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록은 남성의 전유물’이라는 벽을 몸소 부숴온 이들. 돌아온 ‘밴드 붐’ 앞에서 한영애, 김윤아, 황소윤이 한자리에 모였다. 증폭된 기타 리프, 폭발적인 드럼의 굉음 위로 이들의 목소리가 울려 퍼질 때, 우리는 하나가 된다. 세상과의 타협을 거부하고, 자신에게 안주하지 않으며 내면의 불씨를 음악으로 폭발시켜온 여성들. 세대의 경계를 뛰어넘은 이들의 만남. 그 강렬한 파동.

한영애 블랙 블라우스와 스커트 모두 Comme des Garçons. 황소윤 블레이저와 티셔츠, 팬츠 모두 Balenciaga, 안경 Hakusan.

황소윤
미국으로 거처를 옮겨 생활하고 있다고 들었다. 어제는 일본에서 공연하고, 오늘 한국에 도착해 촬영장으로 왔다고. 바쁜 일정에도 이 자리에 함께해준 이유가 궁금하다.
대한민국에 로커가 얼마나 드문지 우리 다 알지 않나.(웃음) 이건 해야만 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한영애, 김윤아라는 멋진 사람들과 함께하니까 더더욱.
이 기획에 황소윤이 빠져선 안 된다고 생각함과 동시에 초대해도 괜찮을지 고민했다. ‘여성 로커’로 불리기를 원치 않을 수 있다고 짐작했기 때문이다. 황소윤의 음악을 록이라는 장르만으로 한정할 수 없고, 젠더 역시 어떤 틀일 수 있으니 말이다.
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한다. 그걸 규정해야만 하는 걸까, 아니면 극복하고 넘어선 삶을 살아야 할까. 그런데 요새는 애써 부정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대한민국에서 여성으로 태어났고, 록 음악을 하게 됐고, 감사하게도 그 신 안에서 나를 인상 깊게 여겨주는 분이 많았다. 나라는 사람보다 정체성을 앞세우지 않으려 할 뿐, 부정하지 않은 채 앞으로 나아갈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
“저를 록 스타로 생각하든, 여자로 생각하든 뭐든 상관없어요. 저는 어떤 것이든 될 수 있거든요”라고 한 인터뷰에서 말한 것이 떠오른다.
예전에는 누군가 나를 원하지 않는 방식으로 규정할 때 억울하거나 화가 났다. 그걸 깨부수고 싶다는 반항심도 있었고. 그런데 요즘은 조금 다르게 생각한다. 우리는 서로를 오해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나는 여성 로커로 분류되어 이 기획에 함께하게 됐지만, 누군가는 나를 그저 시골뜨기 자연인으로 볼 수도 있다. 록이 아니라 소울 음악을 만들기도 하고, 나중에는 음악감독이 될 수도 있겠지. 비유하자면 물 같다. 물은 어디에 담아도 물이지 않나. 오늘은 컵에 담긴 소윤, 내일은 양동이에 담긴 소윤.(웃음) 하지만 어디에 담겨 있든 황소윤은 그저 황소윤일 것이다. 그 사실을 죽기 전까지, 혹은 죽고 나서도 보여주지 않을까 싶다.
나를 규정하는 것들에서 조금은 자유로워졌다는 말로도 들린다. 기존의 생각이 변화한 계기는 무엇인가?
가장 강해지는 법이 가장 유연해지는 것임을 생각하다 보니 여유를 갖게 됐다. 그런데 이를 위해서는 스스로를 끊임없이 갈고닦아야 하더라. 지난해부터 ‘집은 어디일까’라는 단순하고도 심오한 질문을 품은 채 노마드처럼 세계 여기저기를 누비고 있다. 사람이 계속 같은 환경에만 있으면 그곳이 주장하는 나로만 살게 되는데, 곳곳에서 시간을 보내니 그 안에서 다양한 내 모습을 마주하게 되더라. 이제는 그냥 내가 있는 곳이 집인 것 같다. 달팽이 바이브로.(웃음)
어딘가에 속하지 않아도 나 자신이 집이 되면 가장 자유로운 거겠지. 황소윤이 음악을 시작한 시기를 돌이켜볼까. 사실 록 키드(rock kid)는 아니었다고.
맞다. 록 음악을 좋아하진 않았다. 솔직히 지금도 록이 뭔지 잘 모른다.(웃음) 그저 기타 치는 걸 좋아하고, 특히 모든 음악의 뿌리라 일컬어지는 블루스에 심취해 있었다. 록의 음악적 특성보다는 그것이 지니는 기운, 에너지, 삶을 대하는 자세 같은 것에 영향을 받은 게 아닐까 생각한다. 록… 뭘까….(일동 웃음) 끊임없이 고민하는데, 결국 두려움이 없는 것이라 믿고 있다. 단순히 겁이 없는 상태라기보다 담대하게 나아가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많은 이들과 소통하는 것. 록은 다른 장르에 비해 문화를 아우르거나 관객과 소통하는 데 있어 보다 폭넓게 이야기를 나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두려움 없이 나아가는 과정에서 세상을 이롭게 해주는… 무언가가 아닐까.(웃음)

한영애 블랙 블라우스 Comme des Garçons.

슈즈와 스카프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김윤아 재킷과 셔츠, 스커트 모두 McQueen.


