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서울 아주 사적인 궁궐 산책

 

‘박물관을 좋아하는 유물 애호가’라고 자신을 소개하며 쉽고 가벼운 유물 이야기로 유물을 덕질 굿즈의 위치로 옮겨놓은 김서울 작가. 옛것을 오늘의 관점과 태도로 바라보는 동시에 작가 특유의 심드렁하고 능청스러운 유머가 더해진 ‘문화재 덕후’의 이야기가 독자들의 큰 지지를 받고 있다. 그의 첫 책 <유물즈>는 독립 출판물로는 이례적으로 인쇄 물량이 전부 판매됐으며, 이후 한 온라인 서점에서 기획한 양장본 역시 현재 절판된 상태다. 이후 <뮤지엄 서울>을 내면서 박물관과 유물, 유적에 대해 꾸준히 이야기해온 그가 최근 산책하듯 가볍게 궁을 거닐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아주 사적인 궁궐 산책>을 냈다. 첫 장의 제목 ‘초심자도 마니아도 궁며드는’에 걸맞게 책 한 권에 우리 궁의 아름다움이 은은히 배어 있다. 비 소식이 없는 7월의 첫날, 그와 경희궁을 걸었다.

 

 

김서울 아주 사적인 궁궐 산책

 

서울에서 나고 자랐지만 경희궁 안에 들어와보긴 처음입니다. 경희궁 앞을 무수히 지나다녔는데도요. 참 조용하죠? 유독 경희궁이 다른 궁보다 인적이 드물어요. 서울 시내에서 고요한 장소를 찾기가 어렵잖아요. 인적 드문 곳을 때로 혼자서 즐길 수 있는 점이 고궁 산책의 즐거움이에요. 책에도 썼지만 경희궁은 궁 뒤편에 서암이 있어서 세워졌어요. 풍수지리학적으로 ‘왕의 기운’이 있는, 왕이 나는 터라 했기 때문인데요. 처음 완성했을 때만 해도 청덕궁과 비슷한 규모의 궁이었는데, 흥선대원군 집권 당시 경복궁 중건을 위해 전각의 90%를 해체했고, 이후 일제가 남은 궁 건물을 팔아 지금의 모습이 됐죠.

책을 보며 경희궁의 흥망성쇠를 구체적으로 알고 나니 서울의 다른 궁보다 유독 마음이 쓰이더라고요. 미약하지만 끈질기게 버텨주었으면 하고요. 위치상으로는 창덕궁이나 창경궁보다 광화문과 가깝지만 존재감은 미미하죠. 궁궐 행사가 열려도 경희궁에서 하는 경우는 거의 없어요. 궁궐 관련 서적에서도 자주 제외돼 있고요. 또 경희궁이 지닌 역사 때문에 나이 든 분들은 경희궁을 두고 처연하다 애절하다고도 표현하는데, 이런 이미지가 없어졌으면 좋겠어요. 이런 인식이 이곳을 더 어둡게 만드니까요. 밝게 햇빛도 좀 쬐고, 환기도 됐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책에 경희궁 파트를 꼭 넣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흔히 궁을 주제로 쓴 글이라고 하면 특정 인물이나 사건이 등장해야 할 것 같은데, 이 책은 역사적 사료는 덜어내고 건축적으로 접근하는 부분이 많아요. 나무나 돌 같은 옛 건축자재에 대한 설명이나 공간 자체에 대한 서술이 인상적이에요. 역사적 서술은 이미 잘하는 분이 워낙 많잖아요. 역사 전공자가 아니기 때문에 제 역할도 아닌 것 같고요. (김서울은 전통 회화와 보존 과학을 공부했다.) 무엇보다 이런 역사적 설명을 좋아하지 않아요. 좋아하지 않으면 말이 매끄럽게 이어지지 않잖아요. 자기 말을 할 때와 남의 말을 옮길 때 차이가 있으니까. 처음부터 책을 쓰고 작가가 되려고 한 건 아니지만 글쓰기를 시작하며 가진 생각은 ‘내 이야기만 쓰자’였어요. 궁을 주제로 이야기할 때도 마찬가지로 ‘내가 좋아하는 건 이런 것이고, 좋아해서 더 찾아봤다. 이 부분을 유심히 보는 것도 궁을 즐기는 한 방법이다’ 하고 전하고 싶었고요.

