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록은 남성의 전유물’이라는 벽을 몸소 부숴온 이들. 돌아온 ‘밴드 붐’ 앞에서 한영애, 김윤아, 황소윤이 한자리에 모였다. 증폭된 기타 리프, 폭발적인 드럼의 굉음 위로 이들의 목소리가 울려 퍼질 때, 우리는 하나가 된다. 세상과의 타협을 거부하고, 자신에게 안주하지 않으며 내면의 불씨를 음악으로 폭발시켜온 여성들. 세대의 경계를 뛰어넘은 이들의 만남. 그 강렬한 파동.

한영애 블랙 블라우스와 스커트 모두 Comme des Garçons. 황소윤 블레이저와 티셔츠, 팬츠 모두 Balenciaga, 안경 Hakusan.
김윤아
한영애, 김윤아, 황소윤. 세 사람이 한자리에 모인 역사적인 순간에 함께해주어 고맙다. 이 기획에 참여하기로 결정한 이유는 무엇인가?
일단 세계 여성의 날을 기념하는 기획이니까.(웃음) 심지어 록 음악을 하는 여성 뮤지션을 모은다니, 이건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존경하는 한영애 선배님, 사랑하는 동료 소윤 씨와 함께하기도 하고.
자우림이 데뷔한 1990년대에는 주주클럽, 체리필터, 러브홀릭 등 여성 보컬을 앞세운 밴드가 여럿 등장했다. 그럼에도 프런트우먼을 향한 선입견은 존재했던 듯하다. 과거 한 방송에서 “남자들이 뒤에 있고 여자가 앞에 나와서 노래하면 생크림 케이크에 장식해놓은 체리 취급하는 경우가 많아요”라고 말했다.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여성은 존재하면서부터 자신의 능력으로 평가받는 것이 아니라, ‘여성’이라는 불투명한 유리를 하나 더 가지고 있다고 말이다. 여성 뮤지션의 음악이 제대로 이해받거나 편견 없이 받아들여지는 것도 비교적 어
렵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자면 자우림 데뷔 앨범에 수록된 다수의 곡을 내가 작사, 작곡했다. 그런데 당시 ‘저건 언론 플레이를 위해 김윤아가 했다고 기재만 한 것’이라는 말이 많았다.(웃음)
그 불투명한 유리 앞에서 어떻게 대처해왔나?
누가 이기나 보자 하고 생각했다.(웃음) ‘김윤아는 여자라 자우림을 박차고 나가서 혼자 잘 먹고 잘 살 것이다’라는 이야기도 파다했다. 방송국에서 촬영할 땐 카메라가 나를 인간이 아니라 몸으로 대한다는 감각도 자주 느꼈다. 그런데 사실 그때도 별 타격이 없었다. 그저 웃겼다. ‘뭐라는 거야…’ 싶고.(일동 웃음) 그 대신 그런 순간을 마주할 때마다 내가 증명하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봐라, 여기 여전히 자우림이 있지 않나. 내 능력은 지금껏 만들어온 내 커리어가 보여주고 말이다.(웃음)
“여성은 내게 늘 중요한 주제”라고 말한 것처럼 여성에 대해, 여성의 목소리로, 여성을 향해 이야기하는 음악을 오래 만들어왔다. 김윤아의 음악 안에 여성이라는 주제가 꾸준히 등장하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내가 2025년에 한국에서 살고 있는 여성이기 때문이다. 솔로 앨범을 작업할 때는 여성으로서의 자아를 투영해 내 이야기를 쓴다. 내 주변 여자들의 이야기 역시 항상 듣는다. 그런데 우리가 사는 모습이 크게 다를 바 없지 않나. 어떤 고민을 하며 무엇을 추구하는지, 어떤 장애물에 부딪히는지 역시 비슷할 것이다. 내 옆에 그들이 존재한다는 사실, 우리가 공유하는 기쁨과 슬픔을 알고 있으니 그것이 자연스레 음악 안에 담기더라.
그렇게 만들어진 음악이 수많은 여성에게 가닿아 위로와 공감을 전하고 있다. 나의 개인적 경험이 보편적 이야기가 되어 누군가와 공명한다는 점은 김윤아에게 어떤 영향을 주나?
얼굴을 모르는 자매가 아주 많다.(웃음) 그 자체로 너무 든든하다. 누군가 나를 좋아해주기 때문이 아니다. 많은 분이 내 음악을 들으며 ‘나만 이렇게 느끼는 게 아니구나’ 하며 위로받는다고 말해주는데, 사실 가장 큰 위안을 얻는 건 나일 것이다. 내 음악을 이해해주는 사람이 있구나. 결국 나는 혼자가 아니구나.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에 나와 타인이 교차함을 느끼는 건 분명 기쁘고 행복한 일일 테지만, 내 경우에는 조금 복잡 미묘하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내 음악에 공감할 때, 그 안에 즐거움만 있는 건 아니니까. 바깥에 털어놓지 못할 감정이라든지, 힘들고 괴로운 순간과 연관되어 있을 때가 많으니 말이다.




