래코드가 열 번째 생일을 맞아 특별한 파티를 준비했다. 각자의 자리에서 환경과 사회 문제에 한마음으로 매달려온 기업, 브랜드, 창작자를 초대해 지속 가능성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대화하는 자리를 마련한 것. <re;collective: 25 guest rooms> 전시는 래코드의 발자취와 더불어 공동체로서 지향해야 할 새로운 가치를 위한 창의적 가능성을 보여준다. 적극적인 변화를 촉구하는 목소리를 퍼뜨리는 이번 전시의 호스트와 프렌즈를 만나 지속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REINCARNATION OF FASHION

©Thirza Schaap

리데베이 에델코르트 트렌드 예측 전문가

Lidewij Edelkoort

PROFILE

1950년생인 리데베이 에델코르트는 네덜란드의 글로벌 트렌드 예측 전문가다. 파리에 본사를 둔 회사 트렌드 유니언(TrendUnion)을 운영하며 패션, 인테리어, 자동차, 화장품, 식품 등 여러 산업 분야의 추세와 전망을 연구한다. 에스티 로더, 구찌, 로레알, 코카-콜라, 닛산 등 세계적인 기업과 디자이너 브랜드에 비즈니스와 지속 가능한 실천에 대해 컨설팅하고 있다. 뉴욕 파슨스 디자인 스쿨의 하이브리드 연구 학장을 역임했으며 피렌체 폴리모다의 파트너로 석사과정을 개설하는 등 교육자로도 활동하고 있다. 에델코르트의 최근 관심사는 섬유와 순환, 농업이다.

지속 가능성이라는 단어를 어떻게 정의하나? 순수한 필요성. 불행히도 ‘지속 가능성’ 이라는 단어는 지나치게 사용되고 남용되었다. 일부에서 그린 워싱(Green Washing, 위장 환경 주의)과 겉치레용으로 쓰는 경우도 많다. 마치 ‘트렌드’처럼 지속 가능성 역시 낡은 단어다. 하지만 더 나은 단어가 없다. 다행스러운 점은 사람들이 지속 가능성에 더 주목하고, 주의를 기울이고, 어떤 결과를 만들어내고 있다는 사실이다. 장을 넓힘으로써 결국에는 성공을 거둘 것으로 내다본다. 10월 말에 열릴 더치 디자인 위크(Dutch Design Week)를 통해 모두가 지속 가능성을 말하고, 지속 가능한 무언가를 선보일 예정이다. 지속 가능성이 더 이상 특별한 것이 아니라 반드시 지켜야 하는 가치가 된 것이다. 기본적으로 지속 가능성은 요구다. 아주 복잡한 요구다. 특히 대규모 산업 입장에서는 더욱 복잡한 요구다.

지속 가능한 패션이 더 비싸다고 말하는 사람도 많다. 가격 저항 때문에 사람들이 옳다고 생각하는 의식과 실천 사이에 차이가 발생하기도 한다. 소비자는 높은 가격을 감수하더라도 지속 가능성을 추구해야 한다고 보나? 그래야 한다. 요즘 사람들은 일주일에 옷을 서너 벌씩 산다. 옷을 사지 않고 2주 동안 참고 기다린다면 최대 여덟 벌의 옷을살 수 있는 돈이 생기는 셈이다. 그 돈으로 지속 가능한 아이템을 살 수 있다. 그것은 새로운 선택을 하는 것과 관련 있다. 자신이 진실로 원하고, 진정으로 좋아하는 것을 사는 행위를 통해 본인이 원하는 세상을 만들어가는 데 기여할 수 있다. 파티에 갈 때마다 새로운 드레스를 살 필요는 없다. 옷장 안에 이미 드레스가 충분히 많을 것이다. 똑같은 드레스를 두세 번 입어도 아무 문제가 없다. 사람들이 간과하는 비밀이 하나 있는데, 바로 옷이 별로 없을 때 비로소 더욱 창의적으로 스타일링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많은 옷을 가진 사람은 가능성을 보지 못한다.

당신의 옷장에는 몇 벌의 옷이 있나? 이사하면서 옷을 80% 정도 정리했다. 산 지 20~30년 넘은 아주 오래된 옷은 일부 버리고, 대부분 자선단체가 운영하는 숍에 기
부했다. 소재와 디자인이 훌륭한 옷들이라 여전히 아름다워 그들도 매우 반겼다. 그 결과 지금은 옷이 별로 없다. 세어보지는 않았지만 계절별로 스무 벌 정도 될 것다. 딱 하나 예외적으로 수집하는 옷이 있는데 바로 코트다. 열다섯 벌쯤 있다. 다들 너무나 멋지다. 드리스 반 노튼의 꽃을 수놓은 코트나 2세기 전에 튀르키예에서 만든 코트도 있다. 태피스트리 작품을 연상시키는 코트다. 코트는 내게 최고의 액세서리다.

아름다운 코트를 생각하며 눈빛을 반짝이는 모습을 보는데, 문득 “패션에는 더 이상 판타지가 남아 있지 않다”라는 당신의 말이 떠올랐다. 패션계는 스스로 흥미를 잃었다. 내부로부터 붕괴하는 모습을 목도하며 참으로 이상한 기분이 든다. 이런 사태를 부른 주요 원인은 마케팅 방식, 구체적으로 알고리즘과 인공지능을 활용한 마케팅 때문이다. 대대로 패션 피플에겐 미래를 전망하는 직관적 예지력이 있었다. 문득 앞으로 우리가 또 다른 실루엣을 원하게 될 것이고, 란제리를 옷처럼 입고자 할 것을 알았던 것처럼 말이다. 어떤 형태로든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그런데 현재의 인공지능에는 직감이 없다. 아직은 없다. 그래서 우리를 미래로 안내하는 법을 모른다. 넷플릭스 시리즈, 음식 등 무엇이든 알고리즘에 의해 전부 똑같은 것만 보게 한다. 똑같이 낡은 것을 서로 베끼고 있기 때문에 더 이상 영감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패션계도 마찬가지다.

‘안티패션 매니페스토’ 이래로 꾸준히 비판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동안 패션 시스템에 괄목할 만한 변화를 체감한 적이 있나? 사람들의 인식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는 것? 처음에 내가 패션은 죽었다는 ‘안티패션 매니페스토’를 발표했을 때만 해도 사람들은 충격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이제 대다수 사람들이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인식한다. 모두가 문제를 알아차렸지만, 여전히 해결 방법을 찾지는 못했다. 겨우 대화의 장이 마련되고 있을 뿐이다.

