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애쓰지 않고 자연스럽게, 이처럼 아이린다운.

달뜬 분위기에서 조심스레 비밀을 공유하는 시간. 무지개처럼 다채롭게 빛나던 소녀가 어느새 웨딩드레스를 입고 카메라 앞에 섰다. 여전히 잘 웃고 한결같이 솔직하지만, 시간이 만든 단단한 결이 비치는 아이린의 시간. 모두의 시선을 사로잡던 그는 이제 사랑하는 사람의 시선 안에서 가장 아름답게 빛나고 있다.
두 분의 첫 만남이 궁금해요. 러브 스토리를 들려줄 수 있나요?
서로 얼굴과 이름만 아는 정도였어요. 친구의 친구의 친구 정도?(웃음) 친구가 함께 프로젝트를 하면 좋을 것 같다며 소개했어요. 처음 만난 날, 프로젝트 이야기는 안 하고 자기 이야기만 계속 하더라고요. 심지어 와인도 한 병 챙겨왔어요. 미팅할 때 와인을 가져오는 사람이 있나요?(웃음) 반려견이라는 관심사가 같아서 이야기가 잘 통하고 재미있었어요. 그 뒤로 그렇게 친구처럼 편하게 지내다 자연스럽게 연인으로 발전했는데, 정작 그 프로젝트는 시작도 못 했죠. 그 대신 평생을 함께할 영원한 프로젝트를 하게 되었네요.(웃음)
그 프로젝트의 시작점에 <마리끌레르 웨딩> 화보를 두어도 될까요? 느낌이 어때요?
아주 오래전에 웨딩 화보를 한 번 촬영한 적이 있어요. 그때와는 또 다른 아주 뜻깊은 경험이에요. 모델로서 커플 화보도 많이 촬영했는데, 사실 많이 긴장했든요. 그런데 오늘은 오히려 안심이 되고 편안해요. 지난해 4월에 오데마 피게의 초청으로 밀라노에 갔는데, 그때 예비 신랑과 함께 갔거든요. 그때를 추억하는 겸 예비 신랑과 함께 촬영하게 되어 더욱 특별해요. 이상하게 예비 신랑과 함께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져요. 패션위크나 다른 출장으로 정신없이 바쁘게 다니다가도 전화 한 통화면 곤두섰던 신경이 차분히 가라앉아요. 제가 긍정적이고 덤덤한 편이지만, 그런 날은 긴장이 많이 되잖아요.
그래서 결혼을 결심하게 된 걸까요? ‘아, 이사람이다’ 하고요.
“결혼할 사람은 딱 알아본다는데, 어땠니?” 하는 질문을 정말 많은 분들이 하셨어요. 그런데 솔직히 말하면 딱 한순간만 떠올릴 수는 없어요. 큰 사건이 있었던 게 아니라 사소한 순간들이 쌓이면서 마음이 확신으로 변했어요. 대화할 때 느껴지는 배려, 다른 사람을 대하는 태도, 가족과의 관계, 그리고 함께 여행하면서 맞춰지는 템포까지. 오래 같이 있어도 불편하지 않고, 아무 말 없는 시간마저도 편안한 사람이에요.
불편하거나 거슬리는 것이 없는.
그렇죠. 저는 겉으로 보기에 화려한 직업을 가지고 있고, 살아온 환경이나 가정 분위기, 부모님들의 스타일도 저희 둘은 거의 정반대예요. 그럼에도 저희는 참 비슷하고 편안해요. 물론 성격도 정반대이긴 하네요. 우리가 왜 이렇게 편안한 거지?(웃음) 예비 신랑은 섬세한 편이고, 저는 오히려 감정 기복이 별로 없는 편이에요. 성격은 정반대지만 서로가 아주 자연스럽게 느껴지더라고요. 삶을 바라보는 관점이나 방향이 같아서 그런 것 같아요. 옳은 것과 그른 것을 판단하는 기준이 같아요. 그리고 ‘어떻게 살아가겠다’ 하고 미래를 대하는 태도가 비슷해요.
그럼 앞으로 두 사람은 어떻게 미래를 대하게 될까요?
