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오바 이치코 내한 공연 ‘Luminescent Creatures World Tour’를 보고.

지난 2월 말, 다음 날 낮까지 마감해야 하는 원고를 눈앞에 두고 공연장으로 향하는 택시에 몸을 실었다. 회사에서 공연장까지 소요시간은 1시간 30분. 공연은 두 시간 가량 이어질 테니, 오늘은 꼼짝없이 밤을 새겠구나. 공연이 끝난 뒤 찾아올 긴 새벽을 떠올리자 이내 까마득해졌다. 무척 외롭고 긴 싸움이 되겠지…. 하지만 세 달 전부터 고대하던 공연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일본의 싱어송라이터 아오바 이치코가 한국을 찾았기 때문이다.
아오바 이치코의 음악은 매달 찾아오는 마감이라는 노동을 한층 더 신성한 무언가로 만들기 위한 에디터만의 조용한 의식이었다. 여전히 마감일이 다가오고 새벽이 찾아올 때면 어김없이 그의 음악을 찾는다. 깜빡이는 커서를 하염없이 바라보다가 세상에 모니터와 나, 단 둘만 남겨진 듯 사무치게 외로워질 때, <Windswept Adan> 앨범 전곡을 재생하면 잠시 어딘가로 떠나 있는 듯한 착각 속에 잠긴다. 꿈과 현실의 경계를 흐릿하게 만드는, 유리알처럼 맑고 투명한 아오바의 음성이 하루 치의 노고를 씻겨 내려준다. 그렇게 새벽의 모니터 앞에서 앨범 전곡을 듣고 나면, 한결 깨끗해진 마음으로 내일을 맞을 수 있었다. 그의 음악을 들으며 잠들던 숱한 날들, 활자의 무게에 짓눌린 듯한 감각에서 벗어나 가벼운 마음으로 아침을 맞던 날들이 있었다. 그런 그의 음악을 생생한 현장음으로 만날 수 있는 자리라니. 후환이 두려워도 직접 가서 만나야만 하는 장면이었다.

무대 구성은 단출했다. 목재 의자와 키보드, 클래식 기타, 시간의 흔적이 묻어나는 업라이트 피아노, 낮은 조도로 빛나는 두 개의 전등. 그의 음악을 구성하는 세 개의 주요한 도구만이 무대를 채웠다. 이내 조명이 어두워지고 사위가 고요해진다. 안녕하세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또박또박 한국말로 인사를 건넨 뒤 기타를 집어든 그가 ‘Space Orphans’의 도입부를 천천히 연주한다. 입으로 내는 바람 소리와 새소리, 허공을 천천히 가로지르는 손짓. 일순간 시공간의 흐름이 바뀐다. 눈을 감고 그가 천천히 쌓아 올리는 겹겹의 음들을 하나씩 귀에 담았다. 어떤 연주는 관객을 듣는 즉시 다른 차원으로 이동시킨다는 걸 그의 연주 첫 소절을 들으며 깨달았다. 작가 이훤이 ‘칼’을 부르는 뮤지션 김사월의 무대 앞에서 느꼈다던 그 감각이 저절로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공연장에서는 눈 감고 듣기로 했는데, 특이한 경험을 했어. 공연장을 완전히 빠져나가서 아무도 모르는 데 내가 앉아 있더라. 오 분 동안 시간 감각이랑 공간 감각을 완전히 잃어버렸다.’ (‘고상하고 천박하게’, 74p) 정말 그랬다. ‘Sagu Palm’s Song’, ‘Asleep Among Endives’로 이어지는 노래와 연주를 듣는 내내, 한 외딴 섬을 둘러싸고 있는 깊은 바다에 잠겨 있는 듯한, 몸을 감싸는 부드러운 물살을 가로지르며 유영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오로지 한 사람의 목소리와 숨소리, 그의 손끝에서 태어난 기타와 피아노 선율만이 공간을 가득 채웠다.
아오바 이치코의 음악에서 광활한 대지와 바다의 풍경을 떠올리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자연을 생각하는 마음은 언제나 그의 음악을 관통하는 주제이므로. 가상의 남쪽 섬을 배경으로 바다와 생명, 고독과 연결에 대해 이야기한 정규 7집 <Windswept Adan>을 만들던 무렵, 아오바 이치코는 오키나와를 비롯한 여러 섬 일대를 탐험하며 그곳에서 만난 자연의 소리를 트랙 가득 담아냈다. 조개 껍질이 부딪치는 소리, 파도의 리듬, 섬 주민들과 나누던 이야기들. 호흡 장비 없이 바닷속 깊이 잠수하며 관찰한 바닷속 풍경과 해양 생물의 모습을 비롯해 그가 온몸으로 보고 느낀 바다에 대한 경험이 앨범에 고스란히 담겼다.