현재의 난관을 타개할 방법은 없나? 속도를 늦춰야 한다. 천천히! 제품 발표를 천천히 해야 한다. 욕망과 이윤을 추구하는 속도를 제어해야 한다. 현재 속도로는 그 모든 것을 받아들일 수 없는 지점을 향해 가고 있다. 차라리 강렬한 대폭발이라도 일어나서 새로운 페이지를 쓰게 되기를 희망하게 될 정도다. 허물어져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괴로우니 말이다. 나는 패션을 사랑한다. 그런 내게는 너무나 큰 상실이다.

 

Textiles frombought-back EILEENFISHER garments at <WASTE NO MORE>

‘HeatMap’ design by Sigi Ahl, for the exhibition <WASTE NO MORE> at Edelkoort Gallery, 2017_photo: Bone+Black

트렌드야말로 빠른 변화와 속도를 상징한다는 인식이 보편적인 때문인지 그런 제안이 사뭇 의외다. 생각보다 트렌드는 그렇게 빠르게 변하지 않는다. 트렌드라는 용
어 자체가 구식이다. 실제 트렌드는 매우 느린 속도로 진행된다. 스키니 진, 스트리트 패션, 레저 웨어 등을 생각해보라. 모두 수십 년 동안 존재한 것이다. 물론 컬러,
소재, 아이템 등 서브 트렌드가 매년 달라질 수는 있지만 트렌드라는 개념 자체는 천천히 길게 지속된다. 나의 연구 역시 중·장기적 관점으로 보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동안 여러 브랜드 및 디자이너와 함께 일했다. 진지한 태도로 지속 가능성을 실천하는 이들을 소개한다면? 아일린 피셔(Eileen Fisher)는 더 나은 섬유, 버려지는 재료의 사용, 리사이클링 프로젝트, 책임감 있는 경영 등의 선구자다. 런던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페이 투굿(Faye Toogood)도 떠오른다. 인테리어부터 패션까지 그의 디자인은 꾸준하고 주도적이며 강건하다. 뉴욕에서 보디(BODE)를 이끄는 에밀리 애덤스 보디(Emily Adams Bode)도 있다. 앤티크 패브릭만 사용하는 그의 디자인은 매우 시적이다. 보디는 무작정 대형 브랜드로 키우는 대신 아주 천천히, 점진적으로, 의식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한국의 래코드 역시 이 분야에서 중요한 사례라고 생각한다. 선구적 브랜드다. 이런 새로운 생각을 실천하는 사람들이야말로 젊은 세대에게 귀감이 될 수 있다. 많은 돈을 벌어들이는 회사가 아니라 사람들에게 아름다운 삶을 선사하는 회사를 설립하고 싶다는 꿈을 꿀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안타깝게도 훌륭한 사례가 아직은 많이 부족하다.

래코드라는 브랜드를 처음 발견한 때를 기억하나? 프랑스 마르세유에서 열린 ‘안티패션(Anti_Fashion)’의 첫 포럼에서 래코드를 처음 만났다. 그들의 프레젠테이션을 보고 ‘대체 이건 뭐지?’ 싶었다.(웃음) 너무나 흥미롭고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업사이클링이라는 방식을 넘어 패션의 다양한 면모를 조합한 디자인 컬렉션을 보는 것 같았다. 디자인도 훌륭했고, 매우 아방가르드하게 다가왔다. 그 이후 래코드의 열렬한 팬이 되었다. 업사이클링 디자인에 대한 견해는 어떠한가? 업사이클링 방식이 매우 중요하다. 단순한 재활용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냉정하게 말해서 재활용할 가치가 있는 좋은 것이 그리 많지 않다. 나쁜 것을 대체 왜 재활용해야 하는가? 그러나 창의력을 더한 업사이클링은 환생에 비유할 수 있다.

업사이클링을 거쳐 새로 태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지속 가능한 디자인과 아름다움이 양립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모더니즘 디자인을 떠올려보라. 사람들은 정확하고 아름답고 절제된 선과 풍부한 재료를 살린 사물을 만들었다. 특히 가구와 직물, 집에서 쓰던 것들은 오늘날 그대로 만들어도 손색없는 아름다움을 지녔다. 실제로 지금까지 과거와 똑같은 모습으로 생산되는 모델도 많다. 이처럼 제품을 생산하고 연구하는 데 투자할 필요가 있다. 최고의 디자인이야말로 가장 지속 가능한 것이다. 양질의 재료로 최상의 디자인을 구현한 제품은 그야말로 대대손손 물려줄 수 있는 영속성을 지닌다. 그 반면 현재 우리가 만들어내는 것은 재활용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저질이다. 지나치게 많은 쓰레기를 양산하고 있다. 아무도 그만큼 많이 필요하지 않은데도 말이다.

리데베이 에델코르트, ‘Anti_FashionManifesto’, 2014

지속 가능한 디자인과 아름다움이 양립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모더니즘 디자인을 떠올려보라. 사람들은 정확하고 아름답고 절제된 선과 풍부한 재료를 살린 사물을 만들었다. 특히 가구와 직물, 집에서 쓰던 것들은 오늘날 그대로 만들어도 손색없는 아름다움을 지녔다. 실제로 지금까지 과거와 똑같은 모습으로 생산되는 모델도 많다. 이처럼 제품을 생산하고 연구하는 데 투자할 필요가 있다. 최고의 디자인이야말로 가장 지속 가능한 것이다. 양질의 재료로 최상의 디자인을 구현한 제품은 그야말로 대대손손 물려줄 수 있는 영속성을 지닌다. 그 반면 현재 우리가 만들어내는 것은 재활용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저질이다. 지나치게 많은 쓰레기를 양산하고 있다. 아무도 그만큼 많이 필요하지 않은데도 말이다.

교육자로서 교육과 창의성의 힘을 설파해왔고, 최근에는 농업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지속 가능한 디자인을 위해서도 인류 공통의 문화적 전통에서 배울 점이 분명 있을 것 같다. 아주 좋은 질문이다. 만약 우리가 삶의 방식을 바꾸고, 지구를 구하기 위해 노력하고 싶다면 여러 대륙의 토착 디자인을 살펴야 한다. 오래된 삶의 방식을 고수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인류가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그 해법과 비전을 보여주는 고고학과 인류학을 알아야 한다. 상징주의와 정신성에서 배워야 할 것도 아주 많다. 최근 우리는 애니미즘(animism)에 주목한다. 동양에서 더욱 친숙한 개념일 것이다. 자연계의 모든 사물에는 영적이고 생명력 있는 에너지가 담겨 있다. 물, 돌, 조개껍데기, 그림자, 돌멩이, 깃털 등에 각자의 에너지가 있다. 하물며 티셔츠 한 장도 에너지를 지닌다. 원재료부터 생산, 제작에 이르기까지 그 에너지를 인식한다면 우리는 패션에 좀 더 창의적으로 접근할 수 있다. 더 많은 존중과 시간, 정성을 들이고, 옷을 통해 더 큰 기쁨을 누릴 수 있다.

