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정화 작가의 작업실은 종로구 연지동 한 주택가에 있다.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깃든 기둥, 그 아래 자리한 정겨운 낡은 철제 대문, 그 뒤로 마당을 빼곡하게 채운 푸른 잎이 무성한 정원. 최정화의 안식처는 이 여름, 계절이 선사한 짙푸른 녹음과 어우러져 제 색깔을 오롯이 뽐내고 있었다. 1964년에 지어진 오래된 주택은 작가의 스튜디오 겸 작품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아카이브다. 현관문을 열면 그 옛날 주택에서 볼 수 있던 나무 마감재 인테리어와 마룻바닥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최정화의 공간임을 드러내는 플라스틱, 거울, 유리, 네온, 건축 폐기물, 골동품 등 동서고금의 잡화들은 형형색색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만물상처럼 보이지만 어디에나 있고, 동시에 어디에도 없는 물건이고 작품이다.

작가의 자랑거리는 이곳 1층보다 2층이다. 나무로 된 계단을 오르자 적당히 어둡고 침침한 1층과는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거실 전면 통창 너머 굵고 무성하게 자란 수십 그루의 나무들이 모습을 드러내고 그 사이로 여름의 뜨거운 태양이 사력을 다해 손님을 맞는다. 동남아시아 휴양지 리조트의 여유로운 로비가 연상되는 2층 곳곳에는 그의 작품과 컬렉션이 방마다 특징과 테마별로 질서 정연히 배치되어 있다. 가히 ‘최정화 미술관’이라 해도 손색없을 정도다.

작업실이자 미술관인 이곳에서 그는 매일 아이디어를 구상하고, 작업을 도모하고 발전시킨다. 끊임없이 밀려드는 전시 기획 미팅도 하고, 작가를 만나고 싶어 하는 다양한 매체와 인터뷰도 한다. 작품에 관심 있는 국내외 아트 컬렉터를 초대해 때론 심도 깊은 토론도 벌인다. 이와 동시에 그의 작업실은 참새 방앗간이다. 가까운 지인들에게는 언제나 열려 있다. 함께 거나하게 술을 마시고 허물없이 일상 이야기를 나누다 마음이 동하면 어둑해진 정원을 배경으로 직접 멋진 조명 쇼를 펼친다. 최정화의 ‘일상’과 ‘예술’이라는 플레이리스트가 멈춤 없이 순환하는 곳. 작업실 2층은 그런 의미에서 일상과 예술의 경계가 침식된, 마치 뫼비우스 띠와 같은 최정화의 작업 개념을 설명하는 근원이다.

안과 밖, 음과 양, 그리고 일상과 예술. ‘각각 상반되어 보일지 몰라도 이 둘은 돌고 돌아봤자 결국 한 자리로 귀결된다’는 것을 작품으로 보여주는 최정화 작가를 8년 만에 다시 마주했다. 문화역서울284 개인전 인터뷰 때 그런 것처럼 그는 녹음기 옆으로 시원한 맥주 캔을 쓱 밀어 권했다. 그리고 “사실 알고 보면 내가 코로나”라는 다소 황당한 문장으로 대화를 시작했다.

 

 

2014년 문화역서울284에서 열린 <최정화-총천연색>전 이후 오랜만에 다시 뵙네요. 그사이 코로나19라는 큰일이 있었습니다. 코로나19는 우리 삶 전반의 태도를 바꾸어 놓았죠. 작가님은 그 시간을 어떻게 보내셨는지 궁금합니다.

솔직히 큰 변화는 못 느꼈어요. 저야말로 코로나와 상관없는 사람이었던 것 같아요. 왜? 저 자체가 코로나니까. 옆 사람에게 제 작품이 품은 아름다움과 사유를 전염시킨다는 측면에서 그래요. 그걸 확인할 수 있는 게 바로 SNS죠. 제 이름을 검색하면 관람객들이 제 작품 앞에서 찍은 사진들을 볼 수 있는데, 그 수가 놀라울 정도예요. 전 휴대폰도, 이메일 계정도 없는 지극히 아날로그적 인간이지만, 또 저만큼 디지털에 많이 노출되는 작가도 없어요. 제 작품이 디지털 세상에서 소비되는 규모를 보면 신기할 정도죠.

