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라라 KIRARA

키라라

전자음악을 기반으로 창작을 지속해온 음악가.

차갑고 강한 비트와 여리고 섬세한 멜로디가
조화를 이루는 음악을 만들어왔다.

2014년부터 활동을 시작해
네 장의 정규 앨범과 여섯 장의 EP를 냈다.

제14회 한국대중음악상에서 정규 2집 <moves>로
최우수 댄스 & 일렉트로닉 음반상을 받았다.

매년 40회가 넘는 공연을 하는 등 활발하게 활동 중이다.

 

키라라 KIRARA

 

‘쿵 하면 쿵이 찍히고 짝 하면 짝이 찍히는 게 재밌어서 컴퓨터로 음악을 만들기 시작했다’라는 한국대중음악상 수상 소감이 기억에 남는다. 2014년부터 활동을 시작해 네 장의 정규 앨범, 여섯 장의 EP, 리믹스와 라이브 앨범을 내는 등 꾸준히 활동해왔다. 밥상에 밥이 있으면 먹고 동네에 산이 있으면 오르듯, 컴퓨터가 있으니 자연스럽게 음악을 만들기 시작했다. 할 줄 아는 게 그것뿐이니 더 몰두할 수밖에 없었다. 나한테 레슨을 받는 학생과 옛날에 작업한 곡을 듣는데, ‘참 무심하게 음악을 만드셨네요’라고 하더라. 내가 음악을 대하는 태도를 잘 설명하는 말인 것 같다.

곡을 만들 때 주로 샘플링 기법을 이용한다. 기존의 소리를 활용해 새롭게 배열하는 방식으로 말이다. 작업을 하며 중요하게 고려하는 지점은 무엇인가? 소리의 ‘치고 빠짐’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언제는 있고 언제는 없는, 소리의 합을 만들어가는 과정에 공을 들인다. 기나긴 여백을 만들어 침묵할 수도 있고, 소리로 빼곡히 채 울 수도 있지 않나. 음악을 만드는 신조가 하나 있다면 ‘텍스처는 재미없다’는 것이다. 소리 자체의 텍스처만으로 승부를 보는 작업에는 흥미가 생기지 않는다. 그래서 누군가 잘 만들어둔 소리를 찾아 그것을 배열하는 방식으로 음악을 만든다.

곡을 모아 앨범을 구성할 때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은 무엇인가? 바로 내 기분이다.(웃음) 정규 앨범을 네 장 냈는데 하나하나 도드라지는 감정이 있다. 1집은 무심함, 2집은 신남, 3집은 슬픔, 4집은 분노다. 곡을 만들며 내 상태를 있는 그대로 표현했다. 그걸 모으니 그 시기에 가졌던 감정이 앨범의 주제가 되더라.

음악으로 자신을 기록하는 건 어떤 느낌인가? 우선 기분이 좋다. 무언가를 남기는 것 자체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음악을 만들면 모조리 공개한다. 실패작도 물론 포함한다. 누군가 이걸 듣고 능력을 평가하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건 사실 음악이 아닐지도 모르니까. 어쩌면 그냥 나일지도 모른다. 늘 그런 마음으로 창작해왔다. 음악을 만드는 과정이 삶을 살아가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맞다. 모든 과정이 자연스럽다. 이전에 만든 노래를 들으며 ‘그땐 내가 그랬지’ 이런 생각도 많이 한다. 물론 고통스러울 때도 있지만. ‘음악을 리믹스하는 일은 사랑이 없이 불가능하다.’ 앨범 소개에 적힌 말이다. 꾸준히 리믹스 작업을 해온 이유는 무엇인가? 어떤 음악가와 친해지고 싶거나 소통하고 싶을 때 리믹스를 하고 싶다고 말하며 접근했다. ‘당신의 노래를 리믹스하고 싶습니다’라는 말은 내가 할 수 있는 최고의 프러포즈였다. 아마 내가 어떤 부분에서 미성숙해 말로 다 하지 못하고 음악으로 표현했던 것 같지만.

 

키라라 KIRARA

<4 LIVE>

키라라 KIRARA

<RCTS>

 

전자음악가다운 애정 표현이다.(웃음) 그런데 요즘은 리믹스 작업을 하고 싶지 않다. 이건 한국에서 전자음악가가 겪는 문제에 관한 이야기일 수도 있다. 내가 코스모스 슈퍼스타의 ‘북극광’이라는 곡을 리믹스했을 때, 사람들이 이 노래를 ‘코스모스 슈퍼스타의 북극광(키라라 Remix)’이라고 쓰지 않더라. 그냥 ‘키라라의 북극광’이라고 쓴다. 리믹스를 한다고 원작자가 빛나는 일이 없었다. 사랑의 마음으로 시작해 널리 퍼져나가길 바랐는데 늘 그런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 이건 이 작업 방식 자체가 사람들에게 어떻게 인식되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사랑하는 마음이 앞으로는 어떤 방식으로 나아가게 될까? 리믹스보다는 콜라보레이션. 피처링이나 코프로듀싱(co-producing)을 제안하는 방식으로 함께하지 않을까 싶다.

