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팝 최전선에서 각자만의 영역을 넓히고 있는, 2025년이 더욱 기대되는 영 크리에이터 5인.

XG ‘GIRL GVNG’ MV

3D 제너럴리스트 정연재 상업 광고부터 예술, 뮤직비디오에 이르기까지 분야에 구애받지 않고 자신만의 색으로 창작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아이브와 미야오, XG 등 새로운 시도로 주목받는 K-팝 그룹의 비주얼 작업을 맡아 했다.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3D 제너럴리스트 정연재입니다. 비아연(Viia Yeon)으로 활동하고 있어요.

3D 제너럴리스트가 무엇인가요?
제너럴리스트(Generalist)는 제작 과정에 있어 여러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있다는 걸 뜻해요. 형태를 만드는 3D 모델링부터 애니메이션, 룩뎁 등 전반적인 3D작업을 다루죠. 어려워하는 사람들에게는 컴퓨터 노동자라고 소개해요. 바로 이해하시더라고요.(웃음)

이전에 패션 디자이너로 브랜드를 운영했다고요.
제 전공은 패션 디자인이에요. 3D 분야를 처음 접한 건 ‘아이리스 반 헤르펜(Iris Van Herpen)’의 3D 프린팅 작품을 보았을 때였어요. 보자마자 ‘이거 내가 하고 싶었던 거였는데!’라는 생각이 들었죠. 작품 사진을 들고 무작정 컴퓨터 학원을 찾아갔어요. 하지만 취업 포트폴리오 중심인 한국 학원 커리큘럼에서 몇 개월간 배웠던 건 유기적인 형태의 3D 의상이 아닌, 야구방망이로 공을 치는 뽀로로였어요. 그때 느꼈어요.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패션에 접목하는 3D를 배우기 어렵구나’. 그렇게 제 브랜드에 전념했는데, 문득 이런 고민이 들더라고요. ‘30년 뒤에도 이 일을 하고 있을까?’

그 고민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실 수 있을까요?
브랜드를 운영하는 디자이너에게 창작만큼 중요한 게 있다는 걸 배웠거든요. 적은 자본으로 최대한의 마진을 남겨야 한다는 것. 그러다 깨달았어요. ‘나는 사업보다는 내가 가진 시선으로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데에 희열을 느끼는 사람이구나’ 하고요. 이후 고민을 정말 많이 했어요. 중요한 건 ‘30년 뒤에도 꾸준히 할 수 있는, 심장이 뛰는 일’이었거든요. 그 시기에 야구방망이로 공을 치는 뽀로로가 떠올랐어요. 이 기술이면 내가 구현하고자 하는 걸 만들어 낼 수 있겠다고 생각했거든요.

전향하자마자 여러 브랜드나 패션 매거진과의 협업을 이어갔어요.
물론 바로 일을 시작하지는 못했어요. 완전히 새로운 분야의 기술을 터득할 시간이 필요했으니까요. 학원을 통한 게 아닌 독학으로 익혀야 했기 때문에 말 그대로 동굴로 들어갔어요. 긴 시간이 지나고 밖으로 나왔을 때 고맙게도 주변 친구들이 많은 도움을 주었고요. 처음에는 저라는 사람을 믿고, 그 다음에는 실력을 보고 여러 브랜드와 연결해 주었죠. 이후 2022년에 발매된 수지의 디지털 싱글 <Satellite> 앨범 재킷 디자인이 K-팝 업계에서의 첫 작업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패션 업계와 비교했을 때 K-팝만의 특징이 있을까요?
일단 둘 다 문화를 만들어 낸다는 점에서는 같은 선상에 있다고 생각해요. 비교를 하자면 패션 업계에서 브랜드와 디자이너는 트렌드를 주도하는 데 비해, K-팝은 팬들과의 ‘양방향 소통’을 더욱 강조하는 거 같고요. 또 음악, 영상, 퍼포먼스 등 다양한 영역에서 더 과감하고 다채로운 시도들이 이루어지고 있어요.