공연 후반부에 이르러 아오바는 당시 공개를 하루 앞두고 있던 신보 <Luminescent Creatures>의 트랙 일부를 들려줬다. 지난 7집의 서사적 흐름을 이어간 이번 앨범에서 그가 주목한 것은 바다에 서식하는, 스스로 빛을 내는 생명체다. 2019년, 7집을 작업하던 당시 포경 산업이 이루어지는 일본의 항구 도시 이시노마키를 찾은 아오바는 매일같이 고래가 해체되는 장면을 목격한다. 살아 있는 고래를 만나기 위해 일본의 남쪽 섬으로 떠난 그는 어미 고래들이 새끼를 기르는 바다 한 가운데서 다이빙을 하기 시작했고, 고래를 찾지는 못 했지만 어둑한 심해에서 스스로 빛을 내는 생명체들을 마주한다. 다른 개체에게 자신의 존재를 알리기 위해, ‘사랑한다’는 신호를 보내기 위해, ‘사랑 받고 싶다’는 의도를 전하기 위해 스스로 빛을 내는 방식을 택하며 진화해 온 심해 생명체의 모습에서 아오바는 인간 본연의 모습을 겹쳐 본다. 자신에게 곁을 내어주는 타인이란 존재와, 자연과, 나아가 세상과 연결되는 순간마다 우리 안에도 저마다 작은 불씨가 인다고, 그는 생각했다. 스스로 반짝이는 플랑크톤처럼 인간 역시 자기 안에 있는 고질적인 외로움을 깨닫고 서로가 품은 빛을 주고받으며 긴 시간 소통해왔다는 것. 이번 앨범에는 이처럼 어둠 속에서 빛을 내며 서로를 찾는 다양한 생명의 모습이 담겼다.

준비한 곡들을 모두 마친 뒤, 그가 앰프에 연결된 기타 라인을 끊고 무대 앞으로 걸어 나왔다. 쪼그려 앉아 관객과 눈높이를 맞춘 뒤에, 마지막 곡인 ‘축하하는 노래 おめでとうの唄(Omedetou no Uta)’를 불러주었다. 그의 행동 하나하나를 따라가며 분주하게 움직이던 스마트폰 렌즈들이 일순간 객석에서 모습을 감췄다. 눈을 감고, 귀를 기울여 들어 달라는 정중한 요청이었기에. ‘축하해 / 네가 태어난 날 / 처음 뵙겠습니다 / 많은 노래들을 불러들여 / 부디 건강한 날들을 / 부디 꿈이 넘쳐나는 날들을’. 음악을 만든다는 건 곧 타인에게 말을 건네는 일이자 과거와 미래를 연결하는 일이라고, 우리는 음악 안에서 비로소 서로의 존재를 인식할 수 있다고 이야기해온 아오바의 음악이 지니는 힘을 이 순간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두 시간 가까이 그가 품은 빛이 형형히 빛나는 것을 보았고, 그의 말처럼 내 안에도 작은 불씨가 일었다. 사랑스러운 우리의 정령, 그의 음악 안에 되도록 오래 머물고 싶다고 생각한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