좋아하는 공간에서 좋아하는 게스트와 함께하는 기획 공연, ‘그냥 하는 단독 공연’을 2018년에 시작해 벌써 25회나 진행했다. 또 매년 40회가 넘는 공연을 하고 있다. 공연에 대한 생각이 계속 변하는 중이다. 온전히 몰입하는 공연이 좋다고 생각한 적도 있고, 관객과 호흡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여기기도 했다. 무조건 술을 마시며 공연한 시기도 있다. 장비를 준비하듯 술을 챙겼다. 곡을 쓸 때의 감정을 무대 위에서 표현하고, 그것을 생생하게 전달해야 한다는 사명감이 있었다. 그 때문인지 공연이 끝난 뒤 택시를 타고 집에 가는 길에 늘 펑펑 울곤 했다.

요즘은 어떤 태도로 공연하나? 음악에 몰입하는 일과 관객과 호흡하는 것, 이 사이의 중용을 찾으려 노력한다.무대 위에서 심각해지지 않으려고도 한다. 어쨌든 댄스음악을 만들어온 사람이니 일단 즐거움을 줘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와 동시에 연주하면서도 꾸준히 마음을 돌아보고 정리하려 한다. 요즘은 그 균형을 찾아가는 일이 재미있게 느껴진다.

‘키라라는 이쁘고 강합니다. 여러분은 춤을 춥니다’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음악을 만들고 있다. 사실 이 캐 치프레이즈를 언제까지 밀어야 할지 고민이다. ‘이쁘고 강하다’라는 표현을 쓰게 된 건 내 음악이 형식적으로 ‘강한’ 드럼 소리를 활용해 멜로디를 ‘이쁘게’ 만들어왔기 때문이다. 활동을 시작하겠다고 마음먹었을 땐 내가 트랜스젠더이다 보니 남성성과 여성성에 대한 정치적 메시지로 그 문장을 활용하려는 마음도 있었다. 하지만 활동을 시작한 지 어언 8년이 되었다.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분명히 다르다. 이제 더 이상 예쁘고 싶지도 강하고 싶지도 않다. 그냥 키라라이고 싶다.

‘여러분은 춤을 춥니다’라는 문장에 대해서도 고민 중인가? 늘 댄스음악을 만들어왔는데. 역시 고민하고 있다. 어릴 때 영향을 받은 음악 장르가 팝이었다면, 나는 기타를 치며 노래하고 있었을 거다. 그런데 가죽점퍼를 걸치고 스키니 진 팬츠를 입은 사람들이 디제잉 하는 모습을 보며 자라왔으니, 내게 댄스음악이라는 문법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다만 요즘은 그 틀 자체를 바꾸고 싶다는 생각이 있다. 어쩌면 전자음악이라는 장르에서도 벗어날 수 있을 것 같다.

그야말로 변화의 한가운데에 있는 듯하다. 언젠가 나올 정규 5집도 많이 다를 것이다. 이전에는 음악에 직관적으로 기분을 담아냈다면, 이번에는 감정도 맥락도 없는 앨범을 만들고 싶다. 듣는 사람들이 ‘이게 대체 뭐지?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거지?’라고 생각할 정도로. 이런 시도를 해보는 것이 다음 앨범의 컨셉트가 되지 않을까 싶다.

자의식에서 조금 멀어지고 싶다는 말 같기도 하다. 그 말도 맞다. 세상의 모든 트랜스젠더는 블랙코미디의 달인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삶이 다 ‘블랙’이고 ‘코미디’니까. 모두 자기 비하적 개그를 하면서 살 수밖에 없었을 거다. 트랜스젠더 예술가 소피(Sophie)는 자신의 곡 제목을 ‘Pretending’이라고 지었다. 어떻게 트랜스젠더가 ‘무엇인 척하고, 거짓이고, 사칭한다’는 의미를 가진 단어를 자기 노래 제목으로 쓸 수 있나 싶다. 하지만 나도 사람들을 웃기는 방법이 그것뿐이라고 느낄 때가 있다. 앞으로도 블랙코미디를 하겠지만, 그 방향은 달라질 것 같다. 지금까지는 블랙에 초점을 맞췄다면, 5집은 코미디에 중점을 두고 싶다. 이전 음반에 슬픔과 분노가 많이 담겨 있었다면 이번 앨범은 맥락 없음, 감정 없음, 생뚱맞음, 이런 것들이 키워드가 될 듯하다.