 

지난 3년간 모두 움츠렸던 시기에도 작가님은 다양한 전시로 관객과 만나셨어요. 특히 최근 운경고택에서 열린 <최정화: 당신은 나의 집> 전시는 많은 관람객이 찾았습니다. 한옥 공간 곳곳에 사물과 자연의 요소가 하이브리드적으로 배치되었고, 도록 대신 메타픽션 형태의 소설을 출간해 최정화다움을 보여주었죠. 전시를 관람하다 자유롭게 앉을 수 있도록 꾸민 것도 좋았고요. 관람객들이 이번 전시에 열광한 포인트가 아니었을까 싶어요.

그간 제 전시를 보면 관람객 참여형이 많습니다. 제가 추구하는 예술의 시작과 끝에는 늘 많은 관람객과 일반 대중이 함께합니다. 전시 제작에 재료 기증 등으로 함께하는 것도 의미 있지만, 이번 전시처럼 관람객의 동선이나 고택 안에서 하는 행위가 저의 전시를 완성하는 중요 요소가 되기도 하죠. 제가 관람객에게 늘 “Your heart is my art”라고 말하는 이유도 그 점 때문이고요.

 

작가님의 전시는 ‘새로운 예술’을 보여주려 한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2021년 열린 경남도립미술관에러 열린 개인전 <살어리 살어리랏다> 전시도 그랬죠. 1층부터 3층 전관과 마당까지 작품을 설치했고, 공공미술을 통해 경남의 지역성을 뚜렷하게 살렸습니다. 그 전시에서는 무엇을 말하고자 했나요?

<살어리 살어리랏다> 전시는 여러 의미에서 대한민국의 표본이 된 전시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전한 메시지는 하나였어요. 생활은 예술보다 재밌는 놀이터라는 것. 저의 예술이 바로 그거죠. “당신은 이미 예술을 알고 있다. 당신이 기념비다. 당신이 우주다”라는 말을 하고 싶었어요. 그것을 위해 전 때론 관람객에게 이렇게 말하죠. “저에게 재료를 하나 주면 당신은 예술가가 됩니다”라고요. 저는 그 재료를 이용해 작품을 만들어 일상이 곧 예술이라는 걸 증명합니다.

 

<살어리 살어리랏다> 전시에서도 경남 도민들에게 기증받은 7백83점의 폐식기로 ‘인류세’라는 작업을 만드셨죠?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린 <MMCA 현대차 시리즈 2018: 최정화-꽃, 숲> 전시 때 미술관 마당에 설치한 ‘민들레’도 서울과 부산, 대구를 돌며 시민들로부터 기증받은 생활용품으로 만든 참여형 프로젝트의 결과물이었고요.

네, 그런 방식으로 계속 예술의 어떤 경계를 건드리는 거죠. 균열을 내고 구멍을 뚫고 결국 침식시키는 것. 어쨌든 그런 과정으로 인해 여태까지 견고하게 존재하던 ‘일상과 예술의 격차’가 말랑말랑해졌다고 봐요.

 

 

9월 초 한국 최대 규모의 아트 페어인 키아프 서울과 키아프 플러스가 열리고, 거의 같은 시기에 국내 최초로 프리즈가 서울에 상륙합니다. 작가님도 비슷한 시기에 국내외에서 재미난 프로젝트를 선보이시죠. 우선 영국의 코로넷 극장(The Coronet Theater)에서 <Tiger, Journey, Love>라는 제목으로 전시를 여신다고요?

코로넷 극장은 19세기에 지어진 공연장인데, 이번에 ‘Tiger is coming’이라는 제목으로 코리아 페스티벌이 열려요. 8월 26일부터 10월 1일까지 이날치, 앰비규어스 댄스 컴퍼니, 콜렉티브 A,
태싯그룹 등 7개의 공연과 전시가 이어지죠. 지난해 극장 대표가 한국에 왔을 때 같이 기획했는데 저도 거기서 전시를 열어요.

