이 문장을 꼽고 싶었어요. 그리고 하나 더 꼽자면 소설 중 “손과 발을 청결히 할 것, 활기차게 생활할 것, 환자에게 친절할 것, 간호원이라는 인식을 가질 것, 협동할 것, 환자의 험담을 하지 말 것, 이름을 기억할 것, 조선 여성으로서의 자부심을 가질 것, 그리고 낙관할 것.” 이런 문장이 있어요. “그리고 낙관할 것”이라는 문장에 대해서는 작가 노트에 쓰기도 했어요. 무작정 낙관하자는 의미가 아니라 말 그대로 이 이야기 속 사람들처럼 살아보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희망을 주고 응원하자는 마음으로 쓴 거예요. 소설에서도 그렇고 제게도 중요한 문장이라고 생각해요.

처음 꼽은 “사랑 때문에 망하는 게 뭐 어때요”에 동의하는 게, 적어도 사랑은 남을 해치지 않잖아요. 한데 사랑을 선택한 사람들을 두고 ‘고작 사랑 때문에’라고 하잖아요. 그렇죠. 굉장히 한심한 여자로 취급하죠. 모순적인 것 같아요. 흔히 이 세상에서 사랑과 바꿀 수 있는 가치가 없다고 하고, 사랑이 중요하다고 강조하지만 막상 사랑에 모든 것을 건 사람을 보면 한심하게 여기잖아요. 한편으로는 남자들이 사랑에 모든 것을 걸면 멋있다고 해요, 로맨티시스트라고 하고. 그런데 여자들이 사랑에 뭔가를 걸면 미친 여자라고 하죠. 사랑을 선택하는여자들을 응원하고 싶은 마음에 이 문장을 골랐어요.

지금 작가를 붙잡고 있는 하나의 질문이 있다면요? ‘어떤 사건 이후에 남은 사람들의 고통은 언제 사라지는 걸까’라는 질문을 하고 있어요. 살아남았다고 하는데 정말 살아 있는 걸까, 그냥 남은 게 아닐까? 하는. 보통 가족 안에서 어떤 것이 유전 된다고들 하잖아요. 저는 생물학적 요소가 유전된다는 건 잘 믿지 않고, 오히려 기억이나 고통이 유전된다는 생각을 많이 하거든요. 큰 사건을 함께 겪은 가족들을 보면서 남은 사람들의 고통이 언제 끝날지 많이 생각해보고 있어요. 남들이 보기에는 사소할 수 있는 고통도 마찬가지고요.

소설을 쓸수록 소설에서 배우게 되는 것들이 있나요? 저는 이야기 속에서 악한 인물을 그리지 않아요. 적어도 소설을 쓰려면 인물을 깊이 이해해야 하는데, 악한 인물에 대해 깊게 이해해야 하는 나의 시간과 지면이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주로 좋아하고 닮고 싶은 인물들 이야기를 쓰게 되는 것 같아요. 내가 이런 인물이 될 수는 없지만 쓰면서 나아지는 부분이 분명히 있는 것 같고요. 요즘의 세상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기는 어렵지만 그럼에도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지키며 살아가고자 하는 인물을 그리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긍정이나 낙관을 배워요.

이야기가 주는 힘에 대해, 그 막강함에 대해 체감할 때가 있나요? 무엇이 작가를 계속 쓰는 사람으로 머물게 하나요? 최초로 이야기에 힘을 느낀 건 아주 어릴 때 메르헨 동화 시리즈 중 《착한 마녀》를 읽었을 때예요. 어린 수습 마녀가 선배 마녀들이 하는 행동이 너무 한심해서 선배 마녀들의 빗자루에 불을 질러요. 그런 뒤 인간들에게 빼앗은 것들을 돌려주는 내용인데, 위계질서를 중시하는 사회에서 주인공을 보면 되바라진 아이잖아요. 근데 저는 아주 어릴 때인데도 그 인물이 참 좋더라고요. 그렇게 옳은 길을 가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한 것 같아요. 또 제가 비건을 지향하는데 그건 엘리자베스 코스텔로의 말을 인용한 배수아 작가의 《당나귀들》을 읽고 영향을 받았고요. 《독학자》라는 소설에서 혼자 공부하는 인물에게서도 영향을 받았어요. 로베르트 볼라뇨의 《부적》이라는 소설에 “내가 미치지 않을 수 있었던 건 유머 감각을 유지했기 때문이다”라는 말이 나와요. 시위 도중에 대학교 화장실에서 혼자 일주일을 버틴 실화를 바탕으로 한 여자의 이야기거든요. 일주일 간 아무것도 못 먹고 화장실에서 버티는 건 진짜 힘든 일이잖아요. 이야기 안에서 실제로 그 여자가 미쳤다는 말은 나오지 않지만 여러 행동으로 미루어봤을 때 트라우마 때문에 미쳐버린 걸로 짐작이 돼요. 어떻게든 살고 싶어서 계속 그런 말을 하는 거죠. 극단적인 상황에서 보이는 인간의 태도, 그리고 그런 이야기들이 주는 힘을 믿는 편이에요.