트렌드 예측가로서 보기에 현재 가장 뜨거운 트렌드는 무엇인가? 현재 전 세계의 가장 큰 트렌드는 한국이다!(웃음) 그러니 트렌디해지고 싶다면 더 한국인답게 살면 된다. 있는 그대로를 좇아라. 자기 고유의 문화, 지역, 나라에 관해 충실하게 생각해보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곧 2023년이다. 내년에 우리가 맞닥뜨릴 새로운 삶의 도전은 무엇이며, 당신은 어떤 준비를 하고 있는지 귀띔해주기 바란다. 우리 안의 어린아이에게 다시 가닿아야
한다. 마치 새로 태어나는 것처럼 본래의 순진무구함을 되찾아야 한다. 기쁨, 단순함, 웃음, 춤 등 어린아이들이 흔히 하는 것 말이다. 그 이유는 현재 상황이 지나치게 심각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우리는 이런 상황에서 벗어 나는 방법을 모른다. 스스로에게 돌아가는 수밖에 없다. 모두가 자신 안의 어린아이를 다시 만난다면 결국 세상에 영향을 줄 것이고, 그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OUR ADVENTURE

데이비드 드 로스차일드 × 현대자동차

David de Rothschild × Hyundai Motor

© Martin Hartley

데이비드 드 로스차일드 Voice for Nature 재단 설립자

탐험가로 세계를 누볐다. 모험과 관련한 첫 기억은 무엇인가? 난 언제나 실내보다는 바깥에서 편안함을 느꼈다. 시골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면서 자연을 가까이한 경험은 내 유년 시절의 아주 중요한 일부다. 내 생각에 우리는 모두 탐험가이자 모험가로 태어난다. 다만 그 사실을 자주 잊을 뿐이다. 아이들을 관찰해보면 호기심은 어릴 때 형성되는 원초적 원동력인 듯하다. 세상을 바라보고 질문을 던짐으로써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을 찾아가는 것이다. 불행히도 어른이 되면서 이러한 놀이의 감각, 질문의 감각을 잃어버린다.

그러한 모험의 기억이 성인이 된 후 당신의 인생에 어떤 영향을 끼쳤나? 탐구하고 질문하는 감각을 유지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기억하는 한 나는 항상 호기심이 넘쳤고, 언제나 자연에 매료되었다. 그러니까 자연은 우리가 읽거나 느끼거나 공유하고, 바라건대 보호해야 하는 가장 풍부하고 깊이 있는 이야기책으로서 영향력을 지녔다. 내가 한 모든 일의 핵심에 모험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모험심은 반드시 찾아야 하는 무엇이었으며, 처음부터 내 안에 있었던 것이다.

생태계 보호론자, 환경 운동가가 된다는 것 역시 또 다른 종류의 모험이 아닐까. 기존의 고정관념, 규칙, 사람들의 행동을 바꾸자고 독려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니 말이다. 새로운 세상을 만들겠다는 신념의 원동력은 어디에서 비롯했나? 자연에 대한 사랑에서 비롯된 것 같다. 우리는 사물에 라벨을 붙이고, 사람들을 특정한 누구라고 규정짓기 좋아한다. 하지만 나는 스스로 생태계 보호론자나 환경 운동가라고 생각해본 적은 거의 없다. 그저 여행하고, 탐험하고, 낯선 장소에 가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영혼과 정신에 영향을 주는 환경에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행운을 가진 사람으로 생각할 뿐이다. 만약 여러분이 오래된 숲 한가운데 서 있거나 심해의 바닥으로 잠수해 화려한 산호초와 그 주변의 생명체를 응시하는 행운을 누린다면 그 모든 것을 보호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하게 될 것이다. 나는 지난 20년 동안 이런 환경이 파괴되는 장면을 목격했다. 생기로 가득해야 할 숲은 이제 죽은 땅이 되었다. 해수 온도가 높아지면서 형형색색의 산호초 군락은 활기를 잃고 빛이 바랬으며 생명체를 잃었다. 그리고 이런 추세는 지속되고 있다.

지속 가능성을 어떻게 정의하나? 지속 가능성의 본질은 결국 더 적은 것으로 더 많은 일을 하는 것이지 시스템에 넣은 것 이상으로 더 많은 것을 얻는 것이 아니다. 현재로서 지속 가능성에 대한 나의 정의는 취약성이라고도 할 수 있다. 즉 우리가 만들었음에도 우리를 위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시스템을 잊어버릴 필요가 있다는 것을 인식할만큼 자신과 사회의 취약성을 충분히 알고 있다는 뜻이다. 지속 가능성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며 조금 더 자각할 필요가 있다. 누군가의 행동을, 우리가 지구라는 우주선을 작동하는 방식을, 한정된 자원으로 삶의 본질을 어떻게 운영할지를 인식할 필요 말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아직 그런 것을 일회용으로 쓰고 버릴 수 있는 편리한 무언가로 간주한다. 그래서 우리가 잘못 알고 있다는 것을 어느 정도 인정하는 겸손과 취약성을 깨닫는 것이야말로 행동하는 방식을 바꾸고, 더 지속 가능한 시스템으로 나아가는 가장 큰 발걸음일 것이다.

래코드는 지난 10년간 ‘사회운동으로서의 패션’을 미션으로 추구해온 브랜드다. 브랜드나 비즈니스 차원의 사회운동을 어떻게 해석하나? 사회운동이란 공유된 관심사, 공유된 가치를 중심으로 공동체가 가치의 감각을 형성하는 것이다. 공동체는 사람들이 모이고, 스스로 속해 있다고 느끼는 곳이다. 우리는 무리의 일부가 되고자 하고, 공동의 장소를 찾고자 하고, 모습을 드러내고, 목소리를 내고, 공유하고 싶어 하는 생명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지역사회의 일원으로 함께할 때 상황이 더 나아지는 경우가 많다. 사회운동이나 사회를 변화시키기 위해 브랜드의 지위를 이용하는 일은 단순한 마케팅 캠페인 이상의 것이어야 한다. 단순한 상업적 교환보다 더 큰일이어야 한다. 그것은 삶의 방식이자 브랜드로서 좀 더 의미 있는 방식으로 사회에 기여하고 싶다고 말하는 셈이다.