 

공연장 홈페이지에서 라인업을 보니 작가님 전시는 페스티벌 기간 내내 관람객을 맞이 하는 일정이네요. 작가 설명도 임팩트 있어요. “최정화의 작품은 저항하기 힘들다. 대량생산, 물질주의, 소비문화를 다루는 그는 한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상적인 물건을 이용해 생활 속에 예술을 어떻게 접목할 수 있는지를 탐구한다. 그의 생동감 있고 풍부한 색감을 지닌 조각들이 공연장을 뒤덮을 것이며, 매혹적인 색채감을 선사할 것이다. 빅토리아 시대의 건축물 곳곳에서 그의 예술을 경험해보자.”

코로넷 극장은 오랜 역사만큼 기념비적인 공연이 많이 열린 곳이라 매우 기대가 돼요. 이번에 이날치와 앰비규어스 댄스 컴퍼니 등이 제 작품 앞에서 공연한다는 사실도 그렇고요. 제가 전시 이미지를 하나 보여드릴게요. 경남도립미술관 전시에 선보인 설치 작품인데 공간이 달라서인지 작품도 색다르게 느껴지죠? 분명 멋진 전시가 될 겁니다.

 

네, 꼭 현장에서 그 감흥을 느껴보고 싶을 정도네요. 그리고 8월 20일부터는 연희동에서 전시를 선보인다고요?

우주만물 강민구 대표와 함께 미도파 카페에서 11월 15일까지 작지만 중요한 전시를 열어요. <Symbiosis: 너 없는 나도, 나 없는 너도>라는 이름
으로 강민구 대표와 제 컬렉션이 만나는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우주만물은 강민구 대표와 사진가, 디자이너, DJ, 에디터가 모여 취향대로 물건을 모아 판매하는 곳이라고 알고 있어요. 그곳에서 판매하는 물건들은 키치한 아이템을 비롯해 대부분 취향이 뚜렷한 것들이죠. 작가님의 작업실에 놓인 이 수많은 컬렉션과 결은 약간 다르지만 두 분의 공통분모가 느껴지긴 합니다.

저는 젊은 친구들과 노는 게 좋아요. 특히 통하는 게 많은 친구들과는 매일 만나도 즐겁죠. 강민구 대표는 제 작업실을 무척 좋아해요. 우주만물을 아는 사람이라면 그 친구가 왜 여기를 좋아하는지도 이해가 되죠. 인간은 모두 이중적이에요. 누구나 자신을 억누르며 살죠. 하지만 그 비닐을 걷어내면 비로소 본연의 것이 나와요. 이번 전시에서는 우리 둘의 컬렉션을 공개하면서 소통이나 대화 이런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요.

 

바로 그 점이 작가님의 작품 세계를 관통하는 철학과도 연결되어 있는 것 같아요. 작가님의 전시를 보면 관람객이 나이, 직위, 직업, 학벌, 이런 건 모두 집에 두고 맨몸뚱이로 전시장에 오길 바라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아요. 그딴 거 집어치우고 그 대신 우리가 보고 있는 것 중 어느 것이 진짜이고 가짜인지, 어느 것이 가치 있고 가치 없는지에 대해 고민하라고 말하죠.

그렇죠. 근데 그게 까놓고 하기는 또 어려워요. 조심스럽죠. 제가 솔직하게 제 예술을 할 수 있었던 건, 그런 예술을 원한 대중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봐요. 모두가 다 원하지만 스스로 못 하는 걸 제가 대신 해준 거죠.

 

그런 시각에서 본다면 작가님의 예술은 철저히 바깥에서 시작된 것 같아요.

중요한 이야기예요. 제 예술은 시장 바닥에서 태어났어요. 우리네 엄마들과 동네 아줌마들이 만들던 물건에서 말이죠. 그리고 바깥이란 말이 꼭 재료를 뜻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건 배려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해요. 저는 관객을 위한 예술, 99%를 위한 예술을 합니다. 하지만 많은 예술가들이 관객을 위한 작품을 만드는 데 수치스러움을 느끼는 것 같아요. 그건 예술이 아니라고 생각하기도 하죠. 하지만 저는 그들과 거꾸로 갑니다.

