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우주, 장인정신 그리고 영원. 삶의 축소판과도 같은 진귀한 타임피스들이 워치스 앤 원더스 2024를 통해 공개됐다. 그 안에서 찾아낸, 시계 시장의 한 해를 이끌어갈 크고 작은 흐름과 당신이 매혹될 수밖에 없는 당위들.

PAPER-THIN WATCHES

공개와 동시에 동전보다 얇은 두께로 세상을 놀라게 한 두 개의 타임피스가 있다. 피아제가 설립 150주년을 기념해 제작한 ‘알티플라노 울티메이트 컨셉 뚜르비옹’과 불가리의 ‘옥토 피니씨모 울트라 COSC’가 바로 그것. 먼저 피아제는 메종이 기록한 수치를 스스로 뛰어넘기 위해 부품의 90%를 새롭게 설계하는 노력을 불사하며 전작만큼 얇은 두께에 플라잉 투르비용 기능까지 탑재한 시계를 선보였다. 무브먼트와 케이스의 구분을 없앰으로써 공간을 확보한 후 케이스백이 무브먼트의 메인 플레이트 역할을 수행하도록 고안했으며, 경도 대비 두께 비율을 최적화하기 위해 코발트 합금을 사용한 혁신적 아이디어가 겨우 2mm밖에 되지 않는 초박형 투르비용 워치를 탄생시킨 비결. 불가리 역시 케이스백에 메인 플레이트 역할을 부여하고 견고성을 높이기 위해 케이스는 사파이어 크리스털로, 케이스백과 메인 플레이트는 고밀도, 고강도, 초저항성의 텅스텐 카바이드 소재로 제작했다. 시계 자체의 기술적 완성도도 놀랍지만, 손으로 잡을 수도 없을 만큼 작은 부품을 새롭게 배열하고 실패하는 지난한 과정을 수차례 견디고 한계를 뛰어넘은 매뉴팩처 장인들의 끈기와 열정에 경탄을 보낼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IN THE MIDDLE OF THE FOREST

기계적 기술력이 워치메이커의 레벨을 판가름한다면, 잘 만든 주얼리 워치는 워치메이커의 예술적 감도를 나타낸다. 그중에서도 전문적인 보석 라인업을 가진 브랜드가 공들여 세공한 주얼리 워치는 시계라는 소우주 안에 때로 바다와 같은 차분함을, 때로 하늘을 닮은 자유로움을 펼쳐내며 감상의 효과를 더한다. 워치스 앤 원더스 2024에서 마주한 주얼리 워치는 숲의 경이로움을 담고 있다. 무광의 마더오브펄 다이얼을 캔버스 삼아 발로네 에나멜로 꽃을, 샹르베 에나멜로 잎사귀를, 차보라이트 가닛과 3D 플리크 아 주르 에나멜로 풀잎을 표현한 반클리프 아펠의 ‘레이디 아펠 브리즈 데떼’, 케이스를 감싼 브릴리언트 컷 다이아몬드의 모습이 꽃잎을 연상시키는 쇼파드의 ‘디아망트’, 마름모꼴 다이얼 주위를 감싸안듯 다이아몬드를 풀 파베 세팅해 얼룩말과 악어의 역동적 움직임을 표현한 까르띠에의 ‘애니멀 주얼리 워치’가 생동하는 주얼 포레스트를 경험해보길.

MAGICAL TOURBILLON

프랑스어로 ‘회오리바람’을 뜻하는 투르비용은 시계가 받는 하중을 분산함으로써 중력에 의해 발생하는 시간의 오차를 줄이는 장치다. 밸런스 스프링, 밸런스 휠을 비롯한 여러 부품이 그 이름처럼 빙글빙글 돌아가며 시계의 완성도와 미감을 높이지만, 제작 공정이 까다로운 탓에 오직 높은 기술력을 갖춘 매뉴팩처만이 범접 가능하다. 그러나 워치스 앤 원더스는 시계 이상의 시계를 선보이는 각축장. 두 개의 브리지로 캐리지를 지지하는 보편적 형태의 투르비용 대신 하나의 브리지만 연결해 마치 자력으로 떠 있는 듯한 인상을 주는 플라잉 투르비용(flyingtourbillon)부터 여러 개의 축으로 회전하는 투르비용까지 가공할 신제품을 여럿 선보이며 놀라움을 안겼다. 3개의 축을 두고 3개의 티타늄 케이지가 회전하는 독자적 형태의 투르비용을 장착한 예거 르쿨트르의 ‘듀오미터 헬리오투르비옹 퍼페추얼’과 아이코닉한 H 모티프의 3축 투르비용이 돋보이는 에르메스의 ‘아쏘 아뜰레’, 7시 방향에 플라잉 투르비용을 배치하고 켈트 십자가에서 영감 받은 코발트 크롬 합금의 상단 케이스로 현대적 감각을 가미한 로저드뷔의 ‘엑스칼리버 티타늄 모노투르비옹’, 8.2mm 초박형 두께의 투명 사파이어 케이스와 3백60도로 감상 가능한 스켈레톤 무브먼트, 그리고 플라잉 투르비용을 갖춘 ‘구찌 25H 스켈레톤 뚜르비용’, 0.18캐럿의 익스클루시브 컷 솔리테어 다이아몬드 한 개를 케이지 위에 세팅한 샤넬의 ‘J12 다이아몬드 뚜르비옹 칼리버 5’가 대표적이다.

BLUE VIBE

지난해 그린이 강세를 보였다면 워치스 앤 원더스 2024의 중심이 된 컬러는 블루. 특히 주목할 점은 클래식을 표방하는 워치메이커가 되레 스포티한 블루 트렌드를 이끌었다는 점이다. 일례로 무려 3백36시간의 파워 리저브를 제공하며 7개의 배럴을 하나의 축에 수직으로 배치해 10.9mm의 얇은 두께를 구현한 위블로의 ‘빅뱅 MP-11 워터 블루 사파이어’는 매뉴팩처가 사상 최초로 제작한 워터 블루 사파이어 케이스에 같은 색의 스트랩으로 청량한 느낌을 더한 결과물. 6시 방향에 소형 초침 카운터만을 두어 심플함을 강조한 롤렉스의 ‘퍼페츄얼 1908’, 상징적인 더블 문 디스플레이를 통해 북반구와 남반구에서 관측되는 달의 위상 변화를 세계 어디에서든 알 수 있도록 한 IWC의 ‘포르투기저 퍼페추얼 캘린더 44’ 역시 아이스블루 다이얼을 자랑한다. 반면 케이스와 브레이슬릿, 크라운, 베젤에 이르기까지 시계 전체를 티타늄 소재로 구성한 바쉐론 콘스탄틴의 ‘오버시즈 투르비용’, 가장 오래된 국제 스포츠 트로피인 아메리카컵 레이스를 기리며 이탈리아 요트 팀인 루나 로사 프라다 피렐리(LunaRossaPradaPirelli) 팀과 팀의 공식 후원사인 파네라이가 손잡고 만든 ‘섭머저블 GMT 루나 소라 티타니오 PAM01507’, 해발 4810m인 몽블랑산의 고도를 수심 4810m의 바다로 연결 지으며 심해의 얼음이 지닌 색조를 다이얼에 고스란히 담은 몽블랑의 ‘아이스드 씨 제로 옥시전 딥 4810’, 크라운에 카보숑 컷의 블루 스피넬을 세팅한 튜더의 ‘클레어 드 로즈’는 한층 짙은 블루 다이얼을 적용하며 섬세한 블루의 레이어를 시계 세계의 한가운데로 불러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