그런 측면이 실제 비즈니스의 체질을 바꾸는 데 기여하고 있다고 생각하나? 비즈니스의 경제 논리를 바꾸고 있다. 단순히 성장 자체를 위한 성장이 아니라 사회 시스템의 통합된 일부가 되고 있다는 뜻이다. 기업의 주주에게 봉사하는 것을 넘어 우리가 공급망에 어떻게 관여하는지 깨닫고 달라지게 한다. 지속 가능성을 위한 사회운동이 자연과 조화를 이루고, 공급망 내부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봉사하는 방식에 관한 더 큰 그림을 제공하고 있다. 브랜드가 만든 제품이 단지 상업 활동을 촉진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제조 방식과 사용하는 재료를 바꾸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이런 차원에서 이는 보다 풍요롭고 부가적인 대화다. 우리는 이런 유형의 캠페인을 벌이는 브랜드를 중심으로 모인 사람들이 실제로 의미 있게 참여하고, 그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집중해야 한다.

데이비드 드 로스차일드의 작품 컨셉트 스케치 이미지

실외 포스터 컨셉트 이미지

<re;collective: 25 guest rooms> 전시에 참여하는 소감을 듣고 싶다. 굉장히 흥분된다! 한국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을 좋아하는데 그곳에서 무언가를 창조하고, 협력할 수 있어 매우 기쁘다. 이번 전시의 일부가 되어 멋진 크리에이터, 아티스트와 더불어 아이디어를 더할 수 있다는 사실에 기대가 크다. 전시는 일종의 공유 공동체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전시의 일부가 되는 것은 커뮤니티의 일부가 되는 것이고, 그것이야말로 내가 항상 참여하려고 애쓰는 일이다.

이번 전시를 통해 한국 관람객들에게 어떤 것을 보여주고자 했나? 나는 우리가 자연이고, 자연이 우리라고 생각한다. 오늘날 고도로 디지털화 되고 매우 빠른 속도로 흘러가는 세계에서 살고 있는데, 그 세계에서 우리는 자연을 배경으로 치부해버렸다. 자연은 그저 취미이고, 화면 보호기일 뿐이다. 마치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것처럼 만들어버렸지만, 자연은 결코 선택하는 것이 아니다. 선택적인 것에서 필수적인 것으로, 특별한 취미에서 일상적 삶의 방식이 되는, 자연과 조화롭게 살아가는 삶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이런 의미에서 이번 전시는 자연을 우리에게 다시 허용하는 의식을 가짐으로써 자연과 교감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기회다. 인간 본성과 자연을 그 자체로 볼 수 있도록 말이다. 이 전시에서 사람들이 자연의 세계와 다시 연결되는 느낌을 받았으면 한다. 어떤 사람은 그런 느낌을 삼림욕이나 자연 목욕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러한 연결된 느낌과 깨달음이 주변의 자연을 바라보는 방식에 영향을 주고, 우리가 보호해야 하는 아름다운 시스템에 둘러싸여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우리의 습관을 바꾸기 위한 가장 중요한 단계로 나아가기를 소망한다.

우리가 사는 세상의 변화 속도는 점점 더 빨라지고 있다. 인간성의 본질 중 보존해야 할, 지속해야 할 가치가 있는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그렇다. 세상은 변화하고 있다. 변화하는 이유는 우리가 상상하고 발명하고 창조하는 놀라운 능력을 지녔기 때문이다. 이러한 창조적인 흐름은 인간이 모든 문제에 매우 성공적인 방식으로 살게 했다. 우리에게는 예지력도 있다. 바로 전두엽 피질이 미래를 예측하고, 미래에 대해 생각할 수 있도록 하는 뇌의 일부다. 아이러니는 그 재능을 사용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창조성과 독창성이다. 창조성은 혁신의 원천이고, 혁신은 창조적인 문제 해결을 의미한다. 인간이 창조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사실은 일종의 기회다. 비단 자연과 함께일 뿐 아니라, 서로 다른 생물종과 더 조화로운 방식으로 살면서 실제 삶에서 더 좋은 기회를 누릴 수 있다는 뜻이다. 문제를 해결하고, 신규 경로를 찾아 진전시키고, 기존 경로를 강화하는 능력은 인류가 가진 매우 중요한 특성이다. 그야말로 인간의 조건과 인간 정신의 매우 본질적인 부분이다.

지속 가능성에 대한 세간의 오해를 짚어준다면? 사람들은 덜 활동해야 하며, 실제로 지속 가능한 것은 줄어들 것이고, 반드시 무언가를 해야만 하며, 과거로 돌아가서 이 모든 것을 포기해야 한다고 오해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런데 사실은 그 반대에 가깝다. 이런 오해는 변화를 두려워하는 매우 인간적인 조건과 관련한 이야기 중 하나일 것이다. 우리는 습관의 동물이다. 어떤 것을 지속 가능하게 하고 싶다면 삶을 극적으로 변화시켜야 한다는 말을 자주 듣는 이유가 습관 때문이다. 그리고 그 말이 맞다.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 일하는 방식, 노는 방식, 거래하는 방식, 움직이는 방식에서 몇 가지 극적인 변화가 있을 테지만, 그 변화는 긍정적이다. 우리는 깨끗한 형태의 에너지만을 사용해 세계를 이동할 수 있다. 우리는 수명을 다한 폐기물을 재활용한 제품을 살 수 있다. 물론 이것은 부가적이다. 그러므로 지속 가능성이 부정적이거나 퇴보한 것이라는 인식은 잘못이다. 실제로 지속 가능성을 추구하는 것은 긍정적인 면이 많은 더 풍부하고 더 역동적인 삶의 방식이다. 또 다른 오해는 지속 가능성 면에서 우리가 이기고 있다는 믿음, 우리가 잘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실상 현실은 그렇지 않다. 그레타 툰베리(Greta Thunberg)가 천천히 이기는 것은 여전히 지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듯, 몇 번의 큰 승리를 거두었음에도, 여전히 다른 방향으로 크게 이동할 필요가 있다. 우리에겐 시간이 없고, 시간이 우리 반대편에 서 있기 때문에 점점 더 강하게 그리고 빠르게 밀어붙여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지속 가능성의 진실, 즉 가능하다는 사실로 이어진다.