 

맞아요, 거꾸로! 작가님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예술’ 밖에 놓인 누군가를 위한 예술을 하는 것 같아요.

바로 그거예요. 저는 진짜 예술은 ‘환대와 경청’이라고 생각해요. 그게 제 역할이죠.

 

 

환대와 경청. 작가님의 작품 세계를 가장 쉽고 정확하게 정의하는 단어인 것 같아요. 그런데 작가님도 여느 작가들처럼 미술 대학이라는 제도권 안에서 교육을 받으셨는데, 그러한 작가 정신을 품고 계신다는 것이 낯설어요.

그에 대해서는 정확한 이야기가 필요해요. 저는 고3 때 미술을 시작했어요. 유화 한 번 안 그려보고, 아크릴물감 한번 안 짜본 채 대학을 갔으니 주변에서 미친놈이라고 부를 만했죠. 더 웃긴 건 미대에서 배우는 것들이 다 싫은 거예요. 미술 말고 예술이 하고 싶었고, 그래서 제가 좋아하는 걸 찾은 게 플라스틱, 조화, 트로피의 여신 같은 거였어요.

 

그중에서도 조화와 생화에 대한 고찰은 작가님의 작품에서 가짜와 진짜의 의미를 이야기하는 출발점이 되었죠.

우리가 진짜라고 생각하는 것과 가짜라고 생각하는 것 중 어떤 게 진짜일까요? 제게는 플라스틱으로 만든 조화가 진짜로 보였어요. 너무 잘 만들어 깜빡 속아 넘어갈 때 있잖아요. 더구나 진짜 꽃은 시들어 없어지지만 조화는 영원하죠. 그 이야기가 지금의 연금술까지 오게 된 거예요.

 

작가님은 작품 설명에 연금술이라는 단어를 자주 씁니다. 대표작 가운데 리움미술관 홀 중앙 회전 계단 천장에 길게 설치된 플라스틱 조형물 이름도 ‘알케미(Alchemy)’죠. 비금속으로 금속을 만들어내는 것이 연금술인데, 작가님은 비금속인 플라스틱을 황금처럼 보이게 만든다는 면에서 이 시대의 연금술사라 할 수 있습니다. 무쇠솥과 항아리 등을 쌓아 만든 다른 ‘알케미’ 작품들, 그리고 그것들이 전시장에 설치된 모습을 보면 작가님이 늘 말씀하시는 빛과 볕, 그늘과 그림자, 음과 양이 모두 작품을 중심으로 하나된 느낌을 받아요. 그래서 성스러운 느낌마저 들죠. 저는 ‘알케미’를 보며 반딧불이를 생각해요. 반딧불이는 1초 사이에 빛나고 꺼지는 덧없음 속에서만 존재하죠. 어둠이 있어야만 태어날 수 있는 빛이에요. 반딧불이 같은 지식들, 반딧불이 같은 이미지들, 반딧불이 같은 민중. 금방 사라지고야 말 밤의 빛, 그것은 아주 미약한 빛이죠. 빛이라고 부르지만 볕에 가깝지 않나 싶어요.

 

시리도록 눈부신 강렬하고 뜨거운 빛이 아니라 포근하고 따스한 볕이란 말이죠?

네, 저는 그 볕의 마음을 생각해요. 마음의 표현, ‘볕’이 주는 희망에 대해 생각해요. 볕 속의 ‘머묾’에 대해서도 고민합니다. 제가 연금술이라는 말을 쓰는 게 건방져 보일 수 있지만, 결국 그것은 눈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물질과 정신 사이의 열린 흐름이에요. 물질이 정신이 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거죠.

 

“전시장 안에 있는 미술 작품들은 참 고루해요. 종로 낙원상가나 동대문아파트, 성남 모란시장에 가보세요. 그 자체가 아트죠.” 작가님은 예전부터 이렇듯 예술에 대한 기준 가치가 남달랐습니다. 2022년인 지금, 작가님의 말처럼 그런 것들이 예술로 받아 들여지는 시대가 왔어요. 이 시대의 예술은 뭐라고 생각하세요?

