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부터 연극을 하고 싶어서 한 게 아니라 어찌어찌하다 보니 엄마들이 연극을 하게 됐어요.”

 

2014년 4월 16일. 그날 이후 집 밖으로 나오지 못했던 엄마들은 다시 살아가기 위해,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려주기 위해 연극을 시작했다. 희곡 읽기 모임으로 시작해 4·16가족극단 노란리본을 창단하고, 몇 편의 극을 만들어 올리기까지 엄마들은 슬픔과 괴로움, 작은 즐거움과 애틋함을 나누며 삶을 일궈왔다. 조금씩 굳건해진 엄마들이 만든 세 번째 극은 <장기 자랑>이다. 수학여행에서 뽐낼 장기 자랑을 준비하는 반 친구들의 이야기에는 수인, 동수, 애진, 예진, 영만, 순범, 윤민이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엄마들은 실제로 장기 자랑을 준비하듯 설레다 주저하기도 하고, 질투하고 투닥거리다 다시 화해하며 연극을 완성한다. 이소현 감독은 이 모든 과정을 켜켜이 카메라에 담아내 다큐멘터리영화 <장기 자랑>을 만들었다. 엄마들의 삶이 절망과 슬픔으로만 비치지 않기를 바라며, 힘든 시간을 지나온 이들에게 위로와 용기가 되기를 바라며.

 

 

“진실 규명도, 추모도 다 중요한데 저는 어머니들이 자신을 지키는 일을 가장 먼저 해주면 좋겠다 싶었거든요.
그러니까 이 영화를 보는 분들도 유가족이니까, 참사 피해자니까 어떠할 거라는 편견을 내려놓고 봐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 이소현 감독

 

 

생존자 애진이와 그의 어머니를 만난 게 시작이었다고 들었어요. 2019년 초 일본 NHK에서 제작하는 다큐멘터리에 음향 스태프로 참여해 애진이를 인터뷰하러 가게 되었어요. 저는 사운드만 체크하는 역할이라 인터뷰를 듣고만 있었는데, 건네는 질문들이 좀 무례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애진이가 힘들게 답을 이어가는 것처럼 보였는데, 옆에서 어머니가 저 말 중 대부분이 거짓말이라는 거예요. 너무 무섭고 힘드니까 얼른 대답하고 끝내려고 지어낸 말일 거라고요. 그 말을 듣고 나니 그간 미디어를 통해 접한 세월호 관련 인터뷰들이 진실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자극적인 질문을 하지 않고 찬찬히 엄마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어떨까 싶었고, 애진이 어머니를 통해 연극 하는 어머니들을 만나게 되었어요.

촬영 첫날이 기억나나요? 굉장히 조심스러웠을 거라 짐작되는데요. 연극 <장기 자랑> 오디션 결과 발표 날이었는데, 그날 워낙 많이 싸우셔서 아무것도 못 찍고 왔어요. 각자 바라는 역할을 얻지 못해 서운했던 거죠. 나중에 개인 촬영을 하는데도 제 질문과 상관없이 ‘너무 억울하다. 왜 내가 주인공이 아니냐’ 하시고.(웃음) 그런데 그 모습이 제가 그간 여러 매체에서 접한 유가족의 이미지와 엄청 대조되는 거예요. 당황스러우면서도 솔직하고 일상적인 이야기를 해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어머니들에게 허락을 구하고 본격적으로 다큐멘터리 작업을 시작하게 된 거죠.

촬영 기간이 꽤 길었던 것 같아요. 얼마 동안의 이야기를 담은 건가요? 처음에는 연극을 올리기까지 한 달만 찍으려고 했어요. 그런데 찍고 나니 한 달만 더 해보면 더 많은 이야기가 나오겠다 싶더라고요. 그리고 또 한 달, 한 달 더하다 보니 3년 반이 흘렀어요.

다큐멘터리에는 어머니 7명의 이야기가 담겨 있어요. 적은 인원이 아니다 보니 찍으면서 생각보다 수월했던 분도, 시간이 필요했던 분도 있었을 것 같아요. 의외로 가장 찍기 힘든 분이 수인이 어머니였어요. 잔잔한 강물처럼 고요하고 평온한 분인데, 그래서 어렵더라고요. 다투거나 투쟁에 앞장서거나 하는 분들은 그게 시각적으로든 말로든 확 드러나는데, 수인이 어머니는 어떤 상황에서도 티 내지 않는 분이에요. 수인이 어머니는 광주에서 5·18 민주화운동도 겪으셨거든요. 편집 과정에서 덜어내긴 했지만 어머니랑 묘역에 가는 장면도 있었어요. 그런데 그곳에서도, 세월호 이야기를 하는 순간에도 감정의 파고가 일지 않으시더라고요. 가늠할 수 없는 그분의 마음을 관객에게 닿게 하고 싶어 고민이 무척 많았죠.