그렇다면 우리가 알아야 할 지속 가능성의 진실은 무엇인가? 가장 중요한 진실은 우리가 현재 직면한 모든 문제가 해결 가능하다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미래에 살고 있다. 이미 능력과 기술, 노하우를 갖고 있다. 놓치고 있는 하나는 리더십이다. 리더십은 반드시 선출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일부에서 나와야 한다. 정부도 아니고, 기업도 아니다. 우리 자신에게서 찾아야 한다. 우리가 어떻게 투표하고, 소비하는지를 돌아보고 사회를 이끌어갈 수 있다. 우리는 진정으로 지속 가능한 것만 소비하고 관여하고 초점을 맞추고자 하고, 이러한 시스템을 오늘날 가능한 방식으로 전환하기를 원한다. 그래서 리더십에 압력을 가하고, 기업이 이를 따르도록 압력을 행사할 것이다. 만약 누군가가 이것이 너무 멀리 떨어져 있고, 미래 기술이기 때문에 달성할 수 없다고 말한다면 그들은 거짓말을 하는 것이다.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필요한 기술은 현재 존재하며,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 진실이다. 그저 사회의 모든 부문에서 리더십이 필요할 뿐이다.

 

 

하학수 현대자동차 미국디자인센터장

사진 제공: 현대자동차

여러 브랜드 간 협력이 더 이상 낯선 일은 아니지만, 여전히 새로운 인상을 줄 수 있다. 어떤 취지로 <re;collective: 25 guest rooms> 전시에 참여하게 되었나? 수년 전, 래코드에서 자동차에 쓰인 에어백 폐기물을 활용해 만든 랩톱 케이스 샘플을 본 적이 있다. 아이디어가 무척 신선하게 다가왔고, 개인적으로 갖고 싶기도 했다. 이 외에도 업사이클링 의류와 액세서리로 보여준 미래지향적이면서도 개성 넘치는 미감과 요소를 자동차 디자인에도 도입하고 싶었다. 의류 회사와 자동차 회사가 서로의 노하우와 경험, 강점을 접목한다면 진정한 지속 가능성을 더욱 효율적으로 구현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품고 이번 전시에 참여하기로 했다.

래코드가 지향하는 가치를 담은 키워드 중 특히 공감하는 것이 있다면? 디자이너라는 직업 특성상 아무래도 ‘리디자인(re;design)’의 가치에 주목하게 된다. 처음부터 무에서 유를 창출하는 디자인이 아니라 사용할 가치를 잃고 버려지는 재료와 여러 제약 조건을 창의적으로 활용해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는 리디자인은 쉽지 않지만, 의미 있고 매력적인 작업이다.

전시를 위해 한 팀을 이룬 데이비드 드 로스차일드와 협업하는 과정은 어땠나? 올해 초부터 로스차일드와 함께 지속 가능한 미래 모빌리티에 대한 선행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자동차 회사를 생각할 때 ‘친환경’이라는 단어가 가장 먼저 떠오르지는 않을 것이다. 로스차일드는 현대 아이오닉의 브랜드 홍보대사로서 우리 팀에 환경과 자연에 대한 많은 영감과 도전 과제를 제공하고 있다.

전시장의 내·외부 공간을 두루 활용하는 프로젝트를 선보인다. 작업을 통해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는 무엇인가? 자연은 아름답고 값지다. 또 우리의 삶을 윤택하게 한다. 이런 자연이 우리 가까이에 있을 수 있도록 유지하려면 지속 가능한 개발, 생산, 소비의 경제 패턴이 자리 잡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 실내에 작업한 ‘Nature Booth’와 실외에 설치한 ‘Geodesic Tree’에 이러한 메시지를 담았다.

개인과 기업, 브랜드와 브랜드가 만난 이번 협업으로 이루고자 한 목표가 있다면? 지속 가능성이 단순히 홍보나 마케팅을 위한 용어가 아니라, 더 나은 미래를 구현하기 위한 궁극적 삶의 기반으로 자리 잡기를 바란다. 우리는 디자인을 통해 그것을 이루기 위해 필요한 변화를 주도하고자 한다. 지속 가능한 라이프스타일을 위해 일상에서 어떤 실천을 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현대자동차 미국디자인센터 센터장으로 부임하면서 회사 가까운 곳에 집을 얻고 출퇴근길에 주로 자전거를 이용하고 있다. 자동차 회사에 몸담고 있지만 나름대로 자동차 사용 빈도를 줄이려고 노력한다. 차량을 선택할 때도 수소차나 전기차를 선호한다. 실제로 수소차나 전기차는 매
우 조용하고 승차감도 편안해 장시간 운전 후에도 피로가 덜하다. 그뿐 아니라 다양한 안전장치와 ADAS(차선 이탈 감지) 기능을 갖춰 사고 위험도 최소화했다는 장점이 있다.

 

 

NATURALLY

©Yuriko Takagi

조 나가사카 건축가 Jo Nagasaka

PROFILE

조 나가사카는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나 지바현에서 성장했다. 1998년 도쿄 예술대학 건축학과를 졸업한 직후 도쿄에 스키마타 건축(Schemata Architects) 사무소를 설립했다. 그의 작업 규모는 가구부터 인테리어, 건축, 도시 설계까지 광범위하다. 특히 주택, 사무실, 카페, 호텔, 리테일 등 다양한 유형의 프로젝트에서 건축의 재료와 디자인을 탐구한다. ‘빼기’, ‘지식의 갱신’, ‘보이지 않는 발전’, ‘세미아키텍처’ 등 독특한 아이디어로 일상의 사물과 주변 환경에서 새로운 관점과 가치를 발견하는 건축가다.

조 나가사카/스키마타 건축사무소, ‘SENBAN/살로네 델 모빌레 2021’ ©Schemata Architects

조 나가사카/스키마타 건축사무소, ‘블루 보틀 커피 교토 롯카쿠 카페’, 2019_Photo: Takumi Ohta

지속 가능성에 대한 당신만의 정의는? 에너지 독립성.

