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말하고 싶은 날엔 유진목의 시집 <연애의 책>을 읽는다. 달달하고 농밀한 버번 위스키를 마시며.
“삶은 사랑은 낡아진 속옷 모양”(‘부재중 통화’)
사랑이 과연 아름답기만 할까. <연애의 책>에 담긴 유진목의 시는 고통스러울 정도로 다면적인 사랑을 낱낱이 들여다본다. “어제는 사랑이 처음 배운 단어인 것처럼 고백이 하고 싶었어요”(‘어제’) 라며 누군가를 좋아하는 순수한 마음을 표하다가도 “너를 버릴 때도 이렇게 뜨거우면 / 너가 그대로 다른 땅에 스미면 // 아직도 깊은 밤에 혼자 나와 / 너를 안고 둥글게 울었다”(동지’) 라고 말하며 이별의 회한을 그려낸다. “이불 한 채 / 방 한 칸 // 갓 지은 창문에 김이 서리도록 사랑하는 일”(‘잠복’)이라는 시구처럼 현실적이고 애틋한 사랑도 그 안에 있다. 마치 연애의 실체를 손바닥 위에 올려두고 직시하듯, 환희와 상처가 동시에 존재하는 사랑의 자취와 행위를 감각적으로 그려낸다.
오늘도 한참을 머뭇거리다 당신 옆에 쉼표를 놓아두었습니다 나는 다음 칸에서 당신을 기다립니다 쉼표처럼 웅크려 앉는 당신 그보다 먼저는 아주 작고 동그란 점에서 시작되었을 당신 그리하여 이 모든 것이 시작되는 문장을 생각합니다 당신이 있고 쉼표가 있고 그 옆에 내가 있는 문장 나와 당신 말고는 누구도 쓴 적이 없는 문장을 더는 읽을 수 없는 곳에서 나는 깜빡이고 있습니다 거기서 한참 아득해져 있나요 맨 처음 걸음마를 떼는 아이처럼 당신,
<연애의 책>, ‘당신, 이라는 문장’
“나는 너를 사랑하고 있구나 지병처럼”(‘잠복’)
이별은 불가항적이기에 사랑은 그리움을 동반한다. 서로 다른 몸을 가진 두 사람이 몸을 섞을 때, 그 촉감에서 비롯되는 타자성은 결코 나는 당신이, 당신은 내가 될 수 없다는 슬픈 진리를 꺼내놓기도 한다. “빈방에서 사랑을 했는데 / 당신은 어느덧 살림이 되”(‘접몽’)”고, “당신은 마침표와 동시에 다시 시작되기도 하고 언제는 아주 끝난 것만 같다 두렵”다. “아무리 닦아도 지워지지 않고 마르고 닳도록 닦을 게 생겨나는 사람”(‘뒤에’)을 생각하며, “나와 당신이 하나의 문장이었으면”(‘당신, 이라는 문장’) 하고 바란다. 거스를 수 없는 이별의 감각, 그로 인해 불거지는 짙은 그리움의 정서를 감각적으로 묘사한다.
“어쩌다 그렇게 독한 병을 서로에게 기울였는지”(‘부재중 통화’)

결국 사라질 것이고 붙잡을 수 없음을 알면서도 우리는 기꺼이 사랑에 몸을 던진다. 빛과 어둠이 공존하는, 그럼에도 사랑하기를 멈추지 않는 유진목의 시 세계를 탐닉하며 버번 위스키를 마시고 싶다. 강렬하고 스파이시한 알코올 향이 입안을 휘감고, 이후 바닐라와 캐러멜 같은 달큰한 여운을 전하니까. 그렇게 위스키가 목구멍을 타고 흘러내릴 때의 뜨거움을 느끼다가도, 결국 다시 잔을 들게 하는 것이 사랑과 닮았으니 말이다. 사랑을 노래하는 발렌타인데이이니, 부드러운 생초콜릿과 잘 어울리는 발베니 12년 더블우드가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