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들여다보는 마음으로. 정답이 없어도 괜찮다는 생각으로.
연극 <클로저> 안팎에서 배우 안소희가 그리는 사랑의 모양.

슬리브리스 미니 원피스 Acne Studios.
레이스 펀칭 원피스, 화이트 슬리브리스 레이어드 원피스 모두 Fabiana Filippi.
슬리브리스 미니 원피스 Acne Studios, 팬츠 GAYEON LEE, 슈즈 Jil Sander.

연극 <클로저> 공연이 한창이죠. 요즘은 어떤 나날을 보내고 있어요?

지난 4월 말부터 꾸준히 무대에 오르고 있어서 숨 가쁜 시간을 보내고 있어요. 제가 참여한 영화 <대치동 스캔들>도 곧 개봉할 예정이라 설레는 마음을 품고 있고요.

<클로저>를 통해 처음으로 연극에 도전했어요. 첫 공연의 막이 오른 뒤 어떤 생각이 들었나요?

진짜 재미있다!(웃음)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즐거웠어요. 함께 공연하는 배우분들도 제가 재미있어 하는 게 눈에 보였다고 해요. 사실 무대 위에서는 실수를 만회해야 하거나 애드리브가 필요한 순간이 생기기 마련인데, 그 상황에 매끄럽게 대처하기 위해선 준비해둔 것이 있어야 하거든요. 나의 노력과 예상치 못한 순간이 만나서 새로운 것이 탄생할 때 희열이 느껴지더라고요.

역시 무대 체질인가 봐요.(웃음)

가수 활동을 할 때도 무대에 서서 관객과 호흡하는 걸 참 좋아했어요.(웃음) 배우로서 무대에 오르는 건 처음이라 어떨지 상상이 되지 않았는데, 확실히 이곳에서만 느낄 수 있는 에너지가 있더라고요. 주어진 순간 과 배역에 집중하다 보면 어느새 시간이 훌쩍 지나 있고요. 오래전부터 연극에 관심이 있었는데 <클로저>가 제게 와줘서 감사해요.

<클로저>에 출연하기로 결정한 이유도 궁금해요. 작품의 어떤 점이 안소희 배우의 마음을 움직였나요?

가장 큰 건 사랑을 다룬다는 점이에요. 이전에 사랑을 중심으로 한 작품에 참여한 적이 없었거든요. <클로저>는 제가 맡은 앨리스를 포함해 댄, 안나, 래리까지 네 인물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일을 다루는 작품이에요. 한 사람의 입장만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네 사람의 시선을 통해 사랑과 관계에 대해 집요하게 탐구한다는 점이 매력적이라고 생각했어요. 영화 <클로저>도 인상 깊게 봤고요. 영화가 나온 당시엔 제가 어렸지만, 이젠 사랑을 다각도로 살펴보며 표현할 수 있는 시기가 되었다고 느끼거든요.

시스루 원피스 LCDC, 시스루 스커트 Dew E Dew E, 레이어드한 실버 네크리스, 브레이슬릿은 모두 muacho, 베이지 보디수트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퍼플 레이스 원피스 Coach, 퍼플 드레스 Blumarine.

<클로저>에서 투명하고 당당해 보이지만 비밀스러운 면을 지닌 ‘앨리스’를 연기하고 있어요. 인물을 이해하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긴 건 무엇이에요?

음… 아픔이요. 앨리스는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을 모두 지니고 있는데, 그의 말과 행동 하나하나가 아픔에서 비롯된 것이라 생각해요. 하지만 작품에서는 그 결핍이 무엇인지 드러나지 않고, 앨리스를 둘러싼 것 중 무엇이 사실인지조차 알 수 없어요. 그 모호함이 앨리스의 매력이라고 느껴요.

실체를 알 수 없는 아픔을 표현하는 게 쉽지 않을 것 같아요. 결핍이 명확히 드러나는 인물이라면 오히려 연기하기 수월할 수 있잖아요.

맞아요. 그래서 연출님이나 다른 배우들과 깊이 대화하며 앨리스에 대해 가정을 했어요. 자라온 환경에서 결핍이 있었을 텐데, 그 이유는 여러 가지일 수 있다는 식으로요. 명확하게 정한 것은 아니지만 인물에 대해 더 깊이 고민해보는 데 도움이 됐죠.

함께하는 동료들과 합을 맞추는 과정은 어땠어요? 연극에서만 느낄 수 있는 새로움도 있었을 듯한데요.