사실 세월호라는 단어만으로도 영화를 보는 게 쉽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예상보다 무겁거나 슬프지만은 않더라고요. 슬픔으로 머물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었던 거겠죠? 맞아요. 저도 세월호와 관련된 이야기를 접할 때 심호흡을 하게 되거든요. 그래서 일부러라도 어머니들에게서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 다른 모습을 많이 발견하고 싶었고, 그 때문에 촬영이 길어진 부분도 있어요. 며칠만 찍고 끝냈으면 제가 담고 싶은 모습을 포착하는 데만 집중했을 것 같은데, 3년 넘게 함께하다 보니 어머니들의 일상이 보이는 거예요. 참사 피해자라고 해서 24시간 슬픔에 빠져 있는 건 아니거든요. 제 눈에 보이는 일상적이고 솔직한 어머니들의 모습을 담으려는 의도가 분명히 있었어요.

반대로 슬픔을 직시하는 장면도 있어요. 마치 이 참사를 잊어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것 같은 이야기도 등장하죠. 처음에는 세월호를 언급하지 않으려는 생각도 했어요. 그런데 편집 과정에서 참사를 기억하지 못하는 어린 세대가 이 영화를 어떻게 이해할지 고민하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이게 어떤 참사였는지, 그래서 우리가 무엇을 기억해야 하는지 정도는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으로 방향을 틀었어요.

3년이 넘는 시간 동안 다양한 어머니들의 사연과 이야기를 들었을 텐데, 지금 그때를 상기하면 어떤 말이 떠오르나요? 힘든 시간을 보내는 분들 앞에 카메라를 들이대고, 말을 거는 일이 쉽지는 않았어요. 이래도 되나 싶을 때가 많았거든요. 그 마음을 눈치채셨는지 어느 날 저에게 쭈뼛거리지 말고 제대로 찍으라고 하시더라고요.(웃음) 그 말을 듣고 ‘그래, 망설이느라 시간을 낭비하지 말자’ 싶었어요. 지금까지 마음을 울리는 말도 들었어요. 수인이 어머니가 ‘우리랑 너무 오래 같이 있으면 병드니까 부지런히 하고 빨리 떠나라’고 얘기하셨는데, 그 말에서 이분들의 마음속에 얼마나 큰 아픔이 있는지 느껴졌어요.

영화를 본 후 가장 기억에 남는 게 영만이 엄마의 이야기예요. “물론 다른 사람들이 손가락질할 수 있겠지. ‘엄마가 애 보내고 나서 뭐가 그렇게 좋아가지고 저렇게 하면서 살 수 있지?’라고 얘기할 수도 있겠지만, 그냥 나는 더 멋지게 살고 싶을 때도 있어요.” 연극을 만든 김태현 감독님이 어머니들을 무대에 세운 이유를 들려준 적이 있어요. 바깥에서 웃게 만들고 싶어서 그러셨대요. 즐거운 장면에서는 웃어야 하잖아요. 연기를 위해 그렇게라도 웃다 보면 무대 밖에서도 웃게 될 거라고요. 저도 같은 마음이 있었던 것 같아요. 진실 규명도, 추모도 다 중요하지만, 저는 어머니들이 자신을 지키는 일을 가장 먼저 하면 좋겠다 싶었거든요. 그러니까 이 영화를 보는 분들도 유가족이니까, 참사 피해자니까 어떠할 거라는 편견을 내려놓고 봐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영화를 본 어머니들의 반응은 어땠나요? 감독으로서 누구보다 평가가 궁금한 관객이었을 것 같아요. ‘싸우는 장면을 넣었습니다’, ‘담배 피우는 장면을 썼습니다’ 하고 미리 언질은 드렸지만, 그래도 너무 솔직하게 담은 거 아니냐고 할까 봐 걱정했는데, 생각보다 좋아해주셨어요. 슬프지 않아서 너무 좋고, 다른 사람들에게 무겁지 않은 마음으로 소개해줄 수 있을 것 같아 좋다고요. 감

