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나 작가는 사물을 수집하고 재구성하며 새로운 가치를 발견한다.
익숙한 대상에 저마다의 서사가 더해질 때 더욱 큰 울림이 탄생한다는 믿음으로.

© Dahahm Choi
김영나(Na Kim), ‘Good Job’, Wool, canvas, wood frame, 61.5×60×3cm, 2023.
Photograph by Dahahm Choi. Courtesy of KUKJE GALLERY and the artist

그래픽 디자인을 기반으로 시각예술을 다루며 활동 반경을 넓혀왔다. 올해 5월 한국에서의 첫 아트페어인 아트부산 2024에 함께하며 개인전도 부산의국제갤러리에서 열린다.
최근 ‘전시의 맥락’과 이를 구성하는 ‘개별 작품의 의미’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봤다. 20여 년간 디자이너로서 작업하며 수집한 사물들이 언젠가 의미 없는 모음이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들더라. ‘그렇다면 이 아카이브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 주목하며 이번 전시를 준비했다.

<Easy Heavy>라는 제목을 떠올린 계기는 무엇인가?
수집 대상을 각각 바라볼 땐 가벼운 사물에 지나지 않지만, 기억이 더해지면 무거운 덩어리가 된다는 걸 느꼈다. 우리가 한 시점을 기억하기 위해 수집하는 ‘기념품’이 어느 순간 ‘기념비’가 되어가는 상상을 했다. 이처럼 가볍지만 무거운 것, 쉬움과 어려움이 교차하는 역설적 상황에 대해 생각하다가 <Easy Heavy>라는 제목을 떠올렸다. 이는 이미지와 물성을 구현하려는 새로운 시도가 얼마나 즐겁고 또 무겁게 느껴지는지 실감했던 경험을 은유하기도 한다.

베를린의 주거 공간 겸 작업실인 ‘LOOM’에서 여러 프로젝트를 진행한 만큼, 이번 전시 공간을 어떻게 활용할지 궁금해진다.
그간의 전시는 여러 요소가 관여하는 ‘공간의 경험’으로 대한 경우가 많았다면, 이번 개인전에서는 작품의 모음이 곧 전시가 되는 상황을 실험해보고 싶었다. 전시 공간은 크게 두 개로 나뉜다. 디자이너로서의 아카이브를 기반으로 한 연작 ‘SET’와 이로부터 파생된 작품들을 한 공간에 설치하고, 다른 공간에는 가장 큰 규모로 최근작을 전시한다. 두 공간의 이미지는 확연히 다르지만, 수집과 재구성의 측면에서 공통분모를 갖는다.

김영나(Na Kim), ‘OP.QUS·TRVWX·Y·Z’, Acrylic paint, wood, 125×80×4cm,
Photograph by Dahahm Choi. Courtesy of KUKJE GALLERY and the artist
김영나(Na Kim), ‘Home 1’, Acrylic paint, wood, 25×75×12cm, 2024.
Photograph by Dahahm Choi. Courtesy of KUKJE GALLERY and the artist

최근작들은 어떤 과정을 거쳐 탄생했나?
오래 수집해온 스티커 아카이브 중, 기호적 해석이 가능해 보이는 것들을 골라 다양한 재료로 표현해보고 싶었다. 흔히 접하는 이미지 언어가 어떻게 주관적으로 해석되는지, 문화적 또는 개인적 경험에 따라 어떤 의미가 더해질 수 있는지 관찰하는 것이 흥미로웠다. 이러한 다층적 해석의 영향을 받거나, 다른 해석을 유도할 수 있는 새로운 재료를 탐색하는 것도 주요한 지점이었다. 예를 들어 ‘Good Job’은 ‘상(賞) 스티커’의 이미지를 확대해 펀치 니들 자수 기법으로 표현한 작품인데, 누군가는 이를 보며 칭찬의 의미 대신 무궁화의 엄숙함이나 버터컵(미나리아재비)의 노스탤지어를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익숙한 소재와 색, 형태 등을 기반으로 한 디자인에 의미를 더해갈 때 무엇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나?
새로운 시각언어에는 한계가 있다고 본다. 특히 현시대의 창조성은 단순히 새로움만을 뜻하지 않는다. 익숙한 대상일지라도 개인의 서사가 자아내는 ‘슴슴한 깊이감’의 가치가 오히려 더 큰 울림을 전하는 듯하다. 디자인을 다룰 때 주관성을 객관화하는 방법에 대해 많이 생각해왔는데, 개인의 서사를 소통의 언어로 다듬는 게 오히려 가능성을 지우는 것 같더라. 요즘은 개인의 언어에 집중하며 이를 솔직하게 표현해내는 데 주력하고 있다.

이미지가 지닌 의미는 저마다의 기억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렇다. 내 작업은 주어진 구조를 관찰하고, 어떠한 맥락 안에서 수집과 재구성을 시도하며 ‘허구적 가능성’을 발견하는 일과 맞닿아 있다. 더 나아가 최근에는 ‘의도적 낯섦’에 대해서도 생각한다. 낯선 것을 시도하려는 마음을 꾸준히 지켜가고 싶다. 그렇게 견딜 수 있을 때까지 ‘아마추어’가 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