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영 액션 히어로

이주영 액션 히어로

니트 슬리브리스 톱 앤아더스토리즈(& Other Stories), 레드 재킷과 팬츠 모두 레호(Lehho), 진주 네크리스 레이지던(LAZYDAWN), 부츠 렉켄(Rekken).

이주영 액션 히어로

슬리브리스 톱과 팬츠 모두 레호(Lehho).

 

영화 <액션 히어로> 개봉을 앞두고 있죠? 색색의 추리닝을 입고 등장하는 포스터만 봐도 코믹의 기운이 강하게 느껴져요. 역할을 선택함에 있어 새로운 도전이었죠? 한때 액션 배우를 꿈꿨지만 현실과 타협해 학교에서 조교로 일하는 ‘선아’라는 인물을 맡았어요. 지금까지 제가 연기한 인물들이 장르성과 캐릭터성이 짙었다면 선아는 무채색처럼 느껴졌어요. 평범한 역할의 저를 잘 떠올리지 못하는 것 같아서 도전해보고 싶었고, 이렇게 잘 스며들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제 작품을 관심 있게 봐주신 분이라면 단조로운 모습을 오히려 신선하게 느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고요. 장르는 코미디지만 그 바탕이 굉장히 현실적이거든요. 현실 기반 히어로물이에요. 어디에나 있을 법한 사람들이 어떤 사건에 휘말리며 과감한 선택을 하는 이야기예요.

이 영화의 관람 포인트를 꼽는다면요? 단연코 캐릭터예요. 모두 나사가 하나쯤 빠진 사람들 같은데 그 역할을 모두가 200% 잘해냈다고 생각해요. 어딘가 부족하고 삐거덕대는 캐릭터들이 사건을 일으키며 만들어내는 부조화가 매우 조화로운 영화라고 자부합니다. 그리고 너무 웃겨요. 생각 없이 가볍게 볼 수 있는 영화예요.

한국예술종합학교 졸업 작품이라고 들었는데, 한예종 졸작 중에도 생각 없이 가볍게 볼 수 있는 영화가 있군요.(웃음) 그게 이 영화의 매력 포인트예요.(웃음) 어느 영화 관련 기관에서 이 영화를 두고 ‘코믹하게’라는 표현을 썼는데 감독님이 그걸 보고 무척 좋아하시더라고요. 기관에서 소개하는 영화 중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표현이니까요.

또 공개될 작품이 있나요? 아직 시기는 정해지지 않았는데 짧은 공포물이 있어요. 제가 119 구조대인데 사고를 당한 뒤 재활원에 보내져요. 어딘가 이상한 느낌이 드는 공간에서 환상을 보기도 하고…, 음….

말을 아끼고 싶군요. 자세히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웃음) 배우로서 극한으로 내몰리는 연기를 해야 했어요. 그래서 더 하고 싶었고요. 소리 지르고, 바닥을 기고, 러닝머신 위를 뛰는 등 체력 소모가 컸는데 어떻게 완성될지 궁금해요. 재미있을 것 같아요.

두 작품의 간극이 큰데 연기하기는 괜찮았나요? 그 간극을 즐기는 편이에요. 우리가 평소에는 사회적인 얼굴을 보여주려 가면을 쓰고 살잖아요. 억제 당하기도 하고, 또 스스로 억누르기도 하면서요. 눌려 있던 것을 표출하면서 인간의 다양한 모습을 연기를 통해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것이 제 일이라고 생각해요. 저 역시 이 과정이 즐겁고요. 제 연기를 볼 때 과거에 힘들게 산 보상을 얻는 느낌도 간혹 받아요. 과거의 고통을 연기할 때 꺼내서 사용하면 그것들이 다 헛되지 않았구나 싶고, 또 비슷한 일을 겪은 누군가는 내 연기를 보면서 위로받을 수도 있지 않을까 그랬으면 좋겠고요. 언젠가 영화 관객과의 대화(GV) 자리에서 모더레이터 분이 자신의 깊은 것을 재료로 사용한다는 점에서 배우들은 마음이 아플 때가 있을 것 같다고 하시더라고요. 근데 저는 오히려 그래서 감사해요. 내가 연기를 하지 않았으면 어떻게 됐을까. 내 안의 것을 연기하며 내보낼 수 있다는 게 참 다행이고요.

 

이주영 액션 히어로

이주영 액션 히어로

이주영 액션 히어로

화이트 트위드 재킷 방떼(Vente). 화이트 롱스커트 레호(Lehho), 베레모 더애쉴린(The Ashlynn), 볼드한 진주 이어링 로맨시크(Romanchic), 링 타티아나 쥬얼리(Tatiana Jewelry), 메리제인 슈즈 레이첼 콕스(Rachel Cox).