현재 우리가 직면한 기후변화와 환경 위기로 인한 건축적 변화도 불가피할 것이다. 건축은 이에 어떻게 대응해나가게 될까?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고, 완성도를 높여 더욱 잘 만드는 방향으로 가야 하지 않나 싶다. 실제로 기후변화에 대응책을 세우는 기업과 국가의 정책에 건축가와 디자이너가 참여할 수 있다면 영광으로 여길 것이다. 하지만 참여할 기회가 그리 많지 않다. 디자인을 통해 기업가와 공무원을 교육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면, 미약한 힘이나마 새로운 방법과 지식을 공유하는 데 보태고 싶다. ‘무인도 프로젝트(Uninhabited Island Project)’로 명명한 나의 꿈은 이런 사례 중 하나이며, 앞으로 10년 안에 실현되기를 소망한다.

지속 가능한 건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이러한 발전에 대한 견해가 궁금하다. 더 이상 쓸모없는 것을 건설하지 않겠다는 의미다. 숲이나 다른 자연경관을 파괴 하면서까지 이뤄내야 하는 발전은 없다. 나는 지속 가능성을 두드러지게 하려고 애쓰지 않는다. 애초부터 그것은 자연스러운 건축 과정의 일부가 되어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지속 가능한 건축을 위해 새로운 재료를 찾거나 신기술을 활용하는 데 관심이 있나? 물론 두 요소에 모두 관심이 간다. 하지만 특별히 재활용할 수 있는 재료를 찾으려고 노력하지는 않는다. 그저 우리가 이미 가진 재료를 쓰고자 할 뿐이다.

리노베이션과 신축 사이에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고 보나? 건물의 개조와 보수가 신축보다 환경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나? 그렇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이미 건물이 넘친다. 그러니 신축보다는 더 많은 리노베이션이 이뤄지는 것이 자연스럽다. 당신의 건축 철학은 ‘지식의 갱신(Renewal of Knowledge)’으로 대변된다.

최근 새로 업데이트한 지식이 있다면? FRP(섬유 강화 플라스틱)는 화학물질임에도 외관이 일본 종이처럼 보일 수 있다. 일회성 목적을 위해 제조하고 폐기하는 플라스틱은 미세 플라스틱 문제의 주범이다. 최근 한 친구에게 유럽에서는 이에 대한 문제의식이 높아졌고, 사용량을 줄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일본에서도 이 문제는 대단히 심각하다. 플라스틱의 정의를 알게 되면, 모든 플라스틱을 없앨 수는 없다는 생각이 바뀔지도 모른다. 쇼핑할 때도 플라스틱에 대한 인식이 바뀔 것이고, 사용량을 줄여봤자 큰 차이가 없을 거라고 체념하지도 않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교육의 힘이다. 우리 또한 디자인을 통해 교육에 기여할 수 있기를 바란다.

조 나가사카, ‘토치 파크의 벤치, 테이블, 스툴’, 2021_Photo: Takumi Ohta

조 나가사카/스키마타 건축사무소, ‘SENBAN/살로네 델 모빌레 2021’ ©Schemata Architects

주거와 사무 공간은 물론 카페, 상업 시설 등 다양한 용도의 건물을 설계했다. 목적과 쓰임이 건축에서 얼마나 중요하다고 생각하나? 목적성은 아주 중요하다. 하지만 디자인의 측면에서 봤을 때는 그다지 큰 차이가 없다. 그보다는 생각할 기회라고 받아들인다. 다르게 생각할 기회 말이다.

아라리오, 디앤디파트먼트 등 제주도와 유독 인연이 깊다. 탑동에 자리한 ‘코오롱스포츠 솟솟 리버스’ 프로젝트도 진두지휘했는데 어떤 점에 초점을 맞췄나? 업사이클이라는 방법론에 제주의 지역적 맥락을 더하고자 했다. 제주는 서울처럼 붐비는 대도시에서 탈출해 여유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장소라고 여겼다. 또 ‘rebirth’라는 스토어의 개념에 맞춰 제주에서 구한 재활용 재료와 용도에 따라 다양하게 변형할 수 있는 장치를 활용했다.

그때 래코드와의 만남도 이뤄졌다.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제품에 활용한 컬러가 기억에 남는다. 특히 블랙을 사용하는 방식이 인상적이었다. 가구를 제작할 때도 자신만의 색채를 잃지 않는다. 특히 2021 밀라노 국제 가구 박람회에서 선보인 ‘SENBAN’ 프로젝트는 많은 주목을 받았다. 그때도 ‘지식의 갱신’을 표현한 것이다. 그것이 핵심이다. ‘SENBAN’ 기술의 흥미로운 점은 무엇보다 오래된 나무에 다시 생명을 불어넣었다는 사실이다.

그렇게 시간과 시대가 포개지는 작업을 자주 선보인다. 과거와 미래는 당신에게 어떤 의미인가? 과거와 미래 모두 과정일 뿐이다. 그리고 나는 그 과정의 일부가 되기 위한 방법을 모색하는 사람이다.

가장 행복하고 편안하게 느껴지는 공간은? 에어컨이 필요 없는 날씨에 바깥에 머물 수 있는 환경이 좋다. 바다나 강처럼 움직임이 있는 공간이라면 더할 나위 없다.

 

THIS IS NOT JUST FASHION

한경애 코오롱 FnC 전무·CSO

Han Kyung Ae

래코드가 론칭 10주년을 맞이했다. 코드, 즉 방식을 전환한다는 뜻을 담은 브랜드의 이름처럼 최초에 래코드가 바꾸고자 한 것은 무엇이었나? 래코드는 2012년, 코오롱이 운영하는 20여 개 브랜드에서 나온 3년 차 재고를 소각하는 대신 패션 회사다운 방식으로 스토리를 더해 살려낼 방법을 고민하면서 출발했다. 패션업계에는 트렌드 변화로 판매되지 않고 쌓이는 재고 문제가 심각하기 때문이다. 당시만 해도 지금처럼 환경이나 지속 가능성에 대해 깊이 고민하는 브랜드가 많지 않았다. 래코드는 다양한 분야의 디자이너, 장인과 함께 재고 의류에 창의적 아이디어를 더해 새로운 옷으로 재탄생시킬 수 있었다. 지속 가능한 패션 브랜드로서 처음부터 지금까지 더 나은 미래를 모색하기 위해 문제점을 도출하고, 그 해결을 위한 실천으로서 꾸준히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지속 가능성’이라는 말 자체가 생소하던 시절부터 브랜드로서 10년간 변함없이 한길을 걸어왔다는 것, 그리고 서서히 더 많은 이가 우리의 취지에 공감하고 있다는데 자부심을 느낀다.