작가가 사랑하는 이야기에는 어떤 교집합이 있나요? 욕망이 있는 사람들이 각자의 욕망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것을 좋아해요. 한국 사회에서 욕망이라는 단어가 굉장히 부정적으로 쓰이잖아요. 저는 반대로 욕망이 있는 건 좋은 거라고 생각해요. 사람을 살게 하는 거니까요. 동시에 그 욕망이 타인을 해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고요. 배수아, 황정은 작가의 작품들을 좋아하는 것도 그 때문이에요. 인물들의 욕망이 굉장히 선하고, 타인을 해치지 않는 방향으로 흘러가거든요.

‘쓰는 당신’이 가진 것 중 훼손되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 있다면요? 주변을 보면 힘든 상황에서도 삶을 긍정적으로 끌고 간 사람들이 많아요. 저는 옆에서 그런 태도를 많이 배우려고 노력했고요. 제 긍정적인 면, 낙관적인 면이 훼손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심신이 건강한 상태로 오래 쓰기 위해서는 무엇으로부터 가장 자유로워야 한다고 생각하나요? 저는 요즘엔 차라리 자의식 과잉이 낫다고 말해요. 남의 시선이라는 게 정말 교묘한 것 같아요. 특히나 요즘에는 대놓고 누군가를 가르치려거나 통제하려고 하지는 않지만 그대신 점점 그 방식이 교묘해지는 것 같아요. 가령 ‘정말 너를 생각해서 하는 말이야’ ‘남들이 보기에 뭐라고 생각하겠니’ ‘보편적으로 봐봐, 보편적인 것도 중요하지 않니?’ 등으로 둔갑하는 말들이요. 듣는 당시에는 모른 채 휩쓸렸다가 ‘왜 그렇게 괴로웠지’ 하고 되돌아보면 결국 남의 시선 때문이었더라고요. 그걸 벗어나면 정말 아무것도 아닌 일이 되는 경우가 많았어요. 남의 시선을 차단해야만 한다고 생각하는데 물론 이게 작업할 때 누군가 해주는 좋은 말을 차단하라는 의미는 아니에요. 그 교묘한 말들 사이에서 스스로 구분하는 방법을 알아차려야 해요. 남의 시선과 조언을 헷갈리지 않도록. 조언은 정말 저 자신 혹은 제 작품 같이 어떤 한 가지만으로 이야기를 하는 것 같거든요. 기준은 타인이 아니라 나인 거예요. 건강하게 쓰고, 건강하게 살기 위해서 남의 시선과 조언을 구분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어요.

스스로에게 관대한 편인가요? 엄격한 편인가요? 관대하다고 생각하는데 주변 사람들은 저를 두고 스스로 에게 굉장히 엄격한 사람이라고 하더라고요. 양면적인 것 같아요. 생활 면에서는 자신에게 엄격하고, 정신적인 면에서는 관대해요. 저라도 저를 칭찬해주지 않으면 이 세상을 살아갈 수가 없어요.(웃음) 한국 사회에서 자기 자신에게 관대하면 받게 되는 공격들이 정해져 있어요. 자의식 과잉이다, 나르시시스트다, 안일하다 등. 그럼에도 모든 사람이 정신적으로는 자기 자신에게 최고의 팬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안티팬은 세상에 아주 많거든요. 채찍질해서 뭐할 거냐는 말이죠. 반대로 작가라는 직업은 누군가에게 고용되지 않는 프리랜서이니 생활적인 부분에서는 엄격하게 관리할 필요가 있고요. 어떤 시간이 되면 특정 일을 하도록 알람을 설정해둬요. 그러잖으면 이불 속에서 영원히 나오지 않기 때문에.

앞으로 쓰게 될 이야기는 무엇인가요? 지금 장편을 완성하고 있어요. 지금까지 제 소설에 등장한 여성과는 조금 다른 스타일의 여성이 등장해요. 일본에서 살고 있으며 대학 강사이자 연구자인데 전임 교수가 되고 싶어서 온 영혼을 끌어모으는 사람이죠. 여성이자 재외국민이라는 위치 때문에 압박감을 느끼고, 한국에 있을 때 기억상실증을 얻었고, 지금은 일본인 퀴어 친구와 동거하고 있어요. 그 친구를 가족처럼 아끼고 의지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자신의 처지에 불안감을 느끼고, 그런 자신이 열등감에 사로잡힌 게 아닌가 하는 갈등 또한 늘 가지고 있어요. 자신의 위치와 지위에 모든 관심을 집중하는 사람인데, 어느 날 한국에서 한때 깊이 사랑했던 친구가 실종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돼요. 그 친구와 서로를 셜록과 왓슨이라고 부를 정도로 죽이 잘 맞았고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이기도 했고, 또 그 실종과 관련된 기억의 일부를 떠올리면서 잠시 한국으로 가게 돼요. 그 친구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그 실종이 역사적 사건과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는 사실 또한 알게 되면서 이야기가 진행돼요.

추리소설이자 성장담의 느낌도 있는데요. 그저 사랑이야기라고 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모든 기억을 잃었다고 생각했을 때, 그 끝에 남겨져 있던 단 하나의 기억이 바로 사랑이었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