드라마나 영화는 각자 준비한 뒤 리허설을 하는데, 연극은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함께한다는 점에서 새로워요. 특히 연극은 준비 과정에서 참여 하는 사람이 모두 모여 작품에 대해 의논하는, 이른바 테이블 작업을 하거든요. 다 함께 앉아 작품의 주제와 내용, 장면이나 대사 하나하나까지 세밀하게 들여다 보며 의견을 나누는데, 저희는 그 작업을 2주 동안 했어요. 다른 연극에 비해 꽤 긴 기간이었다고 해요.

사랑을 주제로 끊임없이 토론한 셈이네요. 그 시간을 거쳐 무엇을 배웠나요?

우선 집단 지성의 힘을 크게 느꼈어요.(웃음) 여러 사람의 생각이 모이니 한 사람의 생각 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풍부해지더라고요. 작품에 대한 의견, 사랑에 대한 개 인적인 이야기까지 솔직하게 공유했죠. 그 덕에 앨리스뿐 아니라 다른 인물의 입장과 감정에도 더 깊이 공감할 수 있었어요. 극을 이해하는 것을 넘어 사랑에 관해 더 넓고 깊게 사유할 수 있었던 듯하고요.

화이트 슬리브리스 원피스 Marni.

사랑에 대해 새롭게 생각하게 된 지점도 있어요?

아무리 끈질기게 파고들고 고민해 봐도 사랑에 정답은 없다는 것이요. 어떤 날은 댄처럼 거짓 없이 모든 것을 솔직하게 말하는 것이 정답인가 싶다가도, 다른 날에는 앨리스처럼 그저 뜨겁게 행동하는 게 사랑에 가장 근접하지 않을까 싶더라고요.

정답은 없다. 어쩌면 그게 사랑의 본질일 수도 있겠어요.

맞아요. 연습하거나 공연하다 보면 매일 마음에 남는 대사가 달라요. 오늘은 이 문장이 꽂히는 것을 보니 내 생각이 바뀌었나 보다 싶고요. 작품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의 마음이 이해가 가는 것을 보면 결국 사랑은 복잡하고 다면적이구나 하고 깨달아요. 어떤 태도나 마음이 정답이라고 말할 수 없는 것 아닐까 싶고요.

문득 궁금해지네요. 안소희 배우는 타인과의 관계를 통해 삶을 지탱할 힘을 얻는 편인가요?

제 사람들에게 큰 힘을 얻지만, 동시에 내가 중심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 요. 누군가에게 의지하며 살아가기보다는 타인에게서 힘을 얻어 내 심지를 굳건히 하는 편이에요.

이때 말하는 내 사람들에는 누가 포함되나요?

가족, 친구, 함께 일하는 식구들, 그리고 팬들이요. 사실 팬들과 저는 가족이나 친구도, 개인적으로 아는 사이도 아니잖아요. 아무 관계가 아닐 수 있음에도 저의 여러 면을 지켜보고 무한한 애정을 보내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에 늘 감사해요.

시스루 원피스 LCDC, 레이어드한 실버 네크리스는 모두 muahcho, 베이지 보디수트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영상 콘텐츠를 촬영할 때도 느꼈는데, 팬에 대해 이야기를 할 때 표정이 순식간에 달라져요.

고맙고 애틋한 감정이 한 번에 느껴진다고 해야 할까요. 왜냐하면… 진심이거든요.(웃음) 늘 더 많이 표현하고 싶어요. 팬들이 제게 커다란 애정을 주는 것처럼, 저도 당신을 내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다고요. 결국 관계를 맺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건 표현하는 것이라고 보거든요. 드러내거나 말하지 않으면 모르니까요.

지난 마리끌레르와의 인터뷰에서 ‘갇히지 않고 정체되어 있지 않고 싶다’는 말을 했어요. 오늘 대화를 나누다 보니 배우 안소희는 연극 <클로저>와 여러 관계의 안팎에서 꾸준히 확장되고 있구나 싶어요.

여전히 노력 중이에요.(웃음) 연극이 재미있지만 힘들다고 느껴지는 순간도 분명 있거든요. 그럴 때면 결국 이 모든 과정이 나를 성장 시키는 일임을 상기해요. 제가 언제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에게 사랑에 대한 생각을 들어보고, 매번 새로운 작품을 만들어내며 팬들과 소통할 수 있겠어요. 결국 내가 더 넓어지고 확장되는 과정이라 믿고 또 되새기고 있어요.

마지막 질문이에요. 연극 <클로저>가 배우 안소희에게 어떤 의미로 남길 바라나요?

연극을 통해 어떤 모습을 보여줘야겠다고 마음을 잡고 시작한 건 아니라서 뚜렷한 지향점 같은 건 없어요. 오히려 저에게도 도전인지라 어떻게 보일지가 궁금해 다양한 이야기를 기다리고 있고요. 많이 듣고 또 생각하며 작품이 끝난 뒤에도 안소희의 앨리스를 만들어가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