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지 섹스

다시 스페인에 간다면

여름방학을 맞아 유럽 여행을 떠났을 때 그를 처음 만났다. 일정이 비슷했는지 2주 동안 서너 번 마주쳤고, 그러다가 한 축제에서 단둘이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눴다. 스페인 사람인 그는 내게 “언젠가 바르셀로나에서 보자”고 했다. 당시에는 기약 없는 약속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한국으로 돌아온 이후에도 자꾸만 그의 얼굴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SNS로 그와 계속 메시지를 주고받았고, 좀 더 가까운 사이가 되고 싶어 스페인어 학원까지 등록했다. 주변 친구들은 “이 정도면 상사병이다”라고 했다. 그 말에 나는 그를 꼭 만나겠다고 결심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무작정 바르셀로나로 향했을 때, 다행히 그는 날 반갑게 맞으며 자기 집으로 초대했다. 그 집에서 같이 술을 마셨고, 키스도 했고, 섹스까지 했다. 안타깝게도 지금은 세월이 많이 흘러 연락이 끊겼지만, 그곳을 다시 찾아가면 운명처럼 마주칠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완전히 버리진 못했다. J(29세, 마케터)

 

고성 해변에서

해변에서 최선은 땡볕 아래 땀을 뻘뻘 흘리며 놀거나 늘어져 있는 게 아닐까? 재작년 여름, 고성의 한 해변에 갔다. 스윔 팬츠 한 장 걸치고 선글라스로 눈을 가린 채 모래사장에 대자로 누워 있었다. 그때 누군가 내게 다가와 말했다. “여기 누워도 되죠?” 이토록 크고 넓은 해변에, 비치 타월을 하필 내 옆에 꼭 붙여 깔면서 말이다. “그럼요.” 그렇게 처음 본 사람과 반나절을 함께 보내게 되었다. 이곳에 자주 오는지, 숙소는 정했는지 종종 몇 마디 나누던 우리는 근처 식당에서 이른 저녁을 먹었다. 작별 인사를 언제 해야 하나 결정하려 망설이는데 그가 입을 열었다. “제 숙소의 침대가 꽤 넓거든요. 두 사람이 대자로 누워도 될 만큼. 가시죠. 씻게.” 통보하듯 날아온 말. 나는 웃으며 화답했다. 우리는 손을 잡고 숙소에 들어섰다. 그리고 몸이 엉킨 채 침대로 갔다. A(30세, 프리랜서)

 

욕정의 부산

내 인생에서 잊을 수 없는 섹스 중 하나는 휴가 나온 군인과 여행을 떠난 때 경험했다. 육체가 아주 건강하던 시절, 우린 부산에서 참 잘도 돌아다녔다. 여행 첫날, 높은 곳에서 바다를 보자며 태종대를 트레킹한 후 숙소로 돌아왔다. 미끈한 대리석이 깔린 호화로운 호텔은 아니었다. 꽃무늬 벽지가 눈에 띄고, 천장에는 거울이 달려 있는 민박집이었다. 가끔은 이런 분위기가 섹스에 더 몰입하게 만드는 것 같다. 밖에서 4시간 가까이 땀 흘리며 걸은 게 사실인가 싶을 정도로, 우리는 짐승처럼 서로에게 달려들었으니까. 눈빛에 욕정을 가득 머금은 그가 창의적 아이디어를 뽐낸 덕분에 침대보다 욕조가 환상적인 무대라는 걸 처음 깨달았다. 이제는 섬세하고 사려 깊은 섹스를 선호하게 되었지만, 여름날 태종대에 갈때면 부끄럽게도 그가 떠오른다. B(31세, 회사원)

 

스릴 넘치는 포천 캠핑

누구나 쉽게 말하지 못할 성적 판타지 하나쯤은 갖고 있다. 우리는 스릴을 좋아한다. 누군가 볼지도, 어쩌면 목소리가 들릴지도 모르는 아슬아슬한 순간. 그날의 캠핑장도 그랬다. 어느 봄날, 포천에 있는 한 캠핑장으로 그와 여행을 갔다. 수십 개가 넘는 텐트 중 가장 구석진 곳을 잡은 데는 이유가 있는 법. 생각해보면 그날의 섹스는 유독 격렬했던 것 같다. 야외 한복판, 그것도 낯모르는 사람들 사이에서 우린 서로를 탐하기 시작했다. 부끄럽지만 솔직하게, 욕망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며 황홀한 기분을 만끽했다. 숨 가빴던 시간이 지나가고, 마실 물을 가지러 혼자 텐트 밖으로 나왔다. 아 참, 휴대폰. 몇 걸음 걷다가 텐트 쪽으로 다시 몸을 돌렸다. 그러자 내 눈에 들어온 건 텐트 천 너머로 비치는 그의 그림자였다. 오, 생각보다 잘 보이는구나. 어? 잠깐. L(30세, 회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