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승환 안녕이란 말

니트 베스트 오드디파트먼트 (Odd Deepartment), 진주 네크리스 아몬즈 (Amondz), 실버 네크리스 리타 모니카(Rita Monica).

정승환 안녕이란 말

셔츠 셀린느 옴므 바이 에디 슬리먼(Celine Homme by Hedi Slimane), 팬츠 아크메드라비(Acme de la Vie), 신발 제이더블유 앤더슨(JW Anderson), 넥타이와 양말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5월 13일에 신곡 ‘안녕이란 말’이 공개되었습니다. 이 곡을 준비할 때 어떤 기분이 들었나요? 묘했어요. 가이드의 보컬이 저와 완전히 다른 스타일이라 처음부터 확 마음에 와닿지는 않았거든요. 한번 불러보자 하는 생각으로 녹음실에 들어갔는데, 부를수록 제가 음악 안으로 들어가는 듯한 느낌이 들더라고요. 저뿐 아니라 현장에 같이 있던 사람들도 이 곡에 자꾸 마음이 간다는 말을 했고요. ‘안녕이란 말’은 전반적으로 음역대가 높은 데다가 고음이 후반부에 몰아쳐서 부르기 무척 어려운 곡이에요. 노래방을 찾은 이들의 도전 의식을 불러일으키는 곡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웃음)

“사랑의 시작과 끝이 모두 ‘안녕’ 하는 짧은 인사를 동반한다”라는 신곡 소개 글에서도 알 수 있듯, 안녕이란 말은 여러 상황에 쓰여요. 승환 씨에게 안녕은 어떤 의미를 지닌 단어인가요? 안녕이란 단어는 저와 인연이 깊어요. 두 번째 미니 앨범이 <안녕, 나의 우주>고, 큰 애착을 갖고 있는 제 곡이자 연말 공연의 제목도 ‘안녕, 겨울’이잖아요. 지난해 연말 공연의 소개 글에는 이런 문장을 적어놓았어요. “그러니까 안녕은 서로의 등이 되는 돌아섦이 아니라 서로의 손이 되는 마주함이겠지요.” 제가 그간 부른 발라드가 대부분 이번 신곡과 비슷한 감성을 지닌 듯해요. ‘이게 가수 정승환의 정서인가?’ 하는 생각도 들더라고요.

안녕 하면 어떤 감정이 가장 먼저 떠오르나요? 아련함이요. 슬픈 발라드를 자주 불러서 그런지 만남의 설렘보다는 ‘굿바이’의 안녕을 더 많이 생각하게 돼요.
반가웠던 안녕의 순간이 있다면요? 최근에 그런 의미로 안녕이란 말을 자주 건넸어요. 며칠 전 3년 만에 팬 미팅을 열었거든요. 이날 팬들과 주고받은 ‘안녕’에 수많은 감정이 담겨 있었던 것 같아요.

이번 팬 미팅의 의미가 남달랐을 것 같아요. 코로나19 규제가 완화돼 다 같이 ‘떼창’을 할 수 있었으니까요. 맞아요. 팬데믹 기간에 ’언젠가 떼창 할 날이 올 거야’라는 희망을 품고 만든 곡이 ‘언제라도 어디에서라도’인데, 그동안은 녹음된 코러스 트랙을 틀어놓은 채 혼자 노래했어요. 이번 팬 미팅을 준비할 당시에도 떼창을 할 수 있을 거라곤 상상도 못 했고요. 다행히 코로나19 상황이 나아져서 처음으로 이 곡을 관객들과 불러봤어요. 마스크를 넘어 들려오는 노랫소리가 공연장을 채우는 순간의 희열을 오랜만에 느꼈죠. 울컥하더라고요.

이날 승환 씨가 지나온 날들을 함께 돌아보는 시간도 가졌다고 들었어요. 왜 이 시점에 과거를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열아홉 살 때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해 대중 앞에 섰고, 스물한 살에 데뷔한 후 올해로 스물일곱 살이 되었잖아요. 가수 그리고 인간 정승환에 대해 자꾸 되돌아보게 되더라고요. 짧지 않은 시간이 흐르면서 저 자신도, 주변 상황도 많이 바뀌었어요. 하지만 조금도 변하지 않은 사실은 저한테 팬들이 있다는 거였어요. 저에 관한 이야기를 쑥스러워서 잘 못 하는 편인데, 이번에는 용기 내어 저의 시간을 공유하고 싶더라고요. 부끄럽지만 ‘팬들이 좋아해준다면 됐다’ 하는 마음으로 춤도 열심히 춰봤고요. 이 사람들 앞에서는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든든하고 고마운 존재죠.