 

키라라 KIRARA

니트 스트라이프 스웨터 돌체 앤 가바나(Dolce& Gabbana), 스커트와 스니커즈는 본인 소장품.

 

어떤 주제나 의미를 전하기 위해 음악을 만들고 싶지 않다는 것인가? 그렇다. 그게 너무 피곤하다. 어떤 정치적 함의도 없는 음악을 만들고 싶다. 예를 들자면 음악인데 가사가 없고 스캣만 나온다든가, 의미 없는 숫자만 계속 내뱉고 끝난다든가, 스토리텔링이 있는데 인과관계가 맞지 않는다든가, 이런 형태의 음악을 만들고 싶다.보컬을 중심으로 곡을 만들어보고 싶기도 하다.

보컬 중심의 곡이라니, 벌써 궁금하다. 가사를 통해 분명하게 주제를 외치고 싶다는 맥락은 아니다. 도리어 모호함을 전달하고 싶다. 문자라는 수단을 써 오히려 불명확하게 표현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사용할 수 있는 도구가 많아진다면 더 재밌는 것을 할 수 있지 않을까.

다른 도구에 대해서도 생각해본 적 있나? 음악이 아닌 다른 것도 해보고 싶다. 그게 무엇일지는 전혀 모르겠지 만.(웃음) 살면서 취미를 가져본 적이 거의 없다. 사회생활을 시작한 열아홉 살 때부터 해온 것이라고는 음악과 인권 운동밖에 없다. 그런데 이젠 인권 운동도 별로 하고 싶지 않다. 결국 음악을 빼면 남는 게 없는 내가 애잔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 나중에 매니지먼트 회사를 운영 하거나 술집을 차리는 상상도 종종 한다.

생각이 변한 계기가 있나? 그저 내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도 많이 변했다. 어떤 부분은 남들의 눈치를 더 보고, 다른 부분에선 신경 쓰지 않기도 한다. 정규 4집 <4>는 화나는 감정을 담은 앨범이다. 분노할 대상들과 수없이 싸워왔고, 그 기분을 음악으로 풀어냈다. 얻은 것도 있지만 잃은 것도 많다. 과정도 허무했다. 이 모든 일이 피곤해서 이번엔 어떤 뜻도 담지 않은 앨범을 만들고 싶다.

만드는 음악과 작업 방식, 이를 설명하는 표현도 하나로 규정된 것이 아니라 언제나 바뀔 수 있다고 이야기했다. 무수한 변화 속에서도 유지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무엇 인가? 음악을 만드는 재미. 거창하게 말했지만 음악을 하는 이유는 그저 재미있기 때문이다. 과정의 즐거움을 잃어버리면 끝장난다고 생각한다.

재미있게 음악을 하기 위해 필요한 건 무엇일까? 듣는 사람의 반응과는 상관없는 것 같다. 대중이 뭐라 하든 신경 쓰지 않겠다는 말이 아니다. 음악을 만드는 감각 자체에 집중하고 싶다는 뜻이다. 아무래도 즐겁게 음악을 하기 위해선 일단 돈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웃음) 지금은 곡 작업을 의뢰받고 레슨을 하며 전업 음악가로 먹고살 수 있어 다행이다. 월세는 낼 수 있으니까. 하지만 음악가의 수익과 관련된 법과 제도가 많이 바뀌었으면 좋겠다. 나뿐만 아니라 주변의 친구들도 온전히 음악에 집중할 수 있도록 말이다.

앞으로 당신의 음악이 어떻게 나아갈지 궁금하다. 11월에 라이브 앨범이 하나 나온다. 올해는 프리즘홀에서 정기적으로 공연을 했다. 내 공연은 세트리스트가 매번 달라서 곡의 조합이나 순서에 따라 새로운 느낌을 준다는 점이 재밌다. 전자음악 공연을 녹음해 라이브 앨범으로 발매하는 경우도 거의 없지 않은가. 그런 부분에 대해 고민하다 나온 결과물이다. 사람들이 어떻게 들어줄지 나도 기대된다.

기다리고 있겠다. 키라라의 음악은 앞으로도 정의되지 않은 채로 나아갈까? 그렇다. 이제 내 음악을 수식하거나 규정하지 않으려 한다. 듣는 이들이 해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