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록은 남성의 전유물’이라는 벽을 몸소 부숴온 이들. 돌아온 ‘밴드 붐’ 앞에서 한영애, 김윤아, 황소윤이 한자리에 모였다. 증폭된 기타 리프, 폭발적인 드럼의 굉음 위로 이들의 목소리가 울려 퍼질 때, 우리는 하나가 된다. 세상과의 타협을 거부하고, 자신에게 안주하지 않으며 내면의 불씨를 음악으로 폭발시켜온 여성들. 세대의 경계를 뛰어넘은 이들의 만남. 그 강렬한 파동.

한영애 블랙 블라우스와 스커트 모두 Comme des Garçons. 황소윤 블레이저와 티셔츠, 팬츠 모두 Balenciaga, 안경 Hakusan.
한영애

‘조율’, ‘누구없소’, ‘코뿔소’ 등 전 국민이 사랑하는 명곡을 남긴 한영애라는 전설을 <마리끌레르>에 담아낼 수 있어 기쁘다. 오랜만의 화보 촬영이라고 들었다.
변신하는 걸 좋아해 어떤 모습이 될지 궁금하다.(웃음) 김윤아, 황소윤과 함께하며 무슨 일이 생길지 호기심도 생긴다. 오늘은 새로운 것을 얼마든지 수용할 마음이 있다.
기대된다.(웃음) 1970년대에 “신촌에 이상한 소리를 가진 아이가 나타났다”는 말을 들으며 음악을 시작했다. 정규 2집 <바라본다>에는 아티스트로서 한영애의 자의식이 온전히 담겨 있고, 이는 남성 중심적이던 당시의 대중음악계에서는 드문 일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한영애만의 고유한 음악을 만들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그저 내 안의 변화에 충실했을 뿐이다. 바깥에서 볼 때는 스타일이 어떻고, 무엇이 난관이었을지 이야기할 수 있겠지. 하지만 그때 내 속에는 커다란 불덩어리가 있었다. 그 불덩이의 정체를 아는 것이 너무나 절실했지. 이것이 대체 무엇인지, 내가 어떤 물건인지 알지 않고서는 죽을 것만 같았으니까.그러던 차에 내게 소리가 있었고, 그걸 드러낼 수 있었다는 게 나름의 이유일 것이다. 특정한 뮤지션에게 영향을 받거나 따라가야 한다는 생각은 전혀 없었다. 내 안의 에너지를 끄집어내기도 벅찼으니 말이다.
4인조 포크 그룹 해바라기로 활동하던 시절에 록 음악을 하고 싶다는 갈증이 컸다고 말한 바 있다. 당시 록의 어떤 지점에 매료되었나?
해바라기 활동은 네 멤버가 서로 다른 목소리로, 서로 다른 정서와 힘의 크기를 합쳐 하나로 드러내야 하는 일이었다. 쉽게 말하면 나를 4분의 1밖에 쓸 수 없는 거지. 그러던 차에 록 뮤지컬에서 섭외가 왔다. 일렉트로닉 악기로 연주하고 맨발로 춤추고 노래하며 소리 지르는 무대. 그게 그냥 나였
다.(웃음) 1970년대 말에 청년기를 보냈는데, 그때 록 음악이 세계적으로 붐이었다. 그러니 ‘아, 나의 이 뜨거운 불덩이는 록으로부터 시작해야 하는 건지도 몰라’ 싶었다. 그 뒤로 연극에 깊이 빠져들었고, 내 세상이구나 싶었다. 자유, 젊음, 열정… 록을 수사하는 모든 아름답고 멋있는 것이 모두 그 무대 위에 있었다.
한영애가 생각하는 록의 정체성이란 무엇일지도 궁금하다.
언어라는 건 한계가 있어 하나로 규정하긴 어려울 것이다. 몸소 살며 느끼는 수밖에 없지. 가장 먼저 느껴지는 건 증폭된 악기의 소리일 것이다. 일렉트릭 기타와 베이스, 커다란 드럼 소리, 때에 따라서는 보컬의 샤우팅까지. 그러고 나선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수사를 다 쓸 수 있지 않을까?(웃음)
광장에 나와 노래하며 음악을 매개로 사회를 향해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그거야 뭐, 록 하고 음악 하는 사람은 다 하는 거지.(웃음) 특정한 뜻을 가지고 사회참여에 나서거나 정치적 목소리를 내는 건 아니다. 음악은 그저 들어서 좋고, 마음에 감동을 주면 된다. 노랫말을 내뱉고 음악을 연주할 때, 어떤 마음과 정서로 듣는 이들을 대하며 음악의 날개 위에 탈 것인가, 그것만 중요하지 않을까? 음악을 대하는 태도, 가수로서 갖는 마음가짐. 이런 것을 자세히 들여다보려 애쓴다.
한영애가 음악 안에서 유지하려는 최소한의 태도는 무엇인가?
진실되자. 이건 최선을 다하는 것과는 조금 다르다. 이 말에는 여러 의미가 내포되어 있지만, 더 이상의 미사여구를 쓸 수는 없다. 왜냐하면 음악이라는 건 내 삶의 일부거든. 허투루 흘려보낼 수 없다.(웃음)

한영애 블랙 블라우스 Comme des Garçons.