전작인 <유물즈>와 <뮤지엄 서울>을 통해 유물이 덕질의 대상, 박물관이 일상의 공간이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줬어요. 이 책도 궁궐을 도심 속 산책과 휴식의 장소로 주목했다는 데서 전작들과 연결된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과거의 것을 오늘, 지금의 자리로 가져오며 일상성을 강조하는 데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역사와 전통에 대해 공부하고 관련 분야의 일을 하며 느낀 건 역사는 단순한 과거가 아니라 과거와 현재, 미래를 잇는 연결선이라는 사실이에요. 그 연결선에서 보이는 어떤 기조가 전통이 되는 거고요. 클래식이 단지 고전음악만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현대음악도 어느 순간 클래식에 흡수되잖아요. 현재와 닿아 있어야 역사고, 닿아 있지 않으면 그저 과거일 뿐이라고 생각해요. 단절된 과거는 좋아하지 않아요. 제가 관심을 두는 주제는 현재의 궁, 즉 2021년의 궁이에요.

과거를 현재와 연결 지으려는 태도는 어디에서 기인할까요? 사학 전공자가 아니라서 그럴 수도 있어요. 전통 회화 등의 기법에 가까운 분야를 연구했는데 전공을 전통 회화로 선택한 이유는 ‘과거의 것이 참 좋다, 과거의 것만 배워야겠다’ 하는 마음이 아니었어요. 과거의 기술을 지금은 잘 다루지 않는 새로운 것이라 인식했기 때문에 전통 회화를 공부했거든요. 아무도 하지 않으니까 힙한 거죠. 그래서 이를 현대 작업으로 이어보고 싶었고요. 그 지향점에서 계속 작업이 연장되고 있어요.

책 서문에 조선 왕실에 처음부터 호감을 갖진 않았다고 썼습니다. 조선이라는 국가나 궁중 문화에 대한 반감이 있었나요? 둘 다인 것 같아요. 일단 계급사회가 싫었어요. 저는 아마 그 시대에 살았으면 몹시 불행했을 것 같거든요. 족보를 따져봐도 그렇고.(웃음) 저는 분명 왕실 사람은 아니었을 거란 말이죠. 조선 왕실 문화는 물론 유럽 왕실 문화에도 긍정적인 편은 아니에요. 무엇보다 고루한 대상이라고 봤어요. 게다가 궁 하면 왕실이 남긴 유적지로서 사람들이 우러러보는 태도가 있잖아요. 마치 지금도 그곳에 왕이 살고 있는 것처럼 행동하기도 하고, 혹자는 마치 자신이 왕실의 일원인 것처럼 생각하기도 하고요. 거기서 생기는 불편한 마음이 있었어요. 조선과 조선 왕실에 완전히 호응하기 힘들다는 점이 저를 붙잡은 것 같아요. 이해해야 하는 부분인데도 이해하고 싶지 않았던 거죠.

그럼에도 궁을 주제로 책을 써야겠다고 마음먹은 이유가 궁금합니다. ‘조선과 왕실’이라는 주제를 제대로 다루지 못하면 저에게도 특정 시대의 역사적인 서술 면에서 공백이 생기는 거잖아요. 그 공백을 메울 기회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때마침 책을 써보라는 제안을 받았어요. 답사를 다니면서 역사적인 내용보다는 제가 좋아하는 요소를 궁에서 찾는 작업을 시작했죠.

 

김서울 아주 사적인 궁궐 산책

 

그 좋아하는 요소 중 하나가 ‘고궁의 돌짐승들’ 장에 등장하는 수석이 아닐까 짐작됩니다. 이 장에서 작가가 유난히 신나 있다고 느껴지더라고요. 가장 행복해하며 쓰지 않았을까 싶고요. 맞아요. 답사 가서 맨 처음 발견한 좋은 요소가 돌짐승이었어요. 거리를 둔 태도로 궁을 돌아다니다가 석수를 보고 대번에 느꼈어요. ‘아, 좋아하게 되겠구나’ 하고요. 동시에 반가웠어요. 궁에서 좋아하는 걸 영영 찾지 못할까 봐 걱정했었거든요. 안심이 되기도 하고, 힘도 났어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글에서 티가 나는 거 같아요.