황소윤의 폭발적인 무대 위 에너지에 대해서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무대에 오르면 오를수록 새롭게 보이는 것도 있나?
늘 새롭다. 예전에는 무언가를 분출하는 데 그쳤다면 요즘은 무대를 명상적 차원으로 이용한다고 느낀다. 일상에서는 절대 경험할 수 없는 것들이 거기에 있다. 세상 모든 감각이 한꺼번에 느껴지는 기분. 그걸 타인과 공유할 수 있다는 것도 소중하다. 요새 앨범을 준비하느라 공연을 못 했는데, 어제 오랜만에 무대에 섰다. 그런데 함께 공연한 드러머가 이런 얘기를 하더라. “예전에는 무대 위 네 모습이 다 쥐어짜고 쏟아내는, 꺼져가는 불 같았는데 오늘은 네가 그 불 위에서 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 신기한 건 나도 같은 걸 느꼈다는 점이다. 이건 굉장히 비언어적이고 추상적인 표현이지 않나. 그런데 공연하다 보면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감각을 공유할 수 있게 된다. 무대 위에서 힘껏 싸우고 쏟아내고 서로의 눈을 보고 사랑하며 스스로를 더 알게 되는 것도 같다.
밴드 새소년과 So!YoON!의 음악 중심에는 황소윤이 있다. 내 음악의 중심이 결국 ‘나’라는 점에서 커다란 자기 확신이 필요하지 않을까 짐작한다. 내 직관 혹은 내가 생각한 방향이 못 미더울 때는 없나?
어휴, 8할은 못 미덥지.(일동 웃음) 늘 불안해 의심하고 재확인한다. 하지만 동시에 완전히 확신에 차서 행동하는 것이 좋은지도 잘 모르겠다. 나도 강한 확신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이 아니다. 뜬구름 잡는 이야기일 수 있는데, 나는 늘 죽음이 두렵다. 어차피 우리는 모두 죽는다는 사실을 강하게 체감하며 살아간다. 예전에는 내가 좋아서 했더라도 타인의 반응이 시큰둥하면 ‘아닌가?’ 했는데, 요새는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우리에게 주어진 생의 기간은 길어야 1백여 년일 것이다. 그 짧은 시간 동안 내가 좋은데, 남이 아니라고 해서 결국 아닌 게 되는 거라면… 그럼 왜 살아야 할까 싶은 거다.(웃음) 죽음 앞에 단순하고도 명확한 답이 있다고 느낀다. 죽음이 스스로의 직관을 더 믿고 아껴주게 한다고, 그래서 나를 미워하지 않고 사랑하게 만든다고 말이다. 물론 창작자로서 대중과 소통해야 하니, 직관 이후에도 이것을 왜 하는지 명확한 정리와 설명이 필요하다. 오랜 고뇌를 거쳐 나의 언어를 만들어야 하고 말이다. 멀리 왔지만, 결국 치열하게 삶에 대해 고민해야 하는 것 같다.
앞서 한영애와 대화를 나누는데 ‘내 안에 불덩이가 있고 그걸 표출할 수단이 필요했다’고 하더라. 황소윤도 그와 같은 창작 욕구를 느끼나? 그렇다면 그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일지 궁금하다.
물론이다. 모든 창작자가 죽기 전 자신의 족적을 남기고 싶어 하지 않을까 싶다. 음… 요즘 사랑하는 것 외에도 에너지를 뺏길 일이 너무 많다고 느낀다. 세상 돌아가는 모습도 그렇고.(일동 웃음) 저마다 일상에서 겪는 스트레스와 갈등도 있겠지. 그럼에도 내가 지닌 소명은, 결국 내게 중요한 것은 내 안의 불씨를 절대 꺼뜨리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을 사그라뜨리는 것이 있다면 계속 제거하고 어디서든 장작을 구해다가 꾸준히 넣어주는 것이 중요하겠지.
활활 타오르도록.(웃음) 결국 나를 계속 들여다보는 시간이 필요하겠다.
맞다. 끊임없는 자기 돌봄의 시간.(웃음)
오랜 시간이 흐른 뒤, 나의 음악이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나?
앞으로 만들어갈 음악이 미래의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 고스란히 현재의 소윤을 기록한 것이고, 떳떳하고 솔직하게 발가벗고서 지금을 기록했다면 그것은 미래도 과거도 아닌, 현재에 있을 것이다. 결국 모든 소윤이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음악을 만들고 싶다. ‘그땐 그랬고, 저땐 저럴 거야’가 아니라 그저 현재의 감각이 그대로 느껴지는 것. 준비 중인 앨범에서 탐구하고 있는 것이 ‘현재’인데, 이 말의 뜻은… 새 앨범을 들어보면 알 수 있을 거다.(웃음)
설레는 마음으로 기대하고 있겠다. 새소년의 ‘자유’라는 곡을 빌려 마지막 질문을 건네고 싶다. 록의 정체성이 ‘두렵지 않음’이라고 말한 것과도 이어지는 듯하다. 결국 황소윤을 두려움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두려움이 없다는 건 결국 많은 것을 사랑할 수 있음을 의미하지 않을까. 그런데 동시에 사랑할 수 있어서 두렵지 않은 것도 같다. 자유가 무엇인지 아직 잘 모르지만,(웃음) 무언가를 너무 사랑하면 삶을 살아가는 것 자체가 그리 고통스럽지 않더라.