독의 의도를 완벽히 간파한 감상 평을 들은 셈이네요. 이번 작업의 가장 큰 수확은 무엇인지 묻고 싶었는데, 어머니들의 반응이 답이 되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이 영화가 어머니들에게 어디에서도 할 수 없던 자신의 이야기, 떠나간 아이들의 이야기를 편하게 할 수 있는 장이 된 것 같아 좋아요. 그리고 사실 가장 큰 보람은 오늘 촬영입니다.(웃음) 영화제에서 상영할 때도 이 정도 반응은 아니었는데, <마리끌레르>에 실릴 촬영을 한다니까 다들 엄청 즐거워하시더라고요. 어머니들에게 행복한 일이 더 많이 생기길 바랐는데, 오늘 진짜 행복해 보였어요. 저보다 더 큰 역할을 마리끌레르가 하셨어요. 감사합니다.(웃음)

(웃음) 인사를 받아도 될지 모르겠습니다. 진심입니다. 앞으로 어머니들이 살아가며 즐겁게 기억할 일이 하나 생겼다는 점에서 저 역시 무척 기쁜 마음이거든요.

다큐멘터리 <장기 자랑>을 본 관객으로서 얻은 수확은 ‘참사 이후 우리는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라는 물음에 하나의 답을 얻었다는 것입니다. 부서지지 않고 무너지지 않으며 나아가는 어머니들의 모습이 누군가에겐 귀중한 답이 될 것 같아요. 어머니들에게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있어요. 진실이 규명되면 그때는 연극을 안 하실 거냐고요. 뜬금없는 질문에 이렇게 답하시더라고요. 그렇게 되면 더 행복하게 무대에 설 것 같다, 그리고 우리와 같이 진실을 원하는 다른 참사의 현장에 가서 용기와 희망을 주는 사람으로 존재하고 싶다고요. 그 말에서 어떤 희망이 보였어요.

 

동수 엄마 김도현 가장 좋아하는 부분은 단원고에서 연극 <장기 자랑>의 마지막 공연을 한 일이에요. 사실 무서웠어요. 아이들이 마지막까지 있었던 곳이고, 그곳에서 우리는 무너졌었고, 명예 졸업식을 하며 다시 떠나보낸 곳이니까요. 결국 그곳에서 공연을 함으로서 또 한번 극복하고 성장했다고 생각해요.

예진 엄마 박유신 연극을 준비하면서 우리가 떨 때마다 김태현 감독님이 해주는 얘기가 있어요. 무대에서 우린 떠난 아이들의 모습을 보여주려고 하는 거니까, 맘껏 즐기면서 빛나는 모습을 보여주면 좋겠다고요. 우리는 계속 그 마음으로 연극 무대에 올라요.

윤민 엄마 박혜영 연극도 하고, 다큐멘터리에도 참여하고. 저는 이게 다 세월호 활동이라 생각해요. 이걸 보고 사람들이 다시 세월호를 떠올리고, 그래서 진실에 다가갈 수 있기를 바랄 뿐이죠.

수인 엄마 김명임 그때의 절박했던 마음, 나쁜 감정이 들지 않게 열심히 노력하면서 달려온 순간들, 함께했던 사람들에게 느꼈던 애틋함과 고마움이 다시 보이더라고요. 그래서 다시 한번 위로 받을 수 있었어요.

순범 엄마 최지영 처음에는 되게 쑥스러웠어요. 연극 무대에 오르는 것도, 카메라 앞에서 내 얘기를 하는 것도. 그럼에도 우리 아이들을 위해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더 잘하고 싶은 마음도 들었고요. 완성된 영화를 보니 참 잘했다 싶어요.

영만 엄마 이미경 우리 영만이가 랩을 참 좋아했거든요. 다큐멘터리에 영만이를 대신해 제가 랩을 녹음하는 장면이 나와요. 일곱 살 때 쓴 일기를 낭독하는 장면도 있고요. 그렇게 영만이 얘기를 담을 수 있어서 너무 좋았어요.

애진 엄마 김순덕 저는 생존 학생 엄마예요. 다큐멘터리를 찍을 때 감독님한테 저는 정말 적게 나와도 괜찮다고, 그저 그림자처럼 곁에만 머물러도 좋다고 했어요. 그런데 감독님이 함께하는 모습도 담자고 하더라고요. 지금까지 발생한 참사에서 생존자 가족과 유가족이 함께하는 모습은 보지 못했고, 그래서 더 의미 있을 거라고요. 수인이 엄마의 말처럼 세상과 단절되지 않고 연결해주는 존재가 될 수 있을 거라고요. 그 말에 용기를 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