‘손을 높이 들고 손뼉을 치면서 당당하게 부딪치자. 세상은 변할 테니까’ 라는 ‘샤키포’의 가사에서 볼 수 있듯 한영애의 음악 안에는 희망찬 세상을 꿈꾸는 바람도 담겨 있다. 음악이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을 거라고 믿나?
음악을 통해 세상이 변화할 거라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음악이 갖는 힘은 분명히 있다. 화합이나 조화, 이해와 존중, 그리고 모두를 감싸안는 포용. 이 모든 건 노래하고 연주하는 음악인의 몸에 배어 있는 것이기에, 듣는 이의 마음에도 전해질 거라고 믿는다.
故 김현식은 한영애를 두고 ‘‘가만히 있다가도 무대에 올라가면 광기가 나오는 가수”라고 말했다. 무대는 한영애에게 어떤 공간인가?
어나더월드. 또 다른 하나의 세상을 짓는 거거든. 그래서 당연히 일상과는 다르다. 친구들도 무대 위의 내 모습을 보면 “내가 아는 한영애 맞아?” 이랬으니까.(웃음) 이와 동시에 나를 비추는 거울이다. 지금 여기, 무대 위에서 내 모습이 어떤지, 과거와 달리 어떤 발전이 있는지, 나아가 미래에는 어떤 모습일지가 보인다. 앞으로 무엇을 시도해볼 수 있겠다는 비전도 찾아온다. 그걸 실현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지만.(웃음)
무대 위에서는 무엇을 느끼나?
‘나 살아 있어. 너 살아 있어? 우리 만났어. 우리 지금 여기만 생각하자.’ 이런 것들이지, 뭐.(웃음) 요샛말로 떼창이라고 하지 않나. 다 같이 노래를 부를 때, 그날 그 시간 그 장소에서 우리는 연대를 이룬다. 무대에서 마주하는 사랑스러운 장면이 있다. 그 순간이 영원할 수 있다면 내가 늙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환상에 사로잡힌 찰나일 뿐일 테지만 말이다.
1년 전, 한 인터뷰에서 무대에 대한 갈증이 있다고 말했다.
물론. 여전하다. 그 열망을 아직 내려놓지 못한 것 같다. 아직은 할 수 있는데. 조금 더 하고 싶은데…(웃음) 때론 아무도 없는 무대에서 나 혼자 즐기고 만족할 수 있다면 신선이 되는 건가 생각한다. 아직은 관객이 있어야 완성된다는 생각이 드니까. 조금 더 대중과 대화하고 싶고, 앞으로 나아가고 싶은데 시간이 지날수록 무대 아래의 비즈니스가 녹록지 않다.
삶의 일부가 된 음악 안팎에서 머물러온, 지난 50여 년의 시간을 돌아보면 어떤 생각이 드나?
이쯤 와서 생각하는 건… 나는 행복했다는 것.(웃음) 록이든 팝이든 클래식이든, 지구촌의 모든 음악들 그리고 우주의 소리까지… 나름대로 음악이라는 걸 이해할 수 있게 됐다. 그것 하나만으로도 행복했고, 앞으로도 죽을 때까지 행복하지 않을까 싶다.
음악 안에 머무는 동안 내 안에서 변치 않길 바라는 것이 있나?
모든 사람이 그렇겠지만 특히 음악가는 늘 새로워야 한다. 이전과는 다른 시선을 가진 채 새 마음으로 나아가야 한다. 나 역시 새로움에 대한 자가발전기를 쉬지 않고 돌릴 수 있는 동력을 잃지 않고 싶다. 부연하자면 ‘나는 습관처럼 노래하고 있진 않나’라는 질문과도 연결되겠지. 이건 굉장히 큰 숙제다. 한번 고민해봐라. 나는 무언가를 습관처럼 하고 있진 않은가.
여러 생각이 머리를 스친다. ‘여울목’의 노랫말을 빌려 마지막 질문을 하고 싶다. ‘은빛 찬란한 물결을 헤치고 나는 외로이 꿈을 찾는다.’ 한영애가 품은 다음 꿈은 무엇인가?
나는 꿈이 없었다. 무엇이 되려고 해본 적도 없다. 하지만 그 어나더 월드를, 무대라는 새로운 세상을 계속해서 만들며 살고 싶다. 그것이 필요한 사람들과 함께.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말하자면 조금 더 무대 위에 서 있는 것이라고 할까.(웃음)

김윤아 재킷과 셔츠, 스커트 모두 McQuee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