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어 버티고 싶을 때. 그런 날엔 김연지의 산문 <기대어 버티기>를 읽으며 무알코올 맥주를 마시기. 취기 없이 취한 채로 사랑하는 이들에게 영상 통화를 걸거나 안부 문자를 남기기. 그렇게 한 번 더 버텨보기.

“감정이 폭풍처럼 몰아치면 그냥 무너지자. 구조대가 가까이 있어. 그들은 내가 부르지 않아도 달려와 보수공사를 해줄 거야. 몇 번이고 다시 세워지는 오두막이야. 몇 번이고 허물어져도 괜찮아.”

누군가 용기 내어 자신의 고통을 말할 때, 그것은 결코 독백에 그치지 않는다. 내밀하게 꺼내둔 개인의 이야기 안에서 우리의 삶은 교차하기 마련이니까. 비슷한 혼란과 절망을 지나왔다는 사실은 서로를 깊게 이해할 수 있는 단초가 되어 큰 위로로 다가오기도 한다. 김연지 작가의 <기대어 버티기>에는 이처럼 글 너머의 따스한 연결을 가능케 하는, 우리의 고통을 대신 언어화 해주는 소중한 발화가 있다.

“아무도 서로의 아픔을 캐내지 않는다. 준비가 되었을 때 말하고, 모두가 귀담아듣는다.”

‘문학살롱 초고’를 운영하며 시와 산문을 쓰는 작가 김연지는 <기대어 버티기>를 통해 삶을 포기하려던 순간을 지나, 일상을 회복하던 과정을 그려냈다. 저자는 1부에서 연이은 자해와 자살 충동으로 보호병동에서 치료를 받았던 시기를 말한다. 서로의 아픔을 들쑤시지 않으며, 나는 흔들리고 있어도 당신은 무너지지 않기를 바라는, 주위를 세심히 살피는 환자들의 연대감을 그려낸다. 그리고 퇴원 이후의 삶을 말한다. 모든 것이 원점이 된 순간, 일상으로 돌아와 치유와 회복을 위해 애썼던 시간을 보여준다.

“완벽에 대한 환상을 무화시킨 건 한 사람의 헌신적인 사랑이 아니라 여러 사람이 나눠 진 사랑이었다.”

작가의 회복기에는 삶을 뒤바꾼 단 한 명의 위인이나 꿈만 같은 해피 엔딩이 존재하지 않는다. 손쉬운 희망이나 말뿐인 격언도 없다. 도리어 고통과 슬픔이 우리에게 끊임없이 닥쳐올 것임을 앎에도 다시 한번 미래를 기대해 보려는, 살기 위해 존재해야만 하는 믿음을 품어 보려는 가느다란 희망이 있다. 그리고 그것을 가능케 하는 것은 우정과 연대임을 말한다. 서로를 사랑하는 마음을 조금씩 떼어 나누는 시간 속에서 꾸준히 나를 용서하겠다는, 그 지난한 과정을 외면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적어낸다.

“나를 세워주는 사람들과 사람 아닌 것들에 반쯤 몸을 기대어서. 전하지 못했던 사랑을 되돌려주면서. 용서 후에 마주할 미래를 상상하면서.”

삶은 누구에게나 무겁다. 끊임없이 반복되는 오늘, 잊을 만하면 생겨나는 일상의 문제, 기다렸냐는 듯 날아오는 고지서, 얽히고설킨 관계까지. 나와 비슷한 무게를 짊어지고 있을 당신에게 내가 기대도 괜찮을까, 자문하게 될 때면 머리를 맞댄 채 중심을 잡은 여러 개의 성냥개비를 떠올린다. “완벽에 대한 환상을 무화시킨 건 한 사람의 헌신적인 사랑이 아니라 여러 사람이 나눠 진 사랑이었다”는 김연지의 문장처럼, 우리가 서로에게 조금씩 기대어 버틴다면, 모두가 주변의 삶을 천천히 돌보기를 자처한다면, 이 무거움이 조금은 덜어지지 않을까 기대하며 말이다.

이미지 출처 : 클라우스탈러 코리아

<기대어 버티기>를 읽는 날만큼은 술로 정신을 흐리게 만들거나 스스로를 무너뜨리는 대신, 무알코올 맥주를 마시며 회복의 나날을 보내고 싶다. 그럼에도 클라우스탈러 논알콜 맥주를 마시면 맥주 본연의 맛도 느낄 수 있겠지. 술에 기대는 밤보단 당신에게 기대는 밤이 조금 더 포근할 거라 생각하며 책장을 넘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