어떤 점이 제일 고마운가요? 꾸준하게, 격렬히 또는 묵묵히 저를 응원해주는 팬들은 형용할 수 없을 만큼 큰 감동을 줘요. 데뷔 초반에는 팬들의 사랑이 어색했어요. 스스로를 좋아하지 못하던 시간이 많았고, 대단할 것 없는 저를 이토록 아끼는 이유가 무얼까 하는 의문이 들어서 마냥 감사하기는 어려웠거든요. 그런데 오랜 기간 제 곁에 있어준 팬들을 보면서 ‘왜?’라는 질문을 지워야겠다고 느꼈어요. 제가 표현이 서툴러서 서운했던 분들도 있을 거예요. 이런 말을 하기는 미안하지만, 팬들은 기다림의 고수 같아요. 이 인터뷰를 읽는 팬들이 ‘알면서도 그랬던 거야? 어떻게 그럴 수 있어?’ 하고 생각할 것 같아요.(웃음)

많은 사람이 정승환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는 노래에서 느껴지는 섬세한 감정이 아닐까 싶어요. 노래할 때 꼭 지키는 방식이 있나요? 물론 감정을 남김없이 쏟아내야 할 때도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과하지 않게 표현하려고 해요. 또 가사를 한 자 한 자 생각하지 않고 그 안에 담긴 감정에 집중해요. 이를테면 “너였다면 어떨 것 같아?”라고 노래할 때 문장 자체보다는 답답함과 원망스러움을 떠올리죠. 가사가 누군가에게 전하는 말처럼 들릴 수 있도록 하려고 항상 노력해요.

어떤 가사를 접했을 때 부르고 싶은 마음이 생겨요? 노래를 부를 때면 가사에 따라 어떤 표정이 연상돼요. 우는 얼굴보다는 웃고 있지만 슬픔이 느껴지는 얼굴에 더 끌려요. “이대로 우리는 좋아 보여”, “믿으며 흘러가”라고 덤덤하게 이야기하는 ‘사랑이 다른 사랑으로 잊혀지네’라는 곡처럼요. 이런 가사에서 느껴지는 먹먹함 때문에 발라드를 사랑하는 것 같아요.

승환 씨의 가사도 담백한 매력이 있어요. 화려하진 않지만 마음이 느껴지는 일기나 편지 같다고 할까요. 진심을 직접적으로 이야기하는 데 어려움을 느끼는 사람인데, 음악을 할 땐 무언가가 해소되는 기분이 들어요. 노래할 때의 제가 가장 저답다고 생각하고요. 물론 모든 순간에 진심을 다했다고는 할 수 없지만, 음악 안에서는 최대한 솔직하고 싶다는 말을 예전부터 자주 했어요.

요즘에도 그런가요? 그런 것 같아요. 사실 가사를 쓸 때 지나치게 개인적인 이야기라고 느끼면 머뭇거리기도 하는데, 음악을 비롯한 예술은 결국 자기표현의 수단이기도 하잖아요. 그마저도 하지 못한다면 노래하는 이유가 사라지는 것 같아요.

 

 

정승환 안녕이란 말

재킷 메종 마르지엘라(Maison Margiela), 니트 베스트 프레드 페리(Fred Perry), 팬츠 어널로이드(Unalloyed), 신발 프라다(Prada).

안녕이란 말 정승환

지금까지 발표한 곡 중 어떤 곡이 현재의 자신과 제일 닮았나요? 하나의 곡을 완성해가다 보면 감상하기보다는 객관적인 판단을 해야 하기 때문에 발매 직후에는 제 음악을 잘 안 듣는 편인데, 얼마 전 2018년에 공개한 드라마 <라이프>의 OST ‘잘 지내요’를 다시 들어봤어요. “잘 지내요, 오늘도. 언제부턴가 참 쉬운 그 말. 나조차 모르는 내 맘을 들키기 싫어 감추는 게 익숙해져요”라는 가사를 보면서 ‘이때의 나와 지금의 나 사이에 달라지지 않은 지점이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 가사를 쓰면서 머리를 쥐어뜯던 일이 지금도 기억나요. 가사 작업이 저에게는 제일 힘들어요.

