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망보다 기다림으로.
신시아가 소녀가 되는,
배우가 되는 시간 속에서 얻은 마음.

블라우스와 스커트 모두 잉크(EENK).

영화 <마녀>의 열광적인 팬으로 언젠가 이런 영화 속으로 들어가보고 싶다는 소망을 품었던어떤 관객은 4년 뒤 <마녀 Part2. The Other One>의 ‘소녀’가 되었다. 처음 마주하는 세상 앞에서 소녀가 품은 설렘과 긴장은 배우로서 첫 발을 내디딘 신시아의 마음이기도 했다. 강렬하게 자신의 시작을 알린 배우 신시아는 이제 다음 발걸음을 위한 준비를 마쳤다.

영화 <마녀 Part2. The Other One>(이하 <마녀2>)에서 세상 속으로 내딛는 소녀의 첫걸음은 배우 신시아의 첫걸음이기도 합니다. 그 때문인지 <마녀 2>를 생각하면 그 장면이 가장 먼저 떠올라요. 눈이 잔뜩 쌓인 대지, 차가운 공기, 피로 뒤덮인 소녀. 그 이미지가 아직도 강렬하게 남아 있어요.

캐스팅이 확정되던 순간도 선명한 기억으로 남아
있을 것 같아요. 다코야키 먹다가 전화를 받았다고요?(웃음) 그럼요. 평생 잊을 수 없을 거예요. 다코야키를 먹다가 박훈정 감독님에게 전화를 받는 상황이라니, 아주 강렬하잖아요.(웃음) 게다가 캐스팅에 대한 기대를 내려놓기로 마음먹은 후 바로 다음 날 전화를 받았거든요. 여러모로 놀랄 수밖에 없는 일이었어요.

어떤 의미에서 내려놓은 건가요?
오디션을 무척 길게 봤어요. 내내 꼭 하고 싶다는 생각에 마음고생이 심했거든요. 그런데 어느 시점부턴가 ‘이 정도면 최선을 다했다, 이제 내 손을떠났다’는 느낌이 들면서 초연해지더라고요. 마음을 쓴다고 될 일도 아니고, 안 되더라도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후회하지 말자는 생각을 하게 된거죠. 그
랬더니 작품이 제게 오더라고요.

왜 그렇게 하고 싶었던 걸까요? 단순히 영화에 출
연하고 싶어서 그런 건 아니었겠죠. 작품에 매료된 지점도 있었을 것 같아요. 맞아요. 제가 첫 번째 시리즈인 <마녀>를 너무 좋아했어요. 개봉 날을 기다리다가 극장에 가서 볼 정도로 좋아하는 장르에다 관심 있는 감독님의 작품이었거든요. 저는 기억나지 않는데 영화관에서 나오면서 엄마한테 “나도 이런 영화에 출연하고 싶어”라고 했대요. 엄마는 속으로 ‘꿈이 되게 크네’ 하고 생각하셨다는데요.(웃음) 그래서 속편이 나온다고 했을 때 어떤 역할이든 상관없이 그 안으로 들어가 영화의 일원이 되고 싶다는 열망이 강했어요. 그런 마음에서 기인한 건지, 영화 안에 사는 내내 되게 기뻤어요. 촬영장에서 가장 많이 들은 말이 ‘왜 그렇게 매일 해맑으냐’는 거였는데, 그만큼 배우 신시아로서 이 영화의 현장에 있다는 사실이 더없이 행복했던 것 같아요.

원피스 울라 존슨 (Ulla Johnson), 슈즈 레이첼 콕스 (Rachel Cox).

그와 동시에 부담감과 어려움도 컸을 것 같아요. 전작의 존재, 접근하기 어려운 캐릭터, 관객의 기대등의 이유로요. 모든 장면이 다 제게는 산이었던 것 같아요. 이제까지 살면서 가장 큰 부담감과 책임감을 느낀 시간이었어요. 잘해내야겠다는 마음이 컸기에 그만큼 더 어려웠던 거죠. 게다가 실제 저는 초인적인 힘을 지닌 소녀가 아니어서 촬영하면서 신체적 한계에 부딪혔을 때 가장 난감했어요. 눈길을 맨발로 걷는 신도 마음은 얼마든지 더 하고 싶은데 발이 너무 시려서(웃음) 원통하더라고요.

소녀는 아크 밖으로 나오면서 본격적으로 세상을
마주하며 경험해요. 이 과정을 연기하며 배우로서도 ‘이제 진짜 실전이다’ 하고 체감하는 순간들이 있었나요? 촬영 첫날 현장에 가서 머리 왼쪽을 반삭발로 민 다음 머리부터 발끝까지 피를 뒤집어썼어요. 그때 소름이 쫙 돋으면서 ‘이제 진짜 실전이구나’ 하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배우로서도 소녀로서도 진짜 시작하는 거였죠.

새로운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편인가요? 첫 작품
부터 꽤 과감한 도전을 많이 했어요. 제 신조가 ‘할 거면 최선을 다해 즐겁게 하자’예요. 말은 이렇게 했지만 사실 거침없이 도전하는 사람은 아니고, 뭔가를 하기 전까지 준비를 많이 하는 편이라 오히려 실전에서는 크게 두려 움이 없는 것 같아요. 준비하는 과정에서 실컷 걱정하고,변수도 생각하고, 그것들에 어떻게 대응할지도 대비하는 거죠.

걱정까지도 준비인 셈이네요.
그렇죠. 마음을 정리하고 시작하면 어떤 결과가 따르더라도 의연할 수 있는 것 같아요.

<마녀 2>라는 도전을 통해서는 어떤 가르침과 결과를 얻었다고 생각하나요? 기다림을 배웠어요. 소녀라는 역할이 제게 오는 시간을 기다렸고, 소녀가 된 이후에도 기다림의 연속이었어요. 자신의 감정을 말이나 행동으로 쏟아내는 인물이 아니라 제가 생각한 감정이 잦아들고 침잠하기를 기다렸다가 정제된 형태로 표현해야 했거든요. 또 이 영화가 세상에 나오기까지 견딘 기다림도 있었고요.

이 기다림의 끝에 얻은 건 무엇인가요? 그 시간들을 어떻게 하면 슬기롭게 잘 보낼 수 있는지, 기다리는 자세를 배운 것 같아요. 아직 완벽하진 않지만요.

지금은 새로운 인물을 기다리는 시간이에요. 이 시간은 어떻게 보내고 있나요? 아직은 구체적으로 저의 다음을 그려보진 않았는데, 간절하게 바라는 건 있어요. 다음에는 배우로서도 사람으로서도 더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요. 그래서 처음의 설렘은 간직하되 부담감을 덜고 그 자리에 즐거움을 채울 방법을 고민하고 있어요. 많은 선배님이 즐기면서 하면 연기를 더 잘할 수 있다고 하셨거든요. 체력적 한계를 뛰어넘고 싶어서 운동도 열심히 하는 중이에요. 다음 작품에선 초인적인 힘이 아니라 직접 몸을 쓰는 액션 연기를 할 수도 있으니까요.(웃음)

다음에는 소녀와 좀 다른 모습이길 바라는 건가요? 어떤 인물을 마주하고 싶나요?사실 소녀 안에 되게 다양한 모습이 있잖아요. 맑고 순수한 얼굴 뒤에 살벌한 모습도 있고, 귀여운 먹깨비 같은 모습도 있어요. 그렇게 다채로운 면면을 지닌 인물이라면 어떤 형태든 좋을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