<유물즈>나 <뮤지엄 서울>에서는 디지털 박물관을 활용하거나 실내에 있는 옛 유물의 매력을 보여주었죠. 이번 책은 매번 밖으로 나와 몸을 움직여야 했습니다. 이 점이 다른 감상을 주기도 했나요? 박물관을 선호하는 이유는 사계절 중 언제 가도 일정한 온습도와 조도를 유지한다는 점이에요. 그 일관성에서 안정감을 느꼈고요. 반대로 궁궐은 안정적이지는 않지만 기후에 따라 매번 모습을 달리하는 점이 매력이죠. 지금도 덥고 습하잖아요. 이런 날에만 볼 수 있는 풍경이 있어요. 6월 중순에 경희궁에 왔는데, 오늘 촬영하면서 잠깐 보니 녹음이 많이 짙어졌더라고요. 이렇게 늘 다른 모습을 보게 되는구나 싶고, 그 점이 좋아요.

이쯤 되면 옛 유물과 유적이 김서울이라는 필터를 통과하면 어떤 모습으로 변하는지 생각이 정리되었을 것 같은데요? 제가 하는 모든 일이 일종의 번역이라고 생각해요. 이미 있는 대상이고, 읽을 수 있는 언어로 작성돼 있는 대상을 다루니까요. 그동안 그 대상에 다가가지 못했거나 이해하지 못한 사람에게 제가 해석해주는 것 뿐이에요. 문학도 번역자에 따라 작품의 분위기나 톤이 달라지기도 하잖아요. 유물을 대하는 사람마다 각자 자기 언어가 있고, 이를 번역하는 과정 역시 다르다고 생각해요. 저는 유물과 유적이 번역될 수 있는 대상임을, 그 가능성을 알려드리고 싶은 것이고요.

음…, 제 생각에 유물과 유적이 김서울을 통과하면 유머를 입어요.(웃음) (웃음) 저는 스스로 재미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딱딱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데 책을 읽고 재미있다고 말씀해주시는 분들을 볼 때 가장 신기해요.

가령 ‘왕실의 행사용품’ 장에서 금장도와 은장도를 두고 쓴 “왕실 행사의 유물들을 보고 나면 남는 것은 조상님에 대한 존경심뿐. 근력도 근성도 모두 조상님이 이겼습니다.” 같은 문장을 읽을 때면 작가의 내재된 흥이 느껴진다고 할까요? 자기가 써놓은 글을 웃으면서 읽으면 마치 자기 유머에 웃는 개그맨이 되는 것 같아요. ‘이건 참 웃기다’ 하며 쓰는 것 자체가 이미 실패한 유머가 아닐까 싶고요. 그렇다면 저는 성공한 유머를 구사했네요.(웃음) 음, 이 이야기를 하려는 건 아니었는데. 여기 있는 사람을 다 웃겨야지 하는 태도로 글을 쓰지는 않았어요. 다만 글을 엄격히 정제하는 편은 아니에요. ‘역사적으로 틀린 서술이나 윤리적으로 잘못된 글을 쓰지 말자.’ 이 두 가지는 지키려고 해요. 여기에 걸리지만 않으면 뭐가 됐든 크게 거르지 않고 쓰고요. 제가 던진 것 중 몇 개는 발견해주시니까. 저는 발견되어 기쁘고요.

어느 인터뷰에서 “요즘 출판계에서 넥스트 유홍준을 찾고 있다는데, 제가 되고 싶고요”라고 하셨더라고요. 패기에 반했습니다. 평소 알고 지내는 분과 한 인터뷰였거든요. ‘오프 더 레코드인데요’ 하고 했던 말이.(웃음) 주변에서 저를 두고 ‘유홍준의 뺨을 치는’ ‘유홍준, 물렀거라’ 하며 놀리는 분들이 있어요. 근데 그분은 이런 농담에도 타격이 없을 테니 괜찮지 않을까요? 그저 저만 부끄럽죠 뭐.

아마 제가 그 농담을 지금까지 기억하는 건 중년 남성들이 주류를 이루는 보수적인 학계에서 젊은 여성이 활약한다는 사실이 반갑기 때문인 것 같아요. 제가 역사학계 사람은 아니지만 문화재를 다루는 사람 하면 중년 남성들이 대표하는 경향이 있죠. 이런 분위기에서 20~30대 여자가 대표하면 안 되나? 그러니까 굳이 제가 아니어도 여자는 하면 안 돼?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해서 치기 어린 마음에 그랬던 거 같아요. 어떤 면에서는 이 작업을 계속하려면 이름을 알릴 필요도 있어요. 어느 정도 유명해지면 답사를 가도 숙소나 이동 수단을 제공해주니까요. 저는 답사 다니려고 면허도 따고 두세 시간씩 등산도 하는데. 물론 유명한 분들도 등산은 하겠지만. 답사할 때 지원받는 부분에 대한 부러움이 있었거든요. 누가 숙박이라도 제공해줬으면 좋겠다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