김윤아 재킷과 셔츠, 스커트 모두 McQueen.
김윤아의 음악에 담긴 짙은 슬픔에 대해서도 묻고 싶다. 숱한 비관과 우울을 앞에 두고 소리 높여 노래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긴 침묵 끝에) 그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건 노래밖에 없다고 느껴왔는데… 그럼에도 노래한다고 말할 수도 있겠구나. 돌이켜보면 무언가를 창작할 수 있었던 내 원동력은 공허함이 아닐까 싶다. 음악을 통해 스스로를 정화하듯 계속 이야기하고 싶고, 그러다 보면 다른 이들이 품은 검은 무언가와 공명하게 되니까. 그와 동시에 모든 음악의 근원에는 블루스의 요소가 있다고 본다. 슬프고 또 슬픈 것. 그러다 바닥으로 떨어질 것 같은, 한없이 침잠하는 지점 같은 것 말이다.
록이 지닌 정신 중 하나는 사회를 예리하게 바라보고 문제점을 꼬집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학교 폭력을 이야기하는 ‘낙화’나 노숙자 문제를 다룬 ‘이런데서 주무시면 얼어죽어요’부터 혐오가 만연한 세태를 꼬집는 ‘광견시대’ 등 김윤아의 음악을 따라가다 보면 한국 사회가 어떻게 변해왔는지 보이는 것도 같다. 음악 안에 지금 우리의 현실을 담아내는 이유는 무엇인가?
내가 몸담고 있는 사회 자체가 내 영감의 근원이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늘 궁금하다. 내가 사는 세계는 굉장히 좁다. 음악을 하고, 특수 직종이고, 만나는 사람이 제한되어 있다. 그런데 뉴스나 SNS에는 타인의 삶이 있더라. 하나의 세계에 잠식되지 않은 채 다른 이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떤 점이 괴롭고, 무엇에 행복한지를 알고 싶다. 그 마음이 자연스레 음악에 담긴 게 아닐까.
올해로 데뷔 28년 차다. 처음 음악을 시작하던 시기를 돌이켜보면 무엇이 달라졌다고 느끼나?
데뷔 전에는 그저 우리 이름으로 된 앨범이 하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까짓것 해보고 안 되면 그만둬야지. 그럼 뭐 먹고 살지?(웃음) 싶었다. 그런데 이젠 음악이 나라는 사람의 일부가, 내가 살아가는 방식이 됐다. 다음 무대와 앨범은 지금보다 잘 만들 거라고 생각하며 음악 안에 머물고 있다. 난이도가 점점 올라가는 퀘스트를 하 나하나 깨며 게임을 하는 느낌이랄까. 그 성취감도 분명히 있고.(웃음)
김윤아의 최종 퀘스트는 무엇인가?
더 깊은 소리를 내는 것. <비긴어게 인> 촬영차 포르투갈에 갔을 때, 파두(fado, 포르투갈의 전통음악) 클럽에서 1백 세가 넘은 가수의 노래를 들은 적이 있다. 가사의 의미를 모르는데도, 그 소리 안에 바다와 사랑과 이별이 있다고 느껴지더라. 그 순간 나도 저런 할머니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나이 듦의 자연스러운 과정
속에서 더 넓은 세상을 만날 수 있게 되겠지? 그럴수록 내가 더 깊은 소리를 내길 바란다. 지금보다 일흔일 때 더 좋아지길.(웃음) 그럼 그 안에 더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다는 거니까.
오랜 시간 음악 안에 머물며 변치 않길 바라는 것은 무엇인가?
앞서 말한, 내 안에 설정한 목표치를 이전보다 높게 잡는 시스템. 무언가에 안주하거나 이 정도면 적당하지 않나, 하는 생각은 끝까지 하고 싶지 않다.
계속해서 나아갈 김윤아의 음악과 오래도록 함께하고 싶다. 마지막 질문으로 ‘은지’라는 곡을 빌려 질문하고 싶다. ‘은지야’라고 나직이 내뱉으며 시작하는 이 곡이 ‘빛나고 아름답고 생기발랄했던 어떤 여자들에 대한 이야기’라고 말한 바 있다. 세상 모든 은지, 나의 수많은 자매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무엇인가?
나도 노래를 빌려 답하고 싶다. 영상 촬영 중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추천하고 싶은 나의 노래로 ‘해피엔딩’을 골랐다. 그 곡에 ‘난 자유롭게 날아갈 거야’라는 가사가 있다. 세상 모든 은지들이 자유롭게 날아갔으면 좋겠다. 아주 자유롭게. 훨훨!(웃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