일단 저랑 예비 남편 둘 다 성향상 ‘꼭 정말, 되게 많이 행복하게 살아야 돼’ 하는 스타일이 아니에요. 그냥 그 정도껏. 우리가 아는 그 정도의 선에서 과하게 행동하지 말고 넘치지 않게. 그 선 안에서 행복감을 느끼면 된다는 주의예요. 그게 두 사람이 딱 맞아떨어진 거죠.
어떻게 보면 정말 운이 좋은 거 아닌가요? 자연스럽게 만났는데, 가치관까지 잘 맞아. 그런데 강아지들 사이는 어때요? 이제 곧 한 식구가 될 텐데요.
오빠도 강아지를 키우고, 저도 현재 두 마리를 키우고 있어요. 저희 첫째가 나이가 좀 있는데, 그래서인지 처음에는 텃세를 좀 부렸어요. 오빠 강아지가 정말 착하거든요. 주방에 가려고 강아지가 일어서면 막 짖기도 하고요. 이제는 큰 문제없이 잘 지내고 있어요.
결혼식 준비 기간이 결혼 생활 연습이라는 말도 있잖아요. 강아지들도 연습이 끝나가네요.
맞아요. 참, 저희가 결혼식을 준비하면서 깨달은 게 있어요. 스트레스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지만, 사실 이건 제 인생에서 가장 재미있는 이벤트잖아요. 너무 완벽하려고 하기보다는 이 순간을 즐기려고 해요.

꿈꿔오던 결혼식이 있나요? 디즈니 이야기를 좋아했을 것 같아요.
어릴 때는 신데렐라나 잠자는 숲속의 공주에 나오는 것 같은 결혼식을 꿈꿨어요. 커다란 성 앞에 호박 마차를 타고 내리는 상상도 해보고요. 지금은 트렌드에 휩쓸리지 않고,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수 있는 ‘타임리스한’ 결혼식을 하고 싶어요. 10년, 20년 후에 봐도 촌스럽지 않고, 여전히 아름다울 수 있는 결혼식이요. 물론 1980년대 결혼식 사진을 지금 보면 드레스도 크고 헤어도 과하잖아요. 그래서 오히려 레트로한 매력이 느껴져 멋지기도 하지만, 저는 고전적인 웨딩드레스와 헤어, 메이크업이 좋아요. 아마 이 화보 같지 않을까요?
예비 신부의 스트레스를 아주 많이 높여주는 질문인 거 아는데요.(웃음) 그런 결혼식이 준비되고 있나요?
우선 어느 정도는 그 로망을 실현하려고 노력 중이에요. 올해 5월 서울에서 야외 웨딩으로 진행하려고 하는데, 한국적 요소와 서양 스타일을 조화롭게 섞어보려고요. 해외에 있는 친구들을 많이 초대할 계획이기도 하고요. 그 친구들에게는 데스티네이션 웨딩 같은 느낌이라 최대한 멋진 이벤트처럼 만들려고 하고 있어요. 결혼식 전날에는 남산이 잘 보이는 곳에서 칵테일파티를 하고, 당일에 폐백도 하려고 해요. 애프터파티는 디스코테크 같은 느낌으로 하고요. 외국에서 친구들이 많이 오니까 한국 전통 혼례도 해보고, 서양 스타일로 파티도 하는 거죠.
하루를 위한 준비도 어려운데 2박 3일이군요. 아이린도 결혼식을 준비하면서 소소한 스트레스를 받나요? 많은 예비 신부가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잖아요.
당연하죠! 잠이 오지 않아요.(웃음) 핀터레스트를 보면서 끝없는 블랙홀에 빠지기도 하고, 하객 리스트 정리하면서 머릿속이 복잡해지기도 하죠. 아직 드레스와 부케도 못 정했어요. 청첩장 글씨의 크기나 자간을 결정하는 걸로도 가끔 예비 신랑에게 서운함을 느끼는, 남들과 똑같은 예비 신부입니다. 아, 예비 신랑의 턱시도는 골랐어요. ‘오빠 이거 빨리 골라야 해!’ 하면서요. 참 결혼식에 아버지들도 턱시도를 입으시기로 했어요. 그리고 은방울꽃 부케가 그렇게 비싸다면서요?(웃음) 준비하면서 이리저리 찾아보다가 알게 됐는데, 그전에는 전혀 몰랐어요. 저는 은방울꽃보다 아주 심플한, 그런 부케를 하고 싶습니다.