패션 비즈니스 차원에서 ‘지속 가능성’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패션업계에서 단순히 친환경 소재를 사용한다고 환경을 위한 진정한 발걸음을 내디뎠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보다는 필요한 만큼만 생산하고, 버려지는 것을 최소화해야 한다. 새로운 의류를 만들 때 발생하는 오염과 낭비를 최소화해야 하고, 잘 만들어서 오래 입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래코드는 이미 만들어졌으나 팔리지 않는 옷, 폐기 과정에서 부가적 오염을 일으킬 수 있는 옷을 해체하고 재조합해 새로운 디자인의 제품으로 탄생시킨다. 이것이 래코드가 지향하는 지속 가능성이다. 이제는 자회사 재고뿐 아니라 협업과 파트너십을 통해 다른 브랜드의 재고까지 업사이클링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버려지거나 불량인 에어백, 카시트 같은 산업 자재를 활용하기도 한다. 또 고쳐 입고 오래 입는 문화를 전파하기 위한 수선·리폼 서비스도 운영하고 있다.

래코드의 10주년을 기념하는 전시 <re;collective: 25 guest rooms>의 기획 의도와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는 무엇인가? 10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래코드는 수만 벌의 재고에 새 생명을 불어넣었고, 우리와 함께 지속 가능성을 지향하는 많은 파트너와 수십 차례 협업을 진행했다. 10주년의 발자취를 돌아보며, 이제는 ‘가치 있는 같이’ 로 미래를 꿈꾸는 전시를 기획하고자 했다. 지금 지구가 겪는 문제는 혼자 해결할 수있는 일이 아니다. 래코드가 옷을 통해 더 나은 세상을 그리듯, 각자의 영역에서 지속 가능성을 도모하는 프렌즈들이 공감을 표하며 전시에 참여했다. 더 많은 사람에게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한 메시지를 전하고 행동을 촉구하는 것이 궁극적인 지향점이다. 전시에서 래코드의 아카이브뿐 아니라 기업, 브랜드, 크리에이터 등과 협업한 결과물이 눈에 띈다.

앞서 언급했듯이 ‘같이’, ‘연대’ 등의 표현을 강조하는 특별한 이유나 계기가 있었나? 래코드는 론칭 당시부터 ‘함께’의 가치를 강조해왔다. 많은 독립 디자이너, 아티스트, 브랜드, 기업과 콜라보레이션을 시도하고, 사회적 고용 창출을 통해 동반 성장하는 커뮤니티를 지향해왔다. 싱글맘, 새터민, 난민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교육 등 다양한 지원 활동을 전개하며 사회의 지속 가능성을 높이고자 했다. 지속 가능성이라는 가치는 환경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래코드는 최근 여러 기업이 필수적으로 추구하는 경영 형태인 ESG 개념 중 사회적 차원의 임팩트까지 고려하며 ‘함께’의 가치를 자연스레 강조해왔다.

그동안 래코드가 이어온 수많은 협업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작업은 무엇인가? 모든 협업에 나름대로 의미가 있지만 나이키와 협업한 사례를 꼽고 싶다. 래코드가 갖고 있던 솔루션을 좀 더 넓게 펼칠 수 있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때까지 협업은 국내외 독립 디자이너와 함께한 소규모 컬렉션이 대다수였고, 코오롱 FnC 내부 브랜드의 재고를 중심으로 업사이클링이 이뤄졌다. 하지만 나이키라는 글로벌 스포츠 브랜드와 손잡으면서 스포츠 의류 부문에서도 재고 솔루션의 역량을 확인할 수
있었고, 타 브랜드와 협업하는 것이 또 다른 성장 모멘텀이 될 수 있음을 경험했다. 그 이후로 패션을 넘어 다른 분야와 협력하는 프로젝트가 더욱 활발해졌다.

전시의 프렌즈 존에서 만날 수 있는 협업 파트너를 선정한 기준은? 일단 래코드가 시작한 시점부터 우리의 여정에 동참한 이들을 프렌즈로 모셨다. 또 래코드가 지향하는 미래를 함께 꿈꾸고 오늘 함께 행동할 수 있는 파트너인지 여부도 중요한 기준으로 삼았다. 환경과 사회적 가치에 대한 진정성과 지속성을 토대로 작업해왔는지를 고려했다. 이번 전시를 준비하면서도 기존 재료를 재활용하거나 친환경 재료를 사용하는 등 지속 가능한 재료의 사용을 강조했다.

지난 10년간 래코드가 맞닥뜨린 고충은 무엇이었으며,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였나? 초반에는 업계는 물론 회사 경영자, 직원들을 대상으로 옷을 만드는 패션 브랜드가 왜 사회적 책임을 이야기하고 메시지를 전하려 하는지 설득하는 과정이 필요했다. 남들과 완전히 다른 행보였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지만 불과 10년 전만해도 환경문제나 지속 가능성이라는 이슈가 사회적 화두가 아니었기에 당연한 반응이었을 터다. 소비자도 설득해야 했다. 업사이클링 패션이 낯선 이들에게 ‘새 옷도 아닌데 왜 더 비싸야 하는지’ 설명하고, 취지를 이해시키는 과정을 겪어야 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우리는 옷만 팔지 않았다. 국내외에서 브랜드의 취지를 알리는 강연과 포럼을 열었다. 명동성당 내부에 공간을 마련해 누구나 업사이클링을 경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도 했다. 또 박스 아뜰리에라는 수선·리폼 전용 공간을 마련해 옷을 오래 입을 수 있는 실질적인 해법을 내놓기도 했다.

그 결과 이제는 국립현대미술관 유니폼, 리움미술관과 함께한 콜라보레이션 등 다양한 분야에서 래코드의 이름을 만날 수 있다. 업사이클링의 분야를 넓히는 시도의 의의와 향후 계획하고 있는 프로젝트가 있다면? 업사이클링의 분야를 넓히려 하는 목적은 지속 가능한 일상의 가능성을 확장하기 위함이다. 너무나 당연하게 만들고 버려지던 것들을 래코드의 솔루션으로 재탄생시켜 소비자가 업사이클링의 가치를 직접 느끼고 경험하게 한다는 뜻이다. 또 여러 브랜드, 기업, 창작자 역시 래코드와 협업하며 자신의 영역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기회가 될 것으로 생각한다. 최근 래코드는 하이브 인사이트와 협업해 BTS가 활동 중 착용한 의류를 활용한 업사이클링 에어백 가방을 출시했다. 내년에도 올해에 이어 라코스테와 손을 잡는다. 마케팅 개념의 단순 협업이 아니라 재고에 대한 진정성 있는 고민 끝에 나온 아이디어를 풀어내는 방식이 될 것이다.

