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랄리 파르자 감독이 투지로 빚어낸 <서브스턴스>의 아름답고도 파격적인 장면들 위로, 작곡가 라퍼티(Raffertie)가 펼쳐낸 테크노 사운드.
<서브스턴스>가 개봉 2개월만에 국내 40만 관객 돌파를 앞두고 있다. ‘끝인가’ 싶을 때 더욱 파국으로 치닫는 전개, 스탠릭 큐브릭의 고전 영화가 그랬듯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불안과 공포를 자아내는 장면 연출, VFX 없이 손수 구현해낸 특수분장까지. 140분에 달하는 러닝타임 내내 스크린에서 한 시도 눈을 뗄 수 없는 이유야 많지만, 그 가운데 서사와 절묘하게 어우러지며 몰입감을 높인 사운드트랙의 영향력 역시 주목할 만하다. <서브스턴스>의 음악 전반을 도맡은 프로듀서 라퍼티가 전자음악을 재료로 영화에 설득력을 더해간 작업 과정과 영화 속 음악을 소개한다.
라퍼티(Raffertie)와 코랄리 파르자, 두 창작자의 협업
<서브스턴스> 전반에는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전자음악이 다채롭게 활용됐다. 일정한 템포로 반복되는 전자음에 깊은 앰비언트 배음이 섞이고, 고전 클래식 영화를 떠올리게 하는 현악기 오케스트라의 선율까지 더해진다. 영화의 사운드트랙 전반을 책임진 이는 영국 기반의 작곡가 겸 프로듀서 ‘벤자민 스테판스키’. 활동명은 라퍼티(Raffertie)다. 클래식을 전공했지만 전자 음악 신에서 DJ로 명성을 얻었고, 이후 영화 <존 윅>의 스핀오프 시리즈 <컨티넨털: 존 윅 세계 속 세계>, <슈츠> 등을 비롯해 10여년 넘게 다양한 영화와 시리즈에서 음악 작업을 도맡았다.
코랄리 파르자 감독은 칸 영화제 출품을 코앞에 앞둔 시점 라퍼티에게 제작을 의뢰했고, 라퍼티는 감독과 데모 파일을 주고받은 지 단 2개월만에 이 앨범을 완성했다. 사운드트랙이 이토록 순조롭게 형태를 갖춰나갈 수 있었던 건 작품에 대한 파르자 감독의 굳은 확신 덕이었다. 스토리보드와 실제로 구현된 장면 사이에 큰 차이가 없을 정도로 기획 단계에서부터 장면 하나하나에, 나아가 자신이 만드는 영화 자체에 대한 확신이 있었던 감독은 사운드에 있어서도 확실한 청사진을 가지고 있었다. 제작 비하인드에 따르면 파르자 감독은 처음부터 일렉트로닉 요소가 강하게 들어간 음악을 원했고, 영화음악과 전자음악을 두루 경험한 라퍼티는 이를 구현할 수 있는 적임자였다.
엘리자베스 vs. 수
두 창작자가 작업 초기 단계에서 공유한 <서브스턴스>의 음악적 방향성은 엘리자베스와 수라는 분열된 두 자아의 존재감을 대조적으로 표현하는 것이었다. 극중 엘리자베스는 50세에 접어들면서 아카데미 수상이라는 젊은 날의 영예를 뒤로 하고 할리우드의 세계 바깥으로 점차 밀려나지만, 대중의 사랑과 관심을 여전히 욕망하는 인물이다.
라퍼티는 이 점에 주목해 엘리자베스의 음악적 테마를 ‘할리우드 산업에 대한 향수’로 설정했다. 고전 영화에서 나올 법한 웅장한 사운드를 적극 활용하고, 실제 작곡 과정에서 거장 감독 버나드 허먼의 <시민 케인> <현기증> 등을 비롯한 고전 영화의 사운드 트랙으로부터 영감을 얻었다.
반면 수의 경우 보다 현대적이고 과장된, 클럽 음악에 가까운 테크노 사운드를 택해 캐릭터가 지닌 관능적이면서도 어두운 분위기에 개연성을 더했다. 네온 빛 혈청을 몸에 주입하는 순간 울려퍼지는 영화의 시그니처 사운드 ‘The Substance’가 그 예다.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암시하는 듯한, 경보에 가까운 이 전자음은 영화를 보고 난 뒤에도 얼마간 귓가를 맴돈다. 파르자 감독이 구현한 장면들만큼이나 관객의 사랑을 한몸에 받고 있는, 총 28개의 트랙으로 구성된 사운드트랙 <The Substance>를 지금 바로 만나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