K-팝이 인기 있는 큰 이유 중 하나가 ‘비주얼’인데요. 올해는 특히 기술적인 면에서 주목할 부분이 많아요. 대부분의 K-팝 뮤직비디오나 앨범 재킷에 새로운 기술(AI 등)들을 사용하고 있는데, 이러한 흐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AI 활용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어요. 저는 AI를 퍼스트 어시스턴트(First Assistant)라고 보거든요. 중요한 건 AI를 사용했는지가 아니라, 그것을 활용하는 사용자의 가치관이라 생각해요. ‘비주얼’이란 말 그대로 색채와 형태의 조합을 통해 시각적 정보를 전달하는 거예요. AI를 통해 사용자의 감각과 아이디어를 더욱 확장할 수 있다면 그것만큼 이상적인 도구가 또 있을까요? 창작 과정에서 우리가 책이나 잡지, 인스타그램 등에서 리서치하며 기획을 확장해 나가듯, AI도 원하는 영역에서 적절히 활용하면 더 창의적인 결과물에 도달하는 데 도움을 준다고 생각해요.

‘미야오’의 데뷔를 알린 ‘EYES OF MEOVV’ 영상을 작업했어요. 멤버들이 눈을 뜨는 짧은 영상임에도 불구하고 강렬한 인상을 남겼죠. 어떻게 보면 다섯 개의 동일한 영상을 작업하는 거나 다름없잖아요. 영상을 제작할 때 신경 쓴 부분이 있을까요?
멤버들의 눈매가 모두 달랐기 때문에 일관되게 보이도록 노력했어요. 사람마다 눈을 뜨는 속도나 동공의 크기, 심지어 눈을 뜰 때 고개가 움직이는 방향이나 눈에 드리워지는 그림자까지 모두 다르거든요. 그래서 멤버들의 영상이 동시에 놓였을 때 하나의 팀이라는 통일감을 주고 싶었죠. 차이점이라고 한다면 동공 안에 우주를 담아 그 속의 오로라에 미세한 변주를 준 정도? 작업자인 저만 알아볼 수 있을 거예요.(웃음)

XG 2nd Mini Album [AWE] HINATA

작년 11월에 발매한 XG의 <AWE> 앨범에서는 여러 크리처를 만들었는데요. 수도 많고 작업 양도 방대해 보였는데, 과정은 어땠나요?
사전 미팅 기간이 길었어요. 뮤직비디오를 총괄한 조기석 감독님은 그리고자 하는 그림이 명확했고, 특히 멤버별 크리처 콘셉트가 정해져 있었거든요. 가장 먼저 논의한 부분은 타임라인 내에 제작이 가능한가에 대한 것들이었죠. 각 멤버마다 크리처가 필요했고, AI를 활용하는 것이 아닌 모든 작업을 손으로 직접 만들어야 했으니까요. 여러 차례 사전 미팅과 스케치를 통해 아이디어를 시각적으로 정리했고, 그 내용을 바탕으로 촬영에 들어갔어요. 촬영 후에는 모델에 맞춰 합성도 진행해야 했는데, 모든 작업을 10일 내에 완료해야 하는 것이 가장 큰 과제였죠. 이 모든 게 가능했던 이유는 철저한 사전 기획과 결과물에 대한 세밀한 조율 과정 덕분이었다고 생각해요.

컴퓨터를 활용하는 창작자 모두가 아티스트와 같은 면모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과거에는 표현하는 방식이 종이 위에 선을 긋는 거였다면, 지금은 그 도구가 컴퓨터로 바뀌었을 뿐이라고요.
결국 우리 모두는 ‘좋아하는 것’, ‘내 눈에 아름답게 보이는 것’, 혹은 취향이 없더라도 ‘내가 잘 하는 것’을 표현하며 살아간다고 생각해요. 집중하는 대상에 따라 분야가 나뉠 뿐, 본질적으로 모두 ‘표현’의 한 형태에요. 비단 예술 문화 업계에 국한된 이야기도 아니고요. 수학자들 역시 예술가와 다름없다고 느끼거든요. 각자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끊임없이 탐구하는 건 너무나 아름다운 일이기도 하고요.

3D 아티스트로서, 또 한 사람으로서 2025년도에 이루고자 하는 목표가 있다면요?
직업적으로 어떤 길을 걷게 될지는 아직 모르겠어요. 현재 저는 제너럴리스트로 활동하고 있고, 앞으로도 3D라는 분야는 놓지 않을 생각이에요. 다만, 여전히 하고 싶은 게 많아요. 3D를 배우게 된 게 ‘표현’의 이유였던 것처럼요. 그래서 현재 그림도 그리고, 미디어아트도 배우고, 저의 첫 쇼트 필름 제작도 진행하면서 그 표현들에 집중하고 있어요. 올해 안에는 이러한 저의 작업들을 제 눈으로 확인하고 싶고요. ‘내가 좋아하는’, ‘나의 작업’을 만들어내는 게 가장 큰 목표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