이주영 액션 히어로

재킷과 팬츠 모두 잉크(EENK), 골드 이어링 레이지던(LAZYDAWN), 슈즈 레이첼 콕스(Rachel Cox).

 

역할의 경중을 따지지 않으며 연기한다는 인상을 받아요. 이름을 알린 뒤에도 독립영화에 꾸준히 출연하고 있고요. 혹자는 이제 메인스트림에서 활동해야 한다고 충고하거나 단계별로 비중을 높여 역할을 맡아야 한다고 조언할지도 모르겠어요. 배우마다 다른 길이 있다고 생각해요. 이 일을 진짜 오래 하고 싶거든요. 나중에 할머니 되서 못 일어나면 앉아서라도 연기하겠다고 농담할 정도로요. 연기 인생을 마라톤이라고 생각했을 때 아무리 규모가 크더라도 마음이 가지 않는 작품을 하는 건 저에게 도움이 안 될 것 같아요. 또 이 나이에 할 수 있는 것들이 분명히 있으니까, 어떤 역은 시간이 지나면 할 수 없을 것 같아 이것저것 따지지 않고 연기하고 싶기도 해요.

계산하지 않는군요. 계산을 한다면 ‘내가 이 역할을 깊이 사랑하면서 할 수 있나?’만 셈하게 될 거예요.

인스타그램을 보면 일상이 굉장히 단조로워요. 예전에는 단조롭지 않았어요.(웃음) 지금 돌이켜보면 그때는 멋모르고, 내가 뭘 좋아하는지 모르니까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기 위해 그러고 다녔던 것 같아요. 스스로에 대해 조금씩 알게 됐기 때문에 이제는 그렇게 못 살 것 같아요. 정적에 싸여 하루를 보내는 게 좋아요. 오늘도 그렇고 직업 특성상 때때로 화려해지기도 하지만, 그러다 현실로 돌아가면 괴리가 워낙 크니까 이 둘을 잘 구분하려고 해요. 그래서 점점 작지만 소중한 것들을 들여다보려고 하는 거 같고요.

단조로운 일상에서 유기견 봉사 활동이 주를 이루는 거 같더라고요. 임보(임시보호)도 시작했죠? 반년 넘게 고민하다 임보를 하게 됐어요. 선뜻 용기가 나지 않아서 매일 지켜보기만 했어요. 입양하는 것과 보호하다가 다른 분께 보내는 건 다른 거잖아요. 입양하면 온전히 내가 책임지는 거지만 임보를 하는 도중에 내가 나쁜 습관을 들이면 어쩌나 하는 고민이 들고, 또 잘할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아서 오래 생각했던 거 같아요. 그렇게 몇 개월을 보기만 하다가 딱 꽂힌 강아지를 만났어요. 다리 한쪽에 장애가 있는 아이예요.

장애를 가진 강아지라니 두 배의 용기를 냈네요. 전신 화상을 입거나 심각한 부상을 입은 개들을 두고 어떤 분들은 차라리 안락사를 시키는 게 개들을 위해 나을 거라고 말하잖아요. 근데 저는 임보를 하면서 이 친구가 점점 나아지고 있는 걸 매일 목격하니까. 생명에 대해서는 누구도 함부로 판단할 수 없다는 걸 새삼 느껴요. 이 친구를 돌보고 있지만 정작 제가 돌봄을 받는 것 같기도 하고요.

일상의 평정심을 유지하는 방법으로 등산도 하죠. 얼마 전에 한라산에 다녀왔어요. 지난해부터 등산을 시작했어요. 배우 일을 시작하고 얼마 뒤부터는 크건 작건 한 달에 한 작품씩은 늘 꾸준히 일이 있었거든요. 지난해에 코로나19 때문에 촬영 한 달 전에 갑자기 작품이 엎어지기도 하면서 6개월을 쉬었어요. 이 시간을 어떻게 보내면 좋을지 생각하다 산에 올랐는데 저와 잘 맞더라고요. 정상에서 보는 탁 트인 풍경도 더없이 좋고요. 아, 그리고 얼마 전에 마라톤도 했어요.

등산이나 마라톤 등 지구력을 요하는 운동이 몸은 힘들지만 정신을 명료하게 하죠. 맞아요. 14km 정도 뛰었을 때 빡 왔어요. 아, 이제 내가 모든 걸 다 할 수 있겠다 싶더라고요. 그러면서 몸 전체에 긍정적인 기운이 돌고.

원래는 만나면 이 말부터 하려고 했어요. 지난 한 해 드라마 <보건교사 안은영>이나 영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처럼 저마다 다른 이유로 호평받은 작품에 두루 참여했잖아요. 제가 주영 씨라면 스스로 참 뿌듯할 거 같아요.(웃음) 네. 너무 좋아요. 저는 제가 출연한 작품이 정말 다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