예술이 뭐냐고 물으면 많은 사람들이 울림, 떨림, 끌림까지는 이야기를 해요. 하지만 그다음이 있어요. 저는 스밈과 섬김이라고 생각해요. 예술은 스며들어야 해요. 일상과 예술의 경계가 허물어지면 자연스럽게 스며들죠. 그다음은 섬김이에요. 저는 작품에 플라스틱, 거울, 양철 등을 비롯해 폐기물까지 사용합니다. 그것을 잘 다뤄 아름답게 만들기 위해서는 섬김의 자세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앞으로 이 두 단어는 예술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닐 거예요. 스밈과 섬김이 예술 안에서 어떤 작용을 일으키느냐가 매우 중요한 포인트가 될 겁니다. 그런데 요즘은 여기에 하나가 더 생겼어요. MZ세대 때문인데, 바로 디지털입니다. 예술이 디지털 세상 안에서 해석되고 재창조되는 걸 보는 건 매우 즐거운 일이에요. 저는 MZ세대가 예술을 소비하는 문화가 재밌어요. 대면이나 직접적인 접촉, 아니 어떤 접속조차 필요하지 않죠. 제 입장에선 가만히 있어도 그들이 알아서 저를 가져다 소비해요. 제 작품의 이미지를 마음대로 쓰죠. 그들이 그렇게 저를 알리는 게 행복해요.

 

메타버스, NFT 아트 시장이 점차 확장되는 이 시점에서 볼 때 작가로서 그런 오픈 마인드는 매우 좋은 자세인 것 같아요.

저는 예전부터 그런 작업을 했어요. ‘You are the art’라는 작업을 보면, 제가 만든 여러 액자가 있는데, 관람객이 그중 한 개의 풍경을 골라 그 앞에서 기념 촬영을 하게 만드는 작품이었어요. 예술이라는 하드웨어에 인간이 함께할 때 비로소 진정한 예술이 완성됨을 보여줬죠.

 

그런 모습을 보면 작가님은 건축 폐기물, 플라스틱, 거울, 네온, 골동품뿐 아니라 그 어떤 걸 가져다줘도 예술로 만들 수 있을 것 같아요.

그거라면 아주 자신 있는데, 이제는 그거조차도 안 하려고 해요. 왜냐하면 예술은 ‘하는’ 게 아니라 ‘되는’ 거니까요. 김치도 묵은지가 맛있는 것처럼 예술도 발효될 때 새로운 맛이 난다고 생각해요. 예전 인터뷰에서 작가님은 평단의 인정을 받는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하셨는데, 지금은 어떠세요? 지금도 거의 비슷한 것 같아요. 그런데 사실은 이제 미술계에서 인정이라는 말 자체가 필요 없게 됐죠. 저는 그렇게 해석해요.

 

필요 없는 시대라 하시지만 작가님은 여전히 국내외 미술관에서 끊임없이 개인전을 열고 여느 작가보다 활발히 활동하고 계세요. 누가 봐도 제도권 안에서요.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것들은 당연히 합니다. 저는 늘 스스로를 양서류, 카멜레온에 비유해요. 잘 맞추거든요. 저는 디자인, 그래픽, 인테리어까지 온갖 별짓을 다 했어요. 최정화는 하나가 아니죠. 무엇보다 제도권, 비제도권처럼 이 세상 모든 것을 둘로 나눌 수는 없어요. 도시와 자연을 봐도 그래요. 인간이 도시에서만 살 수 없으니 주말이면 자연 속으로 떠나죠. 우리의 삶은 분리될 수 없어요. 모든 것은 이어져 있고 연결되어 있죠. 예술과 일상처럼요.

 

작가라면 24시간 예술가가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는데, 24시간 예술가로 사는 삶은 어떤 모습인가요?

음, 벌써 저녁 7시네요! 우리 빨리 나가서 철저하게 맛있는 저녁을 먹어요. 아, 나는 예술가이기보다 먼저 인간으로 살아요. 24시간 예술가로 산다는 정신만 가져가면 돼요. 정신은 예술가 최정화, 몸은 인간 최정화. 그게 내 작품에 흐르는 생생활활(生生活活)이에요. 이 둘은 같이 가요. 절대 나눠지지 않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