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팬데믹 초기에 영국, 프랑스, 스페인 등 유럽 각국과 미국이 전 세계 확진자와 사망자 순위에서 상위를 차지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코로나19가 연거푸 재유행하는 양상이 반복되면서 선진국은 국경을 봉쇄하거나 거리두기 강화를 되풀이하고 있다. 코로나19는 ‘감염병은 개발도상국이나 빈곤국의 문제’라던 통설을 여지없이 무너뜨렸다. 결핵만 해도 발생률과 사망률이 높은 결핵 고위험부담국에 아프리카와 동남아시아 국가 대부분이 속해 있기 때문에 지금의 이런 현상은 생경하기까지 하다. 물론 선진국은 감염병 전파가 용이한 악조건을 두루 갖추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흔히 ‘3밀’이라고 하는 밀폐·밀접·밀집 상황이 빈번하게 벌어진다고 하더라도, 이를 바로잡는 인프라와 제도를 수백 년간 갖추고 있지 않았던가.
그러면 그렇지, 이런 역설적 상황은 오래가지 못했다. 2020년 말부터 코로나19 백신 지도는 부자 국가에 집중되었다. 영국을 비롯한 유럽 전역에서는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접종하기 시작했고, 미국에서는 화이자와 모더나 백신 접종이 대규모로 이뤄졌다. 선진국과 빈곤국의 격차가 결핵 상황처럼 재현되었다. 우리나라의 의사들은 부득이하게 잔여 백신을 폐기해야 할 때면 아프리카 국가들에 미안한 마음을 느꼈다고 했다. 아프리카의 백신 접종률은 고작 6%에 그치고 있으니 말이다(2021년 11월 24일 기준).

국제기구는 백신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여왔다. 세계백신면역연합(GAVI), 유니세프, 세계보건기구(WHO) 등이 주도하는 코백스 퍼실리티(약칭 코백스)는 전 세계에 코로나19 백신을 평등하게 공급하기 위해 설립한 세계 백신 공동 분배 프로젝트다. 저소득 국가에서 코로나19 검사, 치료 및 백신 이용이 공평하도록 국제 자원을 조정하고 있어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전 세계를 휩쓴 코로나19 주요 변이(VOC) 다섯 종류 중 두 종류가 아프리카에서 처음 알려졌다. 베타 변이 바이러스(B.1.351)와 최근 전 세계를 바짝 긴장하게 만드는 오미크론 변이 바이러스(B.1.1.529) 모두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확산되기 시작했다. 전파력이 델타 변이보다 2배 이상 높아 확진자가 급증하는 만큼 남아프리카공화국 사람들이 잘 견뎌낼지 우려가 앞선다.

그런데 비단 아프리카만의 문제일까. 우리나라에서도 고시원, 고시텔, 쉼터, 쪽방 등 정규 주거 시설이 아닌 곳에서 꾸준히 확진자가 나타나고 있다. 노숙인이나 쪽방 거주자가 확진자로 밝혀지면 10일간의 격리 기간 동안 담배, 알코올 의존 문제가 야기되기 때문에 이들을 돌봐야 하는 의료진의 부담은 몇 배로 늘어날 수 있다. 그러면 영양 결핍 상태의 아프리카 사람과 우리 사회 극빈층인 노숙인의 공통적인 문제는 무엇일까? 바로 ‘취약성(vulnerability)’이다. 취약성은 건강 불평등을 초래한다. 사회경제적 요소가 건강과 질병에 결정적으로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코로나19는 우리 사회의 모든 사람들에게 공평하게 다가왔을까? 아프리카 시인인 무스타파 달랩이 코로나19의 공평성을 피력한 시의 일부를 발췌해 소개한다.

시장의 모든 물건을 맘껏 살 수도 없으며 병원은 만원으로 들어차 있고 더 이상 돈으로 해결되는 문제들이 아님을 깨닫게 되었다. 코로나 바이러스 앞에서는 우리 모두 똑같이 연약한 존재일 뿐이라는 것도. 외출할 수 없는 주인들 때문에 차고 안에서 최고급 차들이 잠자고 있으며 그런 식으로 단 며칠만에 세상에는 사회적 평등(이전에는 실현 불가능해 보였던)이 이루어졌다. 공포가 모든 사람을 사로잡았다.가난한 이들에게서 부유하고 힘 있는 이들에게로 공포는 자기 자리를 옮겼다.우리에게 인류임을 자각시키고 우리의 휴머니즘을 일깨우며 화성에 가서 살고 복제 인간을 만들고 영원히 살기를 바라던 우리 인류에게 그 한계를 깨닫게 해주었다.

시의 내용에 충분히 공감한다. 그럼에도 자명한 사실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공평한 기회가 주어진다고 해도 취약성은 왜곡과 붕괴를 증폭시킨다. 코로나19에 노출될 기회가 평등하다 해도 취약성을 내포한 사람들은 더 큰 아픔과 후유증을 감수해야 한다.지난 2년간 세계 각국은 중세의 몰락을 재촉한 페스트에 비견될 만큼 역사상 가장 강력한 감염병과 싸우고 있다. 이 글을 쓰는 지금, 국내 일일 확진자는 7천 명을 넘었다. 코로나19가 우리 곁에 바짝 다가서고 있다. 감히 말하건대 누구나 감염될 수 있지만, 누구는 덜 감염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