선한 의도에도 불구하고 ‘업사이클링’이라는 개념에 모두 호의적인 것은 아니다. 쓰임을 위해 또 다른 낭비를 만드는 것은 아니냐는 회의론과 싸워야 한다는 현장의 어려움도 존재한다. 이런 반문에 래코드가 제시하는 대답이 궁금하다. 쓰임을 위해 만든 제품이 또 다른 낭비를 낳을 수 있다는 것, 어느 정도 공감하는 대목이다. 업사이클링이라는 방식을 취했어도 선택받지 못하면 쓰레기가 되는 건 마찬가지니까. 그래서 결국 디자인과 품질이 중요하다. 업사이클링 여부가 기준이 아니라 옷 자체의 매력으로 소비자의 선택을 받아야 한다. 래코드의 옷은 ‘어디에서도 쉽게 볼 수 없는’ 독창적 디자인을 지향한다. 해체와 재조합이라는 독창적 디자인 에센스를 유지하면서 컬렉션마다 미적으로 탁월한 디자인을 선보이는 이유다.

기업의 노력과 별개로 소비자의 인식이 바뀌지 않으면 지속 가능한 패션은 메아리 없는 외침에 그칠 수도 있다. 메시지를 전달하고 사람들이 실천하게 하는 것. 마음을 움직이고, 행동하게 만드는 힘은 어디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하나? 일관성. 그리고 진심이라고 생각한다. 인터뷰나 강연에서 래코드 이야기를 할 때면 마지막에는 많은 분이 래코드 덕분에 친환경 패션을 경험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고 말한다. 그것은 아마도 10년간 버려지는 것에 대한 새로운 탐구, 오래 입을 수 있는 옷을 만드는 해법을 꾸준히 제시했기 때문일 것이다. 급조된 브랜드 스토리가 아니기에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새로운 재료나 기술, 제작 방식 등 그동안 쌓인 래코드의 노하우를 앞으로 어떻게 활용하고 싶은가? 래코드가 그리는 미래의 모습 중 하나는 래코드의 재고 솔루션 노하우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와 직결되어 있다. 한국을 대표하는 지속 가능 패션 브랜드로서 브랜드를 넘어 하나의 플랫폼을 꿈꾼다. 재고 솔루션에 대한 컨설팅뿐 아니라 재고의 선순환을 위한 소싱 플랫폼의 역할, 여러 교육 프로그램으로 플랫폼을 꾸릴 수도 있을 것이다. 또 섬유 외에도 여러 산업에서 버려지는 다양한 소재에 도전하는 창작 그룹 역할을 맡는 것 또한 충분히 실현 가능한 계획이다.

변화와 지속이라는 개념은 언뜻 상충하는 듯하지만, 필연적으로 동반되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지속 가능한 패션을 위해 이뤄내야 하는 근본적인 변화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모든 분야가 그렇듯, 지속 가능 패션을 위해서도 끊임없는 기술 개발과 연구가 수반돼야 한다. 친환경 소재를 이용해 다시 만드는 정도로는 완전한 해법이 될 수 없다. 가장 친환경적으로 만든 제품이 버려졌을 때, 이를 가공해 다시 원재료로 쓰는 순환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전 과정 하나하나에 스마트 기술이 필요하다는 사실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그동안 전 세계를 무대로 활발히 활동해왔다. 해외에 래코드를 소개하며 접한 반응 중 인상 깊은 것이 있다면? 2018년 6월, 프랑스 마르세유에서 3일간 열린 ‘안티패션’ 포럼에 한국 브랜드로는 유일하게 초청받아 참석했다. 안티패션은 2016년부터 시작된 글로벌 이니셔티브 이벤트로 지속 가능한 패션과 시스템에 대한 새로운 생각을 나누는 행사다. 당시 안티패션의 설립자인 스테파니 칼비노(Stephanie Calvino)가 래코드는 규모가 작은데도 패션이 가진 환경, 노동 등 다양한 문제를 해결하는 솔루션의 모든 것을 갖췄다고 평한 일이 기억에 남는다.

지난 10년간 래코드가 이룬 가장 의미 있는 성과와 그것이 남긴 가장 큰 교훈은 무엇인가? 패션을 넘어서는 가치를 만들기 위해 남들이 하지 않는 시도를 했고, 중간중간 실패와 난관이 있었지만 결국 우리와 함께하는 이들이 생겼다는 사실이 의미 있다. 앞으로도 어떤 도전에 두려움이 생길 때는 누군가는 나를 응원해주고, 그 믿음을 저버리면 안 된다는 사실을 배웠다.

지속 가능한 패션의 전도사로서 가장 오랫동안 착용한 옷은? 래코드 론칭 때부터 지금까지 즐겨 입는 옷이 있다. 남성복을 해체해 만든 케이프형 재킷과 스커트다. 박시한 정장 재킷을 크롭트 스타일로 바꾼 재킷과 재킷의 천 조각을 이어 붙인 스커트다. 그 어디서도 볼 수 없는 디자인이다.

패션 이외의 영역에서 지속 가능한 라이프스타일을 위해 개인적으로 실천하는 생활 습관이 있다면? 대단한 것은 없다. 출근길에 커피를 사 오는 대신 사무실에서 직접 내려 마신다. 일주일에 한두 번은 도시락을 싸서 출근하기도 한다. 매장이나 행사에서 사용하고 쓰임을 다한 반려식물을 집에 들여 키우는 것도 지속 가능성을 위해 실천하는 나만의 방식이다.

지속 가능성, 그 이후에는 무엇이 있다고 전망하나? 지금 우리는 성장의 시대가 낳은 남용과 과잉의 한계를 느끼고 균형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 이후는 ‘결핍의 여유’가 아닐까 싶다. 갈구하면서 갖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덜 갖고 덜 쓰는 행동과 일상 자체가 오히려 지혜와 배려의 상징이 되는 시대가 오지 않을까 한다. 한번 한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으려 하는 것이 인류의 지혜니까.

앞으로 또 다른 10년을 내다보며 래코드가 주목하는 키워드는 무엇인가? 연대와 연결이다. 이번 전시도 여기에서 출발했다. 지난 10년간 선발 주자로서 지속 가능성의 취지를 알려왔다면, 이제는 더 많은 파트너와 함께 이니셔티브를 이어가야 할 시점이다. 이미 환경문제 이외에도 여러 사회문제와 관련해 서로 다른 분야의 협업에서 해결책을 찾아가고 있다는 점에서 어쩌면 당연한 선택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