상견례도 하셨겠어요. 어땠나요?
지난해 11월 1일에 상견례를 했어요. 저희 둘은 서로 본가를 자주 왕래했는데, 양가 부모님이 만난 건 처음이었죠. 주변에 상견례 팁에 대해서 많이 물어봤더니 분위기를 위해 약간의 술을 곁들이면 좋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예비 시아버지는 술을 전혀 안 드시고, 저희 아빠는 좋아하시는 편이에요. 그래서 선물로 받아 좋은 날 마시려고 뒀던 샴페인을 챙겨갔어요. 아끼는 샴페인이라고 하면 예비 시아버지도 좀 드시지 않을까 해서요. 한 잔 정도 마셔주셨고, 분위기는 다들 좋았죠. 분명히 다들 즐거웠는데 집에 가는 길에 제가 ‘오빠, 우리 와인 한 잔 더하자’ 하고 둘이 와인 마시러 갔죠. 긴장을 많이 했었나 봐요.
신혼여행은 어디로 갈 예정이에요? 꿈꾸던 곳이 있나요?
아프리카요! 신혼여행이 아니면 가기 어려운 곳이잖아요. 유럽은 출장으로 자주 가고, 미국에는 가족이 있고, 아시아는 그렇게 멀지 않으니 마음먹으면 언제든 갈 수 있는 곳인 것 같아서요. 아프리카 하면 주로 사파리, 정글, 사막 등을 떠올리지만 훌륭한 리조트도 많더라고요.
신혼집에 꼭 두고 싶은 물건도 있나요? 평생 가지고 있으면서 함께 나이 들고 싶다, 하는 그런 물건이요.
예비 신랑이 가구를 좋아해요. 데니시 스타일 가구를 좋아해서 얼마 전에도 함께 가구를 둘러보러 다녀오기도 했어요. 저는 컬러풀한 그런 느낌도 좋아해서 둘의 의견을 맞춰본 게 멤피스 스타일이에요. 데니시 가구들 사이에 멤피스 스타일 조명, 그 정도요. 더 솔직히 말하자면 사실 딱 하나만 있으면 돼요, 저는. 얼마 전에 출장을 갔는데, 침대가 정말 편하더라고요. 제가 막 침대를 들추며 이게 어떤 브랜드지, 하면서 뒤집어봤어요. 그… 말총으로 만드는 침대 있잖아요. 정말, 너무 편했어요. 그것만 있으면 될 것 같아요.
결혼 후 두 사람이 꿈꾸는 가족은 어떤 모습인가요?
앞서 이야기했듯이, 욕심내지 않고 적당한 선에서 행복을 느끼면서 살고 싶어요. 특히 저희는 처음 만났을 때부터 결혼하면 어떤 모습으로 나이 들지, 아이를 어떻게 키울지, 이런 이야기를 많이 나눴어요. 꼭 그랬으면 좋겠다거나, 이런 방식으로 살겠다고 고집하는 건 아니지만, 정말 자연스럽게 이어진 이야기들이거든요. 그냥 그럴 것 같아요. 물론 아이들이 생기면 생각은 또 바뀌겠죠?
앞으로의 계획도 궁금해요.
결혼도 그렇고, 나이를 먹는 것도 그렇고. 아주 자연스럽게 인생의 타임라인을 즐기고 싶어요. 관심사도 자연스레 변하더라고요. 언제나 패션을 사랑하지만, 이제는 라이프스타일 자체에 더 관심이 가기도 해요. 제 라이프스타일에 맞춰 뷰티 & 웰니스 브랜드를 준비하고 있기도 하고요. 유튜브 채널을 쉰 지 1년 정도 되었는데, 유튜브로 웨딩을 공개할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