그 반면에 가사가 아닌 글은 편하게 쓰는 것 같아요. 글쓰기가 취미라고 알려져 있어요. 휴대폰 메모장을 켜면 시간이 휙휙 가더라고요. 시를 흉내 내거나, 친구와 나눈 대화나 풍경을 보며 느낀 점을 기록하거나, 제 생각을 정리하는 문장을 적는 식이에요. 마음이 가는 대로 막 쓰고 있어요.

직업이 아니니 잘 써야 한다는 부담도 없을 테고요. 그렇죠. 그런데 ‘좀 잘 썼네?’ 싶으면 혼자 엄청 뿌듯해요. 글을 쓰는 가장 큰 이유는 제가 좋아하는 제 모습을 자꾸 마주하고 싶기 때문이에요. 자존감을 지킬 수 있는 건강한 행위인 것 같아요.

글 쓰는 자신을 좋아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제가 동경하는 시인들과 조금씩 닮아가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 때가 있거든요. 같은 사물이더라도 다르게 꿰뚫어 보고, 그 시선을 시로 표현해내는 시인들이 참 멋있어요.

음악 안에 자신만의 시선을 담아내는 승환 씨를 멋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거예요. 글을 읽고 쓴다는 사실이 곡 작업에 영향을 끼치기도 하나요? 너무나 큰 영향을 주죠. 시를 읽는다고 가사가 잘 써지는 건 아니지만, 영감을 받을 순 있으니까요. 제 음악에 영감을 가장 많이 주는 건 영화예요. <그녀>의 마지막 장면은 ‘안녕, 겨울’의 전부라고 볼 수 있어요. 최근에 감상한 영화는 <먼 훗날 우리>인데, 내가 왜 이러나 싶을 정도로 엉엉 울면서 봤어요.

작사뿐 아니라 작곡에도 꾸준히 참여했죠. 어떤 음악을 즐겨 듣는지 궁금해요. 예전엔 듣는 장르가 한정돼 있었어요. 라디오헤드, 오아시스, 너바나, 커트 코베인의 음악만 들었죠. 그러다가 데뷔 이후에 샘 김이 R&B를 들려줬는데 참 좋더라고요. 요즘은 일본 음악을 열심히 듣는 중이고, 삼바와 재즈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접하는 편이에요.

‘발라드 세손’으로 꼽히지만, 발라드에 국한되고 싶지 않다는 말을 자주 했죠. 발라드 외에 도전하고 싶은 장르가 있나요? 음악을 들을 때 개인적으로 진입 장벽이 가장 높다고 느끼는 장르가 힙합인데, 아이러니하게도 힙합에 피처링 아티스트로 참여할 기회가 생기면 좋겠어요. <쇼미더머니> 본선 경연 무대에 멋진 모습으로 등장하고 싶어요.(웃음)

기대하겠습니다.(웃음) 앞으로 어떻게 노래하는 사람이 될 수 있기를 바라나요? 특정 음악을 들으면 과거의 어느 순간이 떠오르기도 하잖아요. 그날의 온기나 냄새까지도요. 제 노래가 짧게나마 누군가의 일상에 BGM으로 존재한다는 걸 알았을 때 큰 보람과 행복을 느껴요. 그리고 음악을 처음 시작하던 시기에 노래와 관련한 글을 아주 많이 썼거든요. 나중에 살펴보니 이런 문장이 있더라고요. ‘낮은 마음을 노래하는 가수가 되고 싶다.’ 마음이 힘들면 ‘바닥까지 내려간다’라고 표현하잖아요. 그 투박한 맨바닥에 닿을 수 있는 목소리가 되고 싶어요. 그렇게 오랫동안 노래할 수 있기를, 그때까지 제 음악을 들어주는 사람들이 함께하기를 바라요. 그러기 위해서는 계속 노래를 사랑해야겠죠.

그 사랑이 유지될 거라는 확신이 있어요? 그렇지 않을까요? 비유하자면 부부 관계 같거든요. 싸우더라도 이혼 서류에 도장은 안 찍는 거죠. 그런데 제가 노래랑 다퉈본 적이 없어서요. 지금